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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 “40주년 신곡 ‘나는 오늘만 산다’는 제 나이대 사람들에게 ‘으쌰으쌰! 힘내자’는 위로”

박시현 기자 shpark559500@gmail.com

등록 2026-10-18 13:15

‘철의 노동자’등 노동현장에서 많이 불려

민중가요 보다는 ‘저항가요’라고 불러달라

대학가요제 출전했다 2차예심일 착각 하차

“고 김광석씨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형이었다

사망 전날 만나기로 했었는데 결국… 미안”

□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안치환편 (1)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인생을 노래해 온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데뷔 40주년을 맞아 15집 정규 앨범 '나는 오늘만 산다'를 들고 대중 앞에 섰다. 지난 17일 방영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 출연한 그는 대학가요제에 대한 못다 이룬 꿈부터 ‘저항가요’에 담긴 소신, 故 김광석과의 마지막 약속까지 특유의 소탈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40년 음악 여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안치환은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가 아니다. 그의 노래는 오늘의 중장년 세대가 학창 시절 함께 부르며 청춘의 꿈과 열정을 나눴던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트롯뉴스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의미와 한 세대의 추억을 되짚어보고자 이날 방송을 두 차례에 걸쳐 리뷰한다.

방송은 유쾌한 인사로 시작됐다. 김주하 앵커가 “어떻게 20년 전이랑 똑같으시냐”며 반갑게 맞자 안치환도 재치 있는 농담으로 화답했다. 김주하가 그의 콘서트에 두 번이나 몰래 다녀왔다고 고백하자, 정통 토크쇼 출연이 거의 처음이라는 안치환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이내 마음을 열고 40년 세월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17일 공개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는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인생을 노래해 온 싱어송라이터 안치환이 데뷔 40주년을 맞아 15집 정규 앨범 '나는 오늘만 산다'를 들고 방송토크쇼로는 처음으로 출연하여 음악인생이야기를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놓았다./사진=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시청자실로 걸려온 출연 요청


이날 방송에서는 출연 섭외 과정에서 벌어진 뜻밖의 해프닝도 공개됐다. 

안치환의 방송 출연을 요청하는 전화가 제작진이 아닌 방송사 ‘시청자실’로 걸려왔다는 것이다. 평소 시청자 민원 등이 접수되는 곳에 “안치환 출연 좀 시켜달라”는 전화가 걸려온 셈이다.

안치환은 “소속사가 아니라 공연을 기획하시는 분인데, 방송 세계를 잘 모르시더라. 저도 방송 쪽으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방송국에 전화 한번 해보세요’라고 했더니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회자가 “받는 분도 ‘장난하지 마세요’ 할 뻔했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그는 “그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며 웃었다. 

방송 출연보다 공연 무대에 익숙한 안치환이기에 벌어진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안치환의 현재 말해주는 노래

 

15집 타이틀곡 ‘나는 오늘만 산다’는 안치환의 현재를 가장 정확히 말해주는 노래다. 그는 “어쩌다 보니 15집이 됐다. 40년 동안 발표된 제 음악적 성과물이고, 개인 역사에 기념하고 싶은 앨범”이라고 말했다.

타이틀곡을 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제 나이쯤 되면 시간 흐름이 빠르다고들 하잖아요. 근데 저는 하나 더 있어요. ‘시간이 별로 없구나’라는 현실적인 감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관이라기보다 소중함을 더 느끼고 싶어서다. 제 나이대 사람들에게 ‘으쌰으쌰 힘내자’는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오늘만 산다’는 체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겠다는 선언이다. 40년을 노래해 온 가수가 나이 든 세대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대중가수를 꿈꾸던 모범생


안치환이 처음부터 ‘저항가수’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출발점은 정반대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집-공부-학교가 전부였다. 유일한 친구는 기타였고, ‘아침이슬’ 같은 노래도 고등학교 때는 몰랐다”고 회상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그의 꿈은 대학가요제였다.

 “좋아하던 노래로 평가받고 싶었던 거예요”라는 말처럼, 그는 대중가요 가수가 되고 싶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캠퍼스 선배들은 그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대중가요냐”며 나무랐다. 그 시절의 시대적 공기가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17일 공개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 출연한  안치환은 대학가요제에 대한 못다 이룬 꿈부터 ‘저항가요’에 담긴 소신, 故 김광석과의 마지막 약속까지 자신의 40년 음악 여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사진 아래는  고 김광석과 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사진=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민중가요보다 저항가요로”


안치환은 자신을 수식하는 ‘민중가요’라는 용어에 대해 뚜렷한 거리감을 밝혔다. 

그는 “저는 ‘민중가요’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저항가요까지는 받아들이겠는데, 민중가요라면 민중이 부르고 즐겨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민중들은 우리가 부르던 민중가요보다 전국노래자랑 노래를 더 많이 알아요. 그 이름의 가치를 가지려면 더 많이 사랑을 받았어야죠”라고 지적했다. 그에게 ‘저항가요’는 특정 계층만의 음악이 아니라, “어느 시대든 ‘이건 불합리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는 “저는 용어에 민감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단순한 호칭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음악이 특정 집단의 상징이 아니라 시대의 불의를 느끼는 모든 이의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는 선언이었다.

 

놓친 대학가요제 와 유열


안치환은 학교 밴드부 오디션에서 선배들에게 “깨지고도” 출전했고, 1차 예선은 합격했다. 그러나 2차 예선을 위해 피아노 치는 친구들까지 모아 준비하던 중 날짜를 착각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그는 스스로 일정을 챙겨야 했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전날 예선이 끝난 뒤였다.

김주하가 “그해 대상이 유열 씨였다. ‘내 상이었어야 한다’고 생각 안 했냐”고 묻자, 안치환은 “가끔 유열 씨 만나면 ‘내가 못 나가서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다’고 농담한다”고 했다. 그는 “품성이 좋아서 재밌게 받아준다”며 웃었지만, “만약 그때 나갔더라면 이후 음악적 길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대학가요제의 낙방은 그에게 좌절이 아니라 또 다른 음악의 길로 향하는 분기점이 됐다. 대중가요의 무대를 꿈꾸던 청년은 시대의 목소리를 노래하는 음악가로 걸어갔다.

 

‘철의 노동자’와 백골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찻사) 이전, 대학 졸업 직전부터 안치환의 활동은 시작됐다. ‘솔아 푸르른 솔아’는 노찻사보다 먼저 만들어진 곡이었다.

그의 히트곡 가운데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곡은 ‘철의 노동자’다. 

영화 ‘파업전야’ 엔딩곡으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그에게 첫 OST 작업이기도 했다. 안치환은 “처음으로 공장이란 곳을 가봤다. 부평에 있는 공장인데 모든 것이 다 녹슨, 철의 느낌이 너무 강하게 다가와서 그날 와서 만든 노래가 ‘철의 노동자’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업 장면 뉴스 배경으로 제일 많이 들은 제 노래”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노래를 부르며 그는 불이익도 겪었다. ‘가투(가두투쟁)’ 현장에 나가면 백골단에 잡혀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다만 45일 구치소 생활이라는 알려진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니다, 5일 정도 있었다”며 정정했다.


김광석이 열어준 솔로앨범


안치환은 노찻사에서 음악 담당으로 활동하며 노래를 만들고, 연습시키고, 공연했다. 그는 “엄혹한 독재 시절, 금지된 노래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김광석이다. 

안치환은 “유명해지기 전부터 같이 지냈다. 광석이 형이 먼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고 말했다. 그가 솔로 데뷔를 준비할 때 김광석에게 부탁한 것은 ‘귀뚜라미’와 ‘우리가 어느 별에서’ 데모테이프를 음반사에 전달해 달라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마이킹’이라 불리던 선급금, 즉 제작비를 미리 받고 이후 갚는 방식이 필요했다. 안치환은 “가난했으니까”라고 짧게 말했다. 김광석이 테이프를 갖다 줬고, 음반사가 흔쾌히 응해 그의 첫 개인 음반이 탄생했다. 故 김광석은 안치환의 솔로 길을 연 결정적인 사람이었다.

제작진이 두 사람의 과거 공연 영상을 틀어주자 안치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사랑스러운 형이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컸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항상 싸워야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형은 여유가 있었다. 주로 제가 화음을 넣어줬다”고 회상했다.

 

만나지 못한 마지막 약속


1996년 초, 안치환은 김광석을 만나기로 한 당일이었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털어놨다.

“가까운 곳에 사무실이 있고 저녁에 만나 음반 얘기하려고 했어요. 근데 제 일정이 일찍 끝나서 텀이 너무 길고 피곤하고 집도 멀어서 ‘형, 나 먼저 집에 간다. 오늘은’ 하고 갔어요. 다음날 새벽 영안실에서 봤습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안치환은 “형이 한창 유명세를 누릴 때 그 유명세에 대한 책임, 외로움, 질시를 감당할 힘이 필요한 때였다”며 “옆에서 위로해주고 달래줬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바빠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그때 그랬더라면’ 하잖아요. 너무 안타깝고 아프고 미안하고 슬프고 여러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유명세의 무게를 혼자 견디던 친구에게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제련한 목소리 더 좋아


이날 방송에서 안치환은 ‘솔아 푸르른 솔아’, ‘내가 만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라이브로 선보였다. 초기의 맑고 미소년 같던 음색은 세월과 함께 거칠고 단단해졌다. 

그는 과거의 목소리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 표현하며, 수많은 현장 무대를 지나며 제련된 지금의 목소리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에게 무대는 단순한 직업의 장이 아니었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가 제일 편하다”는 그의 말처럼, 대중과 호흡하는 현장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내가 만일’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그날 밤 더욱 애절하게 울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40년동안 노래를 하는 이유


안치환의 40년은 ‘저항가요’라는 큰 이름 아래에 담기기엔 너무 개인적이고 복잡했다. 대중가요를 꿈꾸던 모범생, 날짜를 착각해 놓친 대학가요제, 공장의 녹슨 공기에서 탄생한 ‘철의 노동자’, 백골단에 잡혔던 젊은 날, 그리고 솔로의 길을 열어준 친구 김광석까지. 그 모든 시간이 그의 목소리에 층층이 쌓였다.

그는 여전히 시대를 노래하지만, 이제는 ‘오늘’을 노래한다. ‘나는 오늘만 산다’는 40년을 지나온 안치환이 자신과 같은 나이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자는 메시지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안치환은 여전히 무대 위에서 가장 편안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청춘의 분노만이 아니라, 세월이 남긴 애정과 미안함, 그리고 살아남은 이의 책임까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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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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