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광고하세요!!

[인터뷰] ‘보약 같은 친구’ 진시몬…“산 넘어서 또 산이어도, 제겐 노래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박강민 기자 oasispool@naver.com

등록 2026-10-20 10:37

공사장 알바로 비행기표 구해 ‘강변가요제’ 입상

군 제대 후 설땅 잃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부도

“넌 트로트 해야 해” 권유 김범룡과 6년 한솥밥

‘애수’, ‘보약 같은 친구’ 등 잇단 히트 인기가수에

“그동안 도와준 지인들 초대 무료 디너쇼가 꿈”

□ 가수 진시몬, 37년 인생을 노래로 말하다!

 

노래방에서 실연당한 청춘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애잔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다. 진시몬의 ‘애수’다. 막걸리 한 잔에 거나해진 어른들이 어깨동무하고 목청껏 외치는 노래도 있다. ‘보약 같은 친구’다. 기쁠 땐 축배로, 슬플 땐 위로로 건네지는 노래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가수 진시몬이다.

‘진시몬’은 예명이 아니다. 천주교 모태신앙 가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불려 온 세례명이자 본명이다. 그는 1989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자작곡 ‘캠퍼스에도 외로움이’로 입상하며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이듬해 ‘낯설은 아쉬움’으로 정식 데뷔했다.


발라드와 록 발라드로 출발한 청년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 실패와 빚, 반지하 생활을 견디다 1996년 세미트로트 ‘애수’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애원’ ‘남자이니까’ ‘미안한 사랑’을 잇달아 히트시켰고, 2015년 자작곡 ‘보약 같은 친구’로 ‘보약 같은 가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인생은 히트곡 목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공사장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비행기표, 제대 후 연락이 끊긴 기획사, 세 번에 걸친 반지하 이사, 부도와 빚, 그리고 2024년 26세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혹독한 이별까지. 

그는 그 모든 굴곡을 노래로 바꿔왔다. 굴곡진 시간을 노래로 견뎌온 가수 진시몬. ‘트롯뉴스’가 그를 만나 지나온 삶과 노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시몬은 1996년 세미트로트 ‘애수’ 이후 ‘애원’ ‘남자이니까’ ‘미안한 사랑’을 잇달아 히트시켰고, 2015년 자작곡 ‘보약 같은 친구’로 ‘보약 같은 가수’라는 별칭을 얻었다./사진 제공=진시몬

 

“공사장 알바 비행기표 구매 상경”

 

진시몬의 음악은 제주의 바닷바람에서 시작됐다. 

아버지는 성가대 지휘와 합창, 중창 활동을 했고, 그 영향으로 그도 학창 시절 합창단과 중창단을 거쳤다. 

고등학교 때는 대중가요에 빠져 그룹사운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고, 대학 시절까지 록과 메탈에 심취했다.

“그때는 김현식, 김범룡, 조용필, 김수희 선배들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가수가 꿈은 아니었어요. 원래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죠. 대학 갈 때도 신문방송학과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고, 재수해서 제주대 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은 우연히 열렸다. 밴드 동아리 친구들이 “우리도 강변가요제 한번 나가보자”라고 말한 것. 

당시 대학가요제는 지역 대표를 선발해 경비를 지원했지만, 강변가요제는 참가비와 상경 비용을 참가자가 부담해야 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려면 비행기표와 숙박비가 필요했다.

“우리 밴드가 일곱 명이었는데 다 같이 올라갈 돈이 없었죠. 애들이 ‘노래하는 시몬이만 올라가라’라고 했어요. 

여름방학이라 여자 멤버들은 냉면집에서 서빙하고, 남자애들은 공사장에서 잡일을 하면서 제 경비를 모아 줬습니다. 저도 공사장에서 일해 비행기표를 끊고 서울에 올라왔어요.”


예선을 통과한 뒤 결선까지 서울에 머물러야 했다. 그는 대학에 먼저 진학한 제주 친구들의 자취방을 하루씩 전전하며 버텼고,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며 그의 서울 체류비를 보태줬다. 그렇게 버틴 끝에 그는 자작곡 ‘캠퍼스에도 외로움이’로 입상했다.

“입상했다고 크게 감흥이 있진 않았어요. ‘좋은 추억이 됐네’ 하고 비행기 타고 제주로 돌아갔는데, 전화가 쉴 새 없이 오더라고요. 기획사들에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당황한 그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이는 당시 제주에 머물고 있던 가수 김수희의 남편이었다. 진시몬이 평소 ‘삼촌’이라 따르던 그는 당시 MBC PD였다. 

그는 “그런 전화는 받지도 마라. 사기꾼이 많다”라며 서울에서 직접 검증된 매니저와 연결해 줬다. 그렇게 진시몬은 프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결혼 후 반지하를 3번이나 옮겨

 

발라드 ‘낯설은 아쉬움’(1989)과 ‘바다를 사랑한 소년’(1991)으로 데뷔한 그는 2집을 끝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제대 후 마주한 가요계는 예전과 전혀 달랐다.

“제대하니까 노래할 자리가 없더라고요. ‘군대 갔다 오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하던 매니저는 연락조차 안 되고. 완전히 붕 떠버린 기분이었죠.”


음악을 내려놓고 택한 건 사업이었다. 친구들과 칫솔 살균기 등을 만드는 제조업에 뛰어들었지만, 무모한 도전은 부도로 돌아왔다. 빚을 갚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제대하자마자 스물일곱에 결혼부터 했어요. 친구 동생과요. 신혼집은 반지하였는데, 장마철이면 물이 차오르고, 옮기면 또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반지하만 세 번을 옮겼습니다.”

갈 곳이 없어진 그가 찾은 건 가수 김범룡이었다. “결국 범룡이 형 집 옆 반지하로 들어갔어요. 1년 치 임대료를 형이 내주셨습니다. 나중에 다 갚았지만, 지금도 감사하죠.”


서울에서 어음 부도를 겪던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여읜 아버지가 가장 그리웠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할 일인데, 혼자 감당하려니 아버지가 없다는 게 원망스럽더라고요. 홀어머니가 삼 남매 데리고 얼마나 많이 이사하셨는지, 호적초본만 봐도 몇 장이 넘어가요.”

모든 빚을 정리한 뒤 그는 일산에서 제주 향토 음식점을 열었다. 갈치구이, 갈치조림, 고등어조림으로 입소문이 나 지역 매출 1위를 찍을 정도로 잘됐다.

“장사가 잘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제야 다시 곡을 쓰고 가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래로 돌아오게 된 거죠.”


진시몬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가대 지휘와 합창, 중창 활동을 했고, 그 영향으로 그도 학창 시절 합창단과 중창단을 거쳤다. 사진은 부모님과 함께한 어릴적 가족사진/사진 제공=진시몬

김범룡이 트로트 무대로 이끌다

 

그를 다시 무대로 이끈 사람은 가수 김범룡이었다. 진시몬은 당시 의정부의 나이트클럽에서 밴드 일을 하고 있었다. 

“제 타임이 끝나고 형을 만났는데, 형이 ‘야 시몬아, 너는 트로트 해야 되겠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왜냐고 물었더니 ‘트로트가 네 목소리에 맞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 그에게 김범룡은 존경하는 선배이자 믿음직한 형이었다. 김범룡은 그의 전 매니저에게 “시몬이를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했고, 진시몬은 김범룡의 사무실에서 함께 작업하게 됐다. 이후 약 6년간 그와 함께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때는 트로트를 잘 안 하려는 가수들이 많았죠. 그런데 저는 아무렇지 않았어요. 원래 김수희, 조용필 선배 노래를 부르면 ‘내 노래 같다’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세미 트로트가 잘 맞았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발라드의 서정과 트로트의 구수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음색을 “세미한 톤”이라고 표현했다. 세월이 쌓이면서 한때 하나였던 목소리의 색이 여러 개로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악기로 치면 톤이 여러 개인 거죠. 경륜이 쌓이니까 표현할 수 있는 색이 늘었습니다.”

 


데모 테이프 9개월 만에 만난 ‘애수’

 

‘애수’는 김범룡 사무실에서 탄생한 곡이다. 그는 당시 신인 작곡가들이 보내온 데모 테이프를 정리하고 듣는 일을 맡았다. “범룡이 형 사무실에 가서 아홉 달 만에 ‘애수’를 만났어요. 신인 작곡가가 보낸 데모였는데, 듣고 ‘형, 이 노래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형이 ‘야, 이거 좋다. 이걸로 하자’고 하셨죠. 그래서 형과 함께 다듬어 만든 게 ‘애수’입니다.”


1996년 발표된 ‘애수’는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곡이 됐다. 이후 ‘애원’ ‘미안한 사랑’ ‘남자이니까’ 등이 이어지며 그는 세미 트로트의 대표 가수로 자리 잡았다.

“그때부터 제가 능동적으로 내 음악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동적인 음악이었는데, ‘애수’ 이후에는 내가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사를 직접 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이 쓴 가사는 작사가의 마음을 추측해야 하지만, 자신이 쓴 가사는 왜 그 말이 나왔는지 알기 때문에 노래하기도 편하고 듣는 사람에게도 전달이 빠르다는 것이다.


 

 “자식보다 친구가 낫더라고요”

 

2015년 10월 발표된 ‘보약 같은 친구’는 진시몬 인생의 또 한 번의 분기점이 됐다. 작사·작곡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제주에 계신 어머니가 위암 수술, 양쪽 고관절 수술, 눈 수술을 연달아 받으셨어요. 서울에 사는 자식보다 병원에 갈 때나 식사할 때 곁을 지켜 준 건 어머니 친구분들이었죠. 하루 종일 친구와 함께 다니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정말 보약 같은 친구뿐이구나’ 싶었어요.”


그는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다”는 가사를 어머니의 관점에서 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식 처지에서는 불효한 마음으로 쓴 가사”라고 웃었다.

제목의 영감은 라디오 방송에서 왔다. 당시 그가 고정 출연하던 TBN ‘박수림의 신나는 운전석’ 노래자랑 코너에서, 한 출연자가 큰 소리로 응원하는 친구들을 향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보약 같은 친구들이에요”라고 말한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제목으로 트로트를 만들면 대박이겠다.’ 싶었어요. 그날 밤 집에 가서 바로 만들었습니다. 약 20일 뒤 방송국에 가서 PD에게 들려줬더니 반응이 폭발적이더라고요.”

주변에서는 제목이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며 “보약을 보석으로 바꾸자”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직감을 믿었다. 사람들이 한 번 듣고 궁금해 하고 기억하는 제목이라는 판단이었다.


곡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라디오를 타고 빠르게 퍼졌다. 

2016년 당시 보도에 따르면 ‘보약 같은 친구’는 성인가요 차트에서 21주째 1위를 기록 중이었고, 결국 52주간 차트 정상을 지키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하고 28년 만에 처음으로 1등을 해봤어요. ‘애수’ 때도 1등은 못 해봤죠. 그때 나도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에게 이 곡이 남긴 것은 인기나 수입 이상이었다. 사업 실패 뒤 흔들렸던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2015년 10월 발표된 ‘보약 같은 친구’는 진시몬 인생의 또 한 번의 분기점이 됐다. 2016년 당시 보도에 따르면 ‘보약 같은 친구’는 성인가요 차트에서 21주째 1위를 기록 중이었고, 결국 52주간 차트 정상을 지키는 기염을 토했다./사진 제공=진시몬

 

“아들 먼저 보내고 ‘산 넘어 산’ 발표

 

2025년 10월 발표된 ‘산 넘어 산’은 그의 인생을 회고하는 가장 솔직한 자전적 노래다. 

가사에는 “고생했다, 멋진 시몬아”라는 문장이 들어간다. 그는 이를 남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위로라고 설명했다.

“돌아보니까 ‘야, 잘 버텼다. 너 진짜 고생했다.’ 하는 거예요. 앞으로도 힘내자는 의미로 제 이름을 그대로 넣었습니다.”

그의 삶은 제목처럼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타나는 길이었다. 사업 실패와 빚을 견뎠고, 가수로 다시 섰고, 그런데 2024년에는 막내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막내아들은 필리핀에서 유학과 의류 사업을 하던 26세 청년이었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살 만하니까 또 다른 일이 터지더라고요. 아들을 먼저 보냈잖아요. 그 마음과 지나온 세월을 담아 만든 게 ‘산 넘어 산’입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 이후 트라우마와 불안도 겪었다고 털어놨다. MBN ‘특종세상’ 출연 당시 그는 “유품 정리도 못 했다”라며 슬픔을 고백했고, 남은 큰아들에게 의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노래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트로트는 경험이 가수에게 진정성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했다.

“꾸며서 쓴 가사를 부르는 것과, 내가 겪은 일을 부르는 것은 다릅니다. 경험이 필링을 만들고, 그 필링이 듣는 사람의 가슴에 닿는 거예요.”

 


“좋은 트로트는 기교가 아니라 위로”

 

진시몬이 생각하는 좋은 트로트는 기교가 아니라 위로다.

“즐거울 때는 즐거움이 배가 되게 해 주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는 노래. 그게 트로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요즘 후배들이 꺾기와 기교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 “꺾기가 꼭 필요한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선배들은 기교보다 감성 전달에 힘썼다는 것. 그는 후배들의 정확한 박자와 음정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아쉬운 점으로 ‘필링’을 꼽았다.

“요즘 애들은 기계처럼 잘해요. 박자, 리듬, 음정은 선배들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잘한다.’ 싶은데 가슴으로 안 와요. 선배들은 툭툭 던져도 가슴으로 팍 오거든요. 그건 기술이 아니라 세월과 경험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는 동시에 후배들을 부러워한다. 

오디션과 디지털 플랫폼, 글로벌 진출의 가능성이 열린 환경은 자신이 꿈을 키우던 시절과 다르다는 것이다.

“좋은 세상에 태어났죠. 노력하고 연습하면 세계로도 갈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까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가사”

 

AI 시대의 음악에 대해 그는 낙관과 경계를 동시에 보인다.

“AI가 편곡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전 세계 음악을 학습해서 명령어만 넣으면 상상 못 할 리듬과 편곡이 나옵니다. 다양한 악기도 쓸 수 있고요.”

그는 AI 편곡이 트로트의 세계화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트로트 특유의 정서를 세계적 대중음악의 편곡 감각과 결합하면, 의외의 히트곡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트로트 편곡에 새로운 색이 더해져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악들 사이에 끼어들면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 히트곡 하나만 생겨도 크게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그는 ‘가사’를 꼽는다.

“AI는 사람의 사연과 감정, 그 마음을 울리는 표현을 다 만들 수는 없어요. 가사는 노래할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앞으로는 가사를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창작 방식도 삶에서 나온다. 혼자 앉아 있을 때보다 술자리와 대화 속에서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 기억을 가사로 옮기는 것이다.

“실제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다음에도 인생 이야기를 쓸 것 같습니다.”

 


“범룡이 형은 호적만 없을 뿐 형제”

 

무대 밖의 진시몬은 골프를 즐긴다. 핸디캡은 싱글이고, 김범룡과 녹색지대 동생들과 자주 라운딩한다. 힘들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김범룡이다.

“형하고는 지금도 호적에만 없지, 형제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으로 트로트 전향과 직접 작사·작곡을 꼽는다. 반면 잘못한 선택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사업 실패도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고, 열정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무대가 하나 있다.

“60세가 되기 전에, 저를 여기까지 밀어준 지인들을 모두 모셔서 자비로 디너쇼를 하고 싶어요. 음식을 대접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분 덕분에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원래는 40세에 은퇴하려 했고, 이후 50세, 다시 60세로 미뤄졌다고 웃는다. 그러나 언제 그만둘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거예요. 노래를 안 하면 골프만 치며 살고 싶습니다.”

10년 뒤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소박하다.

“‘참 좋은 노래를 많이 불렀다.’, ‘노래를 잘했다.’ 정도면 됩니다.”


진시몬은 "60세가 되기 전에 그동안 도와준 지인들을 모셔서 자비로 디너쇼를 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분 덕분에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사진 제공=진시몬


꺾이지 않는 소리, 깊은 위로가 된다.

 

진시몬의 인터뷰에는 연예인다운 포장이 거의 없다. 

제주 법학도가 친구들과 함께 모은 비행기표 한 장을 쥐고 상경했던 청년, 부도와 반지하 물난리를 겪으며 빚을 갚았던 사업가, 그리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 그는 그 모든 시간을 숨기지 않고 노래에 담았다.

‘애수’가 사랑의 이별을 부르는 노래라면, ‘보약 같은 친구’는 함께 늙어가는 우정을 부르는 노래다. 그리고 ‘산 넘어 산’은 살아온 세월 전체를 향해 스스로 건네는 위로다.

그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화려한 꺾기가 아니라, 꺾이지 않고 버텨온 한 사람의 진정성이기 때문이다. 


“고생했다, 멋진 시몬아”라는 그의 말은, 오늘도 각자의 산을 넘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따뜻한 응원이다.

 


<저작권자© 트롯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박강민

박강민

기자

oasispool@naver.com

여기에 광고하세요!!

트롯뉴스
등록번호서울 아56004
등록일자2025-06-20
발행일자2026-10-23
발행인박강민 이진호
편집인박강민
연락처02)552-9125
이메일trotnewspool@gmail.com
주소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64길 13, 6층 610a
트롯뉴스

트롯뉴스 © 트롯뉴스 All rights reserved.

트롯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