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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인터뷰 : 김순곤 ②] 좋은 노래는 언젠 가는 돌아와…트로트 인디로 새 ‘바람’을 꿈꾼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8-21 12:00

‘바람의 노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 인생 곡 됐다

‘시어’는 아름답지만, 노래는 듣는 순간에 전달 돼야

나이 들면서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노래에 관심

AI작곡 할 수는 있지만 나에게 죄 짓는 느낌이 들어

요즘 노래가사들 자극적이고 저속한 표현은 아쉬워

파격적 방식으로 감동 주는 새로운 가사언어 실험 중

인생을 ‘나이테’에 비유한 김국환 신곡 곧 선 보일것

□ 트로트 명곡 제조기 김순곤 인터뷰 ②끝

 

인터뷰 1편에서 김순곤의 창작론은 결국 ‘전달’로 귀결됐다. 가수에게 편하게 불리고, 듣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남는 것. 

그 작사론의 정점에 선 작품이 바로 ‘바람의 노래’다.

김순곤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자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40년 넘게 1,000곡 안팎의 노랫말을 써온 사람이다. 히트곡도 많고,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작품도 많다.

 

그런 그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의 노래를 다르게 보게 됐다고 했다. 바로 ‘바람의 노래’다.

“전에는 ‘바람의 노래’가 아니었는데 ‘바람의 노래’가 됐어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해줬고, 시간이 지나 다시 들어보니 ‘내가 쓴 것 중에 그래도 가장 잘 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언젠가는 이게 내 묘비명에 적혀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40년 넘게 수많은 노랫말을 써온 작사가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한 작품을 꼽는다는 것. 그만큼 특별한 의미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김순곤은 일산의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노랫말을 구상하고 곡과 편곡 아이디어를 다듬으며 꾸준히 창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필라델피아서 날아온 전화 한 통

 

‘바람의 노래’가 만들어진 과정은 지금 생각하면 꽤 낭만적이다.

조용필이 미국에 있을 때였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음원을 보내고 메신저로 수정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조용필은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 멜로디를 직접 불러줬다.

“‘오늘 녹음해서 더빙했어.’ 그러면서 집 전화로 음을 들려줬어요. ‘여기다 허밍을 더 넣었다.’ 하면서 상의하고, 전화로 필라델피아에서 소통하고 상의하는 거야. 그럼 나는 이제 멜로디를 기억해서 가사를 쓰는 거죠.”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기억하고, 그 멜로디 위에 가사를 얹었다.

오늘날이라면 파일 하나 보내고 수정안을 주고받으면 끝날 일이지만, 당시에는 멜로디 자체를 귀로 기억해야 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전화선을 통해 음악과 언어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람의 노래’가 됐다.

  김순곤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로 지목한 '바람의 노래'가 수록된 조용필 16집 앨범

 

“사실 ‘바람의 노래’는 그냥 시죠”

 

흥미로운 것은 정작 김순곤 자신이 ‘바람의 노래’라는 제목을 처음부터 작사하기 쉬운 말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바람의 노래’는 그 말 자체로는 내용은 가사로 쓰기에 좀 부적합하죠. 사실은 그냥 시죠.”

앞서 이야기했듯 그에게 시와 노랫말은 다르다.

시어는 아름답지만, 노래는 듣는 순간 전달돼야 한다. 빠른 템포에서는 무거운 시어가 오히려 의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시어를 쓰면서 노래 가사로 전달력이 있는 가사를 쓰는 것은 굉장히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잘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괜히 어렵고 어려운 노래가 되기에 십상이죠.”

 

‘바람의 노래’는 그 어려운 경계를 통과한 작품이다.

인생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지만 어렵게 들리지 않는다. 한 시대의 유행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자신의 삶을 대입할 수 있다.

그래서 20대가 들을 때와 50대가 들을 때, 다시 70대가 들을 때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김순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들어도 좋고 10년 후에도 좋고, 그게 또 사실은 시점과 관계없는 인생의 어떤 이야기를 쓴 거니까.” 좋은 노래는 시대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통과한다.


'바람의 노래' 악보

 

세상에 따뜻한 답 남기고 싶다

 

‘바람의 노래’는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에는 사랑이라는 답으로 향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한 것인지 묻자 김순곤은 거창한 설계는 아니었다고 했다.

오히려 자기 생각이 세월과 함께 달라진 결과라고 했다.

젊은 시절 그는 단호했다.

“‘문밖에 있는 그대’를 쓸 때만 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게 테마였어요. 그냥 네 갈 길로 가라.”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용이 어떻든 마무리는 좋게 하자. 긍정적인 마무리로 듣는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고민을 요즘 많이 해요.” 젊은 작사가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면, 지금의 김순곤은 그 질문 끝에 조금은 따뜻한 답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은 세월이 만든 변화이자 작사 관의 변화다.

 

 

좋은 노래 묻혀도 사라지지 않아

 

김순곤에게 ‘역주행’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박강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가 그랬다.

당시 박강성은 제대로 방송 활동을 하지 못했고, 미사리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다른 가수들이 그 노래를 듣고 악보를 받아서 갔고, 다시 다른 업소에서 불렀다.

노래는 사람의 입을 통해 퍼졌다.

방송이 아닌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김순곤은 그 경험을 통해 하나의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좋은 노래를 만들면 언젠가는 시간이 흘러도 꼭 알아주는구나!”


 김순곤은 좋은 노래는 언젠가는 시간이 흘로도 꼴 알아준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박강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도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대표적인 역주행 곡이다. / 사진=박강성의 ‘문밖에 있는 그대’ / 여수MBC '가족 콘서트'


‘남자라는 이유로’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박우철이 불렀지만 결국 조항조의 목소리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노래의 운명은 발표 순간에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노래는 잠시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것이 김순곤이 생각하는 ‘명곡의 시간’이다.

 

 김순곤이 작사한 '남자라는 이유로'는 우여곡절 끝에 조항조가 부르게 되면서 가수 조항조를 스타로 만드는데 일조한 곡이다/사진=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 / KBS'가요무대'

 

그래서 그는 지금 ‘나이테’를 쓴다

 

그 믿음은 현재 그의 작업에도 이어진다.

지금 김순곤이 김국환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노래가 ‘나이테’다.

그 제목처럼 사람의 인생을 나무의 단면에 새겨진 나이테에 비유했다.

“사랑할 땐 연분홍, 이별하면 상처는 검붉은 색. 그런 색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사람이 연륜이 쌓이고 기쁜 일, 슬픈 일이 쌓이는 거죠.”

그런데 김순곤이 생각한 방식은 조금 다르다.

후렴에 문장이 없다.

“‘나이테’라는 단어가 받침이 없고 되게 재미있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래서 후렴부는 가사가 없어요. 나이테만 반복돼요. 멜로디하고 기타하고 나이테만 계속.”

단어 하나가 멜로디와 반복되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바람의 노래’가 깊은 문장과 사유로 인생을 이야기했다면 ‘나이테’는 단어 하나로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출발점은 같다.

사람에게 닿는 것.

김순곤은 더 과감한 실험도 생각하고 있다.

“조사나 다른 게 일체 빠진, 단어만 있는 가사. 그걸로도 충분히 전달력 있게 이야기를 만들고,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문장을 줄이고 여백을 늘리는 방식이다.

40년 전 ‘고추잠자리’로 익숙한 문법을 깨뜨렸던 사람이 이제는 새로운 언어 자체를 실험하고 있다.

 

 

엔카와 샹송에서 본 ‘서사의 힘’

 

그가 요즘 관심을 두는 또 하나는 노랫말의 서사다.

그는 일본 엔카를 예로 든다.

엔카에는 불륜, 이별, 복수처럼 드라마에서는 흔하지만, 한국 노래에서는 쉽게 다루지 않는 이야기가 많다.

“엔카가 어떻게 보면 되게 독한 얘기를 하는데 되게 슬프게 부르는 거야. 표정은 안 변하는데 진짜 독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프랑스 샹송의 사례도 들었다.

연인과 마차를 타고 가는데 술주정뱅이 남편이 마차에 치여 죽고, 여자는 이제 마음대로 만날 수 있다며 기뻐하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노래로 옮기면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표현을 제대로 다듬는다면 강한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

“그 내용은 그런데도 감동이 있고 슬프고... 내 이야기처럼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김순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새로운 노랫말이다.

“우리 가사가 좀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는 곡이 한번 나왔으면 해요.”

 

 

요즘 트로트 좋은 신곡 없는 것 같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 현재의 트로트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다.

“지금 진짜 요즘 트로트에 대해서 느끼는 건 좋은 신곡이 없는 것 같아요.”

가수는 많아졌지만 새로운 노래는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구조적인 문제로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을 지목한다.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에서 신곡을 안 해줘요. 왜냐하면, 장사해야 하니까 기성곡 가지고 쇼만 하는 거죠.”

문제는 신곡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다.

나오더라도 기존 성공 방식을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양산해 낸 거지. 그런데 그 양산하는 방식이 너무 똑같았어요. 쇼 형태도 똑같고 레퍼토리도 똑같고 가수들 의상도 다 비슷하고.”

그는 이를 밥상에 비유했다.

“밥상을 차리면 거기에 올릴 재료가 좋아야 하는데 신곡은 하지 않고 우려먹을 게 없이 만들어 놓은 거죠. 그냥 뽑아 먹기만 한 거예요. 그러니까 금방 바닥이 드러나는 거죠.”

 

 

‘술이 달다며’ 살리고 싶은 노래

 

김순곤이 직접 만든 곡 가운데 지금의 트로트에서 다시 살려보고 싶은 작품도 있다.

윤수현에게 준 ‘술이 달다며’다.

“술이 달다며, 술이 달다며 몇 잔 마시더니 이 사람 우네요. 이 사람 또 우네요.”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헤어지고 돌아온 사람이 술을 마시다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편곡이 자기 생각과 달랐다.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냥 안 했으면 좋겠다 했죠. 노래도 키가 너무 높고, 전체적으로 내가 의도한 게 전혀 아니어서.”

 

그러나 가사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내가 의도한 대로 하면 최근에 나오는 트로트 중에서는 괜찮은 노래를 만들 것 같아요. 언젠가 저 노래를 잘 살려봐야겠다고 생각해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노래도 그에게는 끝난 작품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노래다.

 

 

트로트 저작권의 그늘 개선돼야

 

김순곤이 현재 트로트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지 않은 것이 저작권 문제다.

40년 넘게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작사가라면 상당한 저작권료를 받으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많지 않아요. 왜 많지 않냐면 진짜로 그게 다 옛날 노래들이잖아요. 소급적용이 안 되잖아요.”

그는 생활하는 데는 괜찮지만, 사람들이 상상하는 만큼의 액수는 아니라고 했다.

노래가 방송되거나 실제로 불려야 수익이 발생하는데, 오래된 작품은 그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특히 트로트의 저작권 구조가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수익이 트로트가 제일 불리해요.”

종편의 트로트 프로그램은 많지만, 저작권료는 크지 않고, 외주 제작 구조 때문에 방송 사용료도 적다는 것이다. 라디오 편성도 많지 않고, 노래방 역시 세대가 바뀌면서 트로트 이용 빈도가 줄고 있다고 했다. 선거 송도 사용료가 정해져 있어 작가가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노래가 유명해지는 것과 창작자가 그만큼 보상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김순곤은 자유자재로 AI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AI로 곡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죄의식이 있다."라며 정작 AI를 활용한 곡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 사진=양희수 기자

  

무대 채울 새 노래가 부족하다

 

그는 ‘배 들어온다’를 통해 원 가창자와 후배 가수 사이의 현실도 이야기했다.

김국환을 위해 만든 이 곡은 코로나 이전 완성됐지만, 발표가 미뤄졌다. 이후 강문경이 방송에서 부르면서 알려졌고, 다른 젊은 가수들도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역주행했다.

하지만 정작 원 가창자인 김국환에게는 무대가 많지 않았다.

“실상 김국환 형은 혜택을 못 받아요.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데 원 가창자는 무대가 없어요. 사실상 노래를 빼앗긴 셈이죠.”

가창자가 무대에 서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에서 노래가 유명해졌다고 해서 원 가창자에게 반드시 기회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이것을 세대 교체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도 받아들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정상인 걸 수도 있죠. 세대 교체도 되고.”

그가 더 걱정하는 것은 세대 교체 자체가 아니다.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노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AI를 쓰지만 “다 티가 난다”

 

김순곤은 AI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왔다.

프로 툴스와 큐 베이스, 로직을 다루고 출판 프로그램도 직접 사용한다. 북 디자인으로 수많은 책을 만들었고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디자인했다. 컬러링북을 만들어 대만과 중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AI 앞에서는 한발 물러선다.

“편곡 아이디어가 없을 때는 정말 좋아해요. 적절하게. 그런데 AI로 해서 발표한 곡은 없어요. AI로 곡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뭐랄까, 약간 범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죄의식이 아직은 있어.”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는 긍정적이다.

“솔직히 그냥 도구로만 사용하는 건 괜찮아요. 어차피 도구야.”

하지만 AI가 창작 자체를 대신하는 순간에는 경계가 생긴다. 특히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AI의 흔적’이 문제다.

“유튜브에 올리는 뮤직비디오도 AI로 만들잖아요. 다 똑같아요. 다 티가 나요. 그러니까 이제는 누가 쓰냐 안 쓰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해’ 같은 생각이 딱 들어요.”

그렇다고 AI의 효용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가이드 보컬은 유용하다고 평가한다.

“AI가 가이드는 정말 기가 막히게 해주거든.”

결국, 김순곤이 말하는 AI의 자리는 분명하다. 창작자를 대신하는 주인이 아니라, 창작을 돕는 도구다. 어떤 단어를 고르고 어떤 감정을 담을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북 디자인도 200여 권 다재다능

 

김순곤을 작사가라는 이름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음악 밖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북 디자인을 직접 하고, 일러스트와 사진도 한다. 책 디자인만 100~200권가량 했고 그 가운데는 베스트셀러도 있다.

그에게 음악과 디자인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디자인과 음악뿐 아니라 모든 대중 표현 예술이 모두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어떤 행위로 표현하고자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내 일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 기법이니까.”

 

결국, 그가 평생 해온 일은 하나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글을 쓰던 시절을 기억한다.

한때 지인들에게 짧은 시를 보내는 ‘아침 편지’를 꾸준히 했고 1,400편가량의 글을 썼다. 음악과 문학, 영화 등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힘든 이야기를 들으며 썼던 글도 많았다.

그가 시를 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작가로서 가진 재능으로 주변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싶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시 한 편 읽고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노래든 시든 결국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일이다.


 김순곤은  한때 지인들에게 짧은 시를 보내는 ‘아침 편지’를 통해 1,400편가량의 글을 썼다. 시집 '천사가 쓴 악마의 시' (사진)을 출간하기도 했다. / 사진=양희수 기자

 

좋은 노래를 좋은 음식처럼

 

김순곤은 요즘 가요의 자유로운 표현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자신의 활동 시절보다 표현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저속한 표현이 양산되는 데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노래를 음식에 비유했다.

“저희가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들을 골라 먹는 것처럼 좋은 노래들을 잘 골라서 듣는 게 정서적으로 좋은 양분을 섭취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노래를 듣느냐 역시 중요하다는 믿음이다.

그가 평생 노래를 통해, 하려 했던 일도 결국 이것이었는지 모른다.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는 한 줄을 만드는 것.



트로트, 제2의 K팝 될 수 있다

 

트로트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긍정적이었다.

“트로트가 지금 세계적으로 한 장르, 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어요. 아이돌 성공에 영향을 받아서 트로트가 진출한다면 되게 멋진 장르가 될 거예요. 제2의 K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보는 트로트의 경쟁력은 독특함이다.

일본 엔카와 역사적 접점이 있지만 지금 한국에서 불리는 트로트는 일본에도 없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현철과 설운도 등 선배 가수들이 리듬을 빠르게 하고 가사를 단순하게 만들면서 지금의 댄스 트로트가 형성됐고, 처음에는 그런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말로 세계적으로 독특한 형태의 음악이에요. 트로트가.”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한국 트로트만의 자기 언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들었을 때 엔카인지 한국 트로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면 세계화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세계화는 다른 나라의 음악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음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들려주는 데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표현 찾는 일에 더 큰 관심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거대한 무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요제도 원하지 않았다.

“트로트 쪽의 인디? 뭐 그런 걸 하고 싶어요. 직접 작사·작곡 다 하고.”

외부 활동이나 유명세에 대한 욕심도 크지 않다고 했다.

그 말은 지금의 김순곤을 가장 잘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그는 사랑과 이별 대신 동심을 썼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시 새로운 것을 꿈꾼다.

이번에는 동심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다.

조사와 서술어를 덜어낸 단어 중심의 가사, 후렴에 가사가 없는 노래, 더욱 강한 서사를 가진 트로트, 그리고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하는 ‘트로트의 인디’.

출세나 명성보다는 새로운 표현을 찾는 일에 더 큰 관심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스물 한 살의 김순곤과 지금의 김순곤이 가장 닮은 지점이다.

 

 

김순곤이 쓰고 싶은 것은 ‘인생’이다

 

김순곤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고추잠자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노래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는 잃어버린 동심을 불러냈다.

‘부초’는 화려한 불빛 뒤에 가려진 삶을 이야기했다.

‘문밖에 있는 그대’는 사랑의 상처를 노래했다.

‘초혼’은 상실을 담았다.

그리고 ‘바람의 노래’는 결국 인생을 바라봤다.

지금 준비하는 ‘나이테’ 역시 세월을 노래한다.

 

소재는 달라졌지만 결국 하나로 모인다.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노랫말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사람의 하루에 들어가 잠시 머무는 감정이고, 때로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는 장치다.

그가 좋은 노래를 좋은 음식에 비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을 골라 먹듯, 좋은 노래를 골라 듣는 것도 정서적인 양분을 섭취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바람의 노래’

 

인터뷰 말미에 다시 그 노래로 돌아갔다.

‘바람의 노래’

김순곤에게 이제 이 노래는 단순한 작품 하나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에 가깝다.

처음부터 가장 아끼는 곡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평가했고, 자신도 다시 들어보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됐다.

“내가 쓴 것 중에 그래도 가장 잘 쓴 것 같다.”

지금 들어도 좋고 10년 후에 들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특정한 시대에 갇힌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계속 던지는 질문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노래를 자신의 묘비 명으로 생각한다.

명작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젊을 때 쓴 노래를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들었을 때도 부끄럽지 않은 것.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그 노래의 의미가 더 깊어지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그 노래의 의미를 다시 증명해주는 것.

 

 

당장 박수를 받지 않아도 된다.

 

트롯뉴스가 김순곤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수많은 트로트 히트곡을 쓴 작사가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한국 대중가요의 언어가 바뀌는 순간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다.

동심을 노래의 소재로 끌어왔고, 작사가와 작곡가의 작업 방식을 바꾸었으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언어를 찾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생각한다.

여전히 묻는다.

“이런 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질문이 김순곤을 40년 넘게 움직여온 힘인지도 모른다.

 

좋은 노래는 발표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얹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바람의 노래’가 오랜 세월을 건너 지금도 불리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순곤은 이제 다음 노래를 준비한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좋은 노래는 당장 박수를 받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사람에게 돌아온다.

“좋은 노래를 만들면 언젠가는 알아주는구나.”

40년을 노랫말과 함께 살아온 작사가 김순곤이 남긴 가장 따뜻한 창작의 믿음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그가 앞으로도 계속 노래를 써야 하는 가장 좋은 이유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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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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