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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샐러드] 조선 팔도에서 손꼽은 명당, 이중환은 왜 이곳을 주목했을까?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10-02 10:35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기록한 ‘택리지’

명당의 조건으로 지리, 인심 등 4가지 제시

평양 대동강, 안동 하회&도산, 대전 갑천, 강경

평안도, 전라도는 방문 없이 ‘카더라’ 식에 의존

 조선 후기 이중환이 30년 간 조선 팔도를 누비며 쓴 인문지리서 '택리지'


30년 간 조선 팔도를 누비며 쓴 이중환의 『택리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6)의 《택리지(擇里志)》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문지리서 가운데 하나다. ‘택리지’는 ‘살 만한 곳을 가려 기록한 책’이라는 뜻으로, 산과 강, 고을의 위치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살핀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택리지》는 크게 팔도총론, 복거총론, 사민총론으로 구성된다. 

팔도총론에서는 전국을 팔도로 나누어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물, 풍속을 살폈고, 복거총론에서는 사람이 살 만한 터를 고르는 기준을 제시했다. 사민총론에서는 농·공·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사대부의 삶과 내력을 설명했다.

 

특히 이중환은 좋은 터를 고르는 기준으로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를 꼽았다. 

지세와 물길이 좋은지, 먹고살 만한 자원과 경제적 기반이 있는지, 사람들의 풍속과 인심은 어떠한지, 자연환경은 아름다운지를 두루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삶의 터전을 고를 때 교통과 일자리, 주변 환경과 이웃을 함께 고려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명문가 출신인 이중환은 1713년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섰지만, 노론과 소론을 비롯한 당파 간 대립이 격화되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다녀왔다. 이후 관직에 복귀하지 못한 그는 약 30년 동안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농토와 물길, 시장과 교통, 지역의 물산과 풍속,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살폈다.

이러한 현장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1751년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를 집필했고, 이후 내용을 다듬어 《택리지》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택리지’라는 이름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가려낸다는 뜻의 ‘가거지(可居地)’에서 비롯되었으며, 《논어》의 “군자는 살 만한 곳을 가려 거한다”라는 뜻에서 이름을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택리지》는 지리뿐 아니라 역사와 인문, 경제와 풍속까지 폭넓게 담고 있어 필사본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전해졌다. 전국의 살 만한 곳을 기록했다는 뜻의 ‘팔역가거지(八域可居地’, 우리나라의 산수를 기록했다는 의미의 ‘진유승람(震維勝覽’,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 지역의 물산과 교통을 다룬다는 뜻의 ‘동국총화록(東國總貨錄)’, 풍수가들이 참고할 만한 책이라는 의미의 (형가요람(形家要覽)’ 등이 그것이다.

 

결국 《택리지》는 책상 위에서 지명과 지형을 정리한 지리서가 아니다. 정치적 격변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한 선비가 전국을 직접 누비며 땅의 형세와 경제적 조건, 사람들의 삶과 풍속을 살핀 기록이다. 

그래서 《택리지》는 조선의 국토를 바라본 지리서인 동시에,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 생활 지리서라 할 수 있다.

 

 

『택리지』가 주목한 살기 좋은 땅 5곳

 

『택리지』에는 현대적인 의미의 ‘전국 1위부터 5위까지’라는 공식 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다섯 곳은 『택리지』의 관점에서 살펴볼 만한 대표적인 장소를 현재의 지명과 연결해 정리한 것이다.

 

1. 평양 대동강 일대 — 물길을 얻은 큰 도시

오늘날 북한의 평양에 해당한다. 대동강을 끼고 있어 수운과 물자 이동에 유리했고, 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일찍부터 큰 도시로 성장했다. 이곳은 이중환이 중요하게 생각한 ‘생리’, 즉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경제적 조건과 물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겸재 정선이 그린 '연광정' 전경으로 왼쪽 아래가 북한의 국보1호 대동문, 중앙의 높은 곳인 연광정, 상류쪽에는 모란봉과 그 앞으로 능라도가 보인다.

2. 안동 하회 — 산과 물이 어우러진 명촌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크게 휘돌아 흐르고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다. 아름다운 경관뿐 아니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들과 물길도 갖추었다. 이중환이 말한 좋은 터는 경치 좋은 곳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연환경과 생활 기반이 함께 갖추어진 곳이어야 했다. 하회는 이러한 조건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전경으로 '하회(河回)'는 '낙동강이 휘돌아 간다'는 뜻 / 사진=배성식 제공

3. 안동 도산 — 자연과 학문이 만난 곳

도산은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으로 유명하다. 낙동강을 따라 산과 물이 어우러지고,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가 학문을 닦으며 제자를 길렀던 곳이다. 좋은 터를 판단할 때 이중환은 경제적 조건뿐 아니라 사람과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게 여겼다. 도산은 자연과 학문이 결합된 대표적인 공간이다.


 도산서원에서 바라본 '시사단'과 도산면 평야. 시사단은 1792년 정조 임금이 항상 존경하는 퇴계 이황을 추모하기 위해 과거시험(별시)을 열었던 곳 / 사진=배성식 제공

4. 대전 유성·갑천 일대 — 먹고살기 좋은 땅

오늘날 대전 유성 일대와 연결해서 볼 수 있는 갑천 주변은 넓은 들과 풍부한 물을 갖춘 곳이었다.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좋고 시장과의 연결도 편리해 생활 기반을 갖추기에 유리했다. 이중환에게 좋은 땅은 단순한 명당이 아니었다. 실제로 먹고살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5. 강경 — 금강이 만든 조선의 물류 중심지

충남 논산의 강경은 금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수운의 요지였다. 바다와 내륙의 물산이 모이고 큰 장시가 형성되면서 상업이 크게 발달했다. 강경은 ‘생리’의 대표적인 사례다. 경치보다 사람과 물자가 움직이는 경제적 조건이 이곳을 번성시켰다.

 

 논산 강경은 금강이 만든 조선의 물류 중심지 / 사진=논산시

또 하나 주목할 곳이 ‘팔괘정’(八卦亭, 정자의 창살 무늬가 팔괘 모양)이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건립한 정자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추모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장소이자 이중환이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세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정치적 격변으로 관직에서 밀려난 이중환이 이러한 강경에서 『택리지』를 완성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정치적 격변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이중환이 택리지를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노론 세력의 근거지인 강경에서 완성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 사진=충청남도청

 

그런데 왜 전라도는 부정적으로 평가했을까?

 

다만 《택리지》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이중환은 평안도와 전라도를 직접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라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답사 경험이 부족한 탓에 당시 한양 사대부 사회에 퍼져 있던 당파적 인식과 소문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그 결과 전라도의 풍속을 경박하고 교활하다고 평가하는 등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편견과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특정 지역의 사람들을 하나의 성향으로 묶은 지역적 일반화와 편견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히 “이중환이 특정 당파에 속했기 때문에 전라도를 낮게 평가했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시의 지역 인식과 사대부 사회의 가치관, 정치적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직접 현장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자료상의 한계까지 더해지면서 전라도에 대한 평가가 더욱 일방적이고 단편적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경상도에 대한 평가 역시 단순히 호의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중환이 남인 계열의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그가 영남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는 해석이 있지만, 《택리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판도 함께 담겨 있다.다그는 영남의 학풍을 두고 퇴계 이황의 학문만을 정통으로 여겨 그 안에 갇혀 있으며, 학풍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고집스러워 조정의 정치를 헐뜯기 좋아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상도 사람들에 대해서도 호사스러운 생활을 좋아하고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고 비판적으로 기록했다.

 

결국 《택리지》의 가치는 이중환의 모든 평가가 옳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답사한 경험과 당시의 사회적 인식, 개인의 정치적·지역적 관점이 함께 녹아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의미가 있다. 

조선 후기 사람들이 어떤 땅을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겼고, 지역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인 동시에, 당시의 편견과 한계까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다.

 

 

100년 뒤, 전라도 사람이 『택리지』를 고쳐 읽다

 

흥미로운 것은 약 100년 뒤 전라도 출신 문인 황상(黃裳, 1788~1863)이 이중환의 평가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제자로도 알려진 황상은 『택리지』를 필사하면서 내용을 상당 부분 보완했고, 특히 이중환의 전라도 평가에 비판적인 의견을 덧붙였다.

 

황상은 전라도에도 절의를 지킨 선비가 많고 기개를 중시하는 풍속이 있다며 이중환의 평가를 반박했다.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을 다시 설명한 것이다. 이는 『택리지』를 읽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지역을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와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수제자였던 황상이 필사한 택리지 / 사진=안대회 교수

  

조선의 당쟁과 오늘날의 영호남 갈등은 같은 것일까?

 

『택리지』의 지역 평가를 보면 오늘날의 영호남 갈등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당쟁과 지금의 지역주의를 같은 현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당시의 갈등은 노론·소론·남인 등 정치적 당파를 중심으로 한 사대부 사회의 갈등이었고, 오늘날의 영호남 지역주의는 근현대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별개의 현상이다.

 

다만 공통점은 있다. 정치적 갈등이 지역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택리지』의 전라도 평가와 황상의 반박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지역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판단할 때 얼마나 쉽게 고정관념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택리지』를 읽는 이유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60권의 고전’에 선정된 『택리지』가 3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중환이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디에서 살아야 잘 살 수 있는가?”

그는 좋은 땅을 단순한 풍수나 경관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물이 있어야 하고, 농사지을 땅이 있어야 하며, 시장과 교통이 편리해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하고, 자연도 아름다워야 한다. 이중환이 말한 지리·생리·인심·산수는 오늘날 우리가 좋은 도시와 동네를 선택할 때 생각하는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택리지』는 단순한 옛 지리책이 아니다. 

땅을 통해 사람을 보고, 지역을 통해 사회를 바라본 책이다. 동시에 시대적 편견과 정치적 시선도 담고 있어,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왜 이중환은 이렇게 보았을까?’를 생각하며 읽는 책이기도 하다. 

300년 전 이중환이 찾고자 했던 것은 완벽한 명당이라기보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갈 만한 땅,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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