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한국적인 마을 '안동하회마을' 입구 / 사진=배성식 제공
조선 시대 최고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선정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둥글게 감싸 흐르는 물돌이 지형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풍산 류씨가 대대로 살아온 이곳에는 조선 시대 양반가의 고택과 소박한 초가, 오래된 골목과 고목이 어우러져 한국의 전통적인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2026년 세계유산축전의 개막식이 이곳 하회마을에서 열린다.
하회마을이 세계인의 관심을 받은 계기 중 하나는 영국 왕실의 방문이었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한국 방문 중 이곳을 찾아 73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생일 잔치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해외 주요 인사들이 방문하며 하회마을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함께 선유줄불놀이를 관람해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회마을을 제대로 여행하려면 마을 안으로 곧장 들어가기보다 먼저 강 건너 전망대에 올라 전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부용대에서 시작해 옥연정사와 탈박물관, 고택과 솔숲을 차례로 돌아보면 자연과 역사, 전통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마을의 매력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부용대, 물길이 빚어낸 마을을 한눈에
연꽃을 뜻하는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왼쪽에서 낙동강이 마을을 350도 휘감아 돌아서 나간다. / 사진=배성식 제공
하회마을 여행의 첫 목적지는 마을 북쪽 강 건너에 솟은 부용대다. 절벽 위에 서면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모습과 그 안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기와집, 초가,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물길에 둘러싸인 마을의 모습이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하회마을이 왜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강은 마을을 감싸는 자연의 울타리이자 삶의 터전이었고, 주변 산과 들은 생활을 이어가는 바탕이었다.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강물과 어우러져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마을의 큰 그림을 감상했다면 이제 강가로 내려와 옛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옥연정사, 《징비록》에 담긴 전쟁의 기억
강가의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가면 옥연정사를 만난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자, 임진왜란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 懲毖錄》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공간이다.
국보인 《징비록》은 전쟁이 끝난 뒤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과 조정의 대응, 전쟁의 전개를 되돌아보며 쓴 기록이다. ‘징비’란 지난 잘못을 경계해 훗날의 환난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참혹했던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이후 낙향해서 국보인 '징비록'을 기록한 옥연정사 / 사진=배성식 제공
류성룡과 이순신 장군의 관계도 흥미롭다. 류성룡은 이순신의 능력을 일찍 알아보고 그를 천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은 바다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 전쟁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정에서 국가의 방어와 전쟁 대응을 고민한 류성룡, 바다에서 직접 전투를 이끈 이순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위기의 순간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과 책임 있는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 평화로운 오늘의 풍경이 과거의 아픈 역사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 깊게 다가온다.
참고로 서울 중구 충무로 일대에는 류성룡의 호를 딴 서애길이 있으며, 가까운 명보극장 앞 에는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가 있다. 마치 동네의 형과 아우처럼 같은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두 사람을 떠올리면, 역사 속 인물들이 한층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회세계탈박물관, 얼굴에 담긴 세계의 이야기
하회마을 입구에 자리한 세계탈박물관에는 하회탈을 비롯해 전세계 전통 탈을 만날 수 있다. / 사진=배성식 제공
하회마을 입구에 자리한 하회세계탈박물관은 하회탈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전통 탈과 가면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탈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하회탈의 매력은 사람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데 있다. 양반탈의 여유로운 웃음, 선비탈의 점잖은 표정, 부네탈의 은근한 미소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인상을 준다. 탈은 단순한 공연 소품이 아니었다.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얼굴이자, 신분 사회의 모순을 유쾌하게 풍자하는 수단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본 뒤에는 하회마을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만나보자. 탈의 생김새를 미리 익혀두면 공연 속 인물과 이야기를 한층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웃음으로 세상을 풍자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탈놀이로, 오랜 세월 전승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인 탈춤이다. 양반과 선비, 중, 백정, 할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익살스러운 몸짓과 대사로 신분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꼬집는다.
점잖은 양반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평소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방식은 오늘날의 풍자극과도 닮았다. 관객이 함께 웃고 호응하는 순간, 수백 년 전 마을 사람들이 즐겼던 공연의 흥겨움이 되살아난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데서 비롯되었으며, 익살스러운 몸짓과 대사로 신분사회를 풍자 / 사진=배성식 제공
탈춤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예술이다. 공연 일정은 계절과 행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양진당과 충효당, 오래된 집이 지켜온 가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기와집과 초가가 어우러진 골목 사이로 풍산 류씨 가문의 역사를 간직한 고택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중 양진당과 충효당은 하회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양진당은 풍산 류씨 겸암파의 종택으로 알려져 있다.
넓은 사랑채와 안채, 마당이 어우러진 공간에서는 조선 시대 양반가의 건축 구조와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다.
지붕의 선과 기둥의 비례, 건물 사이의 여백을 살펴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옛 건축의 미학이 느껴진다.
풍산 류씨 겸암파의 종택인 양진당은 추석이나 설 때 뉴스에서 전통마을인 안동을 연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다.
후손들이 그의 유덕을 기리며 건립하고 발전시킨 곳으로, 이름에도 충성과 효를 중시했던 유교적 가치가 담겨 있다. 이곳을 둘러보면 하회마을이 단지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학문과 예절, 가문의 전통을 대대로 이어온 생활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소원을 비는 나무와 '만송정' 솔숲
고택과 골목을 돌아본 뒤에는 마을의 나무와 숲을 만나보자.
마을 중심부의 삼신당에는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해 온 신성한 공간으로, 여행자들도 소원을 빌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건강과 행복, 가족의 안녕을 마음속으로 빌어보는 일은 오래된 마을에서 누리는 소박한 즐거움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삼신당으로 가는 입구 / 사진=배성식 제공
낙동강변의 만송정 솔숲도 놓치지 말아야 할 풍경이다.
강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 숲은 강 건너 부용대의 절벽과 어우러져 하회마을 특유의 경관을 완성한다. 소나무 사이로 강바람이 스며들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물길은 마을 안 골목과는 또 다른 여유를 선사한다.
그리고 만송정은 낮의 산책뿐 아니라 하회마을의 특별한 밤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로 선유줄불놀이가 펼쳐지는 무대다.
강을 따라 펼쳐진 소나무 숲은 강 건너 부용대의 절벽과 어우러져 하회마을 특유의 경관을 완성하는 곳으로 선유줄불놀이가 열리는 곳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선유줄불놀이, 낙동강 위로 흐르는 불꽃의 향연
많은 드라마는 물론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함께 선유줄불놀이를 관람해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이끌었던 선유줄불놀이 / 사진=한국관광공사 사진 갤러리 박지성 제공
하회마을의 밤을 특별하게 만드는 전통놀이가 바로 하회 선유줄불놀이다. 과거 하회마을 선비들은 낙동강과 부용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시를 짓고 배를 띄우며 풍류를 즐겼다. 선유줄불놀이는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불꽃놀이다.
놀이가 시작되면 강 위에 길게 늘어뜨린 줄에 매달린 숯봉지에 불을 붙인다. 불씨는 줄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며 어두운 강물 위에 은은한 빛의 띠를 만든다. 부용대 절벽 위에서 불붙은 솔가지 다발을 떨어뜨리는 낙화가 더해지면 불꽃은 물 위로 흩어지고, 강물과 절벽, 밤하늘이 하나의 무대가 된다.
여기에 뱃놀이와 전통음악, 시와 노래가 어우러지면서 화려함만을 앞세운 현대의 불꽃축제와는 다른 정취가 만들어진다. 불꽃이 한순간에 터지고 사라지는 대신, 불씨가 천천히 흐르며 어둠을 밝히는 모습은 하회마을 특유의 느긋한 풍류를 보여준다.
2026 세계유산축전이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 도산서원, 병산서원에서 열리며, 공식 개막식은 10월 10일 하회마을 만송정과 부용대 백사장 일원에서 진행된다. 선유줄불놀이는 10월 10일과 17일, 24일 저녁에 예정되어 있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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