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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성인가요’라는 긴 오명의 이름표 떼고 ‘대중가요’로 돌아오다… 세계화 날개 단 ‘K-트로트’
박강민 기자 oasispool@naver.com
등록 2026-03-26 13:45
특정세대 전유물로 가두어온 낡은 이름
세대간 문화적 단절의 제도화 결과 초래
해외서도 음악아닌 성인용 콘텐츠 오인
차별 넘어 가요계에서 위상제고 계기로
□ 대한가수협회, '대중가요' 전환 결의 의미
대한가수협회가 역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수십 년간 트로트를 비롯한 전통 가요 장르에 씌워져 온 ‘성인가요’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대중가요’로 전환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용어 정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트로트가 점유해 온 위상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는 역사적 움직임이다.
‘성인가요’라는 낡은 울타리를 허물고,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음악’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할수 있다. 국내 유일의 트로트 전문미디어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이번 명칭 변경에 따른 그 심층적 의미와 파장을 짚어본다.
‘성인가요’낙인 굴곡진 여정
트로트가 처음부터 ‘성인가요’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트로트는 특별한 장르명 없이 ‘유행가’, ‘유행소곡’ 등으로 불렸으며, ‘트로트’라는 명칭 자체가 정착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해방 이후에도 트로트는 ‘가요’, ‘대중가요’라는 이름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 장르였다.
변화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포크와 록을 중심으로 한 청년문화가 폭발적으로 부상하면서 트로트는 점차 ‘기성세대의 음악’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노래’와 ‘젊은이들의 노래’가 분리되는 순간이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대중음악의 중심축이 10~20대 팬덤 기반의 아이돌 음악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트로트는 지상파 정규 편성에서 밀려나 ‘가요무대’나 특정 성인 대상 채널에 머물게 되었다. ‘성인가요’라는 명칭은 이 시절 트로트를 주류에서 분리해내는 사실상의 ‘낙인’이었던 것이다.
방송가에서도 '성인가요'로 불려오던 명칭이 이제 '대중가요'로 불리게 되었다/사진=KBS1 가요무대
이름이 만든 차별과 상처
오랜 시간 ‘성인가요’라는 명칭은 역설적으로 트로트를 특정 연령대만의 전유물로 고착시키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왔다.
이는 단순히 단어의 선택 문제를 넘어, 트로트가 가진 무한한 잠재 수용층을 중장년층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는 구조적인 차별로 작용했다. 실제로 음원 플랫폼의 장르 분류 체계나 방송사의 편성 기준 등에서 나타나는 ‘성인가요’라는 칸막이는 트로트가 젊은 세대의 감성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통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세대 간의 문화적 단절을 제도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세대 간의 격리는 대중음악 내에서 장르 간의 서열화를 공고히 하는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우리 사회는 그간 음악을 ‘주류 대중음악’과 ‘성인가요’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트로트를 주류의 흐름에서 비켜난 변두리 음악으로 규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독보적인 가창력과 예술성을 겸비한 수 많은 아티스트들이 단지 트로트를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장르의 굴레에 갇혀 그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해치고 특정 장르를 변방으로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국내에서의 인식 한계가 K-트로트의 세계화라는 필연적 행보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K-팝이 전 세계의 심장을 두드리는 황금기에 ‘성인가요(Adult Music)’라는 직역된 영문 표현은 해외 시장에서 음악적 장르가 아닌 성인용 콘텐츠로 오인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는 K-팝의 당당한 한 축으로서 K-트로트를 알리려는 우리의 국가적 노력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음악의 품격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심각한 저해 요인이 되고 있었다.
안치행 작곡가는 '성인가요' '아이돌가요'등 으로 나뉘어 불리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발혔다/사진= KBS KONG
당당하게 주류 장르로 격상
‘성인가요’라는 낡은 이름을 버리고 ‘대중가요’로의 환원은 트로트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한민국의 보편적 음악 장르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다.
트로트라는 명칭이 정착되기 이전, 이 음악은 1930년대부터 신민요와 함께 일제강점기 대중가요의 양대 산맥을 이뤘으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등 민족의 정서를 담은 노래로 사랑받아 왔다. 이제 그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 것이다.
또한 이번 명칭 변경 결의는 트로트를 대중음악의 당당한 주류 장르 중 하나로 격상시키는 상징적 조치다. 대한가수협회는 창립 이후 ‘가수 권리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대중가수의 권익향상과 위상 정립을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이번 명칭 권고는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결단이다.
이와함께 트로트도 ‘대중음악’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국제 무대에서 K-Trot의 브랜딩이 보다 선명해진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논의, 일본 엔카와의 문화적 교류 등 트로트의 국제화 흐름과도 맞닿아 있는 변화다.
명칭 변경 당위성 이미입증
명칭 변경은 이제야 공식화 되었지만 현장에서의 ‘대중음악’으로의 명칭변경 당위성은 이미 현실이 입증하고 있다. 2019년 TV조선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불어닥친 트로트 열풍은 ‘성인가요’라는 틀이 얼마나 고루하고 부당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1020세대가 임영웅·이찬원·송가인의 팬클럽을 구성하고, 11세 신동이 무대에 오르고, 80대 원로 가수가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환호받는 지금의 풍경은 트로트가 이미 ‘성인가요’라는 좁은 틀을 깨고 나왔음을 방증한다.
한국 트로트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고 있는 임영웅이 부르는 트로트도 이제 '성인가요'가 아니라 '대중가요'로 통합되어 불리게 되었다/ 사진=임영웅 / 물고기뮤직제공
명칭 넘어 실질적 변화로
대한가수협회의 권고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산업 전반의 연동이 필수적이다.
음원 플랫폼 카테고리 개편이 우선이다.
멜론·지니·벅스 등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성인가요’ 분류를 ‘트로트’ 또는 ‘대중가요’ 세부 장르로 전환하는 실질적 조치가 따라야 한다.
플랫폼의 카테고리가 바뀌지 않으면 명칭 변경은 선언에 머문다.
방송 편성 관행의 변화도 시급하다. 특정 시간대나 연령 타깃 프로그램에 국한되어 온 트로트 편성을 탈피하고, 다양한 연령대가 시청하는 콘텐츠에서 트로트 가수가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학문적·역사적 정립도 병행되어야 한다. 트로트가 일제강점기 민족의 애환을 담아온 역사로부터 오늘날 K-Trot의 글로벌 가능성까지, 정당한 아카이빙과 학술 연구가 뒷받침될 때 명칭 변경의 의미가 완성된다.
빼앗겼던 이름을 되찾은 것
이번 대한가수협회의 결의는 트로트의 ‘제2의 르네상스’를 넘어 ‘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이다. 트로트는 장르가 흥행했던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트로트’라고 불리지 않았으며 ‘가요’, ‘대중가요’, ‘유행가’라고만 불렸다.
결국 이번 명칭 환원은 새로운 것의 도입이 아니라, 빼앗겼던 본래의 이름을 되찾는 일이다.
수십 년의 편견과 제도적 차별을 넘어 이제 트로트는 다시 ‘대중가요’의 자리에 선다.
이 작은 이름의 변화가, 대한민국 대중음악 100년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큰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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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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