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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아르헨티나 한류 전도사 황진이… “트로트도 탱고처럼 세계를 울릴 수 있습니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6-29 16:06

부모님 따라서 10세에 낯선 아르헨티나로 이민

국립방송학교 수석 졸업… 최대 방송사 앵커로

한류 콘텐츠 유튜브 채널 운영 ‘문화통역사’활동

탱고와 트로트는 닮은꼴 정서… ‘콜라보’ 해볼만

"트로트 유네스코 등재 큰 의미…탱고 사례 참고”

□ 148만 구독자 ‘JiniChannel’ 운영 황진이 씨

 

겨우 10살에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갑자기 떨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황진이(48)는 그 나이에 아르헨티나 땅을 밟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말도 잘하고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있던 아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순간 아무 말도 못 하는 아이가 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표현이 안 되니까 답답했죠. 음식도 낯설었고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았어요. 어린 저는 버틴다기보다… 하루하루 적응했던 것 같아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스페인어권 14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JiniChannel’의 운영자로 활동중인 황진이씨는 아르헨티나 대표 방송사 ‘Telefe’ 메인 뉴스 앵커로 활동, 중남미 최초의 아시아계 뉴스 앵커로 활동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사진=황진이 제공

그러나 그 외로움은 훗날 그녀를 단련시키는 모티브가 됐다. 

지금 황진이는 중남미 최초의 아시아계 뉴스 앵커 출신 크리에이터이자, 스페인어권 14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JiniChannel’의 운영자다. 국제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한국의 트로트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트롯뉴스(www.trotnews.co.kr)와 한국 트로트와 아르헨티나 탱고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남미 최초 아시아계 앵커 기록

 

황진이가 넘어야 했던 벽은 단순한 언어 장벽이 아니었다.

“제가 넘으려 했던 가장 큰 벽은 사실 외부의 편견보다 제 안의 두려움이었어요. 저는 원래 굉장히 수줍음이 많았고, 사람들 앞에서 실수하는 걸 무서워했거든요.”

그래서 누구보다 집요했다. 

발음을 녹음해 듣고 다시 고쳤다. 억양을 교정하고, 현지 앵커들의 말투를 분석하고 반복 훈련했다. 그 결과, 스페인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자 2세가 아르헨티나 국립방송학교(ISER)에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대표 방송사 ‘Telefe’ 메인 뉴스 앵커로 활동하며 중남미 최초의 아시아계 뉴스 앵커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Telefe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민영 지상파 방송사로, 독보적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국민 방송사로 2025년 기준 연평균 시청 점유율(Share) 약 46.6% 알려짐)

 

첫 생방송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오프닝 멘트를 하면서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저는 단순히 앵커가 아니라, ‘이민자도 여기까지 올 수 있다.’라는 가능성의 상징이 된 것 같았어요.”

‘최초의 한국인 앵커’라는 수식어는 자랑이었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었다. 

개인의 실수 하나가 한국인 전체에 대한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 이후 국제뉴스팀장까지 역임하며 현지 방송계에 굳건히 뿌리내렸다. 

 

국제법 전공, 변호사자격도 취득

 

성공 이면에는 깊은 고독도 있었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현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한국인’으로만 살 수도 없다는 걸 느꼈을 때였어요. 어디에도 100%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죠.”

그러나 전환점이 찾아왔다. 한국 콘텐츠를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라틴 문화를 한국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왔다.

“‘아, 이건 내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역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 정체성이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됐습니다.”


황진이씨는 10세부터 시작된 이민자 경험, 방송인으로서의 훈련, 법률가로서의 논리, 이 세 가지가 합쳐져 ‘황진이’라는 독보적인 문화통역사로 탄생했다. / 사진= 황진이 제공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 법학부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국제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한 그는, 논리적 사고와 말의 책임에 대한 감각을 법과 방송 양쪽에서 동시에 단련했다. 

두 세계 사이에서 성장한 이민자 경험, 방송인으로서의 훈련, 법률가로서의 논리, 이 세 가지가 합쳐져 ‘황진이’라는 독보적인 문화통역사가 탄생했다.

 

K-POP 등 한국문화 전반 확장

 

앵커를 넘어 크리에이터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스페인어권 한류 콘텐츠 유튜브 채널 ‘JiniChannel’은 처음 한국어 교육 콘텐츠로 주목받기 시작해, K-pop 아티스트 인터뷰, K뷰티, 음식, 여행, 한국문화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구독자는 148만 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라틴아메리카 음악·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투무시카오이(TuMúsicaHoy)와 손잡고 새로운 스트리밍 프로젝트 ‘JINCHA(진짜)’도 시작했다.

성장의 비결을 묻자 황진이는 ‘연결’과 ‘공감’을 핵심 키워드로 꼽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K-pop 때문이 아니에요. 한국 콘텐츠에는 감정의 밀도, 디테일, 진정성이 있어요. 라틴 문화도 감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공감대가 생기는 것 같아요.”

과거 소수 팬덤의 정보 공유 수준에서 지금은 K-pop과 드라마, K뷰티, 음식, 한국어, 여행까지 하나의 문화 생태계로 연결되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황진이씨가 운영하는  스페인어권 한류 콘텐츠 유튜브 채널 ‘JiniChannel’은 처음 한국어 교육 콘텐츠로 주목받기 시작해, K-pop 아티스트 인터뷰, K뷰티, 음식, 여행, 한국문화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 사진=황진이 제공

탱고와 트로트는 ‘삶의 서사’ 닮아

 

이번 트롯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황진이가 가장 깊이 있는 발언을 쏟아낸 대목은 트로트와 탱고의 연결이었다.

“저는 트로트를 소개할 때 종종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연결해서 설명해요. 탱고에도 사랑, 이별, 그리움, 아픔처럼 아주 깊은 감정이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정서적인 공통점을 이야기하면 현지인들도 훨씬 쉽게 공감하더라고요.”

탱고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이민, 가난, 사랑, 상실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담은 ‘삶의 역사’다. 그래서 세계 어디서 들어도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황진이는 이 점이 트로트와 닮았다고 단언한다.

“둘 다 ‘노래’ 이전에 ‘삶의 서사’예요. 저는 특히 ‘그리움’이라는 감정에서 두 장르가 강하게 만난다고 생각해요. 반도네온과 한국 전통 악기가 만나고, 트로트의 꺾기와 탱고의 끌어당기는 리듬이 합쳐진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대가 나올 거예요.”

 

그의 부모님은 집에서 온종일 트로트를 들을 정도로 애호가라고 했다. 황진이 본인도 트로트에 가까이 있는 셈이다.

(*반도네온(Bandoneón)은 탱고를 상징하는 대표 악기로 아코디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연주 방식과 음색은 상당히 다르며 ‘탱고의 영혼(Soul of Tango)’이라고 불릴 만큼 아르헨티나 문화의 상징적인 악기로 알려짐.)

 

 

“트로트 세계화 가치 있는 프로젝트”

 

2009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탱고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등재 시켰다. 

현재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한국 트로트와 일본 엔카의 유네스코 공동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정확히 겹치는 선례다.

황진이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진심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프로젝트”라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다만 그가 강조한 것은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이었다.

 

“트로트가 세계 무대에서 더 인정받기 위해서는, 더욱 전략적인 글로벌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특히 아직 많은 서구권이나 중남미 사람들은 트로트를 접해볼 기회 자체가 거의 없어요. 먼저 더 많은 사람이 트로트를 접하고, 그 감정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미 진출의 현실적인 장벽에 대해서는 언어보다 ‘첫 인식의 장벽’이 더 크다고 짚었다. 현지에서는 아직 “트로트가 뭔데?”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돌파구로는 콜라보 전략을 제시했다. 

라틴 발라드 가수나 탱고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진입점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또한, 라틴 문화권에서는 아티스트를 멀고 신비로운 존재보다 이웃이나 친구처럼 느끼길 원하는 특성이 있는 만큼, 음악 자체만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인간적인 매력과 진솔한 이야기, 관객과의 직접 소통 방식이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진이씨는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한국 트로트와 일본 엔카의 유네스코 공동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 관련, “진심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프로젝트”라며 적극 참여와 함께 지지 의사를 밝혔다. / 사진=황진이 제공

트로트 “감정의 등가 번역”이 중요

 

트로트 특유의 감성, 특히 ‘한(恨)’을 스페인어권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황진이는 단호하게 답했다.

“단순 번역하면 맛이 사라져요. 중요한 건 ‘감정의 등가 번역’이에요.”

‘한’은 슬픔만이 아니라 오래 쌓인 감정이다. 라틴 문화로 치면 nostalgia(향수), melancolía(우수), dolor(아픔)가 뒤섞인 감정에 가깝다. 

따라서 자막보다 스토리텔링과 설명형 콘텐츠가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트롯뉴스처럼 전문성을 가진 미디어가 단순히 음악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해외에 전달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도 덧붙였다.


“트로트 세계화 무대 함께 하겠다”

 

남미 무대를 꿈꾸는 트로트 가수들에게 황진이는 자신의 삶 전체를 압축한 메시지를 전했다.

“꿈이 지금은 멀고 막연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꿈을 향해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낯선 땅에 왔고, 당시에는 지금의 제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씩 포기하지 않고 걸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꿈꾸던 것보다 더 큰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트로트 세계화의 날이 오면 그 무대 어딘가에 자신도 함께 서 있겠다고 했다. 

한국과 라틴아메리카를 잇는 다리로써, 음악이 국경을 넘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그 순간을 함께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음악에는 언어를 넘어서는 고유한 힘이 있어요.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니까요. 자신만의 목소리를 믿고, 꾸준히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노래가 국경을 넘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습니다.”

 

10살 이민자 소녀는 이제 두 대륙을 연결하는 가교가 됐다. 

탱고의 나라에서 트로트를 말하는 황진이. 그녀의 존재 자체가, 트로트 세계화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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