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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편곡가 남기연 “젊고 세련된 트로트 만들고 싶어요”…세상에 없던 멜로디에 옷을 입히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5-11 10:54

남진부터 임영웅, 김태연까지 세대 초월

그의 손을 거치면 트로트 명곡이 탄생

저작권협회 등록된 곡만 1058곡에 달해

임영웅 ‘두 주먹’ 한 곡, 10년 치 수익 위력

“한국 외국과 달리 편곡자 홀대 개선돼야!”

“명곡 재해석 젊은 세대에 선물하고 싶어”

남기연씨는 남진 부터 임영웅, 김태연 등 전 세대를 아우르며 트로트계에서 가장 뜨거운 러브콜을 받는 편곡가이자 작곡가로 떠오르고 있다. / 사진=트롯뉴스헤비메탈의 강렬한 비트를 품었던 기타리스트가 이제는 트로트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설계자로 우뚝 섰다.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남진 같은 전설부터 임영웅, 김태연 등 전 세대를 아우르며 트로트계에서 가장 뜨거운 러브콜을 받는 편곡가이자 작곡가 남기연(54)을 만났다. 그의 손끝을 거쳐 새롭게 생명력을 얻은 곡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기준만 무려 1,058곡에 달한다. 한 달 평균 20여 곡이 넘는 작업을 소화해낸다. 

방대한 작업량만큼이나 그가 쌓아온 음악적 서사 역시 묵직하고 두껍다.


 

“트로트는 직업이기 전에 정서”

 

남기연이라는 이름이 트로트 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김용임의 ‘부초 같은 인생’과 금잔디의 ‘오라버니’를 통해서였다. 두 곡 모두 발매 직후 작품자들 사이에서 “젊고, 세련됐다.”라는 평이 입소문처럼 퍼졌고, 그 이후 의뢰는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트로트가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고모부의 이삿짐을 실은 리어카 위에 통기타 한 자루가 얹혀 왔다. 자연스럽게 신기한 기타를 가지고 놀다가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저희 때는 다 헤비메탈로 시작했어요. 친구랑 하드락 밴드를 하면서 앨범도 만들었죠. 그러다 생계를 위해 악단 생활을 시작했고, MBC ‘가요베스트’ 하우스밴드로 활동하면서 트로트와 만나게 됐습니다.”

‘록(Rock)에서 트로트로의 이행. 소위 ’락부심’이 강한 뮤지션이라면 자존심 문제로 삼을 법한 전환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남기연 편곡가는 처음 음악에 입문해서는 친구랑 하드락 밴드를 하면서 앨범도 만들었고, MBC ‘가요베스트’ 하우스밴드로 활동하면서 트로트와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 사진=남기연  제공

“음악이라는 직업을 세상의 수만 가지 직업 중 하나로 생각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조용필 선생님의 ‘허공’이나 주현미 선생님 노래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락’을 하면서도. 그러니까 정서적으로 괴리감이 없었죠.”

 

오히려 그는 자연스럽게 익혀왔던 록의 언어를 트로트에 심었다. 강렬한 비트, 브라스 사운드, 장면 전환에서 터지는 세션의 힘. 기존 트로트계 원로들이 “신기하다, 신선하다.”라고 했던 것은 그 충돌에서 빚어진 낯선 세련미였다.

 

 

주현미의 목소리에 반하다

 

인터뷰 중 그가 인상 깊게 이야기한 대목 중 하나는 가수 주현미였다. 

라디오 방송 대기실에서 헤드폰 너머로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음악 인생에 하나의 기준점이 됐다.

“라디오 프로그램 도중에 대본에도 없이 강석 선생님이 갑자기 중국 노래를 시켰는데, 무반주로 부르시는 거예요. 헤드폰으로 듣는데 목소리가 너무 예쁜 거예요. 꺾기 기술도 훌륭하시지만, 음색 자체가 그리고 음정이 컴퓨터처럼 정확하십니다. 그날 이후 완전히 반하게 됐죠.”

 

그가 주현미에게 반한 것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었다. 그건 ‘완벽한 원재료’를 발견한 설계자의 눈이었다. 그리고 그 설계가 바로 편곡이다.

편곡. 대부분은 ‘기존 노래를 약간 수정하는 일’ 정도로 이해한다. ‘불후의 명곡’에서 원곡을 새로 꾸미는 작업 정도로. 하지만 남기연이 20년 넘게 해온 편곡은 그게 아니다.

“작곡가나 가수분이 멜로디를 핸드폰에 흥얼거려 녹음해서 저한테 주면, 그걸 가지고 우리가 실제로 듣는 그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악보로만 존재하는 상태에서, 세상에 없던 음악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외국에서는 이를 ‘트랙 메이커(Track Maker)’라 부르며 작곡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비중을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 저작권 시스템에서 편곡자의 비중은 12분의 2에 불과하다. 

“12분의 2조차도 제대로 안 줘요. 그러니까 그것 자체도 불법인 거죠. 뭐는 주고 어떤 부분은 안 주고 그런 것이 편곡자가 홀대받는 한국의 현실입니다.”

 

 

한 달 20곡이 넘는 다작의 비밀

 

남기연은 월평균 20곡 내외의 편곡 작업을 소화한다. 현재까지 통산 1,058곡 이상. 이 숫자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을 담고 있다.

“비결보다는 집중력이에요. 그리고 건강관리죠. 무엇보다 제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 의뢰인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편입니다. 음악에 정답은 없거든요. 콩나물도 모르는 가수분이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일단 한번 해봐요. 그러면 기막힌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의 편곡에는 시그니처가 있다. 

장면과 장면이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평범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 반드시 섹션을 만들어 힘을 준다. 그리고 보컬과 악기가 주고받는 멜로디 선율 오브리카토(Obbligato). 듣는 사람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구조적 설계다.

“영화처럼 시퀀스가 바뀔 때 음악의 분위기도 바뀌게 만들죠. 전체 사운드의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1층에서 2층 넘어가는 장면 전환을 어떻게 할지 구상하는 겁니다.”

간결함도 그의 원칙이다. 

편곡자들이 흔히 자신의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음악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반대다. 노래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들어갈 것만 정확히 들어가는 것, 그것이 ‘남기연표 사운드’다.

 

 

세대 꿰뚫는 유연한 스펙트럼

 

남기연이 작업한 아티스트 목록은 트로트 1세대부터 3세대를 모두 아우른다. 

남진, 조항조, 주현미, 김연자, 강진, 임영웅, 박서진, 금잔디, 유지나에 이르기까지. 이 스펙트럼은 단순한 인맥이 아니라 그의 음악적 유연성에서 나온다.

“요새 어린 친구들은 요구도 당당하게 하고 거침이 없어요. 기성 가수분들은 저보다 연세가 많으셔도 ‘편곡자 선생님’이라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데, 아이들은 달라요.”


남기연 편곡가는  남진 등 레전드 가수들과도  많은 곡작업을 진행했다. 사진은 좌로부터 가수 남진, 코러스 김연아, 남기연, 작곡가 김동찬 / 사진=남기연 제공

김태연에 대해서는 “국악 베이스에 세미 트로트까지 소화하는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고 평했다. 빈예서에 대해서는 “정통적인 결이 깊다.”라고 했다. 두 어린 가수를 함께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각각 결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그 눈이 곧 편곡의 출발점이다.

 

조항조와는 10년간 전국 투어 밴드로 함께 무대를 밟았다. 직접 편곡한 곡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그의 또 다른 얼굴이다. 2010년부터 조항조 투어 밴드 기타리스트로 7년 넘게 활동했다.

임영웅의 ‘두 주먹’도 그의 손을 거쳤다. 임영웅이 가장 핫 하던 시절, 그 한 곡에서 나온 저작권료가 한 해에만 5,000만 원을 넘었다. 

“3년 동안 대단했죠. 다른 곡 10년 치가 1년 만에 나오는 느낌이었으니까요.”

 

 

‘산고’ 끝에 탄생한 히트곡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부초 같은 인생’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다. 

작곡가의 요구에 따라 앞부분을 웅장하게 다시 짜고, 편곡을 네 번 바꿨다. ‘오라버니’는 SM 소속 작곡가들이 이미 서너 번 편곡을 시도했다가 마음에 안 든다며 넘어온 곡이었다. 그는 거기서 두세 번을 더 수정해 완성했다.

“굵은 틀은 제가 만들어 놓고 중간중간 고치다 보니까….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만진 게 오히려 아이디어의 재료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남기연 편곡가는 김태연 등 젊은 가수들과도 많은 곡을 작업하고 있다. 사진은  좌로부터 작사가 한시윤, 가수 김태연과 함께 / 사진=남기연 제공

현역가왕에서 김태연이 부른 ‘단현’의 편곡도 그가 했다. “어린 친구가 저렇게 잘할 수 있나 싶었다.”라는 것이 그의 회고다. 그리고 한시윤 작가와 함께 쓴 ‘소문 좀 내주세요’라는 오렌지 캐러멜이 현역가왕 신곡 미션에서 불러 1등을 거뒀다.

“그게 되게 가슴 뿌듯했어요.”

 

태진아와의 첫 작업도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분으로 알았는데, 아버지처럼 편안하게 대해줬다고 했다. 조정민은 연습 없이 바로 녹음 현장에서 만났는데, 완벽하게 준비해 와서 녹음이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는 일본 엔카 가수 아즈마 아키의 앨범 작업에도 참여했다. 아키의 앨범에 수록된 박현진 작곡가의 ‘엄마의 바다’를 편곡했다.

 

남기연은 트로트와 일본 엔카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했다.

“엔카는 굉장히 서정적이고 선율 위주예요. 한국 트로트는 록적인 요소가 가미돼 박력이 있죠. 비트도 세고. 그래서 동남아 쪽으로 간다면 엔카보다 훨씬 잘 먹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의 ‘흥’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는 일본의 엔카 전설 미소라 히바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또 흑인 남성 엔카 가수 제로(ZERO)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엔카 베이스에 팝적인 요소가 있어서 많이 연구했다.”라고 했다.

 

 

슬럼프 건너는 법? “그냥 잔다.”

 

월 20곡을 소화하는 사람에게도 막히는 날이 있다.

“안 풀릴 때는 애쓰면 오히려 안 되더라고요. 그냥 자거나 산책하거나 잠깐 떨어져 봐요. 

그래도 안 떠오르면 무조건 책상에 앉아서 대여섯 가지 버전을 만들어요. 그러다 보면 그중에 하나가 나오더라고요.”

그는 슬럼프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는 사람이다. 

정면 돌파보다 산책, 그리고 돌아와 여러 버전을 시도하는 반복. 1,000곡을 만든 방법이 결국 그것이다.

 

 

작곡 영역으로 확장 시도 중

 

남기연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 조용필의 ‘허공’, ‘밤비 내리는 영동교’ 같은 잊혀가는 명곡들을 현대적인 팝 스타일로 재편곡하는 것이다.

“완전히 팝처럼, 고급스럽게 편곡해서 젊은 세대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저작권 문제가 있지만, 그 좋은 노래들은 살려야 해요.”

그리고 가장 함께하고 싶은 이름을 물었을 때,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임영웅이죠.”(웃음) 임영웅과의 첫 만남이었던 ‘두 주먹’의 행복한 추억 때문이겠지만 웃음 뒤에 진심이 있었다. 

 

남기연 편곡가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임영웅의 인기곡 '두주먹'을 편곡하기도 했다. / 사진=남기연 제공

락커의 야성과 장인의 치밀함을 함께 가진 이 편곡가는 오늘도 악보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1,058곡. 그리고 아직 세상에 없는, 다음 곡.

“저는 음악가로 기억되기보다, 트로트라는 집을 가장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어준 설계자로 남고 싶습니다.”

남기연은 현재 한시윤 작사가 등 젊은 동료들과 지속적인 교류와 작업을 이어가며 작곡 영역으로도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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