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중음악계는 ‘가왕’, ‘거성’, ‘황제’, ‘여왕’ 같은 수식어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게 소비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데뷔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신인 가수에게, 수십 년의 세월을 무대에서 버텨온 원로 가수들조차 쉽게 허락받지 못했던 호칭이 아무렇지도 않게 붙는다. 팬들의 애정 어린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팬심의 표현을 넘어, 오랜 시간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요사가 쌓아온 서사와 그 이름들이 지닌 무게까지 가볍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과장된 호칭을 일부 매체와 방송이 앞다퉈 확대 재생산한다는 데 있다. 클릭을 부르는 자극적인 수식어와 화제성을 좇는 상업주의가 가수의 실제 경력보다 ‘타이틀’을 먼저 만들어내면서, 어느새 가요계에는 경력보다 호칭이 앞서는 기묘한 풍경까지 등장하고 있다.

방송이 부풀리고, 매체가 받아써
경연 프로그램의 흥행 이후 이런 현상은 뚜렷해졌다.
방송이 시청률을 위해 붙인 '천재', '가왕' 같은 표현을 인터넷 매체들이 별다른 검증 없이 그대로 옮겨 쓰면서, 호칭의 무게는 갈수록 가벼워졌다. 매체에 특정 가수의 이름을 딴 '○○신문'류의 코너까지 등장한 것은 세계 어느 언론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코메디 같은 사례다. 문제의 뿌리는 방송이 만든 과장된 언어를 걸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쓰는 관행에 있다.
물론 팬들이 붙이는 '아기호랑이', '다람쥐' 같은 애칭은 다르다.
이는 가수의 개성을 살린 애정 어린 표현이자 팬덤 특유의 상징적 언어로, 나무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가왕'이나 '거성'‘황제’ 등은 차원이 다른 무게를 지닌 칭호다. 이를 준비되지 않은 신인에게 씌우는 순간, 그 언어는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선배들의 오랜 시간을 지우는 도구가 된다.
진짜 '가왕' '가황'이 되기까지는?
지금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호칭의 원조 격인 '가왕' 조용필과 '가황' 나훈아를 보면 그 무게가 분명해진다.
조용필은 올해로 활동 57년째를 맞은 현역이다. KBS '가요톱10'에서 69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고,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섰으며, 최초로 평양 공연을 성사시켰다. 국내 최초의 팬덤 문화를 만든 것도 그다. '가왕'이라는 칭호는 이런 반세기 넘는 행보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 이름이다.
나훈아는 1960년대 후반 데뷔해 1970년대 남진과의 라이벌 구도로 침체된 가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오히려 방송 출연을 줄이고 공연장 무대에만 집중하는 희소성 전략으로 전설성을 굳혔다. '가황'이라는 호칭이 대중과 언론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은 1990년대 초반, 데뷔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지난해 은퇴할 때까지 그가 남긴 곡은 약 2500여 곡, 정규 음반만 200여 장에 달한다.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남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1964년 데뷔해 무명 시절을 거친 뒤 1966년 '가슴 아프게'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60년 넘게 현역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도 신곡 '사는 동안'을 발표하며 여전히 무대에 서고 있는 그에게 '국민가수'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붙는 것도, 반세기 넘는 시간과 꾸준함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작곡가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가요계의 거목'으로 불린 고(故) 박춘석은 1954년 '황혼의 엘레지'로 활동을 시작해 40년간 가요계를 이끌었다. 이미자와는 30년간 700여 곡을 함께했고, 패티김·나훈아·남진·문주란·정훈희·하춘화 등과도 호흡을 맞췄다. 그가 남긴 곡은 2700여 곡,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곡만 1152곡으로 개인 최다 기록이다. '거목'이라는 칭호 역시 이런 세월과 결과물이 쌓인 뒤에야 따라붙었다.
네 사람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새로운 시도와 경쟁, 침체기와 재기를 모두 포함한 수십 년의 활동 그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었고, 그 서사가 쌓인 뒤에야 대중과 언론이 자연스럽게 붙인 이름이 '가왕'이고 '가황'이고 '국민가수'이고 '거목'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신인에게 성급하게 왕관을 씌우는 일은 이런 선배들의 서사를 가볍게 만드는 처사다.
이는 새로운 세대의 콘텐츠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세대 간 시각차 정도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앞장서 가요사의 위계와 맥락을 흐트러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력은 후대가 증명하는 것
대중음악 시장의 자본 논리는 신인을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하도록 만든다. 짧은 시간 안에 화제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정작 아티스트 본인은 실력보다 부풀려진 호칭 뒤에 가려지기 쉽다.
그러나 진짜 ‘거성’은 매체가 붙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증명하고 시간이 기록하는 이름이다. ‘팝의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잭슨조차 그 음악적 유산이 온전히 재조명된 것은 오랜 활동과 세월이 쌓인 뒤였다.
이제는 아티스트와 소속사도 과도한 미화에 침묵하지 말고, 공식적인 경로로 절제된 호칭 사용을 요청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일 때다. 언론 역시 자극적인 제목과 부풀린 수식어로 순간의 화제를 좇는 관행에서 벗어나, 누가 진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인지 냉정하게 짚어내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노래를 잘해야 가수’라는 단순한 명제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실력으로 증명하려는 태도만이 반짝 화제를 넘어 시대의 기록으로 남는 길이다.
트로트가 쌓아온 역사도 퇴색
이 문제는 트로트 장르의 미래와도 무관하지 않다.
트로트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는 이 음악이 한 시대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유산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서 호칭과 평가의 언어가 가볍게 남발된다면, 장르 스스로 쌓아온 품격과 역사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선배들의 서사를 존중하는 언어에서부터, 트로트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자격을 갖춘 문화유산으로서의 품위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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