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강남이 기획한 프로젝트 'J-POP REMAKE'가 지난 18일 오후 6시 악뮤 이수현의 '푸른 산호초' 발매로 3부작을 마무리했다.
태연의 '만찬가'(6월29일), 한로로의 '잔혹한 천사의 테제'(7월30일)에 이은 세 번째 결과물이다. 세 곡 모두 발매 직후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첫 곡인 '만찬가'는 벅스 실시간·일간 차트와 멜론 HOT100에서 1위를 기록했다.
흥행 성적표만 보면 성공한 기획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질문은 흥행 여부보다 크다. 한일 대중음악 교류의 좌표가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인가 하는 물음이다.

가수 강남이 기획한 프로젝트 'J-POP REMAKE'가 지난 18일 오후 6시 악뮤 이수현의 '푸른 산호초' 발매로 3부작을 마무리했다. 태연의 '만찬가'(6월29일), 한로로의 '잔혹한 천사의 테제'(7월30일)에 이은 세 번째 결과물이다. /사진=SHgold네트웍스
선곡의 방향이 달라졌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선곡의 방향이다.
한국 가요계에서 일본곡 리메이크는 오랫동안 엔카와 쇼와 가요(1926~1989년 일본 쇼와 시대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일본 대중음악과 한국 트로트의 역사적 접점이 그곳에 있었던 만큼, 리메이크 역시 성인가요의 정서와 문법에 맞춰 재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J-POP REMAKE'가 선택한 세 곡은 이러한 흐름과는 다른 좌표에 놓여 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츠키(tuki.)의 2023년 데뷔곡으로 스포티파이 누적 2억 회 스트리밍을 넘긴 '만찬가', 1995년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오프닝곡으로 다카하시 요코가 부른 '잔혹한 천사의 테제', 그리고 1980년 마쓰다 세이코가 발표한 쇼와 아이돌 팝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다. 엔카는 없다.
대신 애니메이션 주제가와 아이돌 팝 등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가 전면에 등장했다. '푸른 산호초'는 뉴진스 하니가 2024년 도쿄돔 공연에서 부르며 국내에도 이미 화제가 된 곡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성인가요 중심에서 벗어나다
가창자의 면면도 이를 뒷받침한다.
태연, 한로로, 이수현은 각각 K팝과 인디, 아이돌 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다.
과거 일본곡 리메이크가 주로 성인가요와 트로트의 영역에서 이뤄졌다면, 이제는 장르와 세대를 넘어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일본의 과거 음악을 자신들의 감각으로 다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일본 음악을 소비하는 한국의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엔카와 트로트를 중심으로 한 장르적 교류가 중요한 축이었다면, 지금은 K팝과 인디 음악, 애니메이션, 레트로 문화 등을 통해 일본의 음악이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발견되고 있다.
46년 전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가 이수현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 것도 그 흐름 위에 있다. 지금의 일본곡 리메이크는 단순히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부르는 작업을 넘어,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음악을 현재의 감각으로 소환해 새로운 세대의 언어로 다시 소비하게 만드는 문화적 재해석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태연의 만찬가(사진 위)로부터 시작된 'J-POP REMAKE'시리즈가 '잔혹한 천사의테제(사진 아래)'에 이어 악뮤 이수연이 가창한 '푸른 산호초'까지 3곡이 발표되면서 성인가요 중심이었던 한·일 대중음악 교류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 사진=SHgold네트웍스
교류와 역사 인식은 다른 영역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친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광복절을 전후해 일본 관련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적절한 지를 두고 일부 매체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 대중음악을 소개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와 별개로, 공개 시점과 사회적 분위기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강남은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 “좋은 J-POP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명곡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라며 “음악을 통해 양국을 잇는 문화사절단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음악을 매개로 한일 간 문화적 교류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문화 교류와 역사 인식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일본 음악을 소개하고 한국의 아티스트가 이를 재해석하는 행위 자체를 역사 문제와 동일하게 볼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서는 문화 콘텐츠가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외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일 문화 교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하려면 무엇을 소개할 것인가뿐 아니라 언제,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트로트와 엔카의 교류나 양국 문화유산의 공동 등재처럼 지속적인 문화 교류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면, 콘텐츠 자체의 가치와 함께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서적 온도까지 살피는 세심한 기획이 요구된다.
‘J-POP REMAKE’가 던진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일본 음악을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고, 한일 대중문화의 교류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확장해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판소리·파두·탱고가 걸어온 길
이 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세계 각국의 전통 음악들이다.
한국의 판소리는 2003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탱고는 2009년, 포르투갈의 파두는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장르가 무형유산으로 인정받기까지는 한 시대의 인기나 특정 세대의 소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대중적 향유와 학술적 연구, 문화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함께 축적됐다.
특히 탱고는 주목할 만한 사례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서로 다른 지역적·음악적 특성을 바탕으로 탱고를 발전시켜왔지만, 동시에 하나의 문화적 뿌리를 공유해왔다는 점을 공동으로 보여주며 유네스코 공동등재에 이르렀다. 서로 다른 두 나라의 문화가 경쟁이 아니라 공유와 교류의 역사로 연결된 사례다.
트로트와 엔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는다면, 이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두 장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두 음악이 오늘날까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서로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지속적인 문화적 기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트로트와 엔카의 교류가 특정 세대와 특정 장르 안에만 머문다면 그 문화적 서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번 ‘J-POP REMAKE’처럼 애니송과 아이돌 팝, K-팝과 인디 음악 등 서로 다른 장르와 세대가 상대국의 음악을 다시 부르고 재해석하는 사례가 꾸준히 축적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한일 대중음악의 교류가 과거 특정 장르 사이에서 이뤄진 일회성 현상이 아니라, 세대와 장르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문화 현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결국, 유네스코 공동등재를 위한 문화적 기반은 과거의 영향 관계를 증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서로의 음악을 이해하고, 재해석하고, 다시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하는 현재의 교류까지 얼마나 풍부하게 축적해 왔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리메이크 한 곡도 한일 대중음악 교류의 긴 흐름 속에서는 하나의 작은 기록이 될 수 있다.
한·일 대중음악 입체적 교류 시작
결국 ‘J-POP REMAKE’가 보여준 것은 일본 음악을 바라보는 한국 대중문화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곡 리메이크의 중심에 엔카와 트로트가 있었다면, 이제는 애니송과 아이돌 팝, K-팝과 인디 음악을 매개로 새로운 세대가 일본의 음악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리메이크의 주체도, 음악을 소비하는 세대도, 서로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의 세대 교체가 역사적 맥락까지 지우는 것은 아니다.
한일 대중음악의 교류는 새로운 세대의 취향과 문화적 개방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여전히 양국의 역사와 기억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두 가지 시선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바라볼 때 한일 문화 교류의 현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트로트와 엔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를 장기적으로 추진한다면 더욱 그렇다.
과거 두 장르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 지를 밝히는 작업과 함께, 오늘날 양국의 음악이 어떤 세대와 장르를 통해 다시 만나고 있는 지를 기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축적되는 리메이크와 공연, 공동 작업 등의 사례는 한일 대중음악 교류가 특정 시대나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화 현상임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를 산업 통계와 학술 연구로 뒷받침하고, 동시에 교류가 이뤄지는 시점과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축적한다면 한일 대중음악 교류의 서사는 더욱 입체적인 모습을 갖게 된다.
리메이크의 좌표는 앞으로도 계속 움직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 자체를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그것이 지금 한일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저널리즘에 필요한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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