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지방의 관념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평통보는 둥들고 가운데 네모나다.
옛날 물건을 보다 보면 유난히 ‘둥근 것(圓)’과 ‘네모난 것(方)’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조선 시대 동전은 둥근데 가운데는 네모나고, 궁궐의 연못은 네모난데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다.
숟가락은 둥글고 젓가락은 각져 있으며, 전통 건축에서도 원과 사각형이 반복된다.
단순히 이런 모양을 좋아했던 것일까? 그 배경에는 선조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독특한 세계관이 있다.
바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말 그대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뜻이다. 선조들은 하늘과 땅을 서로 다른 성질로 보았고, 둥근 것은 하늘과 양(陽), 네모난 것은 땅과 음(陰)의 성질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양은 남성적인 성질, 음은 여성적인 성질과 연결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남녀 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힘이 어울려야 세상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생각이었다.
천원지방의 관념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것이 상평통보다. 동전은 둥글고 가운데 구멍은 네모나다.
한마디로 하면 “둥근 하늘 속에 네모난 땅이 들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상평통보는 천원지방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가운데 네모난 구멍에 막대기를 끼우면 여러 동전을 한꺼번에 다듬을 수 있고, 끈에 꿰어 보관하거나 운반하기도 편하다. 즉 선조들은 철학과 실용성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상징을 담으면서도 실제 생활에 편리하도록 만들었다.
궁궐의 연못도 흥미롭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종묘 등의 연못은 네모 모양에 가운데 둥근 섬을 두는 형태이다. 이 또한 네모난 땅과 둥근 하늘의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종묘의 연못은 네모 모양에 연못 중앙에는 둥근 섬을 두는 형태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특히 경회루의 1층의 바깥쪽 기둥은 사각형으로, 아래쪽의 단면을 크게 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단면을 줄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안쪽의 기둥은 원형으로, 이 역시 위로 갈수록 단면이 점차 작아지는 형태를 보인다. 이처럼 사각기둥과 원형기둥을 함께 배치한 구성은 정학순의 『경회루전도』에도 나타나며,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왕이 머무는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넘어 사각형과 원형의 조합을 통해 자연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조화와 질서를 표현한 것이다.
경복궁 경회루를 받치고 있는 48개의 기둥에서 바깥쪽의 기둥은 사각형, 안쪽은 원형으로 천원지방의 사상을 담고 있다. / 사진=배성식 제공
옛날 우물에서도 둥근 형태와 네모난 형태를 모두 볼 수 있다.
특히 네모난 우물을 천원지방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하지만, 모든 우물이 그렇지만은 않다. 지역의 재료와 축조 기술, 기능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통문화의 형태를 볼 때는 반드시 상징과 현실적인 이유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좋은 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원(圓)과 방(方)의 대비가 더욱 선명해진다.
방과 마당은 대부분 네모난 형태이고, 창이나 장식에는 둥근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전통적인 정원의 둥근 문은 바깥 풍경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액자 안에 담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원은 특별한 풍경을 강조하고, 네모난 공간은 사람이 생활하는 안정된 틀을 만든다.
생활용품에서도 원과 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숟가락은 둥글고 젓가락은 길고 각져 있다. 이것을 천원지방과 연결해 생각하면 재미있지만, 숟가락이 둥근 것은 음식을 뜨기 편하기 때문이고 젓가락 역시 음식을 집기 좋게 만들어진 결과다. 따라서 “천원지방 때문에 숟가락은 둥글고 젓가락은 네모다”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
상징과 기능은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다.
숟가락은 둥글고, 젖가락은 각지고 네모 형태는 천원지방과 연계하면 재미있다. 베개 같은 남녀의 생활용품도 음양의 관념과 연결해 설명되는 예도 있다.
둥근 형태는 양과 남성적인 성질, 네모난 형태는 음과 여성적인 성질을 상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남자는 둥근 베개, 여자는 네모난 베개를 썼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상징은 절대적인 규칙이라기보다 생각을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였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베개 같은 남녀의 생활용품도 음양의 관념 연결되어 설명하기도 한다. / 사진=배성식 제공
천원지방과 함께 떠올리면 좋은 것이 ‘태극’이다.
태극 자체가 천원지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과 양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쪽이 사라져야 다른 쪽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품고 순환한다. 서로 다른 힘이 균형을 이루며 세상이 움직인다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이미지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국기로 사용한 것은 1882년 11월 1일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배에서 처음으로 게양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천원지방은 단순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도형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과 땅, 음과 양, 움직임과 안정(고정)처럼 서로 다른 요소가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이룬다고 보았던 선조들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상평통보의 둥근 몸체와 네모난 구멍, 궁궐의 연못과 건축물은 단순한 모양을 넘어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담아낸 상징이 된다. 선조들에게 동그라미와 네모는 그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천원지방을 알고 나면 역사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연못 하나, 동전 하나, 문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모양 하나에도 선조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저작권자© 트롯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