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의 ‘오빠가 돌아왔다’ 구창모·김범룡 특집 2탄에서 가수 구창모가 1990년대 초 솔로 대히트곡 ‘희나리’로 정점을 찍고도 돌연 가요계를 떠났던 속사정과 카자흐스탄에서 사업가로 재기한 극적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날 방송에서 구창모는 “많은 분들이 ‘왜 갑자기 사라졌냐’고 하는데, 사실 저는 없어진 게 아니라 없어지게 만들어 버렸다”며 “그게 좀 슬픈 역사 중 하나”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전 사업 계획을 한 적이 없다. 소련(구소련) 가서 갑자기 사업을 시작했다고들 하지만, 나는 가요제 참가하러 갔을 뿐”이라며 일련의 사건이 모두 ‘운명처럼’ 이어졌다고 강조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지난 9월 19일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의 ‘오빠가 돌아왔다’ 구창모·김범룡 특집 2탄에서 가수 구창모가 1990년대 초 솔로 대히트곡 ‘희나리’로 정점을 찍고도 돌연 가요계를 떠났던 속사정과 카자흐스탄에서 사업가로 재기한 극적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사진=MBN '동치미'
“노래던지고 매일 술로 버텨”
구창모에 따르면 1990년 5월 무렵 터진 이른바 ‘PD 파동’(방송 PD들이 가수 출연·방송 대가로 매니저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사건)으로 가요계 전체가 쑥대밭이 됐고, 자신도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그는 오후 4시경 출두해 다음 날 아침 8~9시까지 약 15시간에 이르는 긴 조사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커다란 환멸을 느낀 그는 결국 “다시는 노래를 안 하겠다”며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매일 술로 세월을 버티는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공연중 만난 털보네 국수 민회장
실의에 빠져 있던 시기, 구창모에게 중앙아시아 가요제인 카자흐스탄의 ‘보이스 오브 아시아(Voice of Asia)’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해 10시간을 비행한 뒤 다시 4시간을 갈아타는 장거리 여정 끝에 알마티(알마타)에 도착한 그는 “어렸을 때 배운 소련은 빨간색·적국 이미지뿐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사람들이 너무 순수하고 자유로웠다”고 당시 인상을 전했다.
페스티벌 마지막 날, 참가 가수들이 각 나라의 민요를 부르는 무대에서 구창모는 ‘한오백년’을 준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려는 순간, 객석에서 갑자기 “창모야!” 하고 부르며 한 한국인이 뛰어 나왔다.
그는 과거 ‘털보네 국수’로 유명했던 민봉식 회장(구창모와 같은 아파트 단지 거주)이었다. TV 조립공장 투자 상담차 알마티 시장의 초대로 행사장에 왔던 민 회장은 구창모의 무대를 보고 반가움에 달려 나왔고, 구창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뒤 “내가 도울 테니 여기서 사업을 해보라”며 새로운 길을 제안했다.
카자흐스탄 공연후 귀국길 비행기에서 구창모의 옆자리에 앉은 이는 당시 현대종합상사 김고중 상무(훗날 현대아산 회장)였다. 김 상무는 구창모를 알아보며 “사업할 생각이 있으면 꼭 찾아오라”며 명함을 건넸다./사진=MBN '동치미'
“사업할 생각 있으면 찾아오라”
귀국길 비행기에서 구창모의 옆자리에 앉은 이는 당시 현대종합상사 김고중 상무(훗날 현대아산 회장)였다.
김 상무는 구창모를 알아보며 “10시간 걸리는 긴 길이니 얘기를 나눠보자”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고, “사업할 생각이 있으면 꼭 찾아오라”며 명함을 건넸다.
서울로 돌아온 뒤 며칠 지나 김고중 상무를 찾아간 구창모는 뜻밖의 운명적 인연을 맞이했다. 당시 현대자동차 본부장이었던 정제관 전무가 구창모의 열렬한 ‘찐팬’이었던 것. 정 전무는 60분짜리 카세트테이프에 ‘희나리’만 반복 녹음해 듣고 다닐 정도로 팬심이 깊었다.
이 인연으로 구창모는 회사도 없었음에도 “구사장 보고 싶었다”는 환대를 받으며 곧바로 부사장 직함을 제안받았고, 현대차가 전 세계에 진출해 있음에도 미개척지로 남아 있던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의 자동차 수출 개척이라는 막중한 미션을 맡게 됐다.
비틀즈 노래로 자동차 34대 계약
초기에는 실차 없이 브로커 역할로 바이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구창모는 “현물이 없잖아요. 가서 바이어를 잡아서 소개해 주면 나는 중간에서 수수료를 먹는 역할이었는데, 내가 봐도 한심하더라”고 웃었다. 당시 소련의 공식 평균 월급이 50달러였는데, 자신은 1만~2만 달러짜리 자동차를 팔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다 한 30대 젊은 은행장(바이어)이 나타나 계약을 준비했으나, 사인을 계속 미뤘다. 구창모는 “살 듯하면서 미루는 거”라고 했다. 그러던 중 바이어가 모스크바 출장을 간다는 얘기를 하자 구창모도 “나도 한국 가야 된다. 모스크바 경유로 가야 된다”며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구창모는 모스크바에 있던 교포 운영 호텔(한국식당·노래방 겸업)로 바이어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는 “이제 내 옛날 얘기를 좀 해야겠다 싶어서 자랑을 했다. ‘야, 내가 대한민국에서 정말 잘 나가는 가수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네가 잘 나가는 가수인데 여기 왜 와 있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자존심이 상한 구창모는 “그럼 내가 노래를 한번 들려줄게”라며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그 짧은 순간에 “이 친구가 아는 노래를 해야겠다” 싶어 전 세계인이 다 아는 비틀즈의 ‘Yesterday’를 불렀다. 구창모는 “Yes, yesterday… now I believe”라며 그 장면을 재연했고, 바이어가 박수를 치며 앵콜을 요청했다고 한다. 두 번째로 ‘Bye Bye Love’를 부르자 바이어가 “한국 노래도 듣고 싶다”고 요청했고, 구창모는 필살기로 ‘한오백년’을 선택해 불렀다.
그러자 바이어가 구창모의 손을 꼭 잡고 “계약서 가지고 왔냐?”고 물어보더니 숙소로 가서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사인했다. 결과적으로 34대 분 34만 달러(대당 1만 달러)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소식이 현대종합상사 내부에 전해지자 정재관 전문부터 본부장까지 “뭐가 팔리겠어” 하던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었다고 한다. 구창모는 “딱 어느 날 돈이 들어온 거예요. 한 대도 아니고 34만 달러가”라며 “그 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제 돈을 들여서 (차를) 가져다 팔았다. 빚을 좀 냈죠”라고 덧붙였다.
“차가 없어서 못 팔정도 였다”
이후 구창모는 직접 자금을 들여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는 직판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소련(구소련) 지역에는 가정마다 달러를 보유한 지하 경제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각 가정에 달러가 없는 가정이 없다”며 “차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일각에서는 “400억을 벌었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나, 구창모는 “조금 벌긴 벌었는데 350억? 배씨(배철수) 만났는데 배추가 그러는 거예요. ‘거기서 한 400억 벌었다고 소문나서’라고 하니까 ‘공 하나 뛰어 봐’ 그랬죠. 그 정도는 안 되고”라고 웃었다.
다만 “몇 십억이라도 제가 가수 생활할 때보다 정말 많이 번 돈이다. 90년대 초니까 지금으로 치면 큰 돈, 엄청난 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구창모는 카자흐공화국에서 현대자동차 수출을 전담하는 현지 법인 카스코르사 사장으로 활동하며, 카자흐 국립대학 부지 내에 국내 기업 최초로 AS센터를 개설하는 등 현지 사업 기반을 다지기도 했다.
“솔로 전환후엔 너무 외로웠다”
한편 구창모는 솔로 전환 후 ‘시나리’와 후속곡들이 잘 됐음에도 “너무 외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송골매 시절에는 항상 배철수(배수)와 365일 붙어 다녔다.
밥도 같이 먹고 모든 걸 같이 했는데, 솔로가 되니까 너무 외로운 거야. 그게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보통 클럽 일이 새벽 3시에 끝나는데, 집에는 들어가기 싫어 차를 몰고 경포대까지 갔다 해가 떠서야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잦았다고 한다. 구창모는 “인기랑은 관계가 없는 외로움이 있었다”며 “당연히 외로워, 그것마저 (없으면) 안 된다”고 털어놨다.
배철수(수)는 구창모의 솔로 활동을 늘 응원했으며, 두 사람은 “베스트 프렌드” 사이라고 강조했다. 구창모는 “배씨가 ‘멋있다, 잘되길 바란다’고 늘 응원해 줘서 감사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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