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탐구_‘어게인’] BTS에 ‘아미’가 있다면 트로트엔 ‘어게인’ 있다...문화가 된 핑크빛 응원 물결

박강민 기자

등록 2026-01-05 10:35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낳은 첫 번째 거대 팬덤

단체복 깃발행진 대절 버스 등 팬덤 응원의 교과서 역할

일사분란한 전국조직 구축... 잘 짜여진 정당조직 방불

경쟁보다 음악 자체에만 집중 ‘가장 진화한 팬덤 모델’

□ 트로트 팬덤 탐구 : 그들이 사는 세상 / 3. 송가인과 ‘어게인’

 

최근의 대한민국 트로트 열풍의 ‘빅뱅(Big Bang)’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2019년 트로트 오디션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송가인을 꼽는다. 

그리고 그 신드롬의 뒤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중장년 팬덤의 조직화를 이뤄낸 팬클럽 ‘어게인(AGAIN)’이 있었다.

K-POP팬들에게 ‘아미(BTS 팬덤)’가 있다면, 트로트 계에는 ‘어게인’이 있다. 

핑크색 유니폼을 맞춰 입고 전국 팔도를 누비는 그들의 모습은 이제 하나의 지역 축제 풍경이 되었다. 


국내 최초 트로트 종합 미디어 트롯뉴스(www.trotnews.co.kr)의 특별기획 시리즈 ‘팬덤 탐구: 그들이 사는 세상’시리즈 세 번째 순서로, 트로트 르네상스의 개척자이자 ‘조직된 팬덤’의 시초, 송가인과 어게인을 탐구한다.


 사진=포켓돌스튜디오 제공

‘원조’의 자부심, 핑크빛 물결의 시초


‘어게인’은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낳은 첫 번째 거대 팬덤이다. 

그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무명 가수 송가인을 ‘진(眞)’으로 만들어낸 ‘킹 메이커’라는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상징색인 핑크(Pink)는 열정과 사랑을 뜻한다. 

어게인의 응원 문화는 이후 탄생한 모든 트로트 팬덤의 교과서가 되었다. 

단체복(티셔츠, 점퍼, 모자)을 맞춰 입는 문화,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퍼레이드, 지역별 버스 대절 응원 등은 모두 어게인이 정립한 ‘K-트롯 응원 표준’이다.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핑크색 물결이 주는 시각적 압도감은 송가인의 위상을 대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어게인은 맹목적이고 단순한 지지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송가인의 성장 서사를 함께해 오면서 성장을 견인해 온 ‘공동 창작자’에 가까운 팬덤으로 평가된다

지역, 세대, 계층을 가로지르는 폭넓은 지지층은 송가인을 특정 세대의 우상이 아닌 공적인 가수로 만들었다. 

어게인은 이 과정에서 단순한 응원자가 아니라 송가인의 사회적 위상을 확장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이 같은 과정을 함께하면서 어게인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송가인을 자신만의 것이 아닌 ‘국민가수’라는 수식어를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다.

 


전국망을 갖춘 ‘거대 조직’


어게인의 조직력은 흡사 잘 짜인 정당이나 전국 규모의 시민 단체 등과 비슷하다. 

서울, 경기, 호남, 영남 등 지역별 지부(지역장)가 체계적으로 나뉘어 있고, 각 지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송가인이 전라남도 진도 출신이라는 점은 초기 팬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지역색을 넘어 전국구 팬덤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진도에 위치한 ‘송가인 마을(본가)’은 어게인들에게 성지(聖地)와 같다. 팬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아 진도군의 관광 명소가 되었을 정도다. 

특정 가수의 고향이 관광지 화 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현상 또한 송가인과 어게인이 만들어낸 전례 없는 ‘지방 상생 모델’이다.




“잃어버린 판소리, 되찾은 한(恨)”


송가인의 주 특기는 국악(판소리)을 베이스로 한 정통 트로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한(恨)’이 서려 있다. 어게인의 주축인 50대~70대 팬들은 송가인의 소리에서 자신들이 살아온 고단한 세월을 보상받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가인이어라~”라는 구수한 사투리 인사와 한복이 잘 어울리는 자태,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은 중장년층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딸’의 모습이다. 

팬들은 송가인을 통해 잊혀가던 정통 트로트의 맛을 ‘다시(Again)’ 느꼈고, 그녀가 아이돌 중심의 가요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때 대리 만족과 쾌감을 느꼈다. 어게인이라는 이름에는 “송가인과 함께 내 인생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한다”는 중년의 희망이 담겨 있다.


 사진=송가인 SNS


걸어 다니는 기업, 완판의 여왕


어게인의 구매력은 ‘실용성’과 ‘의리’에 기반한다. 

송가인이 광고하는 잎새주, 건강식품, 화장품 등은 팬들의 필수 구매 목록이다. 특히 홈쇼핑이나 지역 농특산물 홍보 대사로 나섰을 때의 판매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게인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우리 가수가 홍보하는 우리 농산물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구매에 나선다. 

온라인 구매가 익숙지 않은 고령의 팬들을 위해 자녀들에게 대리 구매를 부탁하거나, 지역 모임에서 공동 구매를 진행하는 등 구매 루트도 다양하다. 

기업들이 송가인을 ‘중장년층 타겟 광고 섭외 1순위’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로트의 뿌리를 지키는 수호자들


송가인과 어게인은 유행을 쫓는 팬덤이 아니다. 

그들은 퓨전과 크로스 오버가 난무하는 시대에 ‘정통 트로트’의 뿌리를 지킨다는 사명감을 공유한다. 핑크색 옷을 입고 전국 방방곡곡 축제 현장을 누비는 어게인의 모습은 대한민국 중장년층이 대중문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복귀했음을 알리는 ‘승리의 행진’이다. 


어게인은 송가인의 음악적 뿌리를 존중하며 단순히 히트곡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 민요 정가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적 배경을 이해하고 지지한다. 이를 통해 팬덤이 가수의 음악 세계를 학습하고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그들은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데 만 그치지 않고 그 노래가 어디에서 왔는 지를 이야기 한다.


송가인의 ‘가인이어라’가 한국 최초로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지자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소식을 주변에 퍼 나르며, 자부심을 느꼈다는 댓글이 쇄도하기도 했다. 이는 어게인들에게 송가인의 음악이 결코 단기 유행이 아니라 오래 남을 문화 자산임을 더 굳게 믿는 계기가 되었다.


 '가인이어라'가 등재된 중학교 음악 교과서


어게인의 가장 큰 특징은 타 가수와의 경쟁, 순위 싸움, 팬덤 간 대립에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 송가인의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한다. 바로 이점이 어게인을 트로트 팬덤의 가장 진화된 모델로 평가 받게 했다.

어게인은 조직적이지만 과시적이지는 않다. 온-오프라인 커뮤니티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팬덤 내 소통 구조도 안정적이다. 특히 송가인의 팬덤은 연령대가 넓게 분포되어 있음에도 갈등이 표출되지 않는 것은 팬덤의 중심 가치가 ‘존중’에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없이도, 요란하지 않아도 팬덤이 충분히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어게인’ 트로트가 존재하는 한, 이 핑크빛 열정은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송가인이 곧 장르”이듯 “어게인이 곧 트로트 팬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진=포켓돌스튜디오 제공  

 ※ 알림: 트롯뉴스의 ‘팬덤 탐구’ 시리즈는 트로트 팬들을 위한 기획입니다. 연재 순서는 팬덤의 인기도 등과 관계없이 취재 여건에 따라 게재함을 밝힙니다. 기사에 의견이 있거나 팬클럽 관련 소식 등은 메일 등을 통하여 제안 주시면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트롯뉴스]


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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