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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무대 배경 ‘영월 청령포’: 비운의 왕 ‘단종’의 유배지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2-08 16:19

‘맑은 물이 있는 나루터’라는 뜻의 청령포(淸泠浦)

강원도 영월을 대표하는 ‘내륙의 섬’

아름다운 풍경 뒤에 단종의 슬픔과 눈물, 깊은 한이 서려 있는 곳

비수도권 유일 조선시대 왕릉, 영월 장릉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 사진 = 쇼박스 

한국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단종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 작품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마을의 부흥을 위해 단종의 유배지를 자처한 호장 엄흥도와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이곳으로 유배된 단종(노산군)의 시간을 따라간다.


2013년 개봉한 영화 〈관상〉이 계유정난이라는 격변의 순간을 다뤘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그 이후에 남겨진 시간과 사람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그 연장선에 놓인 작품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2013년 계유정난을 다룬 영화 <관상> / 사진 = 화면 캡쳐

세종의 적장손이자 문종의 적장자로, 조선왕조의 임금 가운데 가장 온전한 정통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단종(端宗)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며 불과 열두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어린 임금을 둘러싼 정국은 끝내 안정되지 못했다.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을 비롯한 단종 측 대신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장악했고, 이는 곧 단종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왕위에서 밀려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열일곱 살이던 1457년 6월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영월은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두 강이 합류하기 직전, 서강이 크게 휘돌아 감싸 안은 자리에 ‘맑은 물이 있는 나루터’라는 뜻의 청령포가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서 동·남·북 삼면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편은 가파른 절벽으로 막혀 있어 예나 지금이나 배를 타지 않고서는 드나들 수 없는, 말 그대로 ‘육지 안의 섬’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청령포는 어린 임금 단종이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절망, 그리고 조선왕조의 비극이 깊게 스며 있는 장소로 남아 있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 전경 / 사진 = 영월군청

영화 속에서 엄흥도는 이곳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너구리도 환장해 졸도하는 오지의 섬, 육지 안의 섬 청령포. 여름엔 끈적한 습기와 모기, 겨울엔 강가의 냉기가 올라오는 곳. 최적의 유배지라는 말입니다.”

 

 영화에서 엄흥도가 유배지 유치를 위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 = 쇼박스

청령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단종과 정순왕후의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서로 손을 맞잡지 못한 채 애틋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단종의 유배 이후 두 사람이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세조는 정순왕후를 노비로 강등한 뒤 비구니로 만들었고, 이들의 이별은 그렇게 영원한 것이 되었다.


 청령포 매표소 인근에 마련된 단종과 정순왕후 동상

단종이 머물렀던 단종어소에는 ‘단묘재본(端廟在本) 부시유지(府時遺止)’라 새겨진 붉은 비각이 서 있다. 그 안의 검은 비석은 이곳이 곧 단종이 거처하던 자리임을 알리는 증표로, 영조가 1763년에 직접 쓴 글씨로 전해진다.

어소 앞에는 일명 ‘엄흥도 소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가로누운 듯 기형적인 모습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들 또한 곧게 자라지 않고, 마치 단종을 향해 예를 올리듯 몸을 굽혀 있다. 이 때문에 이 소나무들은 오랫동안 ‘충절의 나무’로 불려 왔다.

 

 단종이 살았던 단종어소

 단종어소 앞의 일명 '엄흥도 소나무'

청령포의 백미는 단연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금강송 군락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나무는 관음송으로, 수령은 약 600년, 높이는 30m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면에서 약 1.6m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한쪽은 곧게 하늘로 뻗고, 다른 한쪽은 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자라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단종은 유배 생활 동안 이 갈라진 줄기에 걸터앉아 긴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한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과 슬픈 소리를 지켜보았다(觀).”라는 데서 유래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나무껍질이 검게 변해 이를 알렸다는 전설도 전해지며,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유난히 귀하게 여겨 왔다.

 

 관음송

전망대에 오르면 서강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 질 무렵이면 단종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해지는 노산대, 유배지에서 부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 그리고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했음을 알리는 금표석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금표석은 청령포 금표비로, 1726년 영조가 청령포 일대를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며 세운 것이다.

 

 단묘재본 부재유지비, 노산대, 금표비, 망향대(왼쪽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

그러나 단종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유배된 해 여름, 큰 홍수로 청령포 일대가 휩쓸리면서 단종은 결국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유배 온 지 석 달이 되던 1457년 9월, 경상도 순흥(현 영주시 순흥면)으로 유배돼 있던 숙부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된다.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단종은 같은 해 11월, 결국 죽음을 맞는다. 단종의 최후를 두고는 여러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월 관아인 관풍헌(觀風軒)에서 사약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고, 연려실기술에는 활의 줄로 목을 매 자결했다고 전한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라는 어명 때문에 단종의 시신은 한동안 그대로 방치됐다. 그때 영월 지역의 호장이었던 ‘엄흥도(嚴興道)’는 “선한 일을 하다 화를 입더라도 달게 받겠다.”라며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그는 영월 선산의 양지바른 곳에 단종을 몰래 장사 지냈고, 그 자리가 오늘날의 영월 장릉이다.


 단종의 묘 '영월 장릉' 전경 / 사진 = 영월군청

단종의 무덤은 200년이 넘도록 제대로 돌보아지지 못하다가, 숙종 대에 이르러 단종이 복위되면서 비로소 왕릉의 격을 갖추게 된다. 엄흥도가 남몰래 조성한 무덤은 장릉(莊陵)으로 추존되었고, 엄흥도는 사육신과 함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이로써 영월 장릉은 수도권 밖에 자리한 유일한 조선시대 왕릉이 된다.

 

영월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오늘날 영월을 대표하는 역사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인 왕릉과 달리 문석인만 세워져 있는 점이 특징인데, 이는 단종이 무력에 의해 희생된 임금이었음을 상징한다. 또한, 애초에 왕릉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기에, 다른 왕릉에 비해 규모는 작고 소박하다.

 

 영월 장릉의 홍살문과 'ㄴ'자 모양의 향어로

장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박충원 낙촌비각이 서 있다. 이 비석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뒤 화를 입을까 두려워 아무도 찾지 않던 묘소를, 중종 때 영월군수 박충원이 찾아 제사를 지낸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장릉 입구에 자리한 정령송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잠든 남양주 사릉에서 옮겨온 소나무로, 생전은 물론 죽어서도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심어졌다.

 

신성한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홍살문을 지나면 향로와 어로가 함께 놓인 향어로(향과 임금이 다니는 길)가 이어진다. 영월 장릉의 향어로는 지형적 특성에 따라 ‘ㄴ’자 형태로 꺾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 그리고 단종의 탄생부터 유배와 죽음, 복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단종 역사관이 마련되어 있다.


 엄흥도 정려각(좌), 박충원 낙촌비각(우) 단종의 장례를 치른 뒤, 엄흥도는 세상을 피해 숨어 살았다. 영월을 떠나 계룡산 동학사에서 단종의 삼년상을 치른 뒤 문경과 청주, 군위 등지를 떠돌며 은둔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경북 문경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충절사가 남아 있다. 이러한 그의 행적은 ‘영월 엄’ 씨 후손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전해졌고, 단종이 복권된 이후에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충절의 사례로 평가받게 된다.

‘영월 엄’ 씨의 뿌리는 당나라 사신 ‘엄림의’가 당 현종이 만든 음악을 신라에 전파하기 위해 왔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내성군, 즉 지금의 영월에 정착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고려 시대를 거치며 후손들이 영월을 본관으로 삼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단종의 밥상, 어수리 한 상

 

영월에는 이름부터 특별한 나물이 있다. ‘임금에게 드린다.’라는 뜻을 지닌 어수리다. 예부터 청령포 일대에 무성하게 자란 이 나물은, 단종이 유배 생활 중 특히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정순왕후의 분 냄새를 닮아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어수리는 곤드레처럼 밥으로 지어 먹기도 하고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는데, 곤드레보다 향이 훨씬 깊고 진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단종의 식사 장면에 등장한 어수리 요리 역시 영월의 어수리 전문 식당 ‘박가네’에서 준비한 것이다. 이른바 ‘단종의 밥상’이라 불리는 어수리 더덕 정식에는 어수리 솥밥을 중심으로 장아찌와 인절미, 전 등 어수리를 활용한 열두 가지 반찬이 차려진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상차림은, 유배지에서의 단종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 메뉴는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과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도 소개되며, 영월의 봄과 청령포의 기억을 한 상에 담아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단종의 밥상' 어수리 더덕 정식

다음 편에서는 경상도 순흥(경북 영주)에서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금성대군 이야기와 이로 인해 순흥 마을 전체가 피로 물들어진 이야기,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배성식 / 여행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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