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광고하세요!!
[여행] 500년 은행나무 아래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 여기가 바로 극락(極樂),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6-12 23:21
신라 시대부터 내려오는 수도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수종사에서 바라본 기와지붕과 두물머리는 한 폭의 수채화
세조, 김시습, 겸재, 다산, 초의, 추사의 숨결이 있는 곳
50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 아래서 멍 때리기
삼정헌에서 다도 체험은 수종사의 하이라이트
500년 된 은행나무 아래서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차 한잔
‘구름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는 운길산 중턱에 자리 잡은 ‘수종사’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조망을 자랑하는 사찰 중 하나로 꼽힌다. 강폭이 넓은 북한강이 왼쪽에서 흘러오고, 남한강이 오른쪽에서 합류하는 장면을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수종사 외에 찾기 어렵다.
수종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자세한 창건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1458년 세조가 지병 치료를 위해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이수두(二水頭, 현재의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와 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위굴이 있었고, 굴 안에는 18 나한상이 모셔져 있었다.
또한, 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에 세조는 이곳에 ‘수종사(水鐘寺)’를 중창하고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경내에 세조의 고모인 정혜옹주의 부도가 남아있는 점을 고려하면, 수종사는 세조 이전부터 이미 상당한 규모를 갖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종사의 빼어난 경관은 예로부터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찬탄을 받아왔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서거정(1420~1488)은 이곳을 가리켜 ‘동방 제일의 전망’이라 극찬하였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화첩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독백탄(獨栢灘)」을 통해 양수리 일대의 수려한 풍광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는 수종사와 두물머리의 경관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문화적·예술적 명소였음을 보여준다.
정선 <경교명승첩> 중 '독백탄' 양평 두물머리 1740~1741, 간송미술관 소장 또한, 수종사는 단순한 수행공간을 넘어 사상과 학문, 예술이 교류하던 정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매월당 김시습, 초의 선사,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이곳에 모여 당파와 신분의 경계를 넘어 학문과 시대정신을 논하였다. 수종사는 이들이 새로운 사상과 이상을 나누며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던 담론의 장이자, 조선 지성사의 한 흐름을 품은 뜻깊은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제1주차장 앞에 자리한 ‘일주문(一柱門)’은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다.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다.’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서는 상징적 경계이기도 하다.
현판에는 ‘운길산수종사(雲吉山水鐘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방문객들이 성스러운 도량에 들어서기에 앞서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불법(佛法)의 맑은 가르침 속에서 한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수종사 일주문(一柱門) '운길산수종사' 일주문에서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사색과 명상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 길목에 모셔진 ‘미륵불(彌勒佛)’은 미래에 이 땅에 강림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할 미래불(未來佛)이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56억 7천만 년이 지나 이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고 모두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고 전해진다. 불상의 수인(手印) 또한 깊은 상징성을 담고 있다.
밖을 향해 든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 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나타내며, 아래로 내린 왼손은 중생의 소망을 받아들이고 베푼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륵불(좌)과 불이문(우)
사천왕상이 수호하고 있는 ‘불이문(不二門)’은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를 상징하는 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은 나와 너, 삶과 죽음, 부처와 중생, 번뇌와 깨달음, 선과 악 등 서로 대립하는 모든 존재와 개념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진리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불이문은 분별과 집착의 세계를 넘어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상징적 관문으로 비로소 불국토를 향한 여정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불이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마침내 ‘해탈문(解脫門)’에 이르게 된다. 해탈문은 번뇌와 집착의 세계를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 곧 부처의 세계로 들어섬을 상징하는 문이다.
불이문에서 해탈문까지 계단(좌)과 해탈문(우)
해탈문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수종사의 명소로 널리 알려진 전통 찻집 ‘삼정헌(三鼎軒)’이다.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곳은 다선(茶仙)으로 추앙받는 초의 선사가 다산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수려한 풍광을 바라보며 차를 나누었다고 전해지는 뜻깊은 공간이다.
삼정헌은 “절은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라는 금해 동산 스님의 마음을 담아 1999년부터 지금까지 방문객들에게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선사하고 있다.
통유리 너머로 펼쳐지는 두물머리와 한강의 전경에 더해, 수종사의 맑은 약수로 정성껏 우려낸 녹차를 맛볼 수 있다. 찻값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차 한 잔에 담긴 정성과 수행자의 마음을 헤아리며 각자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시주하면 된다.
삼정헌 내부에는 "수종사에서 차를 마신다는 것은 남한강과 북한강을 다 마시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삼정헌 맞은편에 자리한 ‘선불장(選佛場)’은 문자 그대로 ‘부처를 가려 뽑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공간이다. 예로부터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장소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스님들의 수행과 거처 공간인 동시에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종무소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걸려 있는데, 이는 좋은 글귀를 기둥에 새겨 수행의 지침으로 삼는 불교 전통이다. 선불장의 주련은 ‘초의 선사(1786~1866)’의 글로 전해져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삼정헌(좌)과 선불장(우), 그리고 중간의 저 멀리 산령각
‘응진전(應眞殿)’은 ‘진리에 응하여 깨달음을 이룬 성자’를 뜻하는 응진(應眞)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곳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수행을 완성한 나한(羅漢)들이 모셔져 있어 신도들 사이에서는 나한전(羅漢殿)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약사전(藥師殿)’은 중생의 질병과 재난을 없애고 고통에서 구제해 준다고 믿어지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공간으로 수종사에서는 별도의 전각 없이 약사여래불만 봉안하고 있어 소박하면서도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수종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우주의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그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협시불로 봉안하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대웅보전과 달리 칠성님을 함께 모시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이는 한국 불교가 민간 신앙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 온 모습을 보여준다.
수종사의 중심 법당 '대웅보전' 앞에는 특이하게 바나나 나무가 있다. 대웅보전 왼편에는 수종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석조부도와 석조부도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석조부도(보물)’는 조선 태종의 다섯째 딸이자 세조의 고모인 정혜옹주의 사리를 모신 부도로 알려져 있으며, 세종의 아들인 금성대군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종사 다보탑으로도 불리는 ‘팔각오층석탑(보물)’은 조선 시대에 조성된 유일한 형태의 팔각오층석탑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아하고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석조부도(좌), 석조부도 삼층석탑(중), 팔각오층석탑(우)
신도들 사이에서는 산신각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산령각(山靈閣)’은 산의 정기를 관장하는 산신을 모신 공간이다. 이는 불교의 신앙 대상이라기보다 토속신앙이 불교와 융합된 형태로, 일반적인 불전(佛殿)과 구별하여 ‘전(殿)’ 대신 ‘각(閣)’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산령각 앞에 서면 수종사의 고즈넉한 기와지붕과 그 너머로 굽이치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물길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가정의 평안과 사업의 번창, 재물복을 기원해 왔다.
산령각에서 바라본 산사의 고즈넉한 기와지붕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범종각(梵鐘閣)’에는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 사찰의 사물(四物)이 갖추어져 있다. 범종은 지옥 중생을, 목어는 수중 생명을, 운판은 허공을 나는 생명을 제도한다(濟度,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과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들 소리는 모든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역할을 한다.
범종각을 지나면 세조가 하사하였다고 전해지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만날 수 있다. 수종사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견뎌온 이 거목은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찰을 묵묵히 지켜온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울창한 가지가 드리운 넉넉한 그늘에 머물다 보면, 운길산 자락을 스쳐 오는 맑은 바람과 함께 자연스레 마음이 고요해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색에 잠기거나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특히 가을 아침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북한강과 남한강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절경을 선사한다.
오른쪽 범종각 뒤로 보이는 수종사의 산증인 500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
사찰 뒤편에서 시작되는 산길을 따라 약 800m 정도 오르면 가파른 계단과 바위 구간을 지나 해발 610m의 운길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정상에서는 북한강, 남한강은 물론 멀리 한강 유역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수종사와는 또 다른 웅장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수종사에서 운길산 정상(610m) 가는 길
교통정보
- 차량 1대만 올라갈 정도의 좁은 도로와 경사도로 운전 주의가 필요하며, 초입에 넓은 주차장에 주차 후 도보 이용을 강력 추천
-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수종사까지 도보로 1시간, 수종사에서 운길산 정상까지는 800m로 약 40분 정도 소요
- 오전 10시 30분 ~ 11시 30분까지는 예불시간으로 삼정헌(다실) 이용 불가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저작권자© 트롯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트롯뉴스 © 트롯뉴스 All rights reserved.
트롯뉴스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