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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예진 “클래식이 정교한 보석이라면, 트로트는 손을 잡고 함께 웃고 울어주는 위로입니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4-29 12:12
예술과 경영, 무대와 연구실 넘나들며 연구
교수·성악가에서 오페라까지 24시간이 짧아
“예술의 쓸모를 증명해 낸 개척자 되고 싶다”
“트로트 팬덤은 세대 통합 언어, 평생교육 현장”
‘희랑별’ 네임드 팬 활동… 학술연구 큰 도움
□ 이예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예술과 경영, 무대와 연구실. 어쩌면 평행선처럼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영역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물이 있다. 소프라노이자 뮤지컬 음악 감독, 교육학 박사이자 HRD(인적자원개발) 전문가, 그리고 트로트 팬덤까지 연구하는 이예진 교수(한양대 음대, 나랑공연예술연구소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화여대 성악과를 거쳐 이탈리아·독일에서 정통 클래식을 수학한 그가, 이제는 기업의 ESG(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로 기업 경영에서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3가지 핵심 요소) 지표를 예술로 해결하고, 중년 여성 팬덤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학술 논문으로 입증하려 한다.
이예진 교수는 예술과 경영, 무대와 연구실. 어쩌면 평행선처럼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영역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경계없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사진=이예진 교수 제공
트롯뉴스가 이 독보적인 ‘경계 없는 예술가’를 만나 예술이 세상의 결핍을 어떻게 치유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그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예술은 강력한 문제해결 도구”
2025년과 2026년, 연이어 ‘자랑스러운 국민 대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이예진 교수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올해 교육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현재 ‘나랑공연예술연구소’의 외연을 넓히고 내실을 다지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 교수의 목표는 명확하다. 단순히 예술 작품을 만들고 공연하는 단체를 넘어, 기업과 공공기관이 안고 있는 사회적 고민을 해결해 주는 ‘전문 솔루션 그룹’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 중 ‘사회(Social)’ 분야의 성과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6 대한민국을 빛낸 문화예술대상을 수상한 이예진 교수/사진=이예진 교수 제공
그가 내세운 핵심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직장인들의 스트레스와 조직 내 불통 문제를 예술로 풀어내는 ‘디:톡스 아트(Digital Detox: Art)’이다. 이는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 자체 개발한 예술 교육 과정을 통해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수치화된 성과로 바꿔 놓는다.
두 번째는 지역 간의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한 ‘콘텐츠 기반 팝업 놀이터’와 공공 예술 프로젝트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과 손잡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예술의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이 교수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세무사를 찾듯, 기업들이 사회 공헌을 고민하거나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찾게 만들고 싶다.”라고 말한다. 예술이 그저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굳은 믿음이다.
클래식의 엘리트에서 HRD까지
이화여대 성악과 → 이탈리아·독일 유학 → 귀국.
누가 봐도 정해진 엘리트 루트였다. 그러나 이예진의 지금은 그 공식에서 벗어났다.
“정통 클래식은 극소수의 탑 클래스 연주자를 제외하면 계속 자본을 투자하며 무대를 유지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귀국 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면서, 연주자 이외에 기획자로서 성악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예진 교수는 현역 성악가 출신으로 음악교육이 아닌 순수 교육학(평생교육·HRD)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1호 학자’이다/사진=이예진 교수 제공
현장에서 뮤지컬 음악 감독과 배우를 겸하다 보니 ‘학문적으로 더 깊이 알아야겠다.’라는 갈증이 생겼고, 공연예술·뮤지컬 전공으로 이어졌다. 그다음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뮤지컬 교육 체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교육학으로 이끌었고, 문화예술교육을 더 거시적으로 보기 위해 평생교육과 HRD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예술 역시 결국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본질을 그때 깊이 깨달았죠.”
현역 성악가 출신으로 음악교육이 아닌 순수 교육학(평생교육·HRD)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1호 학자’ 그것이 현재 이예진이 서 있는 자리다.
“예술 강사에 가장 필요한 건 인내심”
박사 논문 주제는 ‘뮤지컬 예술 강사 역량모형 개발’.
이예진은 현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 조사에서 놀라운 결과를 마주했다.
“예술 강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 1위가 화려한 실기 능력이 아니라, ‘인내심’과 ‘위기관리 능력’ 같은 태도적 자질이었습니다. 무대라는 예측 불허의 공간에서 초보 학습자들은 자신의 취약성과 두려움을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강사의 진짜 전문성은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해 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가 정의하는 이상적인 예술 교육자는 이렇다.
“치열한 상업 무대에서 탈락과 좌절을 겪으며 생존해 본 ‘야생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툰 학습자의 시도가 예술적 개성으로 꽃피울 때까지 흔들림 없이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 학습자의 결핍을 가장 빛나는 매력으로 치환해 주는 통찰적 조력자, 즉 ‘예술가 교사’입니다.”
“연주력만으로 살아남는 시대 끝나”
한양대·홍익대·경기대 등 여러 대학에서 예비 예술인들과 마주하는 이예진은 현장의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과거 클래식 성악은 명문 음대 졸업 후 유학을 다녀오면 자리를 잡는 ‘엘리트 공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유학을 다녀와도 교수나 전업 연주자로 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사진=이예진 교수 제공
그는 대학 교육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완벽한 발성만큼이나, 문화예술 트렌드를 읽는 법, 정부 지원 예산을 수주하기 위한 기획서 쓰는 법, 자신의 예술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아트프레너’로서의 생존 기술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보완이 아니라 혁신입니다.”
클래식 성악가의 트로트 입문기
이예진의 트로트와의 인연은 솔직하다.
“클래식과 뮤지컬을 즐겨 듣는 집안에서 자라다 보니 어릴 때는 트로트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악가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후, 다양한 지역 공연 무대에서 관객의 선호에 맞춰 트로트나 전통 가요를 불렀을 때 오페라 아리아와는 비교도 안 될 즉각적이고 뜨거운 호응이 쏟아지는 걸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김태곤 공연 총감독을 맡고 ‘한국 대중가요 100년사’ 관련 공연을 준비하며 트로트를 학구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2020년에 방영된 ‘미스터 트롯’을 챙겨보면서 그 매력에 완전히 푹 빠지게 된 것도 아주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웃음)”
“트로트는 날것의 감정이 핵심”
성악가로서 바라본 트로트의 발성에 대한 이예진의 분석은 날카롭다.
“정통 성악은 마이크 없이 극장 끝까지 소리를 전달해야 하므로 훈련된 공명과 정형화된 아름다움(벨칸토)을 추구합니다. 형태가 정교하게 깎인 보석 같죠.”
“반면 트로트의 핵심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습니다. 트로트는 ‘말하듯이 던지는 소리’와 ‘날것의 감정’이 핵심입니다. 가사 하나하나에 대중의 한(恨)과 흥(興)을 담아내기 위해 꺾고, 흔들고, 때로는 거칠게 내뱉는 그 발성의 자유로움이 엄청난 매력입니다. 클래식이 완벽한 건축물 안에서 느끼는 경외감이라면, 트로트는 내 옆에서 내 손을 붙잡고 같이 울고 웃어주는 직관적인 위로입니다.”
그는 특히 트로트 가수들의 ‘본능적 호소력’에 전문가로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성악과 뮤지컬 발성만 연구하던 저에게,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대중의 마음을 순식간에 쥐락펴락하는 그 발성은 정말 신선하고 강력한 충격이었습니다.”
트로트 덕질, AI 시대 자기주도 학습
이예진은 트로트 가수 김희재의 팬덤 ‘희랑별’에서 단순한 팬을 넘어 네임드 팬(여론 주도층)으로 활동했다. 팔로워도 상당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웃음) 그 현장 경험이 학술 연구의 씨앗이 됐다.
“처음에는 스트리밍 돌리는 법도,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법도 모르셨던 분들이 ‘내가 응원하는 가수를 돕겠다.’라는 강력한 애정 하나로 복잡한 디지털 기기들을 스스로 학습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AI 도구까지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어내시더라고요.”
이예진교수는 트로트 가수 김희재의 팬덤 ‘희랑별’에서 단순한 팬을 넘어 네임드 팬으로 활동했다. / 트롯뉴스그는 이 현상을 ‘중년 여성 팬덤의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 연구로 발전시키고 있다. 45~60세 중년 여성 30명과의 1:1 심층 면담과 150명 규모의 통계 조사를 결합한 본격 연구가 곧 시작된다.
“중년 여성들의 ‘덕질’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스스로 교육하고 사회와 다시 연결하는 가장 주도적인 ‘평생교육’의 현장입니다. AI 시대의 자기주도 학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로트는 강력한 세대 통합 언어”
트로트의 교육적·사회적 잠재력에 대해 이예진은 두 가지 관점을 제시했다.
“음악심리학에서 사람의 음악적 취향은 10~20대에 형성되어 평생을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트로트는 이 견고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통기타 포크와 록에 열광하던 세대가 오디션 방송이라는 미디어 진화와 함께 트로트를 폭발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 이는 평생학습 관점에서 대단히 유의미한 문화적 유연성입니다.”
지역과 도시를 잇는 연결성도 강조했다.
“트로트의 노랫말과 정서의 뿌리에는 늘 ‘고향’과 ‘지역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수도권의 문화예술 인프라 독점 현상 속에서, 트로트는 전국 각지의 지역 축제를 잇고 소외된 지역 사회에 생기와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같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게 만드는, 그 어떤 교재보다 강력한 세대 통합의 언어이자 평생교육 콘텐츠입니다.”
트로트 학회 통해 체계적 연구 시급
트롯뉴스가 가장 기대했던 대목이다.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추진 중인 ‘트로트’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프로젝트에 대해 이예진은 명확한 처방전을 내놓았다.
“트로트는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텍스트’입니다. 유네스코가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과 세대 간 전승’ 기준에 트로트만큼 완벽히 부합하는 콘텐츠가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민중의 한과 흥을 오롯이 담아냈고, 지금은 10대부터 80대까지 함께 부릅니다.”
그가 제시하는 로드맵은 구체적이다.
“2000년대 초 한국 뮤지컬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떠올려 보십시오. 대학마다 관련 학과가 신설되고 ‘한국뮤지컬학회’가 창립되면서 학문적 연구와 인재 양성이 산업 성장을 뒷받침했습니다. 트로트도 똑같습니다. ‘트로트 학회’를 통해 역사적·음악적·사회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데이터화 해야 합니다. 대학 실용음악과의 정규 커리큘럼에 트로트와 한국 전통 가요를 도입하고, 교과목 편성이 어렵다면 최소한 한국 대중가요 역사 강의에 해당 내용을 포함해야 합니다.”
K-POP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트로트의 글로벌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트로트 특유의 극적인 감정 표현과 독특한 꺾기 창법, 세대를 초월하는 직관적인 멜로디는 세계 시장에서도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는 독창적인 무형 자산입니다.”
천경자 오페라부터 어린이 뮤지컬까지
이예진의 현재 진행형 프로젝트는 두 극단을 동시에 겨냥한다.
첫째는 고흥문화재단과 함께 준비 중인 창작 오페라(뮤지컬),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천경자 화백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그녀가 겪었던 치열한 예술적 고뇌와 삶의 굴곡을 성악과 뮤지컬의 융합된 발성으로 표현하고, 현대인들에게 ‘자아실현과 회복 탄력성’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자 합니다.”
둘째는 천안 어린이 꿈누리터의 캐릭터 IP를 활용한 창작 뮤지컬.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과 음악을 통해 지역 기관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아이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작업입니다.”
성인과 영유아, 오페라와 어린이 뮤지컬, 클래식과 트로트. 이예진은 경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자체를 지우고 있다.
“아트프레너 이예진으로 남고 싶다”
마지막 질문.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은가?
“무대 위에서 노래만 아름답게 불렀던 성악가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예술의 쓸모를 증명해 낸 개척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예진 교수는세상의 문제들을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도구로 해결해 나가는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아트프레너’로 대중곁에 있겠다고 밝혔다. / 트롯뉴스
그는 두 방향을 향해 이 증명을 이어갈 계획이다.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적 재능이 사회에서 어떻게 존중받고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 있는지 길을 여는 사람으로, 기업과 사회에는 ‘예술이 조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한 솔루션’임을 각인시킨 혁신적인 교육자로 남고 싶습니다. 언제나 무대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세상의 문제들을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도구로 해결해 나가는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아트프레너 이예진’으로 대중 곁에 있겠습니다.”
세상의 결핍을 예술로 채워 나가는 그의 행보는, 트로트에서 오페라까지, 무대에서 연구실까지, 21세기 한국이 필요로 하는 르네상스 형 예술가의 초상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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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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