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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블링 연대' 역풍 마주한 한류… 정길화 원장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멈춰라” ‘성찰 콤마 한류’ 제안
박강민 기자 oasispool@naver.com
등록 2026-06-06 22:09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 국제컨퍼런스 성료
아시아 4국 연구자들 날카로운 ‘한류’ 진단
일본 교수 “한국이 배움과 동경의 대상 됐다”
베트남 교수 “문화적 존중 결여 조직적 반발”
몽골 교수 “한국화 우려 등 문화적 긴장현상”
정길화 원장 “타자 시선으로 스스로 돌아봐야”
K-pop 공연장의 '대포카메라 시비' 하나가 동남아 전역을 뒤흔들었다. 올해 초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K팝 아이돌 공연에서 불거진 이 사건은 이른바 ‘시블링(SEAblings·동남아 형제자매 연대)’ 현상으로 번지며 한국 사회에 냉혹한 경종을 울렸다. 한류의 화려한 성공 뒤편에 도사린 문화적 오만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시블링 현상(SEAblins)은 동남아시아 젊은 세대들이 온라인에서 형성한 초국가적 연대 현상으로 ‘동남아시아의 형제자매들’을 뜻한다. 2026년 초 K-팝 공연장에서 발생한 한국 팬과 현지 팬 간 갈등 이후, 일부 동남아 네티즌들이 '시블링'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한국 팬 문화와 한국인에 대한 비판·조롱 콘텐츠를 SNS에 해시태그로 확산시키면서 한국 언론에도 보도 된 바 있다.
지난 5일 동국대학교 한류융합학술원(원장 정길화)은 서울 동국대 캠퍼스에서 '한류, 확장에서 성찰로-성찰 한류의 조건과 지향'을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 사진=동국대학교 제공
이러한 위기 징후를 직시하고 지속 가능한 한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담론의 장이 열렸다.
동국대학교 한류융합학술원(원장 정길화)은 지난 6월 5일 동국대 혜화관 고순청 세미나실에서 '한류, 확장에서 성찰로 - 성찰 한류의 조건과 지향'을 주제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행사는 정윤길 교수의 사회로 막을 올렸으며, 윤재웅 동국대 총장의 축사와 정길화 원장의 개회사, 황인상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장의 격려사가 차례로 이어졌다.
4개국 연구자들 진단 한류 명암
1부 세션은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이 최근 발간한 총서 《아시아가 말하는 K-컬처 한류학》의 공동 저자들이 발제를 맡았다. 일본, 베트남, 몽골 등 현지 연구자들이 번역 없이 한국어로 직접 집필한 이 책의 필진들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모리 도모오미 일본 세쓰난대 교수는 한류가 일본 젊은 세대의 일상 속에 '오시(최애) 문화'로 자리잡으며 한일 관계 개선의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이 일본에서 배움과 동경의 대상이 됐다"며 양국 간 가치교환의 실질적 진전을 짚었다.
모리 도모오미 일본 세쓰난대 교수 / 사진=동국대학교 제공
베트남 국립하노이대 당 티에우 응언 교수는 현지 팬덤의 진화 양상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는 "과거 미성(微聲)에 불과했던 현지 팬들이 이제는 주권 문제나 문화적 존중 결여에 대해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 사회 행위자로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일방적 문화 유입에 대한 피로감과 거부감이 조직적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경고였다.
베 돌마 몽골 국립몽골대 교수는 한류가 몽골인들에게 미치는 심리정서적 영향력을 설명하는 한편, '한국화' 우려와 정체성·전통 논쟁 등 문화적 긴장 현상도 소개했다.
동국대 최원재 연구원은 "한류는 이제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인의 보통명사"라고 정의하며 디지털 기술로 인한 한류의 탈영토성을 분석했다.
"말 멈추고 영혼 기다리는 인디언처럼"
이날 컨퍼런스의 화두를 가장 선명하게 던진 것은 정길화 원장의 개회사였다.
정 원장은 컨퍼런스 포스터의 '성찰'과 '한류' 사이에 찍힌 쉼표(comma)의 의미를 짚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벌판을 달리다가 자신의 영혼이 못 따라올까 봐 잠시 멈추어 선다. 한류도 양적 팽창에 머물지 말고 잠시 숨을 고르며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점이다. 이것이 바로 '성찰 콤마 한류'의 본뜻이다."
동국대학교 한류융합학술원(원장 정길화)이 주관한 '한류, 확장에서 성찰로-성찰 한류의 조건과 지향' 국제 컨펴런스에서 정길화 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양희수 기자그는 또 "그동안 '착한 한류', '공감 한류' 같은 논의가 없지 않았으나 성장 서사에 밀려 치열하지 못했다."라며 "타자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한류'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윤재웅 총장도 축사에서 "한류는 이제 문화적 울림과 공감을 고민할 때"라며 "상호교류와 기술의 인문학적 융합"을 촉구했다.
"성찰부터" vs "시장 우선" 활기찬 설전
심두보 성신여대 교수가 사회를 맡은 2부 종합토론에서는 학술적·산업적 시선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중앙일보 송원섭 선임기자는 "문화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라며 한국의 일방적 문화 수출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중국 한한령 직전 현지 관계자가 던진 "한국은 문화 교류 의지 없이 일방적으로 한류를 팔려고만 한다"는 말을 복기하며, 동남아의 애정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고영경 연세대 교수도 "비뚤어진 한류의 시선이 가리키는 자리에 아세안이 있다."라며 한류 최대 기여자를 평가절하하는 한국 사회의 우월적 시선을 질타했다.
반면 조영신 미디어엔터연구소 박사는 도발적 반론을 제기했다. "지금은 굳이 '성찰 한류'를 전면에 내세워 위축될 때가 아니다. 한류는 인류학적 차원보다는 철저히 시장의 논리와 글로벌 비즈니스 경쟁력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이었다. 튀르키예 출신의 알리 잔 극동대 교수는 한류의 글로벌 확산에도 불구하고 튀르키예에서의 수용이 지속적·심층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제약 요인을 분석해 시선을 모았다.
"문화 공존 토대를 다져야 할 때"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은 이번 컨퍼런스에서 도출된 담론을 바탕으로 혐오와 갈등을 극복하고 상호 존중에 기반한 '성찰 한류(Reflective Hallyu)' 연구와 정책 제안을 심화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린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일방적인 문화 수출의 자부심을 잠시 내려놓고, 타 문화권과의 섬세하고 따뜻한 교감을 통해 진정한 문화 공존의 토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 이번 컨퍼런스가 던진 핵심 메시지였다.
사진=동국대학교 제공
트로트·엔카 유네스코 등재 연결
이번 컨퍼런스는 트롯뉴스가 꾸준히 추적해 온 의제와 깊이 연결된다.
한류의 일방적 확산이 아닌 상호 문화 교류의 틀 안에서 콘텐츠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번 논의는,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추진 중인 한국 트로트와 일본 엔카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공동 등재 프로젝트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트로트와 엔카는 같은 시대를 호흡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동아시아 대중음악의 공동 유산이다. 지금이야말로 일방적 문화 수출의 논리를 넘어, 문화 공동체 의식 위에서 양국의 음악 유산을 세계 무대에 함께 올릴 수 있는 성숙한 조건이 무르익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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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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