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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미쳐 30년 수집하다 보니 7만 여점 달해
좋은 자료 함께 나눠야겠다는 생각으로 설립
20억 짜리 스피커·1억 원대 음반 등 희귀 사료 많아
“음악을 통해 세대 간 소통하는 추억의 공간 되길”
□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유충희 관장 인터뷰
경주 보문단지. 신라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이 고도(古都)의 한 켠에 낯선 공간이 있다. 유성기 소리가 흘러나오고 낡은 음반 재킷이 빼곡히 들어찬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다.
이 공간의 주인은 전기 감리와 송전 설비 전문가 출신의 유충희 관장. 평생 전선과 씨름한 엔지니어가 어떻게 7만여 점의 대중음악 사료를 모아 사립 박물관을 세웠을까.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그 30년의 집념과 이야기를 들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경주 보문단지에 위치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 7만 여 점의 대중음악 사료로 꽉 채워진 이 공간을 설립한 주인공은 국가나 시가 아닌 전기 감리와 송전 설비 전문가 출신의 유충희 관장이다. /사진=한국대중음악박물관 제공
"그냥 음악이 좋아서였습니다"
관람객들이 유충희 관장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혹시 가수 출신이세요?”이고, 다른 하나는 “왜 박물관을 만드셨어요?”다. 전자는 금세 해소되지만, 후자에는 조금 더 생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입을 열면 답은 의외로 짧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였습니다.”
전기 감리라는 직업은 정신적 소모가 크다. 그 소모를 채워준 것이 우리 대중가요였다.
좋아하는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어서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고, 더 좋은 소리로 듣고 싶다는 욕심이 오디오 시스템으로 관심을 넓혔다. 오디오에 빠져 들자 이번엔 그 음반 속 시대가 궁금해졌다.
"이 음악이 어떤 시대에 만들어졌는지, 누가 듣고 불렀는지 까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자료 수집으로 이어졌어요."
처음엔 취미였다. 그런데 자료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오피스텔 한 채를 채우더니 두 채, 결국 일곱 채를 꽉 채우고도 넘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시점에서 유 관장의 생각이 바뀌었다.
"이 자료들이 흩어지고 사라지면 안 되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좋은 것은 혼자 쥐고 있기보다 함께 나눠야 한다는 마음이 결국 박물관 설립으로 이어졌어요. 지금도 관람객들과 음악을 듣고 그 안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통기타에서 유성기로 사료 수집
처음 그의 손이 닿은 음악은 1970~80년대 통기타 포크였다.
그런데 수집의 방향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1930~40년대 트로트와 유성기 음반으로 역주행한 것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들여다볼수록 음악이 그 역사와 정확히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변화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고비마다 음악은 빠진 적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억압 속에서도 노래를 불렀고, 노래로 위로 받으며 버텼습니다.”
그에게 음반은 그래서 단순한 플라스틱 원반이 아니다.
“음반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함께 담고 있는 기록입니다. 음악은 한 번 들으면 귀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시대를 가장 오래 기억하는 기록이에요. 그런 관점으로 보면 음반 하나, 음악 한 곡의 의미와 가치가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낙화유수’, ‘목포의 눈물’ 등 한국 트로트 태동기의 핵심 음반들이 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음반들은 오래된 노래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으로 위로 받으며 살아 갔는지를 증언하는 사료다.
신라 천년 곁에 대중음악 100년
주변에서는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수도권이나 대도시가 아닌 경주 보문단지를 입지로 택한 데는 나름의 역사관이 있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입니다. 저는 그 공간 안에서 한국 근현대 대중음악 100년의 기록도 함께 이야기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역사는 꼭 오래된 유물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시간 전체를 담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계산도 있었다. 당시 매물로 나온 예식장 건물이 카페를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구조였고, 입장료 수입만으로 사립 박물관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복합 문화시설 모델로 설계한 것도 그 냉정한 판단의 결과였다.
오타 음반과 '사의 찬미'의 비극
박물관에서 상징적인 사료 중 하나는 올해 발매 100주년을 맞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 관련 희귀 음반이다.
유 관장은 이 작품을 두고 “최초의 대중가요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아픈 역사 속에서도 삶을 살아낸 당시 대중들의 감정과 시대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라고 말한다. 박물관에서도 올해 발매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를 별도로 기획 중이다.
1926년 녹음 직후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김우진의 비극적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런데 유 관장이 소장한 것 중에는 더 드라마틱한 뒷이야기가 담긴 것이 있다. 음반이 폭발적으로 팔리자 레코드사가 증판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서 재킷에 ‘윤심덕’이 ‘이심덕’으로 잘못 인쇄된 오타 음반이 소수 유통됐다. 문제는 그 직후였다.
“조선총독부가 윤심덕의 투신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모방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음반을 불온 세력의 저작물로 지정하고 유통 금지와 파기 압박을 가했습니다. 오타 음반까지 거의 다 소멸됐어요. 지금 전 세계에 단 한 장만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게 지금 저의 집에 있습니다.”
현재 시가 1억 원을 호가하는 이 전무후무한 희귀 음반을 박물관이 아닌 자택에 직접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그 보존의 중요성 때문이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유충희 관장(사진)은 이 박물관이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곳,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한국 대중음악을 이해하는 배움터가 되고, 음악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흔적이 존중 받고 기억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사진=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제공
사립 박물관 11년 운영의 고뇌
개관 11년, 사립 박물관 운영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유 관장은 매 순간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선다고 했다.
“연구와 자료 보존은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인 반면, 당장의 운영 수익으로 바로 이어지는 분야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운영을 이어가다 보면 연구와 기록에 더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수월한 운영을 위해 관광과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확장할 것인가 사이에서 여러 번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소장품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다.
현재 박물관은 약 4년 간 국가 지원을 받아 소장품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을 진행해왔으며, 이를 통해 이뮤지엄(e-Museum) 플랫폼에서 대국민 공개를 이어가고 있다. 박물관 안에 머물러 있던 자료들이 플랫폼을 통해 미술관·아트센터·지자체·공공기관 등과 연결되며 연구와 전시, 소장품 대여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개인이나 특정 기관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중음악 자료 역시 우리 사회가 함께 보존해야 할 국가 문화자산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K-POP 해외 팬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도 그 확신을 더욱 굳히는 요인이다.
“처음에는 현재의 K-POP만 관심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지금의 K-POP이 어떤 역사와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뿌리까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K-POP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수십 년에 걸쳐 쌓인 트로트와 근현대 대중음악이라는 단단한 뿌리 위에서 가능한 결과입니다.”
"트로트 아카이브 등 구축 필요해"
유 관장은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추진하고 있는 트로트 전용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트로트는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가 아닙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정서와 생활 문화, 그리고 대중의 감정을 가장 오랜 시간 담아온 기록이에요. 그런데 아직까지 자료가 개인 소장이나 단편적인 기록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공연 자료, 악보, 사진, 구술 기록 등 다양한 형태의 자료가 함께 아카이빙이 되어야 비로소 한 시대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로가수들 구술채록 서둘러야"
트롯뉴스와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한국 트로트와 일본 엔카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공동 등재를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자, 유 관장은 오랜 아카이빙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이어졌다.
“아카이브는 많이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왜 남기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음반만 모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작 배경·시대성·공연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원로 가수들의 생생한 구술채록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현미, 송대관 선생처럼 시대를 직접 개척한 이들의 육성 기록은 어떤 문서 자료로도 대체할 수 없는 1차 사료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현미 선생님은 미8군 무대를 거치며 한국 대중음악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들의 목소리가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회복 불가능한 손실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생깁니다. 유네스코 등재 논의가 무르익기 전에 구술채록 사업을 먼저 서둘러야 합니다.”
"음악의 이해와 소통의 공간 되길"
개관 11년이 지난 지금, 앞으로 이 박물관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냐?는 마지막 질문에 유 관장의 생각은 명확했다.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곳,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국 대중음악을 이해하는 배움터가 되고, 음악인들에게는 자신들의 흔적이 존중 받고 기억되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관람객들에게는 음악을 통해 소통하며 서로 이해하는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유충희 관장이 사재를 털어서 설립한 경주의 한국대중음악박물관(사진) 이곳엔 희귀한 100여 년 된 오디오부터 음반 대중음악관련 서적 등 귀중한 사료 7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 사진=양희수 기자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트로트 전시 앞에서 보여주는 반응도 그런 바람과 맞닿아 있다. 부모 세대가 즐겨 들었던 트로트와 현재의 트로트를 비교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중장년층에게는 추억과 공감의 공간이 되고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문화 경험이 되는 순간들이 이 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를 매일 증명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유충희 관장이 가장 강조한 단어는 ‘함께’였다.
귀한 자료를 함께 나누고 싶다, 관람객과 음악을 함께 듣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사회가 함께 보존해야 할 문화 자산이다. 30년의 수집과 11년의 운영이 쌓아 올린 이 공간은, 결국 혼자가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한 집념의 산물이었다.
경주 보문단지, 신라 천년의 역사 곁에서 대중음악 100년의 서사가 오늘도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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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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