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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빈 인터뷰 ①] 렌즈 너머로 사람의 온기를 품어온 거장의 고백… “사진 찍다 죽는 것이 내 마지막 꿈”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6-15 12:33
화가의 꿈 접고 우연한 기회에 사진작가로 데뷔
“피사체의 마음이 열려야 비로소 좋은 사진 나와”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힘” 소신
AI 등 기술발전에 충격…그래도 필름카메라 고수
“피부 검다고 꿈도 검지 않아”… 아프리카 담고 싶어
□ 유네스코 지정 사진작가 지영빈 감독
'워낭소리'의 감동에서 소방관들의 일상, 그리고 사라져갈 위기에 몰린 고릴라의 눈동자까지. 그의 작품엔 언제나 사람 냄새가 가득하고, 그 온기가 오래 남는다.
올해 일흔, 35년 경력의 사진작가 지영빈 감독. 유네스코가 인정한 사진계 거장으로 그의 꿈은 "사진 찍다 죽는 것"이다. /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올해 일흔. 카메라를 든 지 35년이 넘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지정 사진작가,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그 감동적인 얼굴을 찍어낸 작가, 연예인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기록으로 기네스에 이름을 올린 사진가.
화려한 수식어가 줄을 잇지만 정작 지영빈 감독은 자신을 설명하는 데 단 한 문장이면 족하다고 했다.
“가수는 무대에서 노래하다 죽는 것이 영광이듯, 나는 사진 찍다 죽는 게 꿈이다.”
지영빈 감독은 2013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지정 사진작가로 위촉이 됐다. 좌로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민동석 사무총장(2012~2016), 지영빈 감독, 배우 신세경.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동두천 보산동, 한때 ‘영화의 거리’로 불리던 옛 미군 클럽 골목에서 그를 만났다.
밤거리의 네온 아래에서 그는 거리 구석구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숱한 영화가 이 골목에서 촬영됐고,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도 이 거리에서 자랐다.
그리고 한 소년의 인생도 이 부근에서 송두리째 방향을 틀었다.
의정부로 쫓기듯 떠난 유년 시절
지영빈은 서울 태생이다. 운수업을 크게 하던 아버지가 연대보증으로 사업이 무너지면서, 여섯 살 무렵 가족은 쫓기듯 의정부로 이사했다. 유복했던 유년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가난도 꺾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림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독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팍팍한 살림과 부모의 반대 앞에서 붓을 내려놓아야 했다.
하지만 미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군 제대 후 그는 혼자 작은 개인 화실을 차려 그림 작업을 이어갔다. 생계와 예술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을 타던 청년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뜻밖의 곳에서 찾아왔다.
우연한 기회에 미군 부대에 사진기자로 취직하게 된 것이다.
그림 붓 대신 카메라가 그의 손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암실에 미쳐 살던 미8군 시절
미제2사단(캠프호비) 사진기자로 근무하던 시절을 회고할 때 그의 목소리에는 지금도 생기가 돈다. 부대 안은 예술에 목마른 꿈 많은 청년에게 거대한 보물창고였다.
미국에서 바로바로 공수되는 풍부한 필름과 인화지, 부대에 넘쳐나던 미국의 잡지와 매거진. 그는 그 속에서 미국의 감성과 예술 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암실 작업에 미쳐서 살았다. 남보다 암실에 대한 열정 하나는 대단했다고 자부한다.”
밤낮없이 암실에 틀어박혀 현상과 인화를 거듭하던 그 시간이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진 거장의 기초 체력이 됐다.
사진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부대 안에서 한국의 유명 가수들과 작품 촬영을 하는 기회도 잇따랐다. 후에 톱스타들의 앨범 재킷을 도맡게 되는 긴 인연의 출발점이었다.
지영빈 감독에게 가수 설운도(사진 좌)는 가장 절친하고 존경하는 사이다. 지 감독은 유네스코 등재용 트로트 가수 아카이브 앨범을 만든다면 가장 먼저 설운도 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동두천 보산동 일대에서의 7년.
그는 이 거리에서 미군 문화의 화려함과 그늘을 동시에 지켜봤다. 그 기억은 평생의 숙제 하나를 남겼다. 보산동을 배경으로 한 실화 바탕의 영화 ‘양색시(가제)’다.
“제목도 내가 만들었다. 이 거리 출신으로 대스타가 된 실존 인물이 있다. 그걸 팩트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라고 하지만 그에게, 시장도 시의원들도 친구들까지 한목소리로 만류했다고 한다. 제목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보산동 블루스’로 바꾸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목을 바꿀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일단 보류하고 있죠.”
투자 의사를 밝힌 지인들이 있었음에도 작품을 묻어둔 채, 그는 시대의 아픔을 정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짙은 삶의 애환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작가적 본능이 읽히는 대목이다.
디지털 습격, 카메라 놓고 싶었다
평생 렌즈와 함께해 온 그에게도 사진을 그만두고 싶었던 절망의 시기가 있었다.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이 밀려들던 때였다. 기계와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 결과물을 마음대로 바꾸는 현실은 현장주의자인 그에게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게 예술인가, 아닌가?” 그 중간에서 혼돈이 와서 술로 산 세월이 길었다.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사랑하는 딸이 “아빠, 이건 시대의 흐름이니까 아빠도 이제 포토샵도 좀 배워야 한다.”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 아니다.” 혼자 괴로워하던 그 시절, 그는 처음으로 사진작가를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평생 카메라와 함께해온 베테랑 지영빈 감독에게도 필름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이 밀려들던 때 문화적 충격에 한때 사진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그 혼돈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카메라조차 없이 명령어 몇 줄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AI의 시대가 눈앞에 온 것이다.
그는 최근의 한 일화를 들려줬다.
후배가 어느 사진 그룹전을 다녀와서 화를 내며 전화를 걸어왔다. 전시작이 너무 좋아 “참 잘 찍었다.” 했더니, 작가의 답이 “카메라 없이 말로 다 해서 만든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형님, 이게 사진입니까?” 후배의 그 한마디에 그는 또 한 번 문화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걸까? 사진작가들이 남아날 수는 있을까? 아날로그 사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수없이 스스로 물었다.
“권투 경기에 AI 내 보낼 수 있나?”
그러나 그의 결론은 단호하다.
아날로그는 살아남는다. 변화가 거셀수록 인문학적 가치는 오히려 빛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AI가 발전할수록 나라도 필름 카메라를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 나보다 역량이 뛰어난 숱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이 길을 고집하고 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파퀴아오(사진우측)는 지영빈 감독의 오랜 지인이다. 한국의 유명 복싱선수였던 장정구의 화보 제작에 동참의사를 보내오는등 적극적인 도움을 줬다. /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최근 펴낸 두 번째 사진집의 제목이 '필름이 녹는다 내 가슴에'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추천사를 쓴 서양화가 정정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예술총감독은 "예술은 명령에 따라 기술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결을 남기는 행위"라며 "지 감독의 사진은 아날로그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하는 휴머니즘"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가 그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주었다.
"권투 시합에 파키아오 대신 AI를 출전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
링 위에 선수가 직접 올라야 하듯, 사진도 작가가 현장에서 피사체와 부딪쳐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열려야 셔터를 누른다
지영빈의 작업에는 수십 년째 깨지지 않는 철칙이 하나 있다.
피사체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카메라를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 가수든 배우든 셀럽이든, 만나서 내 마음이 동요되지 않으면 촬영을 안 한다.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 내가 아무리 잘 찍는 척해도 사진은 안 나오게 돼 있다.”
상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었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그는 카메라를 든다.
그가 가슴에 품고 사는 문장도 같은 곳을 가리킨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것이 사진의 힘이다. 사진 한 장으로 완벽하게 감성을 표현하려면 결국, 진정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완벽하게 연출 된 가짜 감성보다 피사체의 진심 한 조각이 더 낫다는 35년 경험의 결론이다.
쿠바 촬영, 품어온 로망의 땅
사진작가로서 최종 목적지를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사진작가에게 최종 목적지는 없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오래 품어온 로망의 땅이 하나 있다. 쿠바다. 고릴라 촬영을 떠나기 전, 재작년에 이미 쿠바행을 모두 준비했다가 일정이 바뀌어 미뤄둔 꿈이다.
지금 쿠바는 국제 정세의 여파로 기름도 전기도 부족한 위기의 나라다. 주위에서는 한사코 쿠바행 계획을 포기하라고 만류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래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노 리스크, 노 스토리. 평범한 곳에서는 작품이 안 나온다. 나는 쿠바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쿠바 시민들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석유도 전기도 없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더더욱 그들의 삶을 담고 싶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사진은 더 진정성이 나온다.”
젊은 시절 그의 꿈이 종군기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고집이 비로소 이해된다.
“설마 죽기야 하겠나.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다 죽듯이, 나는 사진 찍다 죽는 게 꿈이다.”
덤덤하게 말하는 일흔 노장의 눈빛에는 형형한 집념이 서려 있다.
아프리카 마지막 가족사진 약속
마지막으로 꼭 찍고 싶은 피사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프리카를 꼽았다.
벌써 세 번을 다녀온 땅이다. 그에게는 잊지 못할 약속이 하나 있다. 오래전 한 지인 여성이 그에게 말했다.
“감독님과 꼭 해보고 싶은 사진 작업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가족사진입니다.” 그 말을 남긴 이는 이제 고인이 됐지만, 약속은 그의 가슴에 여전히 숙제로 맴돌고 있다.
지영빈 감독은 아프리카 밀림이든 처참한 환경의 오지든 피사체가 있는 곳이면 위험을 마다 않고 달려간다. 사진은 고릴라 촬영을 위해 달려간 우간다의 밀림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 사진= 지영빈 감독 제공
아프리카의 빈민촌에서 만난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문장이 있다.
“피부가 검다고 꿈까지 검지는 않다.”
너무나 맑은 눈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들, 그 슬픈 눈동자를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작업을 핑계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매번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나이는 먹었지만 꿈에서도 항상 아프리카를 동경한다. 기회만 된다면 아프리카에서 계속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 그것이 지금도 나의 작은 바람이다.” (2부에서 계속)
⇒ 렌즈 너머로 세상을 본 시간보다 피사체와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눈 시간이 더 길었던 사진가. 1부가 ‘인간 지영빈’ 개인의 이야기였다면, 2부에서는 ‘워낭소리’의 기적 같은 한 컷과 뉴욕 타임스퀘어를 울린 고릴라의 눈동자, 그리고 이선희와 조용필, 트로트 레전드들과 얽힌 드라마 같은 렌즈 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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