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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빈 인터뷰 ②] “세상 울린 ‘워낭소리’도 타임스퀘어 고릴라도… 내 렌즈 앞에선 찬란한 피사체였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6-22 09:52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렌즈로 보면 모두가 ‘보석’

워낭소리 할아버지와 소 우정 담아 전 국민을 감동

목숨 걸고 촬영 ‘고릴라’ 뉴욕 타임스퀘어에 전시

이선희 1집, 조용필 15집 재킷 사진 최고의 역작

한 장의 사진이 영화의 운명을 바꾸고, 한 장의 사진이 뉴욕 한복판에서 전 세계를 향해 경종을 울린다. 

지영빈 감독의 35년 사진 인생에서 길어 올린 에피소드들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다.

2부에서는 대한민국을 울린 ‘워낭소리’의 탄생 비화부터 목숨을 걸고 담아낸 우간다 고릴라의 눈동자, 이선희와 조용필의 앨범 재킷, 그리고 트로트와 맺은 새로운 인연까지, 거장의 뷰파인더에 담긴 결정적 순간들을 따라간다.

 

지영빈감독이 아프리카의 우간다까지 날아가 목숨을 걸고 촬영한 고릴라 사진은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 걸리면서 전세계 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1년여 봉화 드나들며 ‘순간포착’

 

지영빈의 역작 ‘워낭소리’ 포스터의 탄생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이 되었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와 ‘못 찾겠다 꾀꼬리’, 장윤정의 ‘초혼’,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 나미의 ‘인디안 인형처럼’까지 장르를 넘나든 명곡제조기라 불리는 작사가 김순곤이었다. 

“형, 신인가수 하나 보낼 테니까 앨범 재킷 사진 좀 찍어줘.”

당시 강남 사무실로 찾아온 청년은 촌스러운 배꼽 바지 차림이었다. ‘이 사람을 찍어서 그림이 나올까?’ 고민하며 카메라를 준비하던 그에게 청년은 뜻밖의 말을 던졌다. 

“감독님, 저는 재킷에 아버지를 찍으면 되겠습니다.” 자기보다 아버지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가 바로 경북 봉화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창 촬영 중이던 최원균 할아버지, 늙은 소 ‘누렁이’와 함께 ‘워낭소리’의 주인공이 될 인물이었다.


지영빈감독은  서울에서 봉화까지 1년여간을 드나들며  온국민을 눈물짓게한 다큐영화 '워낭소리'의  상징적 장면을 포착해 냈다./ 사진= 지영빈감독 제공

반신반의하며 내려간 봉화의 시골 마을. 

그러나 촬영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글을 배우지 못해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카메라라는 물건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밭일로 고단한 몸을 쉬어야 할 시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방인이 고울 리 없었다. “지팡이로 맞을 뻔한 적도 있다.”라고 그는 웃으며 회고했다.

 

지영빈의 선택은 카메라를 내려놓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고 할아버지 곁에서 밭일만 도왔다. 서울과 경북 봉화를 1년여간 오가며 친아버지 이상으로 모셨다.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자 할아버지는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고, 서울로 올라가려는 그를 붙잡고“밥 먹고 가라”라며 손을 끌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그의 머리에 번개처럼 전율이 일었다. 

“첫눈에 딱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렌즈를 갈아 끼우고 셔터를 눌렀는데, 하나 걸렸다.” 그 기적 같은 한 컷이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워낭소리’의 결정적 얼굴이 됐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고 그는 말했다.


지영빈 감독은  봉화의 시골 마을을 드나들며 '워낭소리' 주인공인  최원균  할아버지와 함께 밭일 등을 함께 하면서 가족처럼 지내기도 했다.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워낭소리’ 제작 비하인드 밝히다

 

현장에서 그가 지켜본 ‘워낭소리’의 제작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이충열 감독은 소와 인간의 교감을 담을 영화를 구상하며 전국을 돌다 봉화에서 문제의 누렁이를 발견했다. 독립 다큐멘터리의 빠듯한 제작비 사정상 촬영 기간이 길어지면 안 됐고, 수의사까지 데려와 진단한 결과 ‘1년 안에 수명을 다한다.’라는 판단이 나오자 제작이 시작됐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할아버지가 누렁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바람에 소가 2년 반을 더 산 것이다. 

촬영은 하염없이 길어졌고 제작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후배에게 돈을 빌려 가며 완성한 영화의 최종 제작비가 2억 원을 넘었던 것으로 안다고 그는 전했다. 

상업영화 기준으로는 적은 돈이지만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 영화는 영상미보다 할아버지와 소의 케미, 그 스토리가 좋았다. 워낭소리 하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 않나.” 글 모르는 노부와 늙은 소의 교감은 그렇게 한국 독립영화사의 기적이 됐고, 그의 사진은 그 기적의 얼굴로 남았다.

 

 

“아프리카서 고릴라 사진 좀” 제안

 

2025년 9월 1일,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한 장의 사진이 걸렸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고릴라의 눈동자. 

지영빈 감독이 목숨을 걸고 담아낸 그 사진이었다.

역시 시작은 미국 기획팀의 전화 한 통이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가서 고릴라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느냐?” 사연을 들어보니 가볍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핵심 소재인 광물 ‘콜탄’의 매장지가 하필 우간다와 콩고의 고릴라 서식지와 겹친다는 것이었다. 

콜탄을 캐는 만큼 고릴라의 터전은 사라진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본 기억이 스쳤고, 제안을 듣는 순간 직감이 왔다. “올해 내 나이가 일흔이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다.”

동두천 두드림뮤직센터장을 맡고 있던 그는 망설임 없이 시에 사표를 냈다. 

최소 두 달이 걸리는 촬영이 센터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사표를 받아 든 동두천 시장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두 달 휴가 내고 다녀오세요.” 만류가 아니라 응원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스태프를 꾸려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릴라 사진을 찍으러 우간다 밀림에  찾아간 지영빈감독은  "고릴라와 7m 이내로 접근하지 말 것" 이라는 현지의 안전수칙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5m까지 접근해서 역사적인 장면을 포착해 냈다/ 사진= 지영빈감독 제공

고릴라 슬픈 눈동자를 포착하라

 

미국 기획팀이 처음 요구한 그림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고릴라’였다. 그는 ‘모토로라’ 핸드폰까지 구해서 현지로 갔다. 

그러나 촬영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핸드폰에 묻은 세균이 고릴라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고, 과거 위안부 사진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기억도 떠올랐다. 

연출된 한 장을 위해 피사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이건 아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스태프들에게 새로운 미션을 선언했다. 

“고릴라의 눈동자를 포착하라!.”

현지의 안전수칙은 고릴라와 7m 이내로 접근하지 말 것. 그러나 실감 나는 사진을 위해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5m 안까지 다가갔다. 



그렇게 포착한 고릴라의 맑고 슬픈 눈동자가 타임스퀘어에 걸려 전 세계인의 시선을 붙잡았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정이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 고릴라는 나에게 최고의 피사체였다. 고릴라가 쳐다볼 때 피곤함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다 찍고 호텔에 와서는 뻗었지만.”

그는 지금도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다시 우간다로 가서 더 디테일하게 고릴라를 담고 싶은 꿈을 꾼다고 했다.



영광 뒤에는 상처도 있었다. 

미국 모든 방송사가 대대적으로 동시 보도하기로 한 대형 프로젝트였는데, 한국의 후배 기자가 엠바고(Embargo, 일정 기간 보도유예)를 어기고 먼저 기사를 쓰는 바람에 미국 측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모든 기획을 망쳤다는 항의가 심해서 마음의 상처가 컸다.”

일생일대의 영광과 뼈아픈 아쉬움이 한 장의 사진에 함께 새겨진 셈이다.

 

 

이선희, 조용필, 그리고 기네스 기록

 

연예인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작가. 기네스에 오른 이 기록이 말해주듯 그의 렌즈 앞을 거쳐 간 스타는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찍었던 가수가 제일 많다고 해서 기네스 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돈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특유의 너스레 뒤로 굵직한 작업이 줄을 잇는다.

 

미2사단 사진기자로 근무하던 시절, 이선희의 곡을 다수 만들었던 후배인 작곡가 송시헌의 의뢰로 성사된 이선희 1집 재킷 촬영이 대표적이다. 

촬영 날 양평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당대 톱스타였던 이선희는 그에게 짧고 분명한 주문을 던졌다. “좀 새로운 스타일의 사진을 원합니다.” 

그림을 하던 이선희의 동생이 원했던 것은 수채화 같은 기법의 사진. 디지털 보정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필름 시대였다. 

그는 암실에서 며칠 밤을 새워 테스트를 거듭한 끝에 수채화처럼 번지는 몽환적인 컷을 만들어냈고, 이선희는 그 결과물에 상당히 흡족해했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지영빈 감독은 미2사단 사진기자로 근무하던 시절,  이선희 1집 재킷 촬영의뢰를 받고 암실에서 며칠 밤을 새워 테스트를 거듭한 끝에 수채화처럼 번지는 몽환적인 컷을 만들어냈다/ 사진= 지영빈감독 제공

수많은 앨범 작업 중 최고로 꼽는 한 장은 따로 있다. 

그가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조용필의 15집 앨범 재킷이다. 

“작업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긴장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용필이 형님에게 충고 아닌 조언을 들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앨범 덕분에 초심을 다시 잡았다. 거만하지 않고 자만하지 않게 된 계기였다.”


지영빈 감독은 수많은 앨범 작업 중 최고로 꼽는 한 장은 따로 있다. 그가 지금도 존경해 마지않는 조용필의 15집 앨범 재킷이다. / 사진= 지영빈 감독 제공

톱스타들의 아우라를 묻는 말에는 끝내 우열을 가리지 않았다.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한 아우라로 기억된다.” 렌즈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그 다운 답이었다. 우문이었다.

 

 

“트로트 유네스코등재 가치 있어”

 

평생 사람의 희로애락을 찍어온 그는 최근 대한민국을 휩쓰는 트로트 열풍의 본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삶을 노래로 표현하는 감성이다. 내면의 슬픔과 기쁨, 희로애락을 다 표현해내는 장르로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가사 구절구절이 심금을 울리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그 음악을 들으면 삶을 영위해가는 데 상당한 힘이 된다. 그것이 트로트의 힘이다.”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하려는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그는 분명한 지지를 보냈다.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지금 K-POP이 대세지만, 트로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르도 K-POP 못지않다. 제2의 K-POP이 트로트가 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유네스코 등재도 머지않아 이뤄질 수 있다고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나 역시 미력이나마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싶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지정 사진작가의 입에서 나온 지지 선언이기에 무게가 다르다.

 

기부와 봉사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트로트 팬덤 문화에 대해서도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가수를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문화는 너무 좋다. 최근 트로트 팬덤은 젊은 아이돌 팬덤 문화와 중장년층의 정서가 결합해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다. 이 문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무명가수들에 재능기부 하겠다

 

트로트 레전드들의 아카이브 프로젝트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빛났다. 

기회가 된다면 가장 먼저 렌즈에 담고 싶은 가수를 묻는 질문에 그는 먼저 아쉬움부터 꺼냈다. 

“촬영하지 못했던 대선배 이미자 선배님,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선배님들이 마음에 걸린다. 담을 수 없게 된 분들을 지금 논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활동하고 계신 남진 선배님이나 최진희 씨 같은 분들을 다 담고 싶다.”

 

그래도 꼭 한 명을 꼽는다면, 그의 답은 레전드 가수 설운도였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고 식구 같은 분이다. 작업할 때 나를 정말 편하게 해 주셨다. 가장 마음 편히 찍을 수 있는 분이다.”

임영웅, 영탁, 박지현 등 오디션 출신 신세대 스타들에 대해서는 거장다운 신중함을 보였다.

“송가인 씨는 한번 촬영한 적이 있지만, 그 외에는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아 사진가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것은 건방진 얘기다. 다만 기본적으로 노래를 너무 잘하시는 대 스타들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직접 렌즈를 맞대보지 않은 피사체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그의 철칙이었다.

 

그의 시선은 오히려 빛을 보지 못한 이들을 향했다. 

소방관과 여경 등 사회의 숨은 영웅들을 위한 무료 화보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온 그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을 위한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지영빈 감독은 소방관과 여경 등 사회의 숨은 영웅들을 위한 무료 화보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왔다. 사진은 지영빈감독이  제작한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소방관이다' 앨범의 한장면/ 사진=지영빈 감독 제공

 

“유명이든 무명이든, 자금 문제 등으로 촬영을 못 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가 있다면 재능기부로 찍겠다. 그들의 숨어 있는 감성과 끼, 모든 것을 사진 한 장에 꼭 담고 싶다. 소외된 음악인을 위한 재능기부는 계속 해왔던 일이고, 앞으로도 해 갈 것이다.”

 

동두천 다문화 가정의 숨은 보석들을 발굴하는 스트릿 캐스팅도 그의 오랜 꿈이다. 

“숨어 있는 끼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사진으로 발굴해 그들의 역량을 표출하도록 돕고 싶다. 진정성 있는 스타들을 하나하나 캐스팅해 발굴해 나갈 생각이다.”

 

 

동두천서 감성 콘서트 꿈꾸다

 

미8군 시절부터 동두천은 한국 록의 본고장이자 숱한 음악인이 거쳐 간 음악의 메카였다. 

그 거리에서 두드림뮤직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특별한 무대를 구상 중이다. 

“트로트 가수들과 함께하는 버스킹이나 특별한 감성 콘서트는 꼭 해보고 싶었고 지금도 기획하고 있다. 마침 조만간 트로트 유명 가수들의 촬영을 하게 될 것 같다. 촬영한 뒤 그들과 함께 콘서트 등 여러 기획을 진행해볼 생각이다.”

 

록이 흐르던 보산동 거리에 트로트의 구성진 가락이 울려 퍼지는 날, 그의 카메라는 또 한 번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골 노부의 담배 무는 찰나에서, 밀림 속 고릴라의 눈동자에서, 폭우 속 톱스타의 얼굴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명한 스타든 시골의 촌부든 아프리카의 아이들이든, 그의 렌즈 앞에서는 모두가 귀하고 찬란한 피사체다. 

찰나를 영원으로 빚어내는 지영빈의 따뜻한 작업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뜨겁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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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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