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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한용운, 방정환, 이중섭 등 위인들이 잠든 곳
역사도 배우고 산책도 즐기려는 시민들의 휴식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곳
망우산에서 용마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망우공간' 내에 조성된 수(水) 공간 / 사진=배성식 제공
망우산에서 용마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서울 동북부를 대표하는 산행 코스로, 완만한 숲길과 탁 트인 능선이 번갈아 이어지며 도심과 자연이 교차하는 풍경을 보여준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출발해 역사와 기억의 공간을 지나 능선에 오르면, 숲의 고요함 속에서 서울이 점차 시야에 들어온다. 용마산과 아차산 정상에 이르면 서울 도심과 한강, 맑은 날에는 북한산까지 한눈에 펼쳐지며,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를 잇는 이 여정은 ‘서울을 걷는 길’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을 완성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유관순 열사,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독립운동가 오세창 등 근현대사를 이끈 인물 80여 명을 비롯해 약 7,000명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보고로, 숲 길을 따라 이어지는 묘역과 시비, 그리고 곳곳에 피어난 무궁화가 어우러져 역사와 자연을 함께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만해 한용운, 유관순 열사,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순) / 사진=망우역사공원
한때 조상의 묘를 찾는 공동묘지였던 이곳은 이제 시민들이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도심 속 힐링 공간으로 변모했다. 서울시 미래유산 선정, ‘사색의 길’과 ‘사잇길’ 등 인문학길 조성에 이어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들어서며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추모의 공간을 넘어 역사와 예술, 자연이 어우러진 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공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미래 세대와 함께하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 천도 후 고려 왕릉이 개성에 있어 참배와 관리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직접 현재의 건원릉 터를 답사하고 자신의 묘로 정했다. 답사를 마치고 환궁하던 길에 지금의 망우리 고개에 올라 “이제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망우리(忘憂里)’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이후 망우리는 왕들이 동구릉의 선왕의 능을 찾던 ‘효의 길’로 자리 잡았다.
망우리에 공동묘지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이 정한 공동묘지 외에는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 이에 경성부는 1920년대 전후로 서울의 동서남북(신당리, 아현리, 이태원, 수철리)으로 공동묘지를 조성했고, 이후 묘지가 부족해지자 1933년 망우리 일대를 묘역으로 조성했다.
왕릉으로 향하던 성스러운 땅은 어느새 ‘망자의 공간’이 됐다. 서울 곳곳에서 옮겨온 무덤과 6·25전쟁 당시 임시매장된 무연고 시신까지 모이며 망우리는 거대한 공동묘지가 됐다. 1973년 분묘 47,700여 기가 들어서며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이후 이장이 이어져 현재는 6,209기만 남았다. 1990년대부터 독립운동가와 문학인 등을 기리는 사업이 시작됐고, 1998년 망우리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공동묘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망우리공동묘지'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시작점은 2022년에 개관한 ‘중랑망우공간’이다.
미디어홀, 전시실, 카페 등을 갖춘 이곳은 일반적인 건축물과 달리 사방이 탁 트인 개방형 구조로 설계돼 있으며, 삶과 죽음, 산 자와 잠든 이들이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방이 탁 트린 개방형 구조의 '중랑망우공간'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 / 사진=배성식 제공
1층 미디어 홀에서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역사와 주요 인물을 소개하는 영상, 묘역 안내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다. 2층 교육전시관에서는 이곳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업적을 다양한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특히 테라스를 겸한 사색 공간인 하늘다리에 오르면 광복절을 기념해 걸린 태극기들이 시원한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망우산의 푸른 숲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잠시 걸음을 멈추기 좋은 공간이다.
건물 입구에 자리한 안중근 의사 흉상은 원래 신내동 성당에 세워졌던 것으로, 천주교 신자였던 안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작됐다. 이후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이곳에 잠든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함께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2023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중랑망우공간 1층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흉상 / 사진=배성식 제공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묘소 참배는 중요한 여정으로, 묘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곳에 잠든 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의 얼굴과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 ‘인물가벽’이 조성돼 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공원은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무더운 여름에도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으며, 언덕에 오르면 서울 도심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산책로 왼편을 따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 유관순 열사 추모 공간이다. 이곳에는 ‘이태원묘지 무연분묘합장비’가 세워져 있어 열사의 마지막 흔적을 기리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1919년 아우내 장터(천안) 만세 운동을 이끌다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순국했다. 이후 이태원 공동묘지의 무연고 묘역에 안장됐으며, 1936년 공동묘지가 망우리로 이전되면서 다른 무연고 묘들과 함께 합동 묘에 모셔졌다.
유관순 열사 이태원묘지무연분합장비 / 사진=배성식 제공
순국 100주기인 2020년에는 참배 공간과 진입로가 새롭게 정비됐다. 목재 무장애 보행로를 따라 어린이들이 열사에게 전하는 편지와 그림이 전시돼 있어 누구나 편안하게 걸으며 그의 숭고한 뜻을 되새길 수 있다.
특히 유관순 열사는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인물로,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든 인물 중에는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단 두 명 뿐이다.
“제자 곁에 묻어달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언에 따라 망우리에 제자 유상규 옆에 묻혔다가 1973년 강남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다. 도산기념관에 사용되지 않고 보관되어 있던 구비석은 2016년 이 자리로 돌아왔고 2022년에 가묘가 새로 만들어졌다.
도산 안창호(좌) 선생과 제자이자 비서였던 유상규(우) / 사진=배성식 제공, 인물 사진 망우역사공원
만해 한용운의 묘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다.
1979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딸 한영숙의 뜻에 따라 망우리에 남게 됐다. 이후 1980년 3·1절, 비석이 세워지며 만해의 묘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오늘날 방문객들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승려였던 만해의 삶을 그가 잠든 자리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의 비석과 묘 / 사진=배성식 제공
소파 방정환의 돌무덤은 동지였던 최신복이 뜻을 모아 조성한 것이다.
비문에 새겨진 “동심여선(童心如仙), 어린이의 동무”라는 글귀는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바라보며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을 상징한다. 한국 어린이날을 만든 주역이자 아동문학의 선구자였던 방정환의 정신은, 소박한 돌무덤과 짧은 문장 속에 오히려 더 깊게 남아 있다.
지석영의 묘는 한국 근대 의학의 출발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천연두가 창궐하던 시절 일본에서 배운 우두법을 들여와 보급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짐승의 기운을 몸에 넣는다.’라는 반대가 거셌지만, 어린 처남에게 먼저 접종하며 불신을 넘어섰다. 이후 대한의학교를 이끌며 근대 의학교육의 기틀을 세웠고, 오늘날 서울대학교병원의 뿌리를 닦았다.
묘역의 비문은 ‘송촌 거사(松村居士)’라는 글귀로 시작한다. 나라를 위해 큰 업적을 남겼지만 스스로를 낮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표현이다. 묘 앞에 서면 의사이자 교육자, 그리고 겸손한 실천가였던 지석영의 발자취를 되새기게 된다.
우두법으로 천연두를 극복한 지석영 선생의 묘 / 사진=배성식 제공, 인물 사진 망우역사공원
서정시의 거장 김영랑은 전쟁과 이장을 거듭한 끝에 2024년, 34년 만에 다시 망우리로 돌아왔다. 묘역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대표작의 구절이 새겨져 있어 시인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로 익숙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인 김상용은 전쟁 중 세상을 떠났지만, 1년 뒤 망우리에 안장돼 고향을 그리던 시심을 전하고 있다.
「목마와 숙녀」로 전후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한 박인환 역시 이곳에 잠들어 있다.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함께 묻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그의 낭만적 이미지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시 세계를 펼친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의 격동 속에서 상실과 저항, 희망을 노래했으며, 망우역사문화공원은 그들의 삶과 작품이 함께 모인 살아 있는 한국 현대문학의 보고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인성과 이중섭, 조각가 권진규가 잠들어 있다.
이인성이 밝고 투명한 색채로 향토의 정서를 담아냈다면, 이중섭은 거친 선과 강렬한 표현으로 시대의 아픔을, 권진규는 테라코타와 건칠 기법으로 인간의 얼굴과 내면을 빚어냈다. 각기 다른 작품 세계를 남겼지만, 모두 짧고 고단한 삶 끝에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시인 김영랑(좌), 시인 박인환(우측 상), 조각가 권진규(우측 하) / 사진=망우역사공원
‘한국의 엘비스’로 불렸던 가수 차중락의 묘도 있다. 1966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한 솔로 데뷔곡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동갑내기 배호와 함께 가요계를 양분하였고,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TBC 신인가수상을 수상하였다.
1963년 보컬 그룹 〈키보이스〉에 합류하여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였고, 1967년 ‘사랑의 종말’이 대히트하며 잘생긴 외모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바이브레이션 창법으로 ‘오빠부대’의 원조로 불렸다.
하지만, 1968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묘역에는 시인 조병화의 시 「낙엽의 뜻」이 새겨진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삶과 음악을 기억하게 한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독립운동가와 문화예술인뿐 아니라 한국을 사랑했던 일본인들의 묘도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사카와 타쿠미’다.
조선총독부 산림과에서 근무했던 그는 전국을 다니며 사라져가는 공예품과 민예품을 수집했고, 자신의 월급 대부분을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쏟아부었다. 특히 귀국할 때도 수집품을 일본으로 가져가지 않고 한국에 남겨두어,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이 단순한 묘역을 넘어 화해와 공존, 기억의 공간으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차중락(좌), 일본인 '아사카와 타쿠미'(우) / 사진=망우역사공원
1907년 정미7조약 체결과 군대 강제 해산에 맞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이인영과 허위는 해산 군인과 전국 13도 의병이 함께 일으킨 연합 의병부대인 ‘13도창의군’을 조직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추진했다.
비록 일본군의 저지와 신식 무기에 막혀 작전은 실패했지만, 이는 항일투쟁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된 서울 직접 공격이었다.
이후 의병들은 만주와 해외로 흩어져 독립운동의 불씨를 이어갔으며, 망우역사문화공원 언덕 아래에는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13도창의군탑’이 서 있다.
13도창의군탑 / 사진=배성식 제공
♠망우역사문화공원
주소 서울시 중랑구 망우로91길 2
교통 지하철 상봉역 5번 출구, 망우역 1번 출구에서 시내버스 탑승 후 망우리역사문화공원 정류장 하차
중랑망우공간 운영시간 09:00~18:00
무료 셔틀버스 09:00~17:40 / 일 19회 / 배차 20~30분 / 휴무 없음 / 상봉역, 양원역 탑승
다음호에서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지나 용마산과 아차산 정상에 올라 서울 도심과 한강, 그리고 북한산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풍경 속에서, ‘서울을 걷는 길’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면을 완성한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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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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