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꺾어 불러야 트로트라고? 누가 그래?... ‘오동잎’으로 쉽고 신나는 트로트 시대를 열다!

박강민 기자

등록 2025-09-29 14:02

최헌, 조용필, 윤수일… 무명 신인 발탁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히트곡 제조기’

”요즘 트로트 가수들 남의 노래만 불러…. 롱런하려면 개성 담은 자신만의 신곡 필수“

[레전드 인터뷰] 가요계의 미다스 손, 작곡가 안치행

 작곡가 안치행(사진:트롯뉴스)

‘오동잎’, ‘돌아와요 부산항에’, ‘사랑만은 않겠어요’. 시대를 풍미했던 이 명곡들의 뒤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밴드 기타리스트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가요계의 판도를 바꾼 작곡가이자 뛰어난 선구안으로 잠재력 있는 무명의 신인을 발탁,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낸 제작자 ‘히트곡 제조기’ 안치행의 음악 인생 60년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헌과의 만남, 그리고 운명과도 같은 작곡가 데뷔


그룹사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던 안치행이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모든 것은 고인이 된 가수 최헌과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내가 신설동에 있는 음악학원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고등학생이던 최헌이 노래를 배우러 와서 처음 만났어요”. 안치행은 최헌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나중에 보니 학원에서 눈여겨보았던 최헌이 ‘히식스’, ‘검은나비’로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공교롭게도 내 친구 이태현이 그들의 매니저를 하고 있었는데 내게 이들이 연주할 일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왔어요”. 부탁을 받은 안치행은 ‘무겐’이라는 디스코 클럽을 소개해 주었고 최헌은 이곳에서 ‘최헌과 호랑나비’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때 최헌의 가능성을 보고 직접 음반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다.

 

 

안치행을 최고 작곡가이자 제작자로 만든 ‘오동잎’



최헌 음반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안치행은 하루라도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졌다. 우선 최헌에게 줄 노래가 필요했다. 기왕이면 최고의 작곡가를 섭외하기로 하고 당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작곡가 정풍송(조용필 ‘허공’, 조영남의 ‘옛 생각’ 등 작곡), 안길웅(김추자 ‘빗속을 거닐며’, ‘첫사랑 눈물’ 등 작곡)에게 곡을 부탁했다.

 

하지만 워낙 인기 있던 작곡가라서 짬이 안 났는지, 관심이 없었는지 생각처럼 곡이 빨리 나오지 않았다. 

“하루가 급한데 계속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까짓거 내가 만들어보자’ 마음먹고 작곡을 시작했죠. 그때 탄생한 곡이 그 유명한 ‘오동잎’, ‘세월’ 등 이었어요”. 작곡가 안치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후에 김기표가 편곡을 거친 이 곡들은 큰 히트를 하면서 작곡가 안치행의 시대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영화 '밀수' 포스터

 

이후 안치행은 ‘구름 나그네’, ‘앵두’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최헌을 당대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안치행의 곡은 2023년에 개봉돼 500만 관객을 동원한 유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 OST에도 그가 작곡한 ‘앵두’, ‘연안부두’ 등이 소환되면서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왕’ 조용필을 만든 ‘돌아와요 부산항에’

 


첫 작품 ‘오동잎’ 등이 대박이 나면서 안치행의 작곡 실력이 일취월장 한 건가? 가요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와의 인연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탄생 비화는 극적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황선우가 만든 곡으로 처음엔 ‘돌아와요 충무항에(1970)’ → ’돌아와요 해운대에’ 등 개작을 거쳐 밤무대(고고클럽) 등에서 불리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밴드 ‘조갑출과 25시’에서 보컬로 활동하던 조용필도 가끔 부르던 곡이었다. 

“어느 날 친구 조갑출은 조용필이 앨범을 내려고 한다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편곡을 부탁했어요…. 부탁을 받자마자 바로 퍼시픽호텔 커피숍에 앉아서 단숨에 편곡하게 되었죠”. 

편곡을 끝내고 보니 앨범에 채울 신곡이 부족했다. 안치행은 당시 자신이 기획해서 ‘등불’ 등의 노래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던 그룹 ‘영사운드’의 다른 곡들을 뒷면에 채우는 진통 끝에 앨범까지 직접 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렵게 탄생한 음반이 이후 한국가요사를 바꿀 만큼의 사건(?)이 될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엔 큰 기대를 안 했어요. 신곡도 부족해서 옴니버스식으로 취입한 데다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녹음을 했거든요…. 더구나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어차피 기대도 안 했었으니까”.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앨범은 초대박이 났다. “마침 재일교포들의 고국 방문이 허용되던 시기였어요. 가사도 ‘그리운 내님아’를 ‘그리운 내 형제여’로 바꾸어 교포들의 향수를 자극했죠. 

홍보도 제대로 못 했는데,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습니다…. 판매할 음반이 부족해서 재킷 없이 레코드판만 내놓을 정도였어요”. 안치행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1977년 발표된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1980년까지 단일 앨범 최초로 100만 장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곡이 ‘가왕’ 조용필을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안치행은 최헌의 ‘오동잎’과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한국 가요계의 리듬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동잎’과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오기 전까지 당시의 가요는 트로트 아니면 지르박이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고고(Go-Go) 풍의 이 두 곡이 히트하면서 너도나도 빠른 템포의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했죠.”

 

 

뛰어난 ‘촉’으로 발굴한 윤수일 그리고 박남정

 

안치행은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는 능력이 탁월했다. 무명이었던 가수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스타로 재탄생했다. 후에 스타가 된 윤수일과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조갑출 씨와 함께 그룹사운드경연대회를 개최했었는데 노래 잘하는 혼혈 윤수일이 활동하는 ‘골든그레이프스’가 눈에 띄었어요”. 안치행 씨는 윤수일과의 첫 대면을 이렇게 기억한다.

이때 재능을 알아본 안치행이 작곡해 선물해 준 곡이 윤수일의 인생을 바꾼 히트곡 ‘사랑만은 않겠어요”다. 

안치행은 “원래 윤수일을 생각하고 만든 곡은 아니었어요…. 그 팀에게 곡을 준 건데 밴드를 하는 친구들은 트롯풍 노래를 부르기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밴드 막내였던 윤수일에게 부르게 한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당시 밴드 이름을 ‘윤수일과 솜사탕’으로 바꾸자는 것도 안치행의 제안이었다. 밴드 멤버들은 이름이 이상하다고 반대였지만 결국 제작자였던 안치행의 의도대로 ‘윤수일과 솜사탕’으로 정규 1집을 내게 되었다.

 



“당시 혼혈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 탓인지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발표되자 노래는 크게 히트를 했지만, 이상하게 앨범판매는 기대 이하였어요…. 고민 끝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윤수일의 효자 스토리를 알리면서 주목받았죠. 신문, 만평, 주간지에 ‘효자 가수 윤수일’ 스토리가 보도되면서 결국 앨범판매도 날개를 달게 되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대박이 나면서 윤수일은 그 길로 솔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결국 스타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후 안치행은 윤수일과 5장의 트로트 풍 앨범을 내면서 윤수일을 최고의 인기가수로 성장하게 했다.

 

 

앨범사업은 낚시 같아... 어떤 미끼가 대물 낚을지 알 수 없어

 

“연예계 사업은 스타를 발굴하는 ‘혜안’이 중요합니다”

제작자와 작곡가로 많은 경험이 있는 안치행은 “앨범사업은 사실상 묻지마 투자라고 할 수 있어요. 히트가 안 되면 한 푼도 못 건지고 쓰레기가 되죠…. 음반 시장은 낚시터에서 낚시하는 것 같아서 어떤 미끼가 대물을 낚을지는 알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큰 시장이라는 이야기다.  

 


“여고생이던 문희옥에게 방송에도 나가지 못하는 사투리 메들리 앨범을 만들어 크게 흥행을 했어요…. 방송에는 나갈 수 없었지만 ‘사투리’라는 화제성 때문에 신문 등에 크게 보도되면서 오히려 더 유명해진 거죠”.  

 KBS '가요톱10'


안치행은 또 ”박남정이 찾아왔을 때 뭘 잘하냐고 물으니 ‘춤을 잘 춘다.’고 하더군요.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춤(로봇 춤)을 추는데 너무도 특이했어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보컬 훈련시켜 데뷔시킨 것이 ‘아 바람이어’인데 역시 대박이 났죠”.


이때 박남정의 백 댄서가 누구나 아는 양현석, 현진영 등이었다.



‘감’이 탁월한 최고의 작곡가가 꼽는 최고의 가수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안치행은 “최헌 같은 가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가수라고 생각해요….

목소리톤 컬러가 개성이 강하고, 허스키하면서도 고음역도 거뜬히 소화하는가 하면 발음도 좋고 노래할 때 열정적인 모습 등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가수였거든요….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 안타깝네요”라며 아쉬워했다.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 꺾지 않는 트로트 곡이 오래 사랑받는 비결

 

‘오동잎’,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 수십 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으며 노래방 등에서 불리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안치행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인기를 유지하는 곡을 만드는 비결을 물었다.

 

“당시엔 트로트 하면 꺾는 방식의 ‘목포의 눈물’ 같은 노래가 대세였는데 나는 처음부터 꺾지 않는 트로트 곡을 만들었죠. 누구나 부르기 쉽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라며 “요즘 트로트 오디션 심사의원들이 마치 꺾기를 잘해야 트로트를 잘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트로트를 잘 몰라서 하는 말 말입니다. 꺾기란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일 뿐 억지로 내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나훈아, 주현미, 현철 등 꺾기를 잘하는 가수들은 어느 음역에 가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타고난 재능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안치행은 “나이를 먹으면 결국 트로트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술 한 잔 먹고 무반주로 부르려면, 트로트만큼 어울리는 게 없거든요…. 하지만 아이돌 음악은 따라 부르기도 힘들죠”라며 트로트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안치행의 창작 열차는 아직도 달리는 중 


데뷔 60년을 넘긴 안치행의 창작 열정은 팔순이 넘은 현재에도 위축되기는커녕 더 폭을 넓혀가고 있다.

2017년엔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을 힙합으로 만들어 직접 부르기까지 하면서 앨범을 냈다. 

대중가요 작곡가에게 생소한 일인데 불교 경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물었다.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불경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불교를 가까이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기독교엔 복음 등 관련 음악이 많은데 불교에는 불교를 홍보하는 곡이 많지 않은 것을 알고 불자들이 더 접하기 쉬운 불경을 생각하게 되었죠”. 

안치행은 “처음엔 스님들도 ‘경박하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정작 ‘힙합 반야심경’을 발표되자 이제 아주 좋아하신다”고 뿌듯해했다. 

 

 

안치행의 열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4년 ‘목포항 블루스’를 시작으로 후배 가수 권미희와 듀엣으로 ‘내 고향 가사도’, ‘가사도 짝짜꿍’ 등 고향 진도와 목포 관련 노래만 13곡을 작곡했다.


권미희 유튜브


이뿐만이 아니다.

구단에서 의뢰한 것도 아닌데 국내 10개 프로야구 구단응원가도 만들었다. 

“야구 응원가는 그냥 야구장을 찾는 팬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면서 즐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권미희 등이 부른 10개 구단응원가는 각 팀의 특성을 감안하여 응원가답게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으로 만들었다. 

안치행은 “특히 두산의 경우는 자신이 작곡한 최헌의 ‘구름 나그네’ 리듬을 활용했는데 구단 관계자에게서 연락까지 왔었다”고 자랑했다.

 

 

가수는 자기의 신곡이 있어야... 남의 노래로만은 롱런할 수 없어

 

마지막으로 트로트를 사랑하는 원로 작곡가로서 요즘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요즘 젊고 실력 있는 가수들이 많지만 자기의 노래가 없이 남의 노래만 부르는 건 문제입니다. 가수는 자기 신곡으로 승부해야 롱런 할 수 있습니다”. 

 

안치행은 “과거 인기가수들은 1년에 10곡 이상 신곡을 냈어요. 지금 오디션프로그램 등으로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이 발굴되었으니 이제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신곡을 발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2의 나훈아, 이미자로 성장할 수 있죠”라며 신곡 없이 인기를 바라는 현재의 트로트 시장을 안타까워했다.

 

안치행은 또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가수들이 자기들의 곡(신곡)이 없이 남의 노래로만 겨루는 것은 문제라며 상황에 따라 자기 노래나 신곡을 가지고 경연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안치행은 또 “가수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라며 “나훈아, 주현미, 문희옥처럼 음색이나 컨셉 등 개성이 뚜렷해야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데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대세 트로트 가수들은 특색 없이 노래만 잘하는 경우가 많아,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대중들에게 잊혀지게 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안치행은 “송가인이 부르는 ‘한 많은 대동강’을 들어보았는데 원곡 가수보다 더 감성적이고 감동적으로 소화하더라”라며 “이렇게 재능있는 가수들이 많은데 이들이 자신만 개성이 담긴 신곡으로 무장한다면 한 단계 더 높은 레전드 가수로 성장할 수 있는 강한 동력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트곡 제조기 안치행이 곡을 주고 싶은 젊은 트로트 가수가 있을까?

“곡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작곡가와 가수가 인연이 닿아야 가능한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에 곡을 주고 대박이 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언젠가 인연이 된다면 어린 가수들에게도 내 곡이 전달되어 훗날 나훈아 같은 대스타가 탄생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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