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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서 ‘창(Window)’은 액자다. 경치를 빌리는 미학, 차경(借景)’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1-31 22:11

창(Window)이 그려내는 풍경화, ‘차경’

경치를 가지려 하지 않고 잠시 빌린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

 전주의 한옥 카페 '차경'

사람의 공간에 자연을 담는 일, ‘조경(造景)’은 말 그대로 ‘경치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차경(借景)'은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로, 자연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끌어와 자신의 공간 속에 들이는 한국 전통의 미학이다.

우리 선조들은 한옥이나 정원을 조성할 때 자연을 인공적으로 흉내 내기보다, 멀리 보이는 산과 나무, 하늘과 바람결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또한 ‘학문(學文)’이란 단순히 글과 사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와 노래, 춤, 풍경과 같은 풍류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으로 여겼다. 



자연스러움을 사랑했던 선조들의 정원에서 차경은 매우 중요하고도 빈번하게 활용된 요소였다. 특히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 산수와 어우러지기에 차경은 더없이 매력적인 방식이었다.

붓과 물감으로 그린 평면적인 풍경화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역동적인 3차원의 풍경을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도 집 안에 들여놓았다. 시간대와 계절, 날씨에 따라, 또 보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풍경을 그저 눈길 가는 대로 감상했다. 집 안에는 늘 살아 숨 쉬는 풍경화가 걸려 있었던 셈이다. 이는 자연을 지배하려 하기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자 했던 태도의 표현이었다.


 

한옥을 지을 때 마당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조차 우연에 맡기지 않았고, 방 안의 창이나 문 역시 아무 곳에나 내지 않았다. 한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난히 창과 문이 많은데, 이는 ‘창(窓)’을 단순한 개구부가 아니라 풍경을 담는 액자(Frame)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집 밖의 경치를 집 안으로 끌어들여 감상의 대상으로 삼고, 창을 여닫는 순간마다 변화하는 바깥 풍경을 선별하고 재단해 마치 액자 속 한 폭의 그림처럼 즐겼다. 집 안의 주요 지점마다 어떤 풍경이 실려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한옥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

 

 '종묘'에서 차경

서양의 주거 공간이 한 건물 안에서 식사, 업무, 취침, 접객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비해, 우리 전통 건축은 공간의 쓰임에 따라 영역을 분리한다. 이로 인해 문과 창, 마당과 정원 등 각각의 건축요소에는 저마다의 차경 미학이 스며 있다. 물론 어느 건축에서든 구멍이 있으면 바깥 풍경은 보이기 마련이지만, 한옥의 창은 차경에 대한 분명한 의도와 목적을 지니고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이를 보여주는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첫째, 마당의 존재다.

한옥에는 방과 마당을 엄격히 가르는 벽이나 복도가 없고, 문을 열면 곧바로 앞마당이나 뒷마당으로 이어진다. 집 뒤에는 대나무나 감나무 같은 유실수(열매를 맺는 나무)를 심어 그늘과 실용성을 확보하는 대신, 앞마당은 꽃이나 나무, 장식물 없이 비워둔다.

이러한 구조는 한여름 강한 햇볕 아래에서 상승기류를 형성해 공기를 위로 끌어올리고, 대청과 뒷마루를 통해 자연스럽게 바람이 흐르도록 한다. 마당을 비워두는 것은 단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차경의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비움’을 통해 더 큰 풍경을 얻는 지혜인 셈이다.


참고로 “마당 한가운데 나무를 심으면 ‘곤란하다’라는 뜻의 ‘곤(困)’자가 된다.”라고 하여, 재물이 빠져나간다고 믿었다.

 

 한옥의 뒤에는 나무를 심어 시원하게 하고 마당은 비워두었다.

둘째, 차경의 대상이 되는 풍경 요소에 맞춰 창을 냈다는 점이다.

보고자 하는 나무나 꽃, 산의 위치에 따라 창의 크기와 위치를 달리했고, 식재 역시 창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한옥에서는 같은 형태의 창이 반복되는 경우가 드물다. 방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 하나하나를 의도적으로 구성하려는 배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한옥의 차경은 좌식생활에 최적화되어 있다.

방바닥에 앉은 눈높이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비로소 풍경은 온전히 완성된다. 이는 한옥의 공간 감각과 좌식 문화가 차경 미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경북 안동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의 ‘만대루’와 경복궁의 ‘경회루’는 차경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오늘날에도 한국은 물론 많은 외국 건축가들이 찾는다.

 

 병산서원 '만대루'와 병산을 바라보며 '차경'을 즐기는 관광객

 경회루 2층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는 차경 / 사진 = 궁능유적본부

더 나아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군 전체가 차경을 구현한 사례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경복궁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고궁의 전경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이 건축의 마스터플랜이 드러난다. 경복궁은 북악산과 인왕산이라는 자연 그대로의 원림(사람의 손이 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삼림)을 궁궐 구조 속으로 완벽하게 끌어들여, 하나의 거대한 차경을 완성한다.


경복궁의 위엄은 개별 건축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담장의 경계를 허물고 지형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차경을 통해, 자연의 편안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품어내며 스스로의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경복궁 '사정전'을 배경으로 인왕산을 차경 / 사진 = 궁능유적본부

 

차경(借景), 창을 내고 문을 내서 풍경을 들이는 일이 빚이라고,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고.

(중략)

갚는다는 건 되돌려준다는 거겠지요. 빌린 나도 풍경으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중략)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손택수 시집 ‘차경’ 중에서 / 글쓴이 = 불역낙호

다음 편에는 한옥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원에 적용된 ‘차경’에 대해 다루기로 한다.



배성식 / 여행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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