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 수막새’

배성식 기자

등록 2025-11-12 16:06

일본으로 반출 이후 국내로 다시 환수된 모범 사례

대기업의 로고 제작에도 영감을 얻어 디자인



 신라의 미소라고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2025년 10월 31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가 열렸다. 공식 엠블럼은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며 생태계 번영에 기여 하는 ‘나비’를 모티브로 하여, 나비가 APEC 회원국 및 지역을 연결(Connect)하여 아태지역 경제협력 공동체를 번영(Prosper)시키고, 나아가 나비의 날갯짓이 혁신(Innovate)과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상징을 담았다.


특히 경주를 대표하는 ‘얼굴무늬 수막새’는 한국문화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신라 천년의 미소로 APEC 회원국 및 관계자들의 한국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와 APEC 정상회의의 가치인 미래 지향성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재조명되었다.

 

 2025 경주 APEC 공식 포스터


수막새는 기왓골을 메워 보호하는 실질적인 역할 건축물을 돋보이게 하는 조형적 역할과 재앙은 피하고 복을 바라는 주술적 역할을 담아 장식하던 기와의 일종이다. 

신라의 수막새는 험상 궂거나 무서운 표정 대신에 웃음으로 나쁜 것을 달래서 돌려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막새와 안막새를 합쳐서 '와당'이라고 함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2~3세기에 궁에서 기와가 사용되었고, 528년 불교가 공인된 후에는 사찰에서도 연꽃무늬가 장식된 수막새를 장식하였다. 6세기 후반에는 고구려나 백제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연꽃 모양을 만들거나 얼굴 무늬, 도깨비 무늬 등도 제작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투박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통일 신라시대에 이르면서 연꽃·봉황·기린·사자·도깨비·용·구름 등 다양하고 복잡하며 화려한 무늬가 나타났다.

 

대개 사람들은 수막새의 미소를 ‘신라의 미소’라 부르며, 백제 불상의 미소와 비견하여 얘기한다. 

와당(瓦當, 지붕에 기와를 입혀 내려온 끝을 막음 하는 건축재) 제작 틀을 이용해 일률적으로 찍은 일반적인 제작 방식과 달리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으로, 바탕흙을 채워 가면서 전체적인 형상을 만든 후 도구를 써서 세부 표현을 마무리했다. 


부처님의 미소처럼 후덕 하지만, 미소로 보기에는 기와 속 오른쪽과 왼쪽 표정이 너무 다르다. 둥글고 커다란 코에 비대칭인 양 눈과 광대뼈, 끌어 올려진 입꼬리가 어색하지 않다. 

안동 하회탈처럼 얼굴 형상이 비대칭이라 탈을 보는 방향에 따라 웃는 얼굴로도 비웃는 얼굴로도 보인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알려진 삼국 시대 얼굴무늬 수막새이자 신라인들의 염원과 인간적 모습을 구현한 높은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신라의 우수한 와당 기술이 집약된 대표작이다. 

2018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경주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수막새가 발견된 곳은 경주읍 사정리(현재 사정동)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가 있던 곳으로 전해졌으나, 근래 들어 경주 ‘영묘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묘사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사찰로 ‘삼국유사’에 따르면 “여러 가지 기예에 통달한 양지(스님)는 영묘사의 장육삼존상(신라의 거대한 불상)과 천왕상, 벽돌탑의 기와 그리고 사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여덟 신을 하나의 군으로 수용해서 불교의 수호신으로 삼아 조성한 상) 등을 제작했다.”라고 나온다. 

하지만, 얼굴무늬 수막새는 제작자가 새겨져 있지는 않다. 


 얼굴무늬 수막새가 출토된 영묘사 터 

얼굴무늬 수막새는 1934년 조선총독부 신문 ‘조선’_229호에 “이 와당의 출현은 신라예술 연구상 귀중한 자료의 하나”라고 기사와 사진이 실리면서 알려졌다.


 1934년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된 수막새


1934년 경주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품상에서 1930년 당시 기와집 한 채와 맞먹는 100엔에 구입했다고 한다. 1940년 다나카가 일본에 돌아가면서 반출되었다가 이후 박일훈 경주박물관장의 노력 끝에 1972년 극적으로 국내에 반환되었다.

다나카 씨는 “보는 이의 마음 깊이 감명을 주는 기와를 작업한 와공의 절절한 정성을 생각할 때 느끼는 바가 있어 신라의 국토에 안주의 땅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기증 이유를 밝혔다. 


 수막새 기증(반환) 승낙 편지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되었다가 광복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온 환수 문화재의 모범적인 사례로 개인 소장가가 아무런 보상 없이 기증한 사연도 주목 받았다.


1972년 수막새 공식 반환 장면(박일훈 경주박물관장_왼쪽, 다나카 도시노부)

 

한편, 이 수막새는 대기업의 로고로도 재탄생 되었다. 

1995년 당시 故. 구본무 부회장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CI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이때 LG의 로고는 ‘천년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당시 로고 디자인을 담당한 미국 랜도(Landor)사는 인간 중심의 그룹 철학을 담은 미래의 얼굴을 로고에 담아 달라는 LG 측의 요구에 수막새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을 완성했다고 한다.


 1995년 신문에 게재된 LG 광고



시인 ‘이봉직’ 선생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수차례 방문하여 얼굴 무늬 수막새를 살펴보고 다음과 같은 <웃는 기와>를 창작했다고 한다.


 웃는 기와 / 이봉직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배성식 / 여행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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