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듣기만 하지 않는다"…. 팬과 가수가 공동 집필하는 성장드라마
보는 음악, 함께 만드는 서사... 팬덤이 주도하는 트로트 산업 혁명
효도 관광에서 스타디움 콘서트로….'트로트 아이돌'의 탄생 불러와
□ 2025년 트로트 트랜드 진단 / 3. 보는 트로트로의 진화
2025년 11월,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 앞.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현장이 아니다. 트로트 가수의 단독 콘서트를 기다리는 팬들의 풍경이다. 과거 등산복 차림으로 버스에서 내려 조용히 입장하던 ‘효도 관광’ 식의 관람 문화는 전설이 되었다.
팬들은 가수의 고유 색상(임영웅의 하늘색, 김호중의 보라색, 이찬원의 로즈골드 등)으로 옷을 맞춰 입고, 블루투스로 중앙 제어가 되는 최첨단 응원봉을 흔든다.
2025년의 트로트는 이제 ‘듣는 음악’의 영역을 넘어섰다. K-팝 아이돌 시장의 성공 방정식인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강력한 팬덤 비즈니스’를 완벽하게 흡수한 트로트 시장은 이제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하고 구매력 높은 ‘큰 손’이 되어가고 있다.
사진 = 물고기뮤직제공
조용히 두 손을 모으거나 아이 율동에 가까운 소심한 율동으로 부르던 트로트가 이제 화려한 댄스로 무장하고 있다.
박서진, 박지현, 전유진, 영탁 등 2025년 시상식을 휩쓴 젊은 트로트 주자들은 K-팝 공연에서의 아이돌 못지않은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무대를 장악하며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트로트가 이렇게 섹시한 음악이었던가?”라는 물음이 나올 정도로 바야흐로 ‘보는 트로트(Visual Trot)’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트로트계를 뒤흔든 '퍼포먼스' 경쟁
2025년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베스트 퍼포먼스 상’등은 아이돌 그룹이 아닌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를 차지하기도 했다.
‘장구의 신’으로 불리던 박서진은 이제 ‘무대의 신’이 되었다. 그의 활동 곡 ‘당신 이야기’ 무대에서는 장구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화려한 레이저 조명 아래 댄서들과 함께하는 댄스 브레이크가 펼쳐진다. 흥겨운 리듬에 시각적 스펙터클을 더해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박서진 / 사진=KBS 제공
‘떠오르는 스타’ 박지현은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모델 같은 비율 그리고 시원한 춤 선은 2030여성 팬들을 트로트 판으로 대거 유입시킨 결정적 요인이다.
그는 수트 핏을 강조한 의상을 입고 칼 군무를 소화하며 트로트 가수도 ‘섹시 심벌’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팬들은 그의 무대를 보며 “아이돌 센터급 비주얼”이라 칭송한다.
MBN ‘현역가왕’ 우승 이후 전유진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다.
1020 세대를 겨냥한 힙(Hip)한 트로트 신곡 ‘가라고’ 무대에서 그녀는 반짝이 재킷 대신 세련된 검은 투피스나 크롭티를 입고 등장한다. 안무 역시 손을 흔드는 단순한 동작만이 아니라 힙합과 왁킹 요소가 가미된 고난도 안무다.
신곡 발표 이후 유튜브와 틱톡 등 숏폼 플랫폼에서 전유진의 댄스 챌린지가 유행하며, 트로트 팬덤의 연령층이 10대까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이는 트로트가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1020 세대의 편견을 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지현 / 사진 = TV CHOSUN
"우리가 키운 가수, 우리가 지킨다."
자신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들을 중심으로 함 팬덤들의 결속력은 과거 K-팝 아이돌 팬덤을 능가한다.
소속사와 팬들은 정성 들여 팬클럽을 운영하고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르는 팬덤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트로트 가수를 위해 매일매일 응원 글을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에 응답하듯 2025년 트로트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팬 송(Fan Song)’의 전면 배치다.
과거 팬 송이 앨범 구석에 수록된 보너스 트랙 정도였다면 이제는 타이틀곡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는다. 이는 가수가 팬을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성공의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송가인이 팬클럽 ‘어게인’을 위해 직접 작사한 곡 ‘평생’은 팬덤 사이에서 ‘국가’처럼 불린다. “이 생명 다할 때까지 당신 곁에 있겠다~”는 가사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팬들과 맺는 ‘혈맹’과도 같은 약속이다.
송가인 SNS
임영웅의 앨범은 거대한 서사 집이다.
무명 시절부터 자신을 지켜준 ‘영웅시대’를 향한 감사의 메시지가 앨범 전체를 차지한다. 임영웅은 콘서트에서 “여러분이 곧 나의 우주”라는 식의 멘트로 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
이러한 ‘서사 마케팅’은 팬덤의 충성도(Loyalty)를 극대화한다.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가수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기뻐하고 가수가 힘들 때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음악 자체가 좋아서 듣는 단계를 넘어 ‘내가 사랑하는 가수의 이야기’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트로트 팬덤이 K-팝 아이돌 팬덤보다 훨씬 높은 앨범 구매력과 투표 참여율을 보이는 원동력이 된다.
"가벼운 건 싫다"… 트로트의 명품화
모든 트로트 가수가 아이돌 같은 노선을 걷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가볍고 트랜디 해질수록 반대편에서는 ‘압도적인 깊이’와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차별화를 꾀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자신의 1집 곡 ‘가인이어라’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는 등 K-트로트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송가인은 트랜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뿌리인 ‘국악’을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의 곡 ‘아사달’은 트로트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국악 가요 극(Opera)을 연상시킨다. 판소리의 한 서린 발성과 묵직한 정통 트로트 창법의 조화는 “역시 송가인이다”라는 찬사를 끌어냈다.
이 같은 2025년 대한민국 트로트 트랜드의 변화는 트로트 시장이 단순히 ‘아이돌화’되는 것을 넘어 ‘고품격 예술 장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랜디한 팝 트로트’와 ‘무게감 있는 정통 트로트’라는 두 개의 큰 축이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며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노래만 잘하는 가수 성장한계, 스토리가 중요"
그렇다면 대중문화 평론가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계자들은 2025년 트로트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근 보이는 트로트 가수의 아이돌화 현상에 대해 한 평론가는 “대중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서 노래만 잘하는 가수는 살아남을 수 없죠…. 비주얼, 퍼포먼스, 그리고 팬덤을 조련하는 예능감까지 갖춘 ‘육각형 인재’만이 롱런할 수 있는 환경이라서 아이돌화 현상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며 “현재의 트로트 시장은 K-팝 아이돌 시스템을 벤치 마킹하고 구매력 높은 중장년층을 등에 업고 더 견고해졌다.”라고 진단한다.
‘현역가왕2’ / 사진 ㅣMBN
그렇다면 미래의 트로트 시장은 어떻게 공략해야 하나라는 과제에 한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노래를 잘하는 신인들은 매년 쏟아져 나오지만 결국은 ‘서사(Story)’가 중요하죠…. 임영웅이나 송가인처럼 팬들과 함께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했다는 ‘드라마’가 없는 가수는 팬덤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 기획사들은 가수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드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일 것입니다.”라고 예상했다.
여전히 한국적인 정(情)과 흥(興)이 토대
2025년 12월에 본 트로트는 더 이상 ‘어르신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 박지현과 박서진이 보여주는 화려한 ‘Show’, △ 송가인과 임영웅이 팬들과 함께 써 내려가는 감동적인 ‘Story’, △ 전유진이 이끄는 젊은 세대와의 공감 소통.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 트로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돈이 되는 거대 산업이 되었다.
전유진 / 사진=KBS 제공
“시스템은 K-팝을 입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피는 여전히 한국적인 정(情)과 흥(興)이다.” 이것이 바로 K-트로트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세대를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은 비결이며 앞으로의 100년을 이어갈 동력이다.
이제 우리는 트로트 가수를 보며 춤을 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그들의 성장을 응원한다. 음악을 넘어선 문화, 노래를 넘어선 서사.
2025년, 당신이 사랑하는 트로트 가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당신의 취향이자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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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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