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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는 ‘집단기억 응집’ 트로트는 ‘민족서사’
트로트와 엔카, 깊은 영감을 공유하며 성장
전통은 ‘옛것’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기준’
‘기록’ 멈추면 뿌리 잊은채 각자 ‘섬’에 갇혀
□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연재를 마치고
트롯뉴스가 ‘2026 신년기획’으로 연재한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시리즈가 마감되었다.
‘트롯뉴스’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하나의 음악 장르가 어떻게 시대의 감정을 품고 사회의 언어로 정착했는지 추적했다. 이 여정은 단순히 이웃 나라의 음악사를 훑어보는 물리적 기록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는 오랜 세월 서로를 외면해온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이면에서는 깊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동반 성장해왔다. 이러한 유기적 교류와 발전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다면, 양국의 대중음악은 뿌리를 잊은 채 각자의 섬에 갇히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무라타 히데오의 원초적 절규에서 시작해 호소카와 타카시의 견고한 정통성으로 마침표를 찍는 동안, 머릿속에는 줄곧 하나의 질문이 맴돌았다.
“수십 년이 지난 이 노래들은 왜 여전히 우리 가슴을 후벼 파는가?”
이 시리즈는 그 답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이었다. 종착역에 도착한 지금, 감히 단언한다. 이번 기획은 한국 트로트의 현주소를 비추는 거울이었으며, 우리가 망각했거나 혹은 끝까지 수호해야 할 ‘서사’에 대한 복원 작업이었다.
이제 연재를 마무리하며, 엔카와 트로트라는 두 갈래 물줄기가 만나는 ‘정서적 접점’을 고찰해 본다.
노래가 ‘생존’이었던 시대
엔카의 출발점에는 무라타 히데오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패전의 잿더미 위에 서 있었다.
그의 노래는 감상용 예술 이전에 생존의 언어였다. 패전 이후의 혼란, 지독한 가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을 누군가 직접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위로해 주지 않던 시대였다.
1961년 첫 출전 홍백가합전에서의 무라타히데오 / 사진=NHK
한국 트로트 역시 궤적을 같이 한다. 일제강점기의 한(恨)을 지나 전쟁과 분단,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힘겨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국민에게 트로트는 위로보다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이 시기 엔카와 트로트는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 매일 아침 다시 일어날 명분을 찾아야 했던 서민들에게 ‘살아 있기 위해 필요한 공기’와도 같았다. 두 나라의 서민들은 각자의 언어로 같은 노래를 불렀던 셈이다.
개인의 비극이 시대의 서사로
엔카가 일본의 ‘국민 음악’으로 격상된 데에는 미소라 히바리라는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그는 개인의 고독과 비극을 일본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으로 끌어올렸다. 히바리의 목소리는 패전국의 국민이라는 집단적 열등감과 상처를 치유하는 ‘연고’ 같은 것이었다. 패전국 국민이라는 집단적 열등감이 그녀의 노래를 만나는 순간, 수치가 아닌 서사가 되었다.
도쿄돔에서 열린 미소라히바리 피닉스(불사조)콘서트
이 지점에서 한국에는 이미자가 있었다.
여성의 인내와 기구한 운명을 노래하며, 트로트를 ‘저급한 유행가’의 틀에서 벗어나 격조 있는 대중음악으로 승화시킨 점은 두 장르가 ‘저급한 음악’에서 ‘시대의 서사’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계기로 노래는 더 이상 가수 개인의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이들의 공동 소유가 되었다.
축제와 개인의 고독, 두 개의 길
장르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엔카는 두 갈래 길로 나뉘었다.
하나는 키타지마 사부로로 대표되는 ‘공동체의 노래’이다.
축제의 현장(마츠리)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노래는 흩어진 개인을 다시 하나로 묶는 연대의 음악이었다. 반면, 모리 신이치의 허스키한 중저음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남성의 내밀한 고독을 대변했다.
엔카는 여기서 ‘내면의 음악’이라는 심오한 영역을 확보했다.
가요 프리미엄 특별판 모리 신이치 '노래의 기쁨' / 사진=BS일 텔레
한국 트로트 역시 나훈아라는 걸출한 스타를 통해 국민적 영웅 서사를 완성하는 동시에, 중저음 남성 트로트의 고독 미학을 통해 유사한 분화 과정을 겪었다.
이는 대중음악이 한 사회의 축제 등 외연적 요소와 고독 같은 내면적 감성까지 모두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감정 과잉을 넘어 ‘정서의 축적’으로
일본의 여성 엔카 가수들의 진화는 특히 눈부셨다.
이시카와 사유리와 야시로 아키는 눈물의 과잉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은 슬픔을 밖으로 쏟아내기보다 안으로 가라앉히는 ‘절제의 미학’을 선보였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깊은 파동을 만들었다.
이러한 태도는 엔카를 단순히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정서의 저장고’로 변모시켰다.
이시카와 사유리 SNS
이는 한국의 주현미 등이 보여준 품위 있는 슬픔과 닮아있다.
여성의 감정은 더 이상 청승맞은 약점이 아니라, 삶을 관조하는 품격의 언어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을 낮추다
엔카가 젊은 세대의 외면과 팝 음악의 공세로 위기를 맞았을 때, 미야코 하루미와 고바야시 사치코는 각자의 방식으로 응전했다. 하루미는 대중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를 택했고, 사치코는 화려한 무대 연출로 TV를 장악했다.
쉬운 멜로디와 일상적인 가사, TV 매체에 최적화된 화려한 쇼 비즈니스. 이러한 전략은 평단의 예술적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엔카가 박물관에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음악’으로 존재하게 했다.
이는 한국 트로트가 남진, 장윤정을 거쳐 현재의 임영웅 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변신해 온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 전통은 박제에 불과하다.
후지 케이코가 남긴 뼈아픈 경고
이 연재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이름을 하나 꼽으라면, 후지 케이코다.
후지 케이코의 비극적인 삶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삶과 노래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 예술은 가슴을 후벼 파는 진정성을 얻지만, 가수 개인의 삶은 파괴될 수 있다.
그녀가 보여준 슬픔의 극단은 오늘의 한국 트로트 산업에도 유효한 경고다.
공연하고 있는 후지게이코/사진=소니 뮤직 다이렉트 제공
비극은 대중의 공감을 낳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그것이 상업적으로 과도하게 기획되고 가수의 삶을 소진하게 만든다면 그 장르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문화가 살아남으려면 그 문화를 만드는 ‘사람’을 보호하는 구조가 선행되어야 함을 그녀의 비극적 생애는 증명한다.
오늘의 트로트 산업이 귀담아들어야 할 가장 무거운 교훈이다.
끝까지 ‘기본’을 지킨다는 것
마지막으로 조명한 호소카와 타카시는 장르의 생존 조건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일깨워준다. 모든 장르는 혁신가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누군가는 끝까지 ‘기본’을 지켜야 한다.
호소카와 타카시. 화려하지 않다. 혁신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엔카는 오늘날 ‘엔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창법, 선율, 가사의 정통성을 끝까지 고수하며 장르가 스스로 잃지 않도록 물리적 기준점 역할을 해냈다.
한국 트로트계에서도 퓨전의 홍수 속에서 정통성을 지켜온 원로 가수들이 존재했기에, 오늘날 트로트의 부활이 단순한 ‘복고풍 팝’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무게감을 가질 수 있었다.
혁신가만으로는 전통이 유지되지 않는다.
엔카와 트로트는 ‘마음의 언어’
엔카와 트로트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했지만, 결코 복제 관계가 아니다.
엔카가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집단 기억’을 응집한 음악이라면, 트로트는 한반도의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족 서사’의 음악이다.
그러나 두 장르는 모두 ‘시대가 말을 잃었을 때 사람 대신 울어주고, 대신 버텨준 음악’이었다는 본질에서 하나로 만난다.
기술이 발전하고 플랫폼이 바뀌어도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고독과 슬픔, 그리고 위로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형태가 달라질 뿐이다.
끝까지 남는 음악의 조건은?
10인의 엔카 거장을 따라온 이 연재에서 확인한 사실은 명확하다.
모든 음악은 유행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전통이 되는 음악은 반드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엔카와 트로트는 즐거움만을 제공하는 오락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의 기록이었고, 위로였으며, 차마 말하지 못한 감정의 대리인이었다.
이 기획에서 만난 10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역할을 했다. 누군가는 시대를 대표했고, 누군가는 고독을 껴안았으며, 누군가는 자리를 지켰다. 공통점은 그들 중 누구도 음악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시선을 다시 K-트로트로 돌려본다. 현란한 조명, 빠른 소비, 과도한 개인 서사가 지배하는 오늘의 트로트 열풍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의 트로트는 여전히 ‘사람의 편’에 서 있는가?”
슬픔이 소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전통은 지루한 옛것이 아니라 미래를 비추는 기준이라는 것, 그리고 한 장르는 반드시 누군가의 헌신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는 엔카의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재는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만, 질문은 이제 시작이다.
“지금 이 시대의 노래는 누구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한, 엔카와 트로트는 다음 세대의 가슴으로 건너갈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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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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