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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등 조직은 많지만 조율할 곳 없어 각개전투
'진흥원’ 추진했지만 업계 무관심‧비협조에 포기
영화계는 ‘영진위 ’통해 국가 예산 등 지원과 대조
방송 오디션 참여자 늘며 음악계 활성화 순기능
음반만 내면 가수가 되는 시스템 품격 떨어뜨려
AI 대세 막을 수 없어…창작자들은 정신 차려야
전통적인 방식 만으론 K-트로트 세계화 어려워
□ 시대를 노래한 가수 설운도 심층 인터뷰 (2부,끝)
“영화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있어요. 콘텐츠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있고요. 그런데 수만 명의 음악인이 활동하는 대중가요에는 왜 그런 기관이 없습니까?”
트롯뉴스가 만난 설운도는 1부에서 다룬 자신의 음악 인생보다 이 질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40년 넘게 정상에서 활동해온 레전드 가수의 목소리에는 자부심보다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의 진단은 명료했다.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적 위상에 걸맞은 산업적·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수십 년 간 방치된 결과라는 것이다.
2부에서는 대중음악 산업의 구조적 과제부터 오디션 시대의 명암, AI가 몰고 올 격변, 그리고 K-트로트 세계화 전략까지, 선배 음악인이 전하는 한국 대중음악 발전 방향을 담았다.
설운도는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적 위상에 걸맞은 산업적·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 것은 가요인들의 무관심과 비협조로 수십 년 간 방치된 결과라고 아쉬워 했다. / 사진=본인 제공
남의 일처럼 무관심한 것이 문제
인터뷰 내내 설운도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진흥원’이었다.
“가요를 관장하고, 전승하고,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단체가 없어요. 제작자협회니 가수협회니 조직은 많아요.
그런데 이 조직들을 아우를 컨트롤타워가 없어요. 문제가 생기면 각자 자체 해결하기 바쁘고, 전체를 조율할 곳이 없으니 모두 각개전투를 하는 겁니다.”
그는 오래전 ‘대중가요진흥원’ 설립을 직접 구상했었다고 털어놨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 상당히 구체적인 단계까지 접근했지만, 결국 중도에 접었다. 좌절시킨 것은 정부가 아니라 가요계 내부였다.
“협조가 안 되더라고요.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해야 하는데, 이야기를 꺼내면 ‘형이 무슨 이권이 있는 것 아니냐’라며 색안경을 끼고 봐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내가 바쁜데 이걸 해서 뭘 하겠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요.”
그의 지적은 선배 세대 전체를 향하기도 했다.
“가요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선배들이 가요계 발전에 더 협조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제왕’이라며 물러서고 협조하지 않아요. 단체를 키워주고 신경 써주고 싶어도 자기 일인데도 남의 일처럼 여겨요.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미 분배 가창료, 아무도 몰랐던 노력
설운도는 2014년 8월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가수를 대표해 정책 결정 구조에 들어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그 시절의 일화 하나가 가요계의 현주소를 압축한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련) 임원이 그를 찾아왔다. 실연자 보상금, 이른바 가창료의 미 분배금이 상당액 쌓여 있는데 쓸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문제는 명분이었다. 명분 없이는 한 푼도 움직일 수 없는 돈이었다.
“그것 때문에 내 돈 써가며 정치인들, 청와대 수석들을 만나러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요. 결국 쓸 수 있게 만들어줬지요.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 고맙다는 사람이 없었어요. 인사를 받자는 게 아니에요. 그 정도로 눈앞의 이권만 밝힐 뿐, 그것을 제도적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기자가 “국정감사 자료에서 미지급 저작권료가 한때 840억 원을 넘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고, 음실련이 한 해 징수·분배하는 보상금과 사용료 규모만 약 700억 원에 달한다.”라고 하자 그는 “그런 예산들이 산재해 있는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답했다.
이런 재원들이 산재해 있고, 국가 예산까지 끌어와 대중가요를 활성화할 길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할 줄 아는 사람도, 나서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대중가요인에 대한 왜곡된 시선
창작 생태계의 양극화도 짚었다.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가수와 작가가 6만 명이에요. 그중 저작권료를 제대로 받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아요.
나머지는 명목만 올려놓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혜택이 있겠어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음실련 회원만 5만 명을 웃돌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신탁 회원까지 더하면 등록 음악인 규모는 그의 말을 넘어선다.
국내 기획사의 80%가 열악한 환경에서 직원과 그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채 버티고 있다는 현실 인식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연예인은 돈 잘 버는 사람들”이라는 왜곡된 시선 뒤에 가려진 산업의 실체를 정치권에 이해시키고 대변할 중재자가 없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문제 의식이다.
정부와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대중문화 담당 부서가 있는데도 현장을 몰라요. 과거 담당 공무원이 열악한 기획사의 가능성 있는 가수를 지원했다가 ‘왜 특정 업체를 지원하느냐’, ‘연예인들은 행사로 돈을 많이 버는데 왜 아까운 정부 돈을 주느냐’라며 국회에서 호되게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웃기는 이야기 아닙니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그분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는 문화융성위원회 시절 위원회가 여러 문화 현안을 다루면서도 대중가요는 아예 취급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영화계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체계적인 예산 지원을 받아온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가수 인정, 최소한 기준 시스템 필요
인터뷰에서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가수의 품격’에 대한 발언이었다.
“음반은 방송 전에 심의를 받아요. 그런데 가수는 아무나 돼요. 박자도 모르는 사람이 음반만 내고 케이블 방송에 나와 노래하면 사람들은 가수인 줄 알아요. 우리 가요를 저질로 만드는 원인입니다.”
그는 과거에는 이름 있는 관계자 몇 명의 추천이 있어야 가수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을 언급하며, 성악 등 다른 장르처럼 일정한 실력과 실적을 입증하는 기준이 대중가요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KBS ‘가요무대’를 예로 들었다.
“가요무대는 우리 가요의 역사를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그런데 박자도 모르는 사람이 그 무대에 서면, 그 한 사람 때문에 프로그램 전체가 품위를 잃고 아카이브 기능도 사라져요. 이것이 우리 가요계의 병폐입니다.”
대중이 성악가는 “음악적 수준이 높은 사람”으로 대접하면서 대중가수는 낮춰 보는 이중적 시선도 이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물론 이는 배타적 자격 제도를 만들자는 주장보다, 대중가요가 전문성과 품위를 갖춘 문화예술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무대를 향한 절박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절박함이 장르 전체의 품격을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가요계 선배로서의 고언이다.
MBN ‘현역가왕’ 시리즈 등 수많은 경연 무대에서 마스터로 활약해온 설운도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불어넣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요계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사진=MBN '현역가왕'
히트곡 없는 오디션 스타들 걱정
트로트 오디션 열풍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치우침 없는 균형과 깊이가 담겨 있었다.
MBN ‘현역가왕’ 시리즈 등 수많은 경연 무대에서 마스터로 활약해온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불어넣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기꺼이 인정했다.
“과거에는 품지 못했던 꿈과 목표가 새롭게 피어난 셈입니다. 여러 방송에서 남녀 오디션이 풍성하게 열리니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이들이 늘어났지요. 도전자가 많아지면 치열하게 연습하는 이들이 늘고, 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이 필요해지며,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가 활기를 띠게 됩니다. 부모들 역시 아이의 재능을 꽃 피워주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게 되면서, 트로트 판 자체가 거대하게 붐 업되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그늘 또한 걱정했다.
그가 짚어낸 첫 번째 명암은 오디션이 끝난 뒤 찾아오는 지독한 공백기다.
“냉정하게 말해, 오디션 출신 중 자신만의 히트곡이 단 한 곡도 없는 친구들이 3분의 1에 달합니다. 방송사 궤도 위에서 1년에서 1년 반 남짓 주어지는 활동 기간이 끝나면 그것으로 막이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또 다른 오디션에서 새로운 신예가 등장하면 대중의 관심은 순식간에 그쪽으로 옮겨가고, 먼저 무대에 섰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조차 모르게 잊힙니다. 진짜 비극은, 이 친구들이 이미 무대의 달콤한 ‘인기병’에 깊이 물들어 버린 후에 홀로 남겨진다는 점입니다.”
축구 선수가 가요심사 할 순 없지 않나
두 번째로 지적한 문제는 오디션의 지나친 예능화와 그로 인해 무너진 심사의 권위였다.
“심사위원마다 각자의 개성과 시각이 다른 것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심사석에 앉아서는 안 될 이들이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축구 선수가 가요를 심사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소한 노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법입니다.
대중이 요즘 오디션을 두고 ‘본질을 잃은 예능’이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경연의 본질을 살리려면 전문가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앉아 날카롭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전문성이 결여된 심사위원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곁에 있는 진짜 전문가들의 안목과 심사의 가치마저 함께 퇴색되고 맙니다.”
정작 수많은 경연에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 그 자신은 심사석에서 유독 말을 아끼는 편에 속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짐짓 높은 자리에 앉아, 후배들에게 그저 ‘지적질’이나 일삼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운도는 방송사 오디션 프로의 지나친 예능화를 경계했다. 특히 전문성이 결여된 심사위원의 평가는 진짜 전문가들의 안목과 심사의 가치마저 함께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사진=MBN'현역가왕'
요즘 가수들, 소리 좋은데 영혼 없다
세대론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그는 젊은 가수들의 기량을 인정하면서도 뼈 있는 진단을 내놨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가난한 시절의 ‘보릿고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밥을 굶어본 설움을 알까요.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 하나만 얹어져 있어도 온종일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그 시절의 정서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저 목청을 높여 부른다고 해서 좋은 노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철학이 담겨야 하고, 삶의 굴곡진 애환이 녹아들어야 하지요. 우리 세대는 세상의 단맛과 쓴맛, 심지어 매운맛까지 온몸으로 겪어냈기에, 억지로 감정을 쥐어 짜지 않아도 목소리에서 슬픔과 한이 자동으로 배어 나옵니다. 요즘 친구들은 소리도 맑고 가창력도 참 훌륭하지만, 깊은 곳을 건드리는 표현력에서는 쉬움이 남습니다. 기술은 있되, 노래에 영혼이 비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요.”
다만 그는 이것을 비난이 아니라 시대의 조건으로 이해했다.
최근 많은 팬덤들이 젊은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정확히 봤다.
“대중은 늘 듣던 옛날 뽕짝의 틀에서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신선한 이들이 부르는 신선한 노래를 마주했기에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원하는 ‘신선함의 힘’이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지요.”
세대 공존의 해법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뜻밖에도 ‘선배가 먼저 변하라’였다.
“가요계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더불어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참 자유분방하지요. 우리 세대 같으면 어려워서 감히 고개도 못 들 대선배 앞에서 스스럼없이 응석을 부리곤 합니다. 과거의 잣대로 보면 버릇없다 여길지 모르나, 선배가 권위만 내세우면 아이들은 결국 곁을 주지 않고 다 피해버립니다. 선배인 내가 먼저 의식을 바꾸어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응석도 기꺼이 받아주며, 때로는 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해주어야 합니다. 음악 안에서 나이란 초월해야 마땅하지요. 선배가 버텨주지 않으면 후배는 존재할 기반이 없고, 후배가 자라나지 않는다면 가요계의 미래 또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운도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선배로 유명하다. 그는 선배인 내가 먼저 의식을 바꾸어 젊은 후배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응석도 기꺼이 받아주며, 때로는 친구처럼 격의 없이 대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 사진=임영웅 유튜브 채널
AI 음원은 대세, 음악인들 각성해야
AI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최근 겪은 일화부터 꺼냈다.
지인인 병원 원장이 “형님, 제가 곡을 만들었어요.”라며 AI로 만든 곡을 보내왔는데, 기가 찰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는 것이다. “이제 창작자가 따로 없는 시대예요. 작사·작곡가들이 정말 정신 안 차리면 밥 먹고 살기 힘들어질 겁니다.”
AI 음악 규제 논의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물밑에서 솟아나는 것을 무슨 재주로 잡겠어요. AI로 만든 곡을 약간 편곡해서 사람 가수에게 부르게 하면 어떻게 막겠습니까. 수백 만 개씩 쏟아지는 음악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찾아내요. 막겠다는 것은 결국 명분 쌓기에 그칠 겁니다.”
실제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스팸성 AI 음원을 대거 삭제하고 AI 제작 여부 표기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는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봤다.
그의 결론은 규제가 아니라 각성이었다.
AI를 적으로 돌리기보다 인간만이 담을 수 있는 감성과 철학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애환이 담긴 노래를 강조해온 그의 음악관과 정확히 맞닿는 지점이다.
K-트로트도 K-POP처럼 가야 한다
인터뷰 후반부에서 설운도가 가장 힘주어 말한 주제는 트로트의 세계화였다.
그의 진단은 냉정했다.
“지금 우리가 고수하는 전통적인 가요 방식만으로는 결코 세계 시장의 견고한 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근거는 K-POP의 성공 공식에 있었다.
“K-POP 역시 본래 우리의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서구의 팝을 가져와 우리만의 색깔로 가공하고 재수출 해낸 것이 지금 아이돌의 무서운 저력이지요. 세계 어느 곳이나 그들만의 고유한 정서가 담긴 음악이 존재합니다.
미국의 컨트리, 일본의 엔카, 남미의 다채로운 리듬처럼 말입니다. 우리 역시 정통 트로트의 틀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적 언어를 흡수하고 현지 정서에 맞게 변주 해야만 비로소 세계 무대에 안착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갈 주역으로 그는 주저 없이 ‘젊은 작곡가’들을 지목했다.
“오랜 시간 활동해온 기성 작곡가들은 기존의 음악적 공식이 굳어져 있어 새로운 변주를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반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감각을 키워온 요즘 젊은 작곡가들은 트로트에서도 묘하고 신선한 뉘앙스를 빚어냅니다. 바로 그 유연성과 독창성이 트로트 세계화를 위한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실행 과제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해외 판로 개척과 음원 유통망 구축, 그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문화원의 활용이다.
“전 세계에 훌륭한 인프라를 갖춘 한국문화원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해외에는 한국의 음악을 깊이 갈망하는 한류 팬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의 세분화된 니즈를 파악해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작곡가와 가수들을 현지에 파견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단순히 노래만 가르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깊은 역사와 문화까지 들려준다면, 트로트는 세계인이 한국을 온전히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K-트로트 국제화 하면 유네스코 가능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이 추진하는 한국 트로트·일본 엔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 프로젝트에 대해 그는 지지와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첫 번째 조언은 ‘명분’이었다.
“트로트라는 장르만 앞세워서는 쉽지 않아요. 가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힘든 사람들이 이 노래로 어떻게 시련을 극복했는지, 그런 주제를 내세워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가요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이것이 정말 필요하구나’ 하는 명분이 생깁니다.”
전쟁과 산업화, 이산과 희망을 함께 기록해온 대중가요의 사회적 역할이 충분히 설명될 때 문화유산으로서의 설득력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탱고의 사회 문화적 가치를 앞세워 공동등재에 성공한 선례와도 맞닿는다.
자신이 부른 ‘잃어버린 30년’이 KBS 이산가족찾기 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 역시, 노래가 시대의 기록이 될 때 세계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살아 있는 증거다.
두 번째 조언은 접근 순서였다.
“유네스코라는 주제는 대중에게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어요. ‘K-트로트 국제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것이 잘되면 유네스코로 들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일본과의 협업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난관을 짚었다. 엔카의 뿌리를 둘러싼 한일 간 시각차, 그리고 미소라 히바리라는 국민적 스타를 배출한 일본이 엔카의 종주국 지위를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고가 마사오가 한국에서 수학한 사실 등 학술적 논점은 풍부하지만, 감정과 자존심이 얽힌 영역인 만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 되는게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것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다시 후배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잘나갈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잘나간다고 평생 잘나갈 것 같습니까?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만으로도 시장이 순식간에 재편되는 걸 우리는 이미 봤잖아요. 눈앞의 인기만 좋으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대중가요가 함께 발전하고,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것, 그것이 먼저 걸어온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그는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성공을 넘어 모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한국 대중음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이다.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몰라서 못 하는 것이지요.”
설운도는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수에 머물지 않는다.
가수이자 작곡가, 프로듀서, 정책 제안자, 그리고 후배를 키워온 선배 음악인으로서 한국 트로트의 흐름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이번 인터뷰는 한 선배 가수의 회고라기보다,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향한 제언에 가까웠다.
그가 던진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미 분배 저작권료의 활용, 오디션 이후의 산업 구조, AI 시대의 창작 환경, 그리고 K-트로트의 세계화 전략까지. 모두 한국 대중음악 산업이 언젠가 반드시 답해야 할 과제들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몰라서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 한마디는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 불가능이 아니라 관심과 의지의 부족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설운도가 던진 질문은 이제 음악계와 정책 현장, 그리고 산업 전체가 함께 답해야 할 숙제가 됐다. 그의 제안이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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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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