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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샐러드] 왜 스페인 선수들은 국가(國歌)를 부르지 않았을까? 월드컵 결승전이 보여준 스페인의 역사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7-25 01:10
스페인 국가에는 반주만 있고 가사는 없다
스페인 황실을 대표하는 ‘레알 마드리드’
독립을 꿈꾸는 카탈루냐의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내전과 헤밍웨이, 조지오웰 그리고 피카소
스페인 국가는 복잡한 역사와 갈등, 화해의 과정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스페인 국가 대표 선수들은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 사진=AI 생성
2026년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다른 나라 선수들처럼 가사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이를 본 많은 시청자들은 “왜 스페인 선수들은 국가를 부르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이는 애국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페인의 국가인 마르차 레알(Marcha Real, 왕실 행진곡)에는 공식 가사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는 국민이 함께 부를 수 있는 가사를 가지고 있지만, 스페인은 음악만 연주하는 매우 드문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특징은 오랜 역사 속에서 겪은 정치적 변화와 지역 갈등, 그리고 국민 통합의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적함대’라는 별칭을 가진 스페인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양 제국 가운데 하나였다.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에 광대한 식민지를 건설하며 세계사를 이끌었지만, 19세기에 들어 국력이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지원하며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고,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 주요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었다. 이 사건은 스페인 제국의 몰락을 의미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후 스페인 사회에서는 국가를 어떻게 다시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새로운 문화와 스포츠가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것이 축구였다. 1902년 마드리드 풋볼 클럽이 창단되었고, 축구를 매우 좋아했던 국왕 알폰소 13세는 1920년 이 구단에 왕실(Royal)을 의미하는 ‘레알(Real)’이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이후 구단은 레알 마드리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였다.
당시에는 단순한 스포츠 클럽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와 국가를 상징하는 구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평소 축구를 사랑한 알폰소 13세(좌)와 왕실을 대표하는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 로고(우)
1936년에는 스페인 현대사는 물론 유럽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공화정부를 지지하는 공화파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 사이에서 약 3년 동안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다.
프랑코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았으며, 스페인 내전은 유럽 각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자신의 무기와 전술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1937년 히틀러의 독일 공군 콘도르 군단이 스페인의 북쪽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하였다. 이 폭격은 군사시설보다 민간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를 공격한 사건으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되었다.
게르니카 폭격은 현대전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공습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불간섭 정책을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이러한 소극적인 대응은 1938년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 전초전 격인 폴란드 침공을 막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페인 반란군 프랑코 장군(좌)과 독일의 히틀러(우)
스페인 내전은 전 세계의 작가와 언론인, 예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종군기자로 전쟁을 취재하였으며, 이후 세계적인 작품인 『어린 왕자』를 집필하였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을 직접 취재하였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개인의 희생과 자유, 인간의 존엄성, 전쟁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헤밍웨이는 이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단순히 전쟁을 취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화파 민병대에 직접 참전하였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카탈루냐 찬가』에 기록하였으며, 이후 전체주의 사회를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를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권력이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는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남아 있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 기자로 참가한 미국의 헤밍웨이(좌)와 '카탈루냐 찬가'를 발표한 영국의 조지 오웰(우)
예술가들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게르니카 폭격 소식을 듣고 대형 회화 「게르니카」를 제작하였다. 흑백으로 표현된 이 작품은 폭격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동물들의 고통을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전쟁과 폭력에 대한 인류의 대표적인 반전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원본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피카소가 히틀러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폭격을 묘사한 '게르니카'
1939년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이후 약 40년 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하였다. 그는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하며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억압하였다. 학교와 공공기관에서는 스페인어 사용을 강요하였고, 카탈루냐어와 바스크어 사용은 크게 제한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지역 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지역 정체성과 자치권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축구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FC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축구팀이 아니라 카탈루냐인의 역사와 문화, 자부심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수도와 국가를 대표하는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두 팀이 맞붙는 엘 클라시코(The Classic, 고전적인 경기)는 세계 최고의 축구 경기 가운데 하나일 뿐 아니라 스페인의 역사와 정치, 지역 정체성이 함께 드러나는 상징적인 경기로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엘 클라시코를 “축구 이상의 경기”라고 표현한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축구 이상의 고전적인 경기 '엘 클라시코' / 사진=연합뉴스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한 뒤 스페인은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되었고,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의 자치권도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진 정치적 갈등과 지역 간의 역사적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은 왕정과 공화정, 내전과 독재, 민주화를 모두 경험한 나라였기 때문에 국민들의 역사 인식과 정치적 성향도 매우 다양하였다.
국가의 가사를 새롭게 만들려는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특정 정치 세력이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어느 한쪽의 입장도 담지 않는 현재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공식 가사를 채택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스페인의 국가 「마르차 레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가운데 하나이지만 공식 가사가 없다.
따라서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국가가 연주되면 선수들은 음악에 맞춰 경의를 표할 뿐, 함께 부를 가사는 없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 선수들이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페인 국가에 가사가 없는 이유는 단순한 전통 때문이 아니라,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의 국가적 위기와 스페인 내전, 프랑코 독재, 지역 갈등, 민주화 이후 국민 통합 과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따라서 스페인의 국가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와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음악만 들으며 국가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그 의미를 더욱 깊이 알 수 있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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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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