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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인터뷰: 최진희 ①] ‘사랑의 미로’부터 ‘천상재회’까지… 노래로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8-10 15:28
외할머니 댁의 작은 라디오 들으며 가수 꿈 키워
신문광고 한 장 들고 무작정 상경 오디션에 합격
작곡가 김희갑과 운명의 만남, 명곡 가수길 열어
‘판’도 없이 홍보 ‘사랑의 미로’ 예상외 대히트
북한서도 최고인기, 4번이나 방북해서 공연기록
□ 40여 년, 시대를 울린 가수 최진희 인터뷰 ①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 수 없어요.
사랑으로 눈먼 가슴은 진실 하나에 울지요~.”
노래방 반주기에서 이 전주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이크를 고쳐 잡는다.
발표된 지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애창곡 목록 한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노래, 바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끝을 알 수 없는 미로(迷路)였겠지만, 가수 최진희에게 ‘사랑의 미로’는 달랐다. 그 노래는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을 넘어, 한 무명 가수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트롯뉴스가 레전드 가수 최진희를 만났다.
인터뷰 1편에서는 한 소녀가 전주의 작은 라디오 앞에서 노래를 꿈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이름을 새기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 길에는 화려한 성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무대와 무대를 떠돌던 무명 시절, 운명처럼 만난 작곡가 김희갑, 그리고 ‘그대는 나의 인생’과 ‘사랑의 미로’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가 있었다.
40여년 간 숱한 명곡을 발표했던 레전드 가수 최진희는 어 린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 사진=본인 제공
트랜지스터라디오, 아버지의 기타
최진희의 음악적 모태는 예향(藝鄕) 전주다. 전주 대사습놀이와 국악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고장에서 자란 그는 “전주가 원래 그런 인재가 많은 곳”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유년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집에는 라디오조차 없었다. 어린 최진희가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외할머니댁의 작은 트랜지스터라디오였다.
“배터리가 라디오 본체보다 더 컸던 시절이에요. 주파수가 안 맞으니까 지지직거리는 잡음을 뚫고 노래가 들려오는데,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몰라요.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못 듣게 하면 서러워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귀에 박힌 노래가 가수 김상국의 ‘불나비’였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짙은 정서가 담긴 곡이었지만, 그는 그 노래를 오래 기억했다.
음악적 뿌리의 진짜 주인은 아버지였다.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풍금과 기타를 능숙하게 다뤘다. 엄한 할아버지 밑에서 정작 자신은 노래의 꿈을 입 밖에 내지도 못했던 아버지는, 딸이 노래하겠다고 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아버지도 노래하고 싶으셨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워낙 엄하셔서 말을 못 꺼내셨던 거죠. 제가 노래한다고 하니까 대리만족을 하신 거예요.”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딸의 손에 차비를 쥐여줬다.
데뷔 이후 KBS ‘가요무대’ 초기, 방송에서 처음 듣는 옛 노래를 부르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최진희의 구원투수도 아버지였다. 인터넷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 곡명을 대면 아버지는 즉석에서 기타를 튕기며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딸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신문광고 한 장, 그리고 무작정 상경
고등학교 시절 그는 학교에서 음악 관련 부장을 맡을 만큼 노래로 인정받았고, 선생님으로부터 클래식 전공을 권유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귀는 이미 대중가요를 향해 열려 있었다.
인생을 바꾼 것은 신문광고 한 장이었다.
친구가 오아시스 레코드의 가수 선발 오디션 공고를 오려 들고 왔다. 당시에는 레코드사가 직접 가수를 뽑던 시절이었다.
“차비도 없어서 못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자기가 차비를 대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했어요.”
결과는 얄궂었다. 차비를 대준 친구는 떨어지고, 최진희만 합격했다. 그는 졸업도 하지 않은 채 서울에 남았다.
그러나 합격이 곧 데뷔는 아니었다. 노래 몇 곡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금세 깨달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력을 진짜 단단하게 만들려면 밴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돈도 벌고 보컬 실력도 키운 밤무대
연고도 연락처도 없던 그는 가수협회의 문을 두드려 업소를 소개 받았다. 그렇게 명동과 무교동 일대의 라이브 무대를 돌기 시작했다. 노래 잘하는 신인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무대가 또 다른 무대를 불러왔다.
첫 무대는 명동성당 앞, 영화배우 김보해 씨가 운영하던 작은 경양식집이었다. 피아노 한 대만 놓인 조용한 무대. 그는 유독 그런 자리를 좋아했다.
“악기 소리가 제 목소리를 가리는 게 싫었어요. 피아노 한 대만 놓고 노래하는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온전히 보여주는 게 좋았습니다.”
그 무대에서 그는 ‘하얀 손수건’과 송창식의 ‘비와 나’ 같은 포크와 스탠다드 팝을 불렀다.
훗날 ‘트로트를 불러도 발라드가 되는’ 최진희 창법의 뼈대가 이때 세워졌다.
여성 6인조 밴드 ‘양떼들’ 활동도 이 무렵이다. 남성 단장을 두고 업소를 돌았는데, 첫 무대 개런티가 3만 원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결코, 적지 않은 대우였다.
하지만 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여섯 명이나 되니 말이 얼마나 많은지, 이 친구랑 싸우면 저 친구가 그만둔다고 하고,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어요.”
그는 밴드를 나와 홀로 무대에 섰다. 솔로 전향 이후의 기록은 지금 들어도 놀랍다.
통행 금지가 있던 시절, 나이트클럽과 호텔을 오가며 하루 두 차례 ‘투 스테이지’를 소화한 그의 월수입은 180만 원에 달했다. 공무원 월급이 4~5만 원이던 때, 그것도 ‘무명가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돈으로 그는 전주의 어머니에게 서울 집을 마련해 드렸다. 결국, 어머니도 서울로 올라왔다. 화려한 데뷔 이전에, 그는 이미 무대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활인이었다.
당대 최고 작곡가 김희갑이 ‘픽’하다
삼정호텔(한국나이트), 도쿄호텔, 센트럴호텔을 거쳐 앰배서더호텔 무대에 서던 어느 날, 일생일대의 만남이 찾아왔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 김희갑이었다.
당시 김희갑은 대중가요 작업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시기였다. 그는 A 밴드의 리더였고, 최진희는 B 밴드의 리드싱어였다.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꼬마야, 이리 와봐’ 하시는 거예요. 가니까 ‘노래 진짜 잘한다. 내가 너를 보니까 다시 가요를 해야겠다.’라고 하시더군요. 어린 마음에 감사하다고 인사만 드렸는데, 며칠 뒤에 진짜로 곡을 써 오셨어요.”
그 곡이 그룹 ‘한울타리’ 명의로 발표된 드라마 주제가 ‘그대는 나의 인생’이었다.
녹음 날, 김희갑은 이렇게 말했다. “녹음실로 와라. 씻을 필요도 없고 슬리퍼 신고 와도 돼.” 어린 가수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거장의 배려였지만, 최진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정말 씻지 않고 슬리퍼를 신은 채 녹음실로 향했다.
그곳이 당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장충 녹음실이었다.
“그때는 가수들이 장충 녹음실에 가면 떨려서 노래도 못 할 때였어요. 규모나 시설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김희갑은 그런 그를 녹음실 안 서재로 들여보냈다. “편하게 쉬고 있어. 눕고 싶으면 누워 있어.” 최진희는 정말로 누워서 기다렸다. 그러다 “이제 노래 좀 해보자.”라는 말에 마이크 앞에 섰다.
최진희는 어린 시절 호텔 무대에서 우연히 만난 김희갑과의 인연은 훗날 최진희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게 되었다. 사진은 최진희가 활동했던 '한울타리' 앨범자켓 / 사진=김희갑 작곡집
릴 테이프 하나가 불후의 명곡이 되다
이후 벌어진 일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다.
정식 음반 제작 계획 없이 릴 테이프 하나를 만들어 방송국에 보냈는데, 그 노래가 먼저 터져버린 것이다.
“노래는 계속 방송에 나오는데 팔 레코드판이 없었어요. 판도 없는 노래가 히트한 거죠.”
한두 달을 그렇게 흘려보낸 뒤 레코드사는 부랴부랴 음반 제작에 착수했다. 그렇게 급히 만들어진 단 한 장의 음반에 담긴 곡목은 이렇다.
‘그대는 나의 인생’
‘사랑의 미로’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물보라’
‘여심’
‘눈물의 승차권’
발표 시기도, 활동 명의도 제각각이던 곡들이 한 장에 묶였다. 그리고 수록곡이 차례로 히트했다.
한 장의 음반이 한 가수의 대표곡 전부를 품게 된, 흔치 않은 기록이다.
리메이크로 태어난 인생곡 ‘사랑의 미로’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을 묻자 답은 망설임 없이 돌아왔다.
“사랑의 미로죠.”
이 곡의 출발점은 최진희의 기억이었다. 어린 시절 들었던 가수 태원의 ‘너의 사랑’, “금잔디 언덕에 올라 옛날을 회상해보니~”로 시작하던 그 노래를 그는 잊지 못했다. 태원은 김희갑의 처남이기도 했다.
“선생님, 저 ‘너의 사랑’이라는 노래하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자 김희갑은 흔쾌히 답했다. “그래? 그럼 가사도 좀 바꾸고 해야지, 그냥 하면 안 되지.”
새로 쓰인 가사를 최진희는 자기 방식으로 불렀다. 가사를 잘게 쪼개 리듬감을 살린 것이다. 같은 멜로디도 누가 어떻게 나누어 부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는 것을 그는 이때 증명했다.
40년이 넘게 부른 지금도 이 노래는 조금씩 달라진다.
“‘가요무대’에서는 원곡 그대로 부르고요, 행사에서는 편곡을 다시 하거나 조금 프리한 템포로 부르기도 해요. 오래 부르다 보면 저도 다르게 불러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최진희의 대표작 '사랑의 미로'는 발표된 지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애창곡 목록 한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노래다. 이 노래는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을 넘어, 한 무명 가수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인생의 이정표가 됐다. /사진='사랑의 미로' 수록 앨범
휴전선 너머 북한까지 울린 목소리
최진희의 목소리는 휴전선 너머까지 닿았다. 그는 남측 가수 가운데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해 공연한 대표적인 가수다. 첫 방북은 1992년이었다.
“1992년에 처음 갈 때는 베이징을 거쳐 이틀이 걸렸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갈 때는 서해로 35분 만에 들어갔어요.” 같은 목적지를 향했지만, 이동 경로와 시간은 전혀 달랐다.
그 두 번의 여정 사이에는 남북 관계의 부침과 시대의 변화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최진희의 노래는 북한에서도 인기가 있어 국내 가수로는 최다인 4회나 북한을 방문해서 공연을 했다. / 사진=평양공연 사진 공동 취재단 제공
그런데 최진희가 북한에서 만난 것은 단지 공연장만이 아니었다. 그의 노래가 이미 북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사랑의 미로’였다.
‘사랑의 미로’는 북한에서 발간된 외국 민요집 등에 수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가사는 북측의 표현에 맞게 바뀌어 불린 것으로 최진희는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정식 공연 무대가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노래를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 가면 한복 입은 분들이 단체로 그 노래를 불러요. 고려호텔에서는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흥얼거리는 것도 봤고요.”
최진희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자신이 남쪽에서 부른 노래가 국경을 넘어 북한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고 있었다. 그것도 특별한 공연장이 아니라 식당에서, 호텔에서, 일상의 한 장면 속에서.
노래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사랑의 미로’는 그렇게 남과 북에서 모두 사랑받은 노래가 됐다.
노래방서, 경연대회서 여전히 불리다
발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래방에서, 방송에서, 후배 가수들의 경연 무대에서 끊임없이 다시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 노래의 중심에는 언제나 최진희의 목소리가 있다.
수많은 가수가 ‘사랑의 미로’를 다시 불렀지만, 원곡의 첫 소절만으로도 단번에 최진희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목소리는 단순히 노래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성과 이야기를 함께 실어 날랐다.
돌이켜보면 최진희의 음악 인생은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온 여정이었다. 전주의 작은 라디오에서 시작된 노래에 대한 동경은 서울의 밤무대로 이어졌고, 밴드의 무대는 김희갑을 만나 ‘그대는 나의 인생’과 ‘사랑의 미로’라는 운명적인 노래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노래는 다시 국경을 넘어 남과 북의 사람들에게 불렸다.
한 소녀가 라디오 앞에서 귀 기울여 듣던 노래가 어느덧 한반도를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노래가 된 것이다. 그것이 최진희가 걸어온 길이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레전드 인터뷰 최진희 ②]에서는 트로트와 발라드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온 최진희가 바라보는 오늘의 가요계와 후배 가수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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