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노인의 낙상 위험을 평가할 때 흔히 쓰는 방법은 평평한 바닥을 편안하게 걷게 한 뒤 속도나 걸음 수를 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용한 ‘단일 과제’ 걷기 검사만으로는 실제 일상에서 넘어질 위험이 큰 사람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아직 건강 상태가 양호해 보이는 고령자일수록 기존 검사에서는 ‘이상 없음’ 판정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정작 낙상 위험이 숨어 있는 사람을 놓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제학술지 BMC Geriatrics에 발표된 중국 베이징체육대학 등 연구진의 논문은 이 문제에 실마리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고령자 209명(낙상 경험자 50명, 미경험자 159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발밑 지면이 갑자기 흔들리는 상황에서 색깔과 글자가 일치하지 않는 단어를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인지 과제(스트룹 과제와 유사한 방식)를 동시에 수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정밀 광학 장비로 참가자들의 걸음걸이를 측정했다.
연구팀은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고령자 209명(낙상 경험자 50명, 미경험자 159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두 가지를 동시’ 시키자 리듬깨져
연구 결과, 단순히 걷기만 할 때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던 참가자들도 지면 흔들림과 인지 과제가 겹치는 상황에서는 걸음의 리듬이 뚜렷하게 흐트러졌다.
특히 한 걸음 한 걸음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들쭉날쭉한지를 나타내는 ‘보행 주기 변동성’ 지표가 낙상 위험을 가려내는 데 가장 강력한 단서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밖에도 여러 인체 계측·신체활동·임상 평가 지표를 포함한 데이터를 8종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학습시켜 낙상 위험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이 가운데 가장 성능이 좋은 모델은 최대 87.9%의 정확도와 0.927의 판별력(AUC)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병원에서 흔히 쓰는 균형·보행 평가 척도들이 오히려 한계를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이미 신체 기능이 좋은 편인 고령자들은 이런 척도에서 대부분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정작 위험군과 안전군을 구분하는 힘이 약해지는 이른바 ‘천장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인지 과제와 지면 흔들림을 동시에 준 상태에서의 보행 데이터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 안에 숨어 있는 미세한 운동 불안정성을 포착해냈다.
AI와 광학 동작 분석 장비로 분석
‘걸으면서 말을 하다가 걸음을 멈추는 사람이 낙상 위험이 높다’는 관찰은 학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보고돼 온 현상이다.
1997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요양 시설 거주 노인 중 대화를 하면서는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이후 낙상을 더 많이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여러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서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때 걸음이나 과제 수행이 눈에 띄게 나빠지는 사람의 낙상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나왔다.
걷기는 단순한 다리 움직임이 아니라 균형을 잡고, 방향을 살피고, 주변 상황을 처리하는 여러 뇌 기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복합적인 행동이다. 이 때문에 여기에 인지적 부담이 조금만 더해져도 감춰져 있던 약점이 드러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번 신규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현상을 광학 동작 분석 장비와 인공지능 분석을 결합해 훨씬 정교하게 수치화하고, 어떤 지표가 실제로 낙상을 가장 잘 예측하는지 구체적으로 짚어냈다는 데 있다.
연구팀은 이 접근법이 앞으로 지역사회 건강검진이나 노인 대상 스크리닝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도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스스로 점검해 볼 수 있는 방법
전문 장비가 없어도 이런 원리를 일상에서 참고할 방법은 있다.
평소 대화를 하면서 걷다가 말이 끊기거나, 걸음을 멈춰야만 대화나 계산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몸의 균형 조절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병원 재활의학과에서도 근력 저하, 균형 감각 저하, 시청력 감퇴, 여러 만성질환의 동반, 4종 이상의 약물 복용, 75세 이상의 고령 등을 낙상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으로 꼽고 있다.
낙상을 예방하기 위한 기본은 결국 꾸준한 움직임이다. 가볍게 땀이 날 정도의 걷기를 주 3회 이상, 20분씩 실천하고, 하체 근력을 키우는 스쿼트나 뒤꿈치 들기,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잡는 훈련을 병행하는 것이 권장된다.
여기에 더해 평소 걸으면서 대화하기, 걸으면서 암산해보기처럼 가벼운 이중 과제 걷기를 의식적으로 연습해보는 것도 자신의 보행 안정성을 스스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미 낙상을 경험했거나 걸음에 불안감을 느낀다면 자가 점검에 그치지 말고 병원이나 재활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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