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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예고] 트로트의 세계화 과제 앞에서… 아시아의 가희 ‘등려군’을 다시 읽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9-23 14:22

트로트문화원·트롯뉴스 공동기획 시리즈

‘등려군, 아시아를 노래하다’ 12회 연재

아시아를 울린 천재여가수의 일생 조명

트로트 세계화 성공을 위한 교훈 찾기

트로트는 지금 두 개의 문 앞에 서 있다. 하나는  포화상태에 있는 국내시장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시장이라는 문이다. 앞의 문은 이미 열려 있고, 뒤의 문은 아직 손잡이조차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다.

이 시리즈는 그 두 번째 문을 여는 방법을 한 사람의 생애에서 찾는다. 대만 윈린현의 가난한 외성인(外省人) 가정에서 태어나 42세에 세상을 떠난 여가수, 등려군(鄧麗君·덩리쥔·Teresa Teng)이다.

등려군은 아시아 대중음악사에서 유일하게 '국경을 자산으로 바꾼' 가수다. 중국어권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최고 가수가 됐고, 동남아 화교사회를 장악했으며, 미국·유럽 무대에 섰고, 정작 자신의 노래가 금지된 중국 본토에서 10억 인구의 밤을 지배했다. 그리고 사망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은 재생되고, 추모 공연이 열리며, 저작권과 초상권이 산업으로 돌아간다.

트로트가 배워야 할 것은 등려군의 히트곡이 아니다. 

한 명의 가수가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그 과정이다.

이 시리즈는 트롯뉴스가 향후 추진하는 '트로트-엔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 프로젝트의 사전 담론 작업이기도 하다. 트로트와 엔카가 왜 한 뿌리에서 갈라진 아시아 근대 대중가요인지를 설명하려면, 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낸 증인이 필요하다. 등려군이 바로 그 증인이다.

트롯뉴스는 본 예고편에 이어 10월부터 매주 화요일, 본편 12회로 구성한 트로트문화원 트롯뉴스 공동기획시리즈 [등려군, 아시아를 노래하다]을 연재한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서 노래가 국경을 건넌 경로를 살펴볼 예정이다. 트로트의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지금, 그 과정에서 배울 점과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지점을 함께 묻는다.


등려군(鄧麗君)은 아시아 대중음악사에서 유일하게 '국경을 자산으로 바꾼' 가수다. 중국어권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최고 가수가 됐고, 동남아 화교사회를 장악했으며, 미국·유럽 무대에 섰고, 정작 자신의 노래가 금지된 중국 본토에서 10억 인구의 밤을 지배했다.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세상 떠난 뒤에도 이어지는 노래

 

등려군은 1995년 5월 8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천식 발작으로 숨졌다. 마흔두 살이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지금도 대만 신베이시 진산의 묘역 균원(筠園)은 그의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찾는 장소다.

그의 생전 인기를 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사후에도 노래가 여전히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6년 홍콩에서 개봉한 영화 ‘첨밀밀’은 등려군의 노래를 두 주인공의 삶과 사랑을 관통하는 음악으로 사용했다. 대만의 유명 가수이자 작곡가 ‘주걸륜(저우제룬·Jay Chou)은 2013년 공연에서 영상 기술로 구현한 등려군과 듀엣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등려군은 한 시대의 추억에 머물지 않고, 다른 세대의 작품과 무대에서 다시 등장했다.

그 이유를 음반 판매량이나 추모 열기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등려군의 노래에는 지역마다 다른 기억이 쌓여 있다. 어떤 청중에게는 라디오에서 들은 사랑 노래이고, 다른 청중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다. 일본의 청중은 일본어로 부른 히트곡을, 영화 ’첨밀밀‘을 먼저 본 청중은 영화 속 노래를 통해 그를 기억한다. 같은 가수의 목소리가 여러 문화권에서 각자의 삶과 만나고 있는 셈이다.



국경을 건널 때 무엇을 바꿨나

 

등려군을 ‘여러 언어로 노래한 가수’라고만 소개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다. 그는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에서 활동 기반을 넓혔고, 일본에서는 현지 제작과 유통 체계 속에서 새 경력을 만들었다. 일본 시장에서의 성취는 이미 얻은 명성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결과가 아니었다. 신인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중단과 복귀를 거치며 일본 청중에게 자신의 노래를 다시 들려준 결과였다.

여기서 한국 트로트에도 필요한 질문이 나온다. 현지어로 한 곡을 부르는 것만으로 청중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을까. 현지 작곡가와 제작자, 방송과 공연 기획자, 음반 유통망과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야 할까.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 나라의 청중이 노래를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등려군의 시대와 오늘의 음악 산업은 다르다. 지금은 영상 플랫폼과 온라인 팬덤을 통해 해외 청중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무대 밖의 노력과 과정까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번시리즈 연재는 등려군의 선택을 그대로 오늘에 대입하기보다, 그가 각 지역의 청중과 호흡하고 관계를 맻는 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한때 연인사이 였던 등려군(우)과 성룡(좌)/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트로트와 엔카를 생각하는 이유

 

이 기획은 한국과 일본의 대중가요사를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대한민국트로트문화원은 트로트와 일본 엔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동등재를 중장기 과제로 구상하고 있다. 이를 논의하려면 두 장르가 어디에서 영향을 주고받았고, 각 사회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공동등재의 선례는 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함께 신청한 탱고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포르투갈의 파두는 2011년, 자메이카의 레게는 2018년 등재됐다. 다만 트로트와 엔카를 함께 논의할 수 있는지는 두 장르의 역사와 전승 공동체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문제다. 앞선 등재 사례가 곧바로 두 장르의 공동등재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등려군은 이 질문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의 식민 통치 경험이 남아 있는 대만에서 태어났고, 일본 가요계에서도 활동했다. 그의 경력에는 서로 다른 지역의 음악이 만나는 순간과 그 사이의 역사적 긴장이 함께 들어 있다. 등려군의 노래를 통해 트로트와 엔카가 같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장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쉽게 지나쳐 온 역사와 청중의 경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한국은 왜 등려군을 늦게 만났나

 

등려군이 아시아 곳곳에서 활동하던 1970~8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그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그가 주로 활동한 일본과 중화권의 음악을 한국 청중이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지금보다 좁았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1998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뤄졌고, 한국과 중국의 수교는 1992년에 이뤄졌다.

한국 관객에게 등려군의 노래를 널리 각인한 작품 중 하나는 영화 ‘첨밀밀’이다. 영화는 홍콩에서 1996년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1997년 3월 개봉했다. 등려군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첨밀밀(甜蜜蜜)’과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아는 사람도, 그가 대만과 홍콩, 일본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까지 아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가 ‘첨밀밀을 부른 가수’로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 노래가 수많은 청중에게 닿기까지의 시간을 아직 읽지 않은 셈이다. 이번 연재는 바로 그 시간을 따라간다.


한국 관객에게 등려군의 노래를 널리 각인한 작품 중 하나는 영화 ‘첨밀밀’이다. 영화는 홍콩에서 1996년 개봉했고, 한국에서는 1997년 3월 개봉했다. 등려군이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사진=영화 '첨밀밀'(좌) 등려군 '첨밀밀' 수록 앨범(우)

 

12회 시리즈에서 다룰 이야기

 

연재는 등려군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되, 매회 하나의 질문을 중심에 놓는다.

제1회는 어린 나이에 노래를 시작한 등려군과 그의 가족을 만난다. 제2회는 녹음실과 무대에서 목소리를 다듬어 간 과정을 살펴본다. 제3회는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 활동을, 제4회와 제5회는 일본 진출과 여권 사건, 복귀 후의 성공을 다룬다. 제6회는 여러 언어로 노래하며 청중을 넓힌 방식을, 제7회는 중국 본토에서 그의 노래가 놓였던 복잡한 정치적 위치를 따라간다.

제8회는 군 위문 공연과 그에게 붙은 ‘군중정인(軍中情人)’이라는 이름을 살펴본다. 제9회는 무대 밖의 등려군을 전하는 기록과 증언을 검토한다. 제10회는 ‘월량대표아적심’, ‘첨밀밀’, ‘담담유정’ 등 주요 작품을 음악 자체에 집중해 읽는다. 제11회는 치앙마이에서의 죽음과 장례를, 제12회는 사후에도 이어진 노래의 생명력과 트로트의 해외 진출에 남긴 질문을 정리한다.

각 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화도 자료를 대조해 살필 예정이다. 오래 반복됐다는 이유만으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확인되는 기록과 해석을 구분해 전한다.


 

등려군에게서 뭘 배울 수 있나

 

이 연재가 등려군의 삶에서 성공 공식 하나를 찾아내려는 것은 아니다. 

가수가 활동하던 시대의 방송 환경과 음반 시장, 오늘의 온라인 플랫폼은 다르다. 그에게 가능했던 선택이 지금의 트로트 가수에게도 그대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등려군은 오래 생각할 만한 질문을 남겼다. 

다른 언어로 노래할 때 무엇을 익혀야 하는가. 처음 만나는 청중에게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인가. 한 나라에서의 인기를 다른 나라에서의 관계로 이어가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가.

한국 트로트가 세계의 청중을 만나려는 지금, 이 질문들은 추상적인 구호보다 구체적이다. 트롯뉴스는 앞으로 12회에 걸쳐 등려군이 지나간 무대와 그곳에 남은 노래를 따라간다. 그 길에서 오늘의 트로트가 참고할 수 있는 경험도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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