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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_모리 신이치] “소리 내 울지 않아도 슬픔은 전달”… 박수도 잊도록 관객 울리는 저음 마력

박강민 기자 oasispool@naver.com

등록 2026-02-09 10:43

“노래는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만큼 나오는 것”

손짓 제스쳐 최소화… 관객을 설득하지 않고 다가오도록

감정을 안으로 응축 절제… ‘멋지게 슬퍼하는 법’ 알려줘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 ③ ‘엔카의 소울’ 모리 신이치(森進一)

 

대한민국 유일의 트로트 전문 매체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전하는 2026년 신년 특별 기획,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시리즈의 세 번째 시간이다. 지난 연재에서 우리는 ‘여왕’들의 비극과 정통의 미학을 만났다. 오늘 우리가 마주할 주인공은 축제가 끝난 뒤, 홀로 남은 차가운 골목길에서 담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고독을 노래한 남자다.

‘남성 엔카의 교과서’이자 ‘허스키 보이스의 화신’이라 불리는 모리 신이치(森進一). 그의 깊은 저음 속에 숨겨진 고독의 미학을 파헤친다.


 사진=BS일 텔레 / 가요 프리미엄 특별판 모리 신이치 '노래의 기쁨'

 

‘도시적 고독’ 그리고 ‘남자의 눈물’

 

키타지마 사부로가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면, 모리 신이치는 불 꺼진 선술집 구석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사내의 무거운 어깨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의 노래에는 군중을 선동하는 힘도, 세상을 향한 우렁찬 사자후도 없다. 대신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도시적 고독’과 ‘남자의 눈물’을 노래했다.

1966년 데뷔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일본 남성들이 슬픔을 표출하는 방식을 정의해 왔다. 

소리 내어 울지 않아도 슬픔은 전달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낮게 깔리는 저음이 더 큰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모리 신이치. 그의 목소리는 어떻게 한 시대의 정서적 기준선이 되었을까.

 

 

“더 울면 노래가 거짓이 됩니다.” 

 

모리 신이치는 평소 여러 인터뷰를 통해 “노래는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 만큼 나온다.”라며 연습보다 ‘삶의 태도’가 노래를 만든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그에게 노래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의 증명이었다.

그의 창법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젊은 시절, 한 프로듀서가 “조금 더 감정을 올려라, 더 울어라”라고 주문하자 모리는 이렇게 답했다. “이미 충분히 울고 살아왔습니다. 여기서 더 울면 노래가 거짓이 됩니다.” 

이 단호한 대답은 엔카 특유의 ‘울음’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견뎌낸 뒤 찾아오는 체념의 결과라는 그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숨을 고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그 짧은 쉼표 사이에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담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고독을 노래한 ‘미나토마치 블루스’


 '미나토마치 블루스' 수록앨범

 그의 대표곡으로 1969년 발표한 ‘미나토마치 블루스(港町ブルース, 항구 도시 블루스)’는 모리가 노래하는 고독의 정수를 가장 시적으로 집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港町ブルース(항구도시블루스)

 

발돋움하여 바라보는 해협을

오늘도 뱃고동 소리가 멀어지네요

당신께 드린 밤을 돌려주세요

항구 항구 하코다테 지나가는 비

 

흐르는 눈물로 희석한 술은

날 속인 남자의 맛이 나요

당신 모습을 잊지 못해 연연하며

항구 미야코 카마이시 케센누마~

 

이 노랫말에서 ‘발돋움’은 떠난 이를 향한 미련의 물리적 표현이자,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리를 확인하는 고통스러운 몸짓이다. 멀어지는 고동 소리는 관계의 단절을 고하는 마침표가 아니라, 남겨진 자의 가슴 속에서 끝없이 반향을 일으키는 고독의 절규다.

모리 신이치는 여기서 슬픔을 소리 높여 고백하지 않는다. 

다만 멀어지는 풍경을 정지 화면처럼 응시함으로써, 청중에게 그 적막한 여백 속에 자신의 슬픔을 투영하게 만든다. 

그의 저음은 이 대목에서 노래가 아닌, 항구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되어 청중의 가슴 속으로 침투한다.

 

미나토마치 블루스(港町ブルース)는 등려군 등 많은 가수가 커버하며 사랑 받았고, 한국에서도 ‘항구 블루스’로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다. 발매된 후 2주 만에 오리콘 차트 10위권에 올랐으며,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모리 신이치가 발표한 모든 싱글 중에서 가장 많은 250만 여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노래 끝나면 눈물 훔치느라 ‘정적’

 

모리 신이치의 라이브 무대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무대 위에서 그는 고개를 크게 들지 않으며, 손짓이나 제스쳐를 최소화한다. 마이크와의 거리조차 일정하게 유지한 채, 관객과 눈을 맞추기보다 바닥이나 먼 허공을 응시한다.

일본 공연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다가오게 만드는 무대”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공연은 노래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정적이 흐르기로 유명하다. 관객들이 그의 노래에 심취해 눈물을 훔치느라 박수 칠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이다. 

홍백가합전 스태프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카메라의 존재조차 잊은 듯 오직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그는 관객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하는 대신, 자신의 고독한 자리를 묵묵히 지킴으로써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들고 찾아오게 했다.


 사진=스포니치

 

인생은 회복이 아니라 수용이다 

 

모리 신이치의 노래가 애절한 이유는 그의 인생 서사 자체가 고독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출하여 어머니와 살면서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 졸업 후 바로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 신문 배달, 세탁소 일 등을 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이후 그가 가수로 성공한 직후인 1970년,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어머니가 자살하면서 그에게 평생의 한과 트라우마로 남았다.

 

두 번의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1980년 배우 오하라 레이코와 결혼했으나, 약 4년 만에 이혼했고, 1986년 당시 인기 가수였던 모리 마사코와 두 번째 결혼하면서 연예계 잉꼬부부로 불렸으나, 19년 만에 이혼하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부모의 이혼, 성공 뒤에 찾아온 가족 간의 비극적 서사는 그에게 고독을 ‘실체’로 만들었다.

 

그의 생애 철학은 “인생은 회복이 아니라 수용”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의 노래에는 극복이나 희망 같은 단어가 드물다. 대신 받아들임, 견딤, 그리고 불행과 공존하며 함께 늙어가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이는 일본 전통 미학인 ‘와비사비(侘び寂び, 불완전함 속에서 본질적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일본 전통 철학)’ 혹은 사물에 대한 애틋한 정취를 뜻하는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으로, 사물의 덧없음, 무상함,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 속에서 느끼는 애틋하고 슬픈 정서를 의미)’와 깊게 맞닿아 있다.

 

그는 스스로 화려한 ‘스타’보다 ‘우타이테(歌い手, 온라인 플랫폼에 ‘커버 또는 자작곡 공연을 업로드하는 아마추어 가수’를 가리키는 일본 신조어)’로 인식했다. 

예능 출연을 최소화하고 사생활 노출을 자제하며 오직 노래로만 세상과 소통했던 그의 선택은, 역설적으로 그가 늙어갈수록 노래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었다.

 

 

10년 후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모리 신이치의 영향력은 대한해협을 넘어 한국 트로트계에도 깊게 뿌리내려 있다. 70~80년대 한국 남성 가수들에게 그는 ‘멋지게 슬퍼하는 법’을 알려준 기준점이었다.

한국 트로트의 주류가 감정을 밖으로 분출하고 호소하는 ‘폭발’의 미학에 가깝다면, 모리 신이치는 감정을 안으로 응축하고 체념하는 ‘정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나훈아의 카리스마와 중저음 바이브레이션 속에는 모리 신이치가 구축한 남성적 호소력의 정서가 서려 있으며, 설운도 등 많은 가수에게서 그의 절제된 애절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던지는 교훈은 2026년 K-트로트 열풍 속에서도 유효하다. 

경연 우승과 예능 소비로 이어지는 빠른 소모 구조 속에서, 모리 신이치는 “이 가수는 10년 뒤에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연출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할 때, 때로는 아무런 장식 없는 정적인 무대가 관객의 가슴을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준다.


 BS 아사히 / '인생, 노래가 있다' 


감정이 남긴 침묵을 노래하다

 

모리 신이치는 노래로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감정이 남긴 침묵을 노래한다. 그의 저음은 울음이 아니라, 울고 난 뒤에 홀로 삼키는 깊은 숨이다. 

그는 대중에게 다가가려 애쓰지 않았지만, 그가 지키고 선 자리가 너무나 정직했기에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했다.

지금 이 시대의 트로트가 과도한 서사와 즉각적인 감동에 치중하고 있지 않은지 묻게 되는 오늘, 모리 신이치의 거친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운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한다. 

“괜찮다, 나도 그만큼 외롭다.”

슬픔을 과시하지 않아도, 고음을 내지르지 않아도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의 음악은 2026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장 따뜻한 저음이자, 소진되지 않는 예술의 본질로 남아 있다.



  

➭다음 편 예고: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제 4편은 키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 “축제의 열기로 일본의 혼을 깨우다”: 일본 열도를 뒤흔든 압도적인 성량과 기개, ‘엔카의 제왕’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사나이의 인생 역정을 파헤칩니다.


박강민

박강민

기자

oasispool@naver.com

박진수

박진수 12시간 전

시리즈 잘 보고 있습니다. 매편, 주옥 같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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