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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늘이 젊은 날’ 작사가 한시윤 “노래 가사는 나를 비우고 가수를 채우는 배려의 문학”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4-17 12:01
카톡 프로필이 가사로 ‘오늘이 젊은 날’ 대박
우연한 기회에 이어진 거장 정경천과 인연
박서진 김태연 등 젊은 트로트 가수와 작업
“슬픈 가사라도 끝은 절망적이지 않아야”
“‘킬리만자로 표범’ 같은 명곡 만드는 게 꿈”
□ 트로트계 러브콜 쇄도 작사가 한시윤
트로트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려 보았을 구절이 있다.
“나이야 가라~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국민 가수 김용임의 목소리를 타고 전국을 누빈 이 노래의 작사가가 누구인지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한시윤.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나, 트로트 업계에서 그는 ‘거장 정경천이 가장 신뢰하는 작사가’이자 ‘가수들이 먼저 찾아오는 조력자’로 통한다.
최근 트로트계에서 가장 뜨거운 러브콜을 받는 작사가를 꼽으라면 단연 그가 첫손에 꼽히는 이유다.
국민 가수 김용임의 목소리를 타고 전국을 누빈 '오늘이 젊은날' 의 작사가가 한시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사진=본인 제공
김용임의 ‘오늘이 젊은 날’ 부터 풍금의 ‘힘들었던 순간들 웃으며 안녕’, 박서진의 ‘춘몽’, 김태연의 ‘빨주노초파남보’, 하태웅의 ‘익산 나이트’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랫말은 쉽고 명쾌한 문장 속에 가슴 한구석을 툭 건드리는 묘한 울림을 담고 있다.
정작 본인은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 겸손을 곧이 곧대로 믿기엔 그가 걸어온 창작의 길은 치열했다.
가사 한 줄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고 또 채워야 했는지, 그 해답은 그가 묵묵히 쌓아온 시간 위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트롯뉴스’가 그 창작의 비밀을 직접 들어보았다.
중학교 시조 대회서 덜컥 수상
시작은 뜻밖에도 시조였다.
중학교 시절 담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나간 시조 대회에서, 그는 ‘의자’를 주제로 덜컥 상을 받았다.
“시조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글자 수 맞춰서 써오라는 말만 듣고 마음대로 썼죠.”
그가 쓴 내용은 간단했다.
엄마는 의자 같은 존재라고. 항상 거기 있고, 언제든 앉을 수 있고, 조용히 나를 받쳐주는. 그 참신한 비유가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획일화되지 않은 아이다운 발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님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권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럴 실력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대신 평소 관심 있던 미술을 택해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 길 역시 못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다.
졸업 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울리던 지인들 사이엔 영화감독, 뮤직비디오 감독, 작곡가 등 유독 예술가들이 많았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 잡던 그에게, 어느 날 한 작곡가가 불쑥 물었다.
“말을 참 재밌게 하는데, 혹시 작사 같은 거 해본 적 있어?”
그는 중학교 시절 시조 대회에서 상을 휩쓸던 기억을 꺼내 들었다. “작사도 글자 수 맞추는 거니까 시조랑 비슷한 거 아니야?”라며 이른바 ‘플렉스’를 한 것.
그 당돌한 대답에 작곡가는 짧게 답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써봐.”
첫 작품이 '국민히트곡' 되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건넨 첫 습작이 바로 오늘날의 국민 애창곡 ‘오늘이 젊은 날’이었다.
정확히는 ‘나이야 가라’라는 제목의 OST로 출발했다. 당시 KBS TV 소설 ‘별이 되어 빛나리’의 음악 감독이 ‘내 나이가 어때서’ 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훅’이 있는 가사를 써 달라는 의뢰를 냈고, 한시윤이 꺼낸 건 그 무렵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였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부담 없이 썼어요. 꼭 작사가가 돼야겠다는 간절함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그래서 오히려 그런 가사가 나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막상 드라마엔 채택되지 못했다. 나문희가 부를 예정이었던 OST였는데 불발됐고, 극 중 캐릭터가 ‘나이야 가라’라는 제목으로 대신 불렀다. 방송은 가사를 쓴지 한참이 지나서야 나갔다. 본인도 까맣게 모르는 사이였다.
반전은 이모의 이야기에서 왔다.
“이모가 ‘너 작사 한다면서, 요즘 아침 드라마에 나이야 가라~ 이런 노래 나오는데 너무 재밌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이모, 그거 내가 쓴 거야’ 했더니 도대체 믿질 않으시더라고요.”
이후 김용임이 이 곡의 진가를 알아보고 제목을 ‘오늘이 젊은 날’로 바꿔 발표했다.
코로나 시기 경연 프로그램에서 많은 젊은 가수들이 대거 커버하며 2차 폭발이 일어났다. 가사를 쓴지 수년이 지나, 그는 뒤늦게 ‘히트곡의 작사가’가 됐다.
‘팩스 번호’ 하나의 굴욕 사연?
전환점은 코로나 시기였다.
운영하던 문화 센터가 집합 금지로 문을 닫고 사실상 백수가 된 시절, 무명가수 지인이 번개를 잡았다. 스크린 골프장에 정경천 작곡가 내외가 있다고 오지 않겠냐면서.
“갔더니 선생님께는 제가 별로 반갑지 않은 존재인 거예요. 갑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작사가라고 왔으니까요…. 당시 저는 신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작사가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었거든요. 적어도 100곡 이상은 돼야 작사가라고 이름을 내미는데 저는 지금도 100곡이 안 되거든요.”
정경천은 업계 작곡가 몇 명의 이름을 댔다. 한시윤은 단 한 명도 몰랐다.
“아니, 작사하면서 그런 작곡가도 몰라요?”라는 의아한 눈빛에 그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오늘이 젊은 날’이 히트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업계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이나 다름없다고.
그러자 정경천이 내민 것이 전화번호도, 카카오톡 아이디도 아닌 팩스 번호였다.
“집에 와서 진짜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팩스 번호만 달랑? 그냥 나 작사 안 하고 코로나 끝나면 문화센터나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며칠 후 정경천의 사모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왜 가사를 안 보내요?”
알고 보니 그것이 정경천의 실제 작업 방식이었다.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그제야 알았죠. 나를 무시해서 팩스 번호를 주신 게 아니라 그게 선생님 스타일이었던 거고, 진심으로 가사를 보내보라는 신호였던 거죠.”
한시윤은 ‘거장 정경천이 가장 신뢰하는 작사가로 통한다. 현역가왕3에서 정경천 작곡가와 결승전 신곡대결곡을 논의하고 있다 / 사진=MBN 현역가왕3 막상 작업을 시작하자 정경천의 평가는 냉혹했다.
손으로 직접 그린 악보를 보내왔는데 한시윤은 그걸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박자를 맞추지 못한 가사는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구분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선생님이 많이 고쳐주셨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하시는 거죠. ‘시윤이 가사는 대중성이 없어. 너무 고급스러운데 그거는 발라드야. 트로트는 달라.’ 상처였어요. 근데 저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죠.”
가수 풍금과의 작업 ‘전환점’
전환점은 가수 풍금의 정규 앨범 작업에서 왔다.
풍금은 정경천에게 “이 작사가님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라며 한시윤을 직접 선택했다. 트로트계에서 차별화된 것을 해보고 싶었던 풍금의 감각과 한시윤의 ‘고급스러운 감성’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제목이었다. ‘힘들었던 순간들 웃으며 안녕’
“선생님이 당황하셨죠. 트로트 제목은 두세 글자, 기껏해야 ‘홍시’, ‘고향역’ 뭐 이런 건데 제목이 너무 길다면서. 그랬더니 풍금이 대뜸 ‘선생님, 요즘 아이돌 노래는 제목이 19글자도 있어요. 저도 트로트에서 이런 거 해보고 싶어요.’ 하더라고요.”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코로나로 힘겨웠던 소상공인들의 마음을 건드리며 크게 화제가 됐고, 정경천은 얼마 후 한시윤에게 말했다.
“‘시윤아, 너를 만나서 내가 젊은 층의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로트 가사는 할 말은 하는 것”
발라드와 트로트 가사를 다 해본 작사가로서 다른 점이 뭐냐는 질문에 한시윤이 두 장르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발라드는 ‘비가 내게 스며든다.’예요. 미화하고 우회하고 아름답게 에둘러 가죠.
트로트는 달라요. ‘비가 내 어깨를 때린다.’ 직접적이고 강하고, 할 말은 하는 거예요. 한국인의 정서가 그러니까.”
그가 롤 모델로 꼽는 가사는 나훈아다.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딱 그 경계. ‘테스형’에서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는 발상, “아버님 무덤가에 꽃이 폈는데 그 꽃이 나를 나무라는 것 같다”라는 구절.
“쉬운 단어인데 철학적이고, 끝에 가서는 가볍게 풀어내잖아요. 멜로디를 없애고 글로만 읽어도 내용이 전달되는 가사,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정확한 가사예요.”
그러면서도 트로트 가사의 핵심은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이별해도 ‘너 때문에 죽겠다’로 끝나선 안 돼요. ‘그리워하며 잘 살겠다.’라는 으쌰으쌰 하는 에너지가 한국인의 정서거든요. 슬픈 노래라도 끝은 절망적이지 않아야 해요.”
그가 정의하는 작사는 ‘배려의 문학’이다.
“작곡가 정서에 맞아야 하고, 가수 정서에 맞아야 하고, 고음에서 받침이 있으면 안 되고, 이 가수가 'ㅅ' 받침이 어렵다 하면 그것도 빼야 해요. 제작자도 통과해야 하고, 그다음이 대중이에요. 시는 나 혼자 뽐내면 되지만, 가사는 철저히 나를 내려놓는 문학이에요.”
미성년 가수 김태연과의 인연
한시윤이 여러 곡을 함께 작업한 가수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최근 주가를 높이고 있는 미성년자 트로트 가수 김태연이다.
김태연과 작업을 할 때는 그는 철저히 자신을 중학생으로 되돌린다.
“미성년자한테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랑 노래나 인생의 허탈함을 담을 순 없잖아요. 내가 중학생 때로 돌아가서 그때 어떤 단어를 썼나, 거기서부터 출발해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빨주노초파남보’이다.
런던 여행 중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빨리빨리 와 달라, 주저하지 말고, 노크 없이 들어오세요, 무지개색 이름에 의미를 숨겨 놓은 말장난이다.
“이 나이 때만 부를 수 있는 노래예요. 김용임 선생님이나 유지나 선생님이 부를 수 없잖아요. 태연이기 때문에 가능한 가사죠. 그게 이 곡의 생명이에요.”
김태연 신곡 '빨주노초파남보' 는 김태연 곡중 한시윤 작사가가 가장애착이 가는 곡이다 / 사진=본인 제공
수정은 10분, 설득은 진심으로
업계에서 한시윤이 사랑 받는 이유가 또 있다.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10분 안에 해낸다.
“선생님들이 내로라하는 작사가에게 수정 요청 자체를 꺼려요. 말하기 불편하고 기다리는 것도 부담이고. 저는 그냥 ‘어, 그래요? 알았어요.’ 하고 바로 해드려요. 숙제가 쌓이는 게 싫은 성격이기도 하고.”
물론 고집할 때는 따로 설득한다.
“‘선생님, 저 한 번도 믿어 달라는 말 안 했잖아요. 이번 딱 한 번만요.’ 그러면 선생님들이 ‘문제 생기면 네가 책임져’ 하면서 들어주시더라고요. 그게 우리 사이의 방식이에요.”
그에게 가수는 자식이고 곡은 운명 공동체다.
자신이 작사한 가수의 콘서트엔 표를 직접 사서 보러 가고, 생일을 챙기고, 고민 상담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작사가는 거의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 업계에서 나오는 건 그래서다.
팬들의 사랑 감동의 순간들
작사가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강원도 외옹치항에 갔는데 회를 뜨는 분이 ‘오늘이 젊은 날’을 틀어 놓고 있더라고요. 그냥 ‘이 노래 좋아하세요?’ 물었더니 ‘이 노래 나와야 회가 잘 썰린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너무 행복했어요. 아, 이런 노래를 많이 쓰고 싶다.”
또 하나. 박서진의 팬들이 절에서 한시윤의 이름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춘몽’이라는 좋은 가사를 써줬다는 감사의 마음에서였다.
“제 이름이 기도 명단에 올라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작사가로서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한시윤 작사 '익산 나이트'를 부른 가수 하태웅(왼쪽에서 두 번째) / 사진=본인 제공
최근 발표한 ‘익산 나이트’도 그의 치밀한 어감 계산에서 탄생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가사인데, 처음부터 ‘익산’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목포도 넣어봤고, 인천도 붙여봤는데 영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런데 ‘익산 나이트’를 붙여보는 순간 어감이 찰떡같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익산으로 결정했는데, 공교롭게도 익산이 고향인 가수 하태웅 씨가 노래를 부르게 됐어요.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불후의 명곡’을 꿈꾸며
한시윤의 롤 모델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쓴 전설의 작사가 양인자다. 중국에서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외계인이 쓴 게 아닐까 싶었어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나.”
그 충격에서 나온 곡이 정의송 작곡가와 함께 만든 ‘무심(無心)’이다.
조용필이 불렀으면 어떨까 하는 소망으로 썼다가, 정의송이 가사를 보고 “아주 마음에 든다.”라며 직접 불렀다.
무심(無心) / 작사 한시윤
모든 건 다 지나간다 /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기로 했다 / 나는 가진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 얼마나 내려놓을 수 있는가로 나를 증명하고 싶다 / 꽃은 말없이 피고 지며 그 어떤 소란도 남기지 않는다 / 사라졌지만, 어느 마음엔가 잠시 머물렀던 / 무심한 존재이고 싶다~
“수십 년 뒤에 누군가 제가 쓴 가사를 듣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하고 감동한다면, 제 작사 인생은 성공한 거겠죠. 세월이 흘러 제가 나이가 들었을 때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명곡을 남기는 것이 작사가로서의 꿈이자 로망입니다.”
익산의 정서를 찰떡같이 담아낸 ‘익산 나이트’부터 중학생의 눈높이에서 쓴 ‘빨주노초파남보’까지. 장르와 세대를 넘나드는 한시윤의 펜 끝은 오늘도 대중의 가슴 속 가장 젊은 날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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