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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샐러드] 골프는 왜 18홀일까? 기막힌 우연으로 탄생한 기막힌 골프 관련 역사 이야기

배성식 기자 ssbae100@naver.com

등록 2026-06-06 01:05

골프 18홀의 시작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260년 전 귀족들의 사소한 귀찮음에서 시작된 나비효과

홀(컵)의 크기 108mm는 쇠파이프 배수관의 크기

14개 골프 클럽 규정은 캐디들의 생계 보장을 위한 배려

 골프의 고향이자 성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8번 홀 / 사진=진충진 제공

골프의 고향이자 골프 역사를 이야기할 때 스코틀랜드를 빼놓을 수 없다. 

스코틀랜드 해안가에는 원래 링크스(Links)라 불리는 기복이 심한 모래 언덕 지형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염분이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잡초와 관목이 무성한 황무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양 떼가 이 지역을 오가며 풀을 뜯고 밟으면서 자연스럽게 넓고 평탄한 길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이를 오늘날의 페어웨이(Fairway)로 부르게 되었다.

계속 이동하며 풀을 뜯는 양들과 달리 야생토끼들은 굴을 파고 한곳에 머물며 생활했다. 토끼들은 굴 주변의 풀을 집중적으로 뜯어 먹었고, 그 결과 주변보다 풀이 짧은 공간이 형성되었다. 당시 양 떼를 돌보던 목동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무 막대기로 돌멩이를 쳐 토끼 굴에 넣는 놀이를 즐겼는데, 이를 골프의 기원으로 보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의 작은 도시인 세인트앤드루스(St Andrews)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로 알려진 올드코스(Old Course)가 있다. 이곳은 15세기부터 골프 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오늘날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세인트앤드루스는 15세기 부터 골프 경기가 열렸고, 영국왕립골프협회(R&A)의 본거지이다. / 사진=진충진 제공 하지만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골프에도 과학적이거나 체계적인 근거가 아닌, 우연에서 비롯된 흥미로운 몇 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골프장의 코스가 18홀로 된 유래

 

골프장의 코스는 왜 10홀이나 20홀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 18홀일까?

오늘날 전 세계 골프장의 표준인 18홀 역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시작되었다.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추운 날씨 속에서 라운드하던 사람들이 홀을 마칠 때마다 몸을 녹이기 위해 위스키를 한 잔씩 마셨고, 병 한 개에서 정확히 18잔이 나왔기 때문에 18홀이 끝나면 술도 떨어지고 경기도 끝났다는 낭만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20세기 초 골프가 미국에 소개된 이후 홍보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짜뉴스다.

 

사실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골프장에는 정해진 홀 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각 골프장은 지형에 맞춰 홀을 만들고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좁고 긴 해안 지형을 따라 출발점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아웃 코스 11홀, 다시 돌아오는 인 코스 11홀로 구성되어 총 22홀이었다. 오늘날 전반 9홀을 아웃 코스, 후반 9홀을 인 코스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왕복 구조의 흔적이다.

 

1764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 클럽의 회원들은 코스를 재정비하기로 했다. 그들은 첫 번째부터 네 번째 홀까지의 짧은 홀들을 두 개씩 합쳤고, 돌아오는 구간의 마지막 네 개 홀도 같은 방식으로 통합했다. 그 결과 8개의 짧은 홀이 4개의 긴 홀로 바뀌면서 전체 홀 수는 22홀에서 18홀로 줄어들었다.

이는 과학적인 분석이나 체력 안배를 고려한 결과가 아니었다. 단지 일부 홀이 지나치게 짧아 플레이의 재미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회원들의 결정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골프의 표준이 된 18홀은 그렇게 탄생했다.

 

 세인트앤드루스 골프 클럽에서의 경기 모습. 찰스 리스(Charles Lees)의 '골퍼들'(The Golfers), 1847년도 작그러나 세인트앤드루스가 18홀을 채택했다고 해서 전 세계 골프장이 곧바로 이를 따르지는 않았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골프장마다 홀 수는 제각각이었고, 대회를 치를 때마다 기준이 달라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메이저 대회인 The Open Championship이 처음 열렸을 당시 개최지였던 프레스트윅(Prestwick Golf Club)은 12홀 코스였기 때문에 같은 코스를 세 바퀴 돌아 총 36홀 경기로 대회를 진행했다. 당시 리스 링크스(Leith Links)는 5홀, 머셀버러(Mussel burgh Links)는 7홀, 세인트앤드루스는 22홀, 몬트로스 링크스(Montrose Links)는 무려 25홀에 달했다. 

 

이 혼란을 잠재운 것은 결국 권위였다.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세인트앤드루스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 클럽(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은 19세기 들어 18홀을 표준 코스로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골프 규칙과 대회 운영의 기준이 정립되면서 18홀은 사실상의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골프장들은 홀 수를 조정하고 코스를 개조하는 대대적인 정비에 나섰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전경 / 사진=진충진 제공

결국, 오늘날의 18홀은 위스키에서 비롯된 낭만도, 스포츠 과학의 결과도 아니었다. 

260여 년 전 스코틀랜드 골퍼들이 “너무 짧고 재미없는 홀을 줄이자”라며 내린 작은 결정이 전 세계 골프의 표준이 된 것이다. 어쩌면 골프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다.

 

 

홀(컵)의 크기가 108mm(4.25인치)로 된 유래

 

골프 초창기에는 홀(컵)의 크기 역시 골프장마다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오늘날처럼 페어웨이의 길이, 러프, 벙커, 해저드가 코스의 난도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홀의 크기 자체가 경기의 난이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교한 홀 커터가 없었기 때문에 그린 위에 직접 원형 구멍을 파서 사용했다. 

1829년 스코틀랜드의 머셀버러 링크스 골프장에서 그린을 관리하던 ‘로버트 게이’는 주변 공사장과 창고에 굴러다니던 쇠파이프를 이용해 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파이프는 배수관으로 사용되던 것이었고, 지름이 우연히 4.25인치(약 108mm)였다. 막상 사용해 보니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였고, 이 규격은 주변 골프장으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세계 최초로 사용된 홀 카터는 물을 빼내는 배수관으로 사용된 쇠파이프

하지만 당시의 홀은 단순히 흙을 파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비가 내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가장자리가 무너져 형태가 쉽게 변형되곤 했다. 심하면 홀의 흔적조차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인물이 바로 디 오픈의 챔피언이자 레전드 ‘톰 모리스’였다. 그는 홀 내부를 지탱할 수 있는 장치인 홀(컵)(Hole Cup)을 고안했고, 배수관 파이프를 홀 안에 삽입해 사용해 보니 흙이 무너지는 현상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홀(컵)이 널리 보급되면서 홀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통일되기 시작했다.


 골프의 기본을 만든 골프계의 전설 '톰 모리스'

결국, 1893년 골프 규칙을 관장하던 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는 머셀버러에서 사용하던 4.25인치(108mm) 규격을 공식 표준으로 채택했다.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골프장의 홀 크기가 동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우연이다. 골퍼들에게 가장 많은 희망과 절망, 그리고 108 번뇌를 안겨 주는 그린 위의 작은 홀은 치밀한 과학적 계산의 산물이 아니라 200여 년 전 누군가 우연히 집어 든 배수관 파이프에서 시작된 것이다.


 홀(컵)의 지름 108mm는 마치 골프에서 가장 번뇌를 안겨주는 108 번뇌와 숫자가 일치한다. 

참고로 골프공은 올림픽 구기 종목에 사용되는 공 가운데 탁구공 다음으로 작다. 홀의 지름인 108mm는 골프공의 지름 약 42.67mm 보다 약 2.5배 크다.

홀(컵)의 깊이 역시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최소 4인치(10.16cm) 이상이어야 하며, 홀(컵)의 윗부분은 그린 표면보다 최소 1인치(2.54cm) 아래에 위치해야 한다. 만약 컵이 표면과 같은 높이에 설치된다면 홀 가장자리에 맞은 공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홀(컵)의 재질이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골프장에서는 금속 재질의 홀(컵)을 사용해 공이 들어갈 때 ‘땡그랑’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난다. 반면 유럽이나 북미의 많은 골프장에서는 플라스틱이나 복합 소재의 컵을 사용하기 때문에 보다 둔탁한 ‘틱’ 소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골프 클럽(채)이 14개로 제한된 배경

 

14개로 제한된 골프백 속 클럽 수 역시 골프 역사 속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1924년 스틸 샤프트가 공식적으로 허용되면서 골퍼들은 클럽 수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히코리(Hickory) 나무 샤프트보다 제작이 쉽고 가격이 저렴했으며, 거리와 탄도를 보다 세분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드라이버와 우드 한두 개, 3·5·7·9번 아이언, 그리고 퍼터 정도를 포함한 7~8개의 클럽이 일반적인 구성이었다. 하지만 스틸 샤프트 시대가 열리자 상황은 달라졌다. 골퍼들은 거리별, 상황별로 더욱 세분된 클럽을 갖추기 시작했고, 20개 이상의 클럽을 휴대하는 것이 흔해졌다. 심지어 30개가 넘는 클럽을 들고 다니는 선수도 등장했다.

결국, 미국골프협회(USGA)는 장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막고 경기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1938년 클럽 수를 14개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미국골프협회가 1924년 스틸 샤프트를 허용하기 이전의 히코리 나무 샤프트

그렇다면 왜 하필 14개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지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당시 캐디들의 부담과 관련이 있다. 당시 캐디들은 낮은 수입 때문에 한 번에 두 개의 골프백을 메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클럽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골프백의 무게도 많이 증가하자 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결국 기존에 20개 후반까지 늘어났던 클럽 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인 14개가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캐디들의 생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클럽의 수를 14개 이하로 제한

물론 이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결정 배경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장비 경쟁을 억제하고 캐디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현실적인 필요가 맞물리면서 14개라는 숫자가 탄생했다는 해석이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이후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드라이버의 소재와 공의 성능, 클럽 제작 기술은 크게 발전했지만, 골프백 속 클럽 수만큼은 여전히 14개라는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다.

이메일 ssbae100@naver.com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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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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