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롯뉴스 특별기획 : 사의 찬미 100년의 기록-한국 대중가요의 시작을 읽다
[7편] 윤심덕에서 시작된 디바 100년사
1920년대 조선에서 여성이 대중 앞에 나서 가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윤심덕은 그런 시대에 숱한 손가락질과 사회적 편견을 감수하면서도 무대에 섰고, 자신의 이름으로 노래하고 살아가는 여성 가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녀 이후 여성 가수들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무대와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했다. 전통가요와 트로트를 거쳐 오늘날의 트로트 무대와 K-POP에 이르기까지, 여성 가수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왔다.
윤심덕에서 시작해 100년 동안 이어진 여성 가수들의 계보를 따라가면, 한국 대중음악의 변화뿐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진 여성의 삶과 무대의 역사까지 함께 보인다.
윤심덕은 시대에 숱한 손가락질과 사회적 편견을 감수하면서도 무대에 섰고, 자신의 이름으로 노래하고 살아가는 여성 가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광대’의 낙인을 뚫고 무대 개척
100년 전 조선에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대에 선다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노래하는 사람은 ‘광대’로 낮춰 불렸고, 여성 연예인은 기생과 동일시되는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시대에 윤심덕은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에서 정통 성악을 공부한 엘리트 예술가의 길과 대중 앞에 서는 직업 가수의 길을 동시에 걸었다. 연극 무대에 서고 대중가요를 부르는 그의 선택은 당시 여성에게 요구되던 삶의 틀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물론 그 길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명성을 얻고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사생활을 둘러싼 숱한 소문과 비난도 감당해야 했다.
윤심덕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대에 서기 위해 사회적 편견과 현실의 벽을 직접 견뎌야 했던 개척자였다.
그녀가 남긴 짙은 애조와 감정의 표현은 이후 한국 가요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정서적 자산으로 이어졌다.
'윤심덕' 실제 공연 모습
1930년대 이난영 ‘한’의 대중화
윤심덕 이후 음반시장이 커지면서 유행가·신민요·트로트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여성 가수의 존재감도 빠르게 커져갔다.
그 흐름을 대표하는 이름이 이난영이다. 1935년 발표된 ‘목포의 눈물’은 식민지 시대 고향과 이별, 상실의 정서를 대중적인 선율에 담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난영의 노래는 이후 트로트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한 개인의 내면과 삶에 대한 고뇌를 강하게 드러냈다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은 그 정서를 보다 넓은 대중의 감정으로 확장했다.
개인의 고뇌가 대중의 정서로 옮겨가는 것.
윤심덕에서 이난영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한국 대중가요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 언어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목포의 눈물을 열창하는 가수 이난영 / 사진=KTV국민방송 영상자료
황금심에서 이미자까지 ‘엘레지’ 완성
이난영의 뒤를 이어 황금심이 등장하며 여성 보컬의 저변이 넓어졌고, 해방과 전쟁을 거쳐 1960년대에 접어들며 계보는 한층 풍성해진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이름은 단연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다. 이미자는 이난영으로부터 이어져 온 트로트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한국 여성이 지닌 인고와 한의 정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냈다.
같은 시기 한국 가요계에는 다른 갈래도 자랐다.
패티김은 서구적 창법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혔고, 현미는 압도적인 성량으로 대형 여가수의 계보를 이었다. 이들은 윤심덕이 꿈꾸었던 ‘대형 오페라 가수’의 위용을 대중가요 무대에서 재현한 후예들이라 할 만하다.
뒤이어 문주란과 김상희, 주현미가 각자의 색으로 계보를 확장했다.

트로트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한국 여성이 지닌 인고와 한의 정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이미자', 서구적 창법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힌 '패티김'은 각각 다른 색체의 창법으로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 온라인 커뮤니티
세대와 장르 넘어 다시 불려지다
흥미로운 것은 ‘사의 찬미’가 1926년의 유행가에 머물지 않고, 이후 여러 세대와 장르의 음악가들에 의해 다시 불려왔다는 사실이다.
이미자는 2009년 데뷔 50주년 기념 음반에 ‘사의 찬미’를 수록했고, 한영애는 2003년 앨범 ‘Behind Time’에서 이 오래된 노래를 자신의 음악적 언어로 다시 풀어냈다. 나윤선은 2007년 ‘Memory Lane’에서 재즈와 팝의 감각을 더한 버전을 선보였으며, 임형주 역시 2015년 방송 무대에 이어 2019년 정식 음원으로 이 곡을 발표했다.
특히 나윤선의 ‘사의 찬미’는 원곡이 지닌 처연한 정서를 재즈와 팝의 어법으로 풀어낸 현대적 재해석의 인상적인 사례다.
이처럼 한 곡이 세대와 장르를 넘어 반복해서 소환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의 찬미’의 독특한 태생도 작용했다. 윤심덕은 도쿄음악학교에서 정통 성악을 공부한 성악가였지만, ‘사의 찬미’ 자체는 서양의 왈츠 선율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번안가요였다. 클래식의 배경과 대중가요의 정서가 한 곡 안에서 만났던 것이다.
바로 그 경계성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트로트는 물론 블루스와 재즈, 팝페라 등 서로 다른 음악적 언어로도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었던 이유다.
따라서 ‘사의 찬미’를 ‘한국 가창의 시금석’이라고 부르는 것은 객관적인 음악사적 명칭이라기보다, 한 세기 동안 다양한 음악가들이 이 곡을 통해 자신의 해석을 보여왔다는 의미에서 가능한 비평적 표현이다.
나윤선은 2007년 ‘Memory Lane’에서 재즈와 팝의 감각을 더한 버전의 '사의찬미'를 선보였으며, 임형주 역시 2015년 방송 무대에 이어 2019년 정식 음원으로 이 곡을 발표했다. / 사진=유튜브채널 '나윤선 음악 팬들'
트로트의 부활과 오늘의 무대
‘사의 찬미’가 여러 세대의 음악가들에게 다시 해석된 것처럼, 윤심덕 이후 여성 가수들의 무대도 시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졌다.
21세기에 들어 트로트는 장윤정과 송가인 같은 여성 스타들을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장윤정은 2004년 ‘어머나’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트로트를 새롭게 각인시켰고, 송가인은 2019년 ‘미스트롯’ 우승을 계기로 정통 트로트와 전통적인 여성 가창의 힘을 다시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음악의 형식도, 무대의 모습도 윤심덕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무대에 서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여성 가수의 존재감은 100년의 시간을 건너 이어지고 있다.
‘사의 찬미’가 지금까지 다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노래에는 특정 시대에만 머무르지 않는 삶의 허무와 외로움, 사랑과 자유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가수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꺼내 들 수 있었다.
1926년 윤심덕이 남긴 한 곡은 그렇게 한 시대의 유행을 넘어 100년의 한국 대중음악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적 기억이 됐다. 그리고 그 기억의 끝에는 오늘의 디바들이 서 있다.
장윤정은 2004년 ‘어머나’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트로트를 새롭게 각인시켰고, 송가인은 2019년 ‘미스트롯’ 우승을 계기로 정통 트로트와 전통적인 여성 가창의 힘을 다시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 사진=장윤정, 송가인 SNS
K-POP의 뿌리에 흐르는 정서
윤심덕이 1926년 여름 남긴 3분 남짓한 노래는 이제 100년의 역사가 되었다.
그녀가 홀로 감당해야 했던 무대와 선택은 이후 수많은 여성 가수들에게 이어졌고, 한국 대중음악은 트로트를 거쳐 오늘날 K-POP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무대에 서게 됐다.
전 세계가 한국 음악에 열광하는 지금, 그 음악의 깊은 곳에는 여전히 삶의 애환과 사랑, 외로움과 자유를 노래하는 정서가 흐르고 있다. 화려한 무대와 퍼포먼스 너머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노래로 시대와 자신의 삶을 말하려는 태도 역시 그 긴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오늘 다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비극을 기록한 노래가 아니다. 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이야기하려 했던,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현해탄으로 사라진 윤심덕.
그러나 그녀가 남긴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3분의 노래는 100년의 역사가 되었고, 그 목소리는 지금도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울리고 있다.
⇨다음 편 예고 - [8편] 「'사의 찬미' 둘러싼 100년의 미스터리」 목격자도 시신도 없었다. 100년간 이어진 미스터리의 사료를 펼친다.
<저작권자© 트롯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