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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인터뷰 ①] “걷든 뛰든 쉬든…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간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10-28 17:15

충무로 건설 현장의 막노동에 노숙과 미용실까지

굴곡의 시간 지나 ‘무조건’ 등 빅히트 가수 반열에

한 곡 위해 8번 편곡 열정 “무슨 일이든 최선 다해”

자작곡 ‘빵빵’ 리센느 제나가 불러 역주행 행진 중

□ 박상철 인터뷰 ① - 가수 박상철의 삶과 음악

 

‘자옥아’와 ‘무조건’, ‘황진이’. 박상철의 이름에는 객석을 들썩이게 하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들이 따라붙는다. 최근에는 2010년 발표한 ‘빵빵’이 걸그룹 리센느 제나의 목소리를 타고 젊은 청중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트롯뉴스가 대한가수협회장이자 ‘무조건’, ‘자옥아’의 가수 박상철을 만났다. 

무대 위의 흥겨움 뒤에는 긴 무명 시절을 견딘 삶이 있고, 협회장이라는 직함에는 동료 가수들의 현실을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1부에서는 가수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는 박상철의 삶과 음악을, 2부에서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서의 운영 철학과 가요계의 과제를 들여다본다.

 

“인생은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이다. 걷든 뛰든 쉬든 간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가수 박상철이 인터뷰 도중 아침에 썼다는 짧은 글을 읽었다. 운전하며 떠올린 생각이라고 했다. ‘걷든 뛰든’ 까지는 익숙한 다짐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뒤에 ‘쉬든’이 있었다. 멈추지 않고 달려온 사람의 말이라면 굳이 넣지 않았을 단어다. 

그는 일을 놓았던 때도, 무대에서 멀어졌던 때도 있었다. 그 시간을 지나고 보니 쉬는 동안에도 인생은 가고 있더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자옥아’와 ‘무조건’, ‘황진이’. 박상철의 이름에는 객석을 들썩이게 하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들이 따라붙는다. 최근에는 2010년 발표한 ‘빵빵’이 걸그룹 리센느 제나의 목소리를 타고 젊은 청중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그는 무대 밖에서는 시를 쓴다. 지난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올해 첫 시집을 냈다. 대한가수협회장이라는 책임까지 맡은 지금, 그는 가수로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히트곡을 가진 인기가수로서 그리고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서의 성공의 순간을 물었는데 이야기는 자꾸 그 이전으로 돌아갔다. 

돈을 모으던 현장, 머리를 자르던 미용실, 다시 노래를 배우러 가던 작곡실이었다. 그에게 노래는 어느 날 찾아온 기회에 앞서 오래 붙들고 있던 일이었다.

 

 

졸업식보다 먼저 무작정 상경하다

 

삼척에서 자란 박상철은 어릴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도 노래를 잘했다고 했다. 마을 콩쿠르에 나가면 인기상을 도맡아 받곤 했다. 어린 참가자에게는 인기상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상이였다고 기억했다. 실력을 떠나 어린아이에게 대상을 줄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박수를 받는 경험이 쌓이며 가수의 꿈도 자랐다.

 

서울에 올라온 때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치르기 전이였다고 한다. 학력고사를 마친 뒤였다. 당시 연예 잡지 ‘TV 가이드’에 실린 작곡실의 가수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열정 하나로 무작정 상경한 것이다.

노래를 배우고 음반을 내면 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러 작곡실을 찾아다녀도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는 여인숙에 머물기도 하고 작곡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머물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충무로의 한 건물 계단 아래에서 잠을 청하던 시절도 있었다. 돈을 잃을까 봐 몸에 차고 잤다는 기억을 그는 지금도 갖고 있다.

 

음반을 내려면 돈이 필요했다. 건설 현장에 나가 미장 보조로 일했다. 벽돌과 시멘트, 모래를 위층으로 날랐다. 일이 익숙해졌다고 몸까지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는 말이 나왔다. 어린 나이에 죽을 만큼 힘든 노동현장이었지만 그래도 일할 이유가 있었다. 이 돈을 모으기만 하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저는 무슨 일을 해도 되게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시작하면 죽기 살기로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를 눈여겨본 건축주는 인력사무소에 그 청년을 다시 보내 달라고 했다. 미장 기술도 배워보라고 권했다. 가수가 꿈이라고 하자 돈을 잘 모으라며 일당 외에 용돈도 챙겨주면서 응원해줬다고 한다. 일도 잘하고 꿈이 있는 어린 청년은 각박했던 공사장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건축주는 훗날 유명해지면 모른 체하지 말라는 농담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치 공사였지만, 그에게는 음반을 내고 가수가 되는 꿈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노동일로 번 1000만 원 거금을 잃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작곡실로 들어갔다. 박상철은 곡과 녹음, 홍보 등에 필요하다는 설명을 듣고 약 1000만 원을 건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데뷔는 이뤄지지 않았다. 항의 끝에 숙식하던 곳에서도 나오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뒤 한동안 서울역과 충무로역 일대에서 노숙했다. 돈을 잃어서만은 아니었다. 다시 일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힘든 노동을 견디게 했던 목표가 무너지고 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목표가 있으니까 어려운 일을 견딜 수 있었던 거였는데, 사기를 당하고 보니 허탈하고 의욕이 사라졌던 거죠.”

 

그때 함께 거리에서 노숙하며 지내던 중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빚을 지고 돌아갈 곳이 없는 자신과 달리, 젊은 그는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으냐는 말이었다. 

빌린 돈을 잃은 것도 아니고, 벌어서 잃었으니 다시 벌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상철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고 했다. 무엇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이야기는 그다음에 나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자신이 돈을 맡겼던 작곡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고 가장 먼저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박상철은 왜 자신에게 좌절을 안겼던 작곡가였는데 그리운 사람을 찾는 TV 프로그램에서 다시 찾으려 했을까? 그는 따지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 당시 그분이 가르쳐준 노래를 배워서, 어쨌든 제가 노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작곡실에서 노래를 배웠고 연습했던 시간까지 모두 없던 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자기 입장에서만 보았던 일을, 나이가 든 뒤 상대의 자리에서도 생각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만나게 된다면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항상 동전은 양면이 있다. 이게 제 좌우명입니다.”

 

그는 이 말을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 고통을 겪을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자신에게 남은 것도 있었다는 것이다. 상처의 크기를 줄여 말하는 것과는 달랐다. 이제 그 일 하나로 지나온 시간 전체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박상철은 곡과 녹음, 홍보 를 해주겠다는 작곡가에  힘든 노동일을 하면서 모은  1000만 원을 건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데뷔는 이뤄지지 않았다. 항의 끝에 숙식하던 곳에서도 나오게 되면서 좌절을 하기도 했다/ 사진=KBS  'TV는 사랑을 싣고'

 

좌절 딛고 다시 일어나 미용 배우다

 

좌절에서 다시 일어나 배운 일은 미용이었다. 몸을 혹사하는 노동 대신 기술을 익혀 일하고 싶었다. 명동의 미용실들을 보며 남자 미용사가 드물다는 점에 눈길이 갔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이라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취직부터 어려웠다. 그가 찾아간 미용실에서는 남자 직원을 받기 어렵다는 말을 듣곤 했다. 막 개업한 곳을 찾아가 청소와 시설 수리를 도우며 일할 자리를 얻었다. 손재주가 있어 전기나 시설을 손보는 일도 했다. 그래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옮겨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빨리 기술을 익혀야 했다. 낮에는 다른 미용사가 손질하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사람들이 퇴근하면 마네킹을 놓고 드라이와 커트를 연습했다. 미용실에서 먹고 잤기에, 문이 닫힌 뒤에도 그에게는 배울 시간이 남았다. 낮에 본 손동작을 밤에 되풀이했다.

 

주말에는 손님이 몰렸다. 기다리다 돌아가려는 손님이 보이면 나섰다. “제가 한번 해볼까요?” 혼자 하던 연습을 실제 손님 앞에서 보여줄 기회였다. 머리를 만지며 조잘조잘 말을 건네는 성격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훗날 직접 미용실을 차렸고 입소문이 나서 영업도 잘됐다. 아마도 노래를 안 했으면 미용실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을 거라고 했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틈틈이 작곡실에 다니고 노래를 연습했다.

 

박상철의 이력에서 KBS ‘전국노래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1993년 7월 25일 강원도 삼척시 편 에서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러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원래 트로트를 준비했지만, 제작진의 권유로 선곡을 바꿨다는 설명이었다. 꼬마 때부터 동네 노래자랑 단골이었던 그가 결국 최고의 노래자랑에서 정상의 자리에 선 것이다. 대상을 받고 삶이 달라졌느냐고 묻자 답은 의외로 짧았다. 

“솔직히 그런 건 없죠.”

지역에서 더 알려지는 계기는 됐지만, 노래자랑의 수상이 곧 직업 가수의 자리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전에도 지역 노래자랑을 부지런히 다녔었고 “원래 꿈이 가수였으니까” 계속했을 뿐이라고 했다.

 

가수 박상철의 공식 데뷔 연도는 일반적으로 2000년으로 소개된다. 그는 그 이전에도 음반과 노래 활동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새천년의 시작인 2000년 1월 1일을 스스로 출발의 기준으로 삼고 싶었다고 했다. 인터넷 등에 유통되는 자료에 적힌 한 줄보다 그가 노래를 준비한 시간은 훨씬 길었다.


박상철의 이력에서 KBS ‘전국노래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1993년 7월 25일 강원도 삼척시 편 에서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러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사진=KBS ‘전국노래자랑’

 

‘무조건’을 여덟 번이나 편곡한 이유

 

‘자옥아’는 그 긴 시간을 대중의 기억과 연결한 노래였다. 하지만 한 곡이 알려졌다고 당장 넉넉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작과 홍보, 소속사와의 정산, 의상과 차량 등 활동에 드는 비용이 있었다. 무대에서 받은 돈과 가수에게 남는 돈은 달랐다. 

 

그가 경제적으로도 큰 변화를 체감한 것은 히트작 ‘무조건’이 사랑받으면서부터였다.

2005년 발표한 ‘무조건’을 작곡한 이는 박현진이다. 박상철은 ‘자옥아’가 알려진 뒤 박현진에게서 자신을 위한 곡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들었던 제목은 ‘특급사랑’이었다고 기억했다.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지만, 제목과 편곡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당시 저도 30대였기 때문에 좀 젊은 풍으로 하고 싶더라고요.”

 

그는 ‘무조건’이라는 제목을 원했다. 편곡도 다시 하자고 했다. 한두 번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설명으로는 여덟 번이었다. 

녹음 과정에서 반복해서 편곡을 요청하다 자존심이 상한 작곡가와 부딪혔고, 그로 인해 한동안 만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무대에서 자신이 부를 노래인 만큼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남겨둘 수 없었다.

 

도입부의 힘찬 소리를 떠올리는 데에는 학창 시절 트럼펫을 불었던 경험과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 대한 기억이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반복되는 구음과 리듬에는 2002년 월드컵 응원의 인상도 겹쳐 있었다. 첫 소절을 기다리기 전부터 청중을 끌어당기는 노래를 원했다.

 

마지막 편곡을 들고는 박현진의 집을 찾아갔다. 편곡의 일로 불편해진 관계로 인해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음악을 들려주자 작곡가도 놀랐다는 것이 그의 기억이다. 훗날의 히트곡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순위보다 그 과정을 더 자세히 들려줬다. 

주어진 곡을 잘 부르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자신이 납득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시절이다.

 

지금까지 여전히 히트곡 반열에 있는 ‘무조건’이 왜 오래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제작 이야기보다 간단했다.

“조건 없이 달려간다는 리듬이나 가사가 국민 정서와 맞았던 것 같아요.”

좋은 노래를 만나는 일에도 운이 따르겠지만, 그 노래를 어떻게 부를지 결정하는 일까지 운에 맡길 수는 없었다. 박상철이 기억하는 ‘무조건’에는 그가 고집을 부린 흔적이 여덟 번 남아 있었다.

 

 

16년 만에 다시 달리는 ‘빵빵’ 

 

최근 다시 달리기 시작한 노래는 ‘빵빵’이다. 이른바 ‘역주행’이다.

리센느 제나가 9월 18일 공개된 트로트 메들리 영상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오래된 원곡에도 관심이 번졌다. 2010년 발표 이후 16년 만이다. 박상철은 인터뷰 중 휴대전화에 저장한 노래방 차트 화면까지 보여줬다. 자신의 노래가 새롭게 불리는 일이 여전히 신기한 듯했다.

 

그는 ‘빵빵’도 젊은 감각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작곡한 곡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시골 버스에는 소시민의 모습을, 노랫말 속 ‘기적’에는 남북에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했다. 무대에서 부르는 흥겨움 뒤에 그 나름의 바람이 있었다는 회고다.

트로트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곡이었다. 행사장에서도 꾸준히 불렀다. 그래서 자신은 충분히 히트한 노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반응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저는 ‘빵빵’이 히트곡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리센느 때문에 뜨는 것을 보니까 히트곡이 아니었더라고요.”

 

노래의 과거를 깎아내리려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만나온 관객 밖에 아직 훨씬 많은 청중이 있었다는 깨달음에 가까웠다. 가수가 오래 불러온 노래라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새 노래였다. 후배의 목소리가 그 거리를 단숨에 좁혀줬다.

 

박상철은 리센느의 ‘러브 어택(LOVE ATTACK)’을 불러 화답했다. 협회 일과 공연으로 바빠 일부를 연습해 올렸는데 반응이 컸다고 했다. “AI가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웃었다. 후배가 자기 노래를 불러준 일을 선배가 다른 노래로 되돌려주는 사이, 두 가수의 팬들도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리센느 제나가 9월 18일 공개된 트로트 메들리 영상에서 박상철의 '빵빵'을  부르면서(사진위)  2010년 발표 이후 16년 만에 역주행을 하고 있다. 박상철 자신도 리센느의  ‘러브 어택(LOVE ATTACK)’을 불러(사진아래) 답가로 화답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국민 트롯 박상철 TV'

 

“시집 ‘허수아비’는 나의 자화상”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묻자 예상외로 ‘무조건’이 아닌 ‘바보 같지만’을 꼽았다. 

임영웅이 부르며 다시 주목받은 노래이기도 하다. 그는 좋았던 인연을 미움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려는 마음 때문에 애착이 간다고 설명했다. 노래의 인기보다 그 안에 담으려 했던 감정을 먼저 말했다.

 

시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됐다.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며 책을 읽었고, 활동을 쉬는 동안에는 독서가 더 늘었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을수록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했다.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어려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말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컸다.

 

“내 얘기를 말로 하지 말고 글로 쓰자는 생각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허수아비’로 2025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올해는 넥센 미디어에서 같은 제목의 첫 시집을 냈다. 필명 ‘박출’에는 “뜨겁게 새로 태어나자”라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 무대에서는 박상철로 노래하고, 종이 앞에서는 박출로 문장을 고른다.

표제작인 ‘허수아비’의 의미를 묻자 “제 얘기를 썼습니다.”라고 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들녘에 남아 있는 허수아비는 그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형상이었다. 노래할 때는 경쾌한 리듬에 실려 지나갔을 감정도, 시에서는 잠시 멈춰 바라볼 수 있었다.

 

다음 시집에는 생활에 가까운 시를 담고 싶다고 했다. 다만 협회장을 맡고 나서는 가수협회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신경을 쓰느라 마음이 바빠졌다. 생각했던 시기에 책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는 계속 쓸 생각이라고 했다.


박상철은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전적 자작시 ‘허수아비’로 2025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올해는 같은 제목의 첫 시집을 냈다. 필명 ‘박출’에는 “뜨겁게 새로 태어나자”라는 뜻을 담았다고 했다./사진=트롯뉴스

 

“진실하게 살았다는 말 듣고 싶다”

 

훗날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흠 없는 성공담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초심이 있었고 나름대로 진실하게 살려 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적었다는 문장에서는 ‘쉬든’이라는 두 글자가 오래 남았다. 

그는 늘 앞만 보고 달린 사람이 아니었다. 다시 움직일 이유를 잃었던 때를 지나왔다. 그런 사람이 이제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살피는 자리에 있다. 자신의 다음 노래를 묻던 이야기는, 동료들이 계속 노래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인터뷰 ② 가수협회장 박상철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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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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