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 오 분 전’, 개(犬)는 억울하다!

배성식 기자

등록 2025-10-30 11:00

상황이 엉망진창이라는 의미…. ‘개(Dog)’와는 전혀 무관

씨름, 전쟁, 군대와 관련 있다는 다양한 유래가 난무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의미하는 관용구 ‘개판 오 분 전’의 유래 정보가 따로 없어 질문하신 내용에 명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국립국어원 게시판 -

 

‘개판 오 분 전’은 많은 사람이 흔히 여러 마리 풀어놓은 개들과 관련된 표현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개(犬, Dog)와 전혀 관련이 없다. 국립국어원에서도 명확한 답변을 못 내리는 것처럼 ‘질서 없이 소란스럽다’라는 이 말의 정확한 어원은 없지만 재미있고 유력한 2가지 유래를 알아보자.

 

 

씨름 용어에서 유래

 

‘개판’은 씨름 경기에서 쌍방이 함께 넘어져 승부를 가릴 수 없을 때 쓰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여기서 ‘개’는 ‘고칠 개(改)’로, 씨름에서 두 선수가 함께 넘어졌을 때, 누가 먼저 땅에 닿았느냐를 두고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 

그 판정이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큰 소란으로 번지기도 하는데 요즘처럼 VAR(비디오 판정)이 없었던 시절에는 그 판을 무효로 하고 재경기를 펼치게 되는데, 이때 재경기를 뜻하는 용어가 ‘개판(改版)’이라는 것이다. 


 


‘개판 오 분 전’은 ‘재경기 5분 전’이라는 뜻으로 ‘개판’은 난장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경기를 다시 한다는 ‘개판’에 ‘5분 전’이라는 말이 붙었다.

“이렇게 씨름판의 어수선한 상황과 맞물려 무질서하고 소란스러운 상황이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유례가 있는데, 그 판을 무효로 하고 다시 할 정도면 그 판이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40년 신문 기사에 나온 ‘개판’의 용어 설명에서도 “씨름한 결과가 누가 이기고 짐 없이 같이 넘어진 것”으로 나오고, 1948년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정치판의 어수선한 상황을 두고 ‘개판 씨름’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개판은 씨름에서 왔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40년 3월 17일 <동아일보>에 등장하는 '개판' 

 1948년 4월 10일 <동아일보>에 등장하는 '개판씨름'

‘난립하는 입후보 소의(小義) 버리고 대의(大義)에 서라’ 

유구한 4천 년 역사를 자랑하던 이 강산이 40여 년 왜정의 굽 아래에 짓밟히게 되던 그때의 역사를 펼치지 않더라도 해방된 지 이미 4년 그동안 우리는 무엇 때문에 독립을 못 하였던가를 소위 입후보쯤 하게 된 정객 제공은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 볼지어다. 서로 싸우고 욕하고 함으로써 그로 인한 결과는 과연 무엇이냐? 한 말로 말하면 개판씨름 격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 동아일보 1948년 4월 10일 -



1950년 6.25 전쟁에서 유래

 

6.25 전쟁 당시 배식소 등에서 줄을 서고 배식을 기다릴 때, 배식이 시작되기 5분 전이 되면 혼잡이 극에 달해 ‘개판 오 분 전’이라는 표현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개판(開飯)은 ‘열 개(開)’와 ‘밥 반(飯)’을 뜻한다.




부산의 국제시장은 당시 전쟁통에 부산으로 온 피란민들의 집결소였다. 당시 그곳에는 피란민들의 무료 급식소를 운영했는데, 그 급식소에서 커다란 나무판으로 된 밥솥 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판 오 분 전!”이라고 외치며, 배식 개시 5분 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피란민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시적인 소란과 무질서가 일어났고, 이를 일컬어 ‘개판 오 분 전’이라 표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50년 이전부터 개판이란 단어가 사용됐음을 고려하면 이는 민간 어원에 불과하며 씨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참고로, 2014년에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북한 흥남항에서 출발(1950년 12월 24일)한 배가 도착(12월 26일)한 곳이 부산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거제도였다. 부산은 더 이상 피란민을 받을 만한 여건과 상황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개~같다, 개~매너, 개~덥다, 개~이득, 개~좋다, 개~짜증 등 본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반대 또는 강조할 때 ‘개’라는 단어를 붙여 사용한다. 오랜 언어습관임에도 ‘개(Dog)’로 오인해서 사용하고, 심지어 욕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개~덥다'라는 표현은 더 이상 개와 상관이 없다. 사진 제공 = 로이터

‘개판 오 분 전’도 오해하고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개가 판치는 것을 떠올리며 뜬금없이 개가 비난 대상이 된다. 개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할 듯하기도 하다.




ssbae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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