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진 찍으러 가는 곳이지만 드라마틱한 역사가 숨겨져 있는 곳
한때 버려졌던 땅이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명소
하늘공원 갈대밭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이 노래는 <타향살이>로 유명한 고복수의 <짝사랑>이라는 곡으로 1930년대 후반 오케레코드 전속 가수로 부른 곡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상황과 백성들의 허망한 일상을 노래한 곡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반주가(飯酒歌)로도 유명하다. 고복수는 황금심과 부부 가수였다.
이 노래를 아는 많은 사람이 ‘으악새’라는 새가 실제로 존재하여 ‘으악’하고 우는 줄 알고 있는데, 으악새라는 새는 없고, 억새가 바람에 스치며 내는 스산한 소리라고 한다.
가을은 억새의 계절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억새 축제’가 열리는 하늘공원은 서울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바람이 스칠 때마다 은빛으로 반짝이며 출렁이는 억새 물결은 낮에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해질 무렵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억새 사이를 걷다 보면 계절의 깊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서울 도심의 빌딩들은 물론 북한산, 한강 등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늘정원 정상에서 바라본 한강과 서울도심
그런데 지금의 하늘공원이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시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조선 시대에 난지도는 중초도(中草島), 압도(鴨島)라고도 불렀다. 압도라는 이름이 많이 나타나는데, 난지도의 형상이 물에 떠 있는 오리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압도, 또는 오리섬이라도 했다.
겸재 정선이 난지도 일대를 그린 ‘금성평사’ © 간송미술관
섬의 이름인 ‘난지(蘭芝)’, 지란(芝蘭)은 난초와 지초를 아우르는 말로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비유거나 ‘높고 맑은 성품’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지란지교(芝蘭之交)’란 고사성어는 허물이 없는 벗 사이의 고결한 사귐을 뜻한다. 그래서 굳이 난지도 이름의 한자를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아름다운 섬’ 또는 ‘깨끗한 섬’이라는 뜻이다.
1950년대까지도 한강 하류의 큰 모래 섬이었고, 주민도 약 400~500명 정도로 농사도 지었던 비옥한 땅이었다.
해방 이후의 난지도
1970년대는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접어들고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생활 쓰레기의 양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난지도에 제방을 쌓은 뒤 1978년에 난지도를 쓰레기 매립장으로 임시 지정했다.
난지도 제방 매립 / 사진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1993년 김포와 인천에 수도권 매립지를 만들 때까지 15년 간 난지도에 쌓인 쓰레기의 양은 무려 9,200만 톤, 높이는 98m에 달하는 2개의 거대한 쓰레기 산을 만들었고, 주위에는 악취와 먼지, 그리고 쓰레기가 썩으면서 발생한 메탄가스와 침출수가 배출돼 엄청난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쓰레기 산으로 변해버린 난지도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마침내 난지도는 ‘상암 월드컵 공원’으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두 개의 쓰레기 산은 제1 매립지 ‘하늘공원’, 제2 매립지 ‘노을공원’으로, 침출수가 흐르던 샛강은 난지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그 후 매립지를 흙으로 덮은 뒤 메탄가스를 포집, 처리하는 시설(가스정 290개)을 만들고 그 위에 억새와 수목을 심었으며, 메탄가스는 열에너지로 바꿔 서울시의 냉난방 연료로 재활용하고 있다.
과거 ‘쓰레기 산’이 ‘생명의 언덕’으로 복원된 드라마틱한 과정은 국제 환경 단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성공적인 환경 복원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에 가장 먼저 싹을 틔운 것은 ‘억새’였다.
복원사업 초기에는 억새, 띠, 갈대 같은 식물을 주로 심었는데, 억새는 뿌리가 깊고 땅을 단단히 잡아주기 때문에 토양이 안정될 때까지 ‘1차 생태복원 식물’로 선택되었다. 하늘공원이 지금의 갈대밭의 명소가 된 이유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들이 물어 온 씨앗으로 야생화, 잡초, 관목 등의 식물이 자연스럽게 퍼지게 되었다.
한 해 살이풀 '댑싸리'. 꽃말은 고백
복원 초기 10여 종이었던 조류는 꿩, 직박구리, 참새, 백로, 흰뺨검둥오리, 황조롱이, 부엉이 등 지금은 약 80종 이상이 관찰되고 있으며, 특히 황조롱이와 부엉이 등 맹금류의 서식은 생태계 상위 포식자들까지 돌아왔다는 뜻으로 생태계 복원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억새와 갈대를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별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억새는 산 또는 들에서 자라며 속이 꽉 차 있고, 갈대는 습지나 강가에서 자라며 속이 비어있다. 억새는 좁고 긴 잎 양 끝에 작은 가시들이 있다.
그래서 억새다. 물론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가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석양이 펼쳐지는 노을공원은 드넓은 잔디밭에 조각예술품과 전망데크 등이 있어 여유를 느낄 수 있고, 파크골프장, 노을캠핑장, 누에생태체험장, 반딧불이생태관, 도시 농부정원 등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
하늘공원 갈대밭 조형물
하늘공원 주차장(유료)은 협소하기에 월드컵 종합공원 주변 주차장(유료)에 주차하고, 도보로 이동하면 되는데,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도보로 이동하는 거리와 차이가 없다.
하늘공원 정상까지는 하늘공원 주차장 입구 맹꽁이 전기차 매표소에서 도보 또는 맹꽁이 전기차를 이용하면 되는데, 편도 2,000원, 왕복 3,000원이다.
생태계 복원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돌아온 멸종 위기종 2급 ‘맹꽁이’의 서식 기점으로 먹이사슬과 생태계가 복원되었는데 맹꽁이 전기차는 이를 반영한 것 같다.
맹꽁이 전동차
정상으로 올라갈 때는 전기차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도보로 메타세쿼이아 길(900m)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메타세쿼이아는 줄기가 곧고 수직으로 보통 35m 정도(최대 50m) 자라는데 나무들이 줄지어 있어 터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인들의 산책길로 자주 나오는데 여름엔 초록, 가을엔 붉은빛으로 물들어 사계절 사진 찍기에 좋고 숲길 사이사이에는 쉬어갈 수 있는 테이블도 있다.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 길
ssbae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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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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