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노동당사는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비무장지대(DMZ)를 품고 있는 강원도 철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특별한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현무암 협곡을 따라 한탄강이 흐르고, 중부 지역을 대표하는 곡창지대인 철원평야가 드넓게 펼쳐진다. 겨울이면 철새들이 찾아오는 생태의 보고이자, 철의 삼각지와 제2땅굴, 철원평화전망대, 백마고지, 노동당사 등 한국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천년 고찰 도피안사를 비롯해 고석정, 직탕폭포, 삼부연폭포, 매월대폭포, 순담계곡 등 빼어난 자연경관도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오랫동안 민간인 통제구역에 포함되어 출입이 제한됐던 지역에는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도 많다. 전쟁이 남긴 아픈 역사와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공존하는 곳, 철원으로 특별한 여행을 떠나보자.
안보 견학 코스
노동당사 - 분단의 역사를 증언하는 건물
철원 노동당사는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시멘트와 벽돌로 견고하게 지은 러시아식 건축 양식의 건물로, 지금은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안보 유적지로 남아 있다. 당시 북한 정권은 이곳을 거점으로 철원과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며 주민들을 통제하고 재산을 수탈했다. 애국 인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등 가혹한 탄압도 자행했다.
건물 내부와 주변에는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서 있는 건물은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묵묵히 증언한다.
건물 뒤 방공호에서는 많은 인골과 함께 만행에 사용된 수많은 실탄과 철자줄 등이 발견되었다. / 사진=배성식 제공
제2땅굴 - 땅속에 감춰진 남침의 흔적
1975년 3월 19일 발견된 제2땅굴은 북한이 남침을 목적으로 건설한 지하 침투 통로다.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감지하면서 존재가 처음 확인됐으며, 이후 시추와 굴착 작업을 거쳐 실체가 드러났다.
땅굴은 지하 5~160m 깊이의 암반층을 통과하며 총연장은 약 3.5km에 이른다.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약 1.1km까지 이어져 있고, 높이 약 2m의 아치형 구조로 건설됐다.
시간당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군사 장비가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범한 땅 아래 감춰진 거대한 통로는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백마고지 전적지 - 열흘간 24차례 주인이 바뀐 격전지
1951년 7월 정전회담이 시작되면서 전쟁이 끝날 당시의 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에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국군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중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격전으로 꼽힌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무려 24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다. 중국군은 약 1만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아군도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끊임없는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하얗게 벗겨지면서 멀리서 보면 백마가 누워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해서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전쟁의 참혹함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무려 24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면서 아군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픔을 가진 백마고지 / 사진=배성식 제공
철원평화전망대 - 분단의 경계를 한눈에 담는 곳
2007년 11월 개관한 철원평화전망대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안보·관광 시설이다. 1층에는 전시관이 있으며, 전망 공간에서는 DMZ의 자연생태와 궁예도성의 성곽, 평강고원, 북한의 선전마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북녘의 풍경은 가까우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전망대까지 편리하게 이동하면서 주변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월정리역 - 철마는 달리고 싶다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까지 이어지던 경원선의 철도역으로, 현재는 남방한계선 인근에 자리한 대표적인 안보 관광지다. 6·25전쟁 당시 파괴된 열차의 잔해가 이곳에 남아 있다.
철골만 앙상하게 드러낸 객차 곁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표지판이 서 있다.
한때 남과 북을 오가던 철도는 멈춰 섰지만, 다시 기차가 달리기를 바라는 염원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고석정 - 외로운 바위와 정자가 어우러진 절경
한탄강 중류에 자리한 고석정은 강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와 현무암 협곡이 어우러진 철원의 대표적인 명승지다. 신라 진평왕 때 바위 맞은편에 작은 정자를 세웠다고 전해지며, 정자와 주변 경관을 아울러 고석정이라 부른다. 약 12m 높이의 거대한 바위와 기암절벽 사이로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 명종 때에는 의적 임꺽정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은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외로운 돌'인 고석정은 철원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 사진=배성식 제공
1977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고석정은 빼어난 자연경관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를 비롯해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 《연인》, 《선덕여왕》, 《추노》 등이 이곳의 웅장한 현무암 협곡을 화면에 담았다. 수천만 년의 시간이 빚어낸 기암절벽과 굽이치는 한탄강은 때로는 역사의 무대가 되고, 때로는 판타지 속 신비로운 세계로 변신한다.
직탕폭포 - 한국의 나이아가라
한탄강 상류에 자리한 직탕폭포는 강을 가로지르듯 일자로 떨어지는 독특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넓은 바위 절벽을 따라 물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모습이 웅장하다.
폭은 약 80m, 높이 약 3m로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고석정에서 약 2km 상류에 있으며, 맑은 강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철원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물소리와 탁 트인 풍경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도피안사 - 피안과 차안 사이, 마음이 머무는 절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불교에서 ‘피안(彼岸)’은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깨달음의 세계, 즉 이상적인 세계를 뜻한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는 ‘차안(此岸)’이라고 한다. 차안이 번뇌와 고통이 있는 이쪽 언덕이라면, 피안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선 저쪽 언덕이다. 도피안사는 말 그대로 '피안에 이른다'는 뜻을 품은 사찰이다.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에 창건된 이 절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원의 산자락을 지켜왔다.
사찰 안에는 국보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인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철로 만든 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피안에 이른다'는 뜻의 도피안사는 국보인 철로 만든 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분단과 전쟁의 흔적을 따라 철원을 여행하다 잠시 이곳에 들러보자.
번잡한 현실인 차안을 벗어나 고요한 피안의 세계를 마주하는 듯한 시간, 도피안사는 여행자의 마음에도 작은 쉼표를 찍어준다.
순담계곡 - 물길과 기암절벽이 빚어낸 절경
한탄강 물줄기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히는 순담계곡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 깊은 소가 어우러진 곳이다. 계곡 곳곳에는 하얀 모래밭도 형성되어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굽이치는 물살 덕분에 봄부터 가을까지 래프팅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계곡의 거친 물살을 따라 협곡을 지나면 철원이 품은 자연의 역동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독립투사들의 은거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원으로 알려진 기독교 대한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한탄강 물줄기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경관으로 손꼽히는 순담계곡은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 깊은 소가 어우러진 곳이다. / 사진=배성식 제공
철원의 맛을 만나다!
철원막국수 - 60년 전통의 메밀 향
철원을 찾았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 막국수를 맛보자.
철원막국수는 1964년 문을 연 막국수 전문점으로, 대를 이어온 손맛과 정겨운 분위기로 사랑받고 있다. 개업 당시의 정취를 간직한 한옥 건물도 이곳의 매력이다.
대표 메뉴는 메밀면 위에 매콤달콤한 양념장과 상추, 무김치를 얹어 내는 비빔 막국수다. 통 메밀과 속 메밀을 반씩 섞어 면을 만들어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은 살리고 텁텁한 맛은 줄였다. 새콤달콤한 양념과 메밀면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녹두빈대떡과 찐만두, 수육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음식점에서 철원의 소박하고 깊은 맛을 경험해 보자. 강원 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명성로158번길 13
60년 전통의 철원을 대표하는 맛집 '철원막국수'의 비빔 막국수(좌)와 물 막국수 / 사진=배성식 제공
# 여기서 잠깐! 막국수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막국수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메밀 재배가 활발했던 강원도와 일부 경기 지역에서 즐겨 먹던 메밀국수가 오늘날 전국적인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막국수의 ‘막’은 ‘금방’, ‘바로’라는 뜻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메밀을 거칠게 갈아 면을 만들고 주문을 받으면 바로 뽑아 먹던 소박한 음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막걸리나 막장처럼 ‘막’이라는 말이 붙은 음식에도 이러한 쓰임이 남아 있다.
막국수는 햇메밀을 수확하고 무가 맛있어지는 초겨울이 제철이지만, 지금은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다.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과 담백한 면발, 새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한 그릇에는 강원도의 자연과 소박한 식문화가 담겨 있다.
배성식 / 여행 작가

평소 여행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모아 2022년에 아빠들을 위한 주말 놀거리, 먹거리 프로젝트 <아빠와 함께하는 두근두근 보물찾기>를 발간하였다.
202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최대의 언론사 그룹인 여행요미우리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관광명소와 외국인들이 꼭 경험해 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한국의 핫 플레이스 51’을 일본어 <韓国のホットプレイス51>로 공동 발간했고, 2026년 11월에는 전자책 개정판을 발간했다.
인스타그램 @k_stargram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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