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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_호소카와 타카시] 폭포수 같은 가창력의끝판왕… 정통 엔카를 지켜낸 마지막 수호자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4-10 11:20

가족 반대에도 홀로 삿포로행 무명가수 생활

관객이 없어도 호스티스 앞에서 혼신의 노래

홍백가합전 40회 대기록 후 스스로 졸업 선언

무엇이 기본인지 몸소 증명 엔카의 중심 잡다

□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 ⑩ ‘소리의 장인’ 호소카와 타카시(細川たかし)

 

대한민국 유일의 트로트 전문 매체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전하는 트로트 세계화 원년 2026년 신년 특별 기획, ‘일본을 울린 엔카 스타 10인’ 시리즈 10번째로 최종회입니다.

미소라 히바리의 천재성으로 시작해 후지 케이코의 비극을 지나, 무라타 히데오의 뿌리를 확인한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인물은 혁신가가 아닙니다. 그는 엔카가 흔들릴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노래한 사람입니다. 장르가 흥청거리며 세상의 유행을 좆을 때에도,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낸 사람. “혁신가가 장르를 키운다면, 수호자는 장르를 살린다.” 엔카의 마지막 자존심, 호소카와 타카시를 만납니다.

 

“노래는 이야기다. 감정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호소카와 타카시

 사진=제67회 일본 레코드 대상 / TBS 테레비 

 ‘삿포로의 모리 신이치’ 불려

 

1957년,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마카리무라(真狩村).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에게 농부로 가업을 잇는 것은 정해진 운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민요와 낭곡에 매료된 이 소년은 달랐다.

본명 시바타(柴田), 훗날 세상이 호소카와 타카시(細川たかし)라 부르게 될 이 사람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삿포로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삿포로의 작은 클럽. 낮에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밤에는 무명 가수로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 먹으며 버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무대는 그를 갈고 닦았다. 

관객이 없는 날에도 호스티스 앞에서 온 힘을 다해 노래했다. “청중이 없어도 노래는 진짜여야 한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윽고 삿포로 현지에서는 당시 최고의 민요 가수였던 모리 신이치에 비유하여 “삿포로의 모리 신이치”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도쿄까지 흘러들었다.


사진=스포니치

데뷔곡의 제목이 바뀐 사연은?

 

1975년 4월 1일, 호소카와 타카시는 ‘코코로노코리(미련, 心のこり)’로 정식 데뷔했다. 그런데 이 곡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다.

원래 이 데뷔곡의 제목은 ‘나는 바보인가요(私バカよね)’였다. 그러나 인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이번에 ‘나는 바보인가요’로 데뷔하게 된 호소카와 타카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의견이 나와 ‘코코로노코리’로 제목을 바꾸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웃지 못할 이 에피소드는 당시 신인 가수의 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코코로노코리(心のこり, 미련) 

 

私バカよね おバカさんよね

나는 바보네요. 정말 바보예요

うしろ指うしろ指さされても

남에게 뒷손가락질, 뒷손가락질을 당해도

あなた一人に命をかけて

당신 하나에 내 목숨을 걸고

耐えてきたのよ今日まで

지금까지 참아 왔어요

秋風が吹く港の町を

추풍이 불어대는 항구 거리를

船が出てゆくように

배가 떠나가듯이

私も旅に出るわ明日の朝早く

나도 여행을 떠나요. 내일 이른 아침에~ (중략)


사진=心のこり수록 데뷔앨범 

하지만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데뷔곡 ‘코코로노코리’로 제6회 일본 가요 대상 방송 음악 신인상, 제17회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 신인상 등 그해의 음악 신인상을 대거 받았고, 같은 해 제26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여 백조 선두를 맡았다. ‘준비된 무명’은 기회를 만나는 순간 폭발했다.

이 무렵 그는 당시 최고의 민요 가수 미하시 미치야(三橋美智也)와 만나 ‘미하시류 미하시 미치타카(三橋美智貴)’라는 이름을 받기도 했다. 엔카의 계보가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신인상수상 / 스포니치

히트곡 ‘기타사카바(北酒場)’ 탄생

 

데뷔와 함께 신인상을 휩쓸었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이후 7년간 호소카와 타카시는 히트곡다운 히트곡을 내지 못했다. 무대는 섰지만, 정상은 멀었다. 그 7년의 인내가 1982년 드디어 결실을 보았다.

1982년 3월 1일 발표한 ‘기타 사카바(北酒場)’가 데뷔곡 이후 7년 만의 대히트를 기록하며 오리콘 1982년도 연간 5위에 오르고, 제24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첫 수상했다. 

‘북쪽 술집’을 배경으로 한, 이 노래는 홋카이도 출신 가수가 가진 북방의 정서, 차갑고 거친 공기, 그리고 술 한 잔에 녹아드는 서민의 애환을 담아냈다. 

트로트로 치자면 나훈아의 ‘테스형’이 가진 것과 같은 힘, 즉 시대를 초월해 누구의 가슴에나 닿는 보편성이었다.

이듬해 1983년에는 ‘야기리노 와타시(矢切の渡し)’로 제25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일본 레코드 대상 2년 연속 대상 수상. 이는 엔카 역사상 손에 꼽히는 기록이었다.

 

사진=北酒場 수록 앨범

홍백가합전에서의 대형 실수

 

화려한 수상 경력 뒤에는 인간적인 실수도 있었다.

1984년 제35회 NHK 홍백가합전에서 ‘나니와부시와 인생은(浪花節だよ人生は)’을 부르던 중 가사를 앞뒤 순서를 바꿔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당시 홍백가합전에서 화면 아래에 가사가 자막으로 나온 지 5년이 지나도록 단 한 명도 가사를 틀리지 않았는데, 호소카와가 처음으로 실수를 한 것이었다. 

NHK에는 무려 8,000통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는 그를 더 인간적인 인물로 기억하게 했다. 

완벽한 신화보다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그 모습. 대중은 오히려 그것에서 진심을 보았다.

 

 

민요풍 ‘망향존카라(望郷じょんから)’

 

호소카와 타카시의 음악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1985년 발표한 ‘망향 존카라(望郷じょんから)’이다.

작사 사토무라 류이치, 작곡 하마 케이스케. 고향 쓰가루 지방을 그리워하며 상경한 이의 마음을 담은 이 곡에는, 그가 가장 잘하는 하이톤이 전체적으로 구사되며 민요 조의 파트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곡의 탁월한 점은 민요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엔카의 감성을 완벽하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산골 마을 홋카이도에서 자란 소년이 도쿄의 클럽을 전전하던 기억, 가족을 두고 혼자 상경했던 결단, 그리고 고향 하늘이 그리운 밤. 이 모든 자전적 감정이 민요의 가락 위에 실렸다. NHK 홍백가합전에서도 무려 5회나 불렸으며, 1996년 제46회에서는 대 트리(앤딩 무대)까지 맡았다. 


 

고향에 기념비가 세워지다

 

1985년 그의 고향 마카리무라에는 ‘호소카와 타카시를 기리는 비’가, 1994년에는 ‘호소카와 타카시 기념상’이 건립되었다. 가수가 살아생전에 고향으로부터 이런 예우를 받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선 소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클럽을 전전하던 무명 시절. 그 모든 출발점이 된 고향 마을이 그를 기념하기로 했을 때, 그것은 그가 ‘성공한 가수’를 넘어 ‘고향의 자부심’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진=호소카와 타카시 기념상 / 나무위키

“가사는 또렷하게 전해야 한다”

 

호소카와 타카시의 가창법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민요에서 단련된 폭넓은 성량과 안정적인 호흡,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음정.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 하나하나를 듣는 사람의 가슴에 또렷이 박아 넣는 전달력. “가사는 듣는 사람에게 또렷하게 전해야 한다.”라는 그의 신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50년 무대의 결론이었다.

그의 창법은 한국 트로트로 치면 송대관·태진아의 위치와 닮아있다. 

화려한 기교보다 장르의 규범을 지키며, 대중적이되 과하지 않은 표현. 트로트와 엔카가 퓨전화되고 경계가 흐릿해질 때, 이들은 무엇이 ‘기본형’인지를 몸소 증명하며 장르의 중심을 잡았다.

 

스스로 ‘세대교체’ 선언하다

 

호소카와 타카시는 NHK 홍백가합전에 통산 40회 출연했다. 이는 엔카 가수로서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런데 더 주목할 대목은 그가 이 무대를 떠나는 방식이었다. 2016년 제67회 홍백가합전 출장을 고사하며 “홍백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라며 스스로 홍백 졸업을 선언했다. 전설이 스스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밀려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운 것. 이것이 바로 그가 50년간 쌓아온 품격의 마지막 표현이었다.

2021년 제72회에서는 6년 만에 특별 기획 형식으로 홍백 무대에 돌아와 ‘망향 존카라’와 ‘기타 사카바’ 스페셜 메들리로 통산 40회 출연을 채웠다. 

 사진=스포니치

[시리즈를 마치며]

 

트로트에도 ‘수호자’가 필요하다

 

미소라 히바리의 천재성, 후지 케이코의 비극, 미야코 하루미의 대중성, 무라타 히데오의 남성적 기개. 그리고 호소카와 타카시의 꾸준함. 이 다섯 가지 얼굴은 엔카라는 장르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준다.

 

K-트로트가 글로벌화와 퓨전을 외치는 2026년, 호소카와 타카시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바꾸지 말아야 하는가?”

장르는 혁신으로 성장하지만, 꾸준함으로 생존한다. 누군가 끝까지 그 자리에서 ‘기본’을 지키고 있을 때, 비로소 혁신도 의미가 있다. 호소카와 타카시가 반세기 동안 엔카의 자리를 지켰듯, 우리의 트로트에도 그런 수호자가 필요하다.

 

“무라타 히데오가 엔카의 뿌리를 내렸다면, 호소카와 타카시는 그 뿌리 위에서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텼다.”

10인의 거성들이 남긴 목소리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한다. 

트로트든 엔카든, 가장 좋은 노래는 삶에서 나오고,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것이 일본의 레전드 엔카 가수를 소개한 이 시리즈가 10회에 걸쳐,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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