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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트로트와 엔카, 경쟁자 아닌 파트너... ‘동아시아 소울 뮤직’으로 세계시장 공동진출 해볼만”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5-12-23 11:57

전 세계 중장년층 고독과 향수를 위로하는 ‘힐링 뮤직’으로

AI 시대에 인간성을 확인해 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 될 것

K-트로트, 일본 성인가요 시장 깨워... 엔카 시장 1차 교두보로

□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장 박진수 교수 인터뷰 (하)



지난 (상) 편에서 박진수 가천대 교수는 트로트와 엔카가 1920년대 제국 일본의 음반 시장이라는 동일한 생태계에서 태어난 ‘쌍둥이’임을 밝혔다. 또한, 엔카의 아버지 고가 마사오가 조선의 민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엔카가 일방적인 일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정서가 녹아든 ‘공동 유산’임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뿌리가 같은 두 음악은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지금, K-트로트가 일본을 넘어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하) 편에서는 내러톨로지(서사학)로 분석한 한일 문화의 결정적 차이와 AI 시대에 트로트가 갖는 가치에 대해 심층적인 이야기를 들어본다.

 

 

‘루돌프’와 ‘단팥빵’으로 본 한일 문화의 차이

 

박진수 교수는 한일 양국의 정서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흥미로운 ‘문화 비교 이론’을 꺼내 들었다. 이 비유들은 트로트와 엔카가 왜 다른 느낌을 주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첫 번째로 논리 vs 비장미를 들었다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 캐럴 ‘루돌프 사슴코’를 봅시다. 한국어 가사와 영어 원곡은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코가 반짝이니 산타가 ‘길을 밝혀달라’고 실용적인 부탁을 하고, 사슴들이 그를 사랑하게 되죠.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논리적입니다. 

 

그런데 일본어 번안 가사는 전혀 딴판입니다. 일본 가사에서 루돌프는 반짝이는 코 때문에 놀림을 당해 ‘울고만 지내던’ 슬픈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러다 산타에게 발탁되면서 ‘이제야말로 나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라며 비장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내용으로 바뀝니다.”

박 교수는 이것이 바로 일본 문화의 특징인 ‘비장미’와 ‘역할론’이라고 설명했다. 슬픔을 안으로 삭이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며 비장하게 산화하는 것, 이것이 일본 엔카의 정서다. 반면 한국의 트로트는 그 슬픔을 “가슴을 도려낸다”라고 할 만큼 밖으로 표출하고 공유하며, 끝내 ‘흥’과 ‘신명’으로 승화시킨다.

 

두 번째는 한국의 융합 vs 일본의 세분화다

“한국 빵집에 가면 케이크도, 마들렌도, 단팥빵도 다 ‘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포괄적으로 뭉뚱그려 융합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죠. 반면 일본은 다릅니다. 그들에게 ‘빵(팡)’은 식빵 같은 기본 빵만을 의미하고, 나머지는 다 다른 고유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댄스도 발라드도 옛날 노래도 넓은 의미의 ‘가요’ 혹은 ‘트로트’ 범주에 넣지만, 일본은 ‘엔카’, ‘가요곡(대중적인 팝 스타일)’, ‘J-POP’을 칼같이 나눕니다.”

박 교수는 우리가 트로트와 엔카를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일본이 만들어 놓은 이 세밀한 장르 구분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식의 ‘통 큰’ 융합 마인드야말로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록, EDM, 클래식을 섞어 K-트로트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세 번째 차이는 ‘직설’과 ‘풍경’의 미학이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보면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이라고 직설적으로 토해냅니다. 반면 일본 엔카의 명곡 ‘츠가루 해협의 겨울 풍경’은 이별의 슬픔을 직접 말하는 대신 ‘갈매기가 운다’, ‘홋카이도가 보인다’라며 풍경 뒤에 숨깁니다. 

한국인은 일본 노래가 밋밋하다고 느끼고, 일본인은 한국 노래가 너무 격정적이라 부담스러워하는 지점이 바로 이 ‘표현 방식’의 차이입니다.”

 

 

‘갈라파고스’ 엔카 vs ‘야생’의 트로트



뿌리는 같았지만, 현재 두 장르의 위상은 사뭇 다르다. 

일본의 엔카는 고령층의 전유물로 남아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한국의 트로트는 전 세대를 아우르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박 교수는 그 원인을 ‘시장 구조에 따른 절박함의 차이’로 진단했다.

 

“일본은 내수 시장이 워낙 큽니다. 출판 시장만 해도 한국의 10배고, 인구가 1억 2천만이 넘으니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었죠. 그 안주함이 엔카를 세계와 단절된 ‘갈라파고스’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시장이 좁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죠. 그 절박함과 역동성이 K-POP을 만들었고, 이제 트로트까지 세계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최근 방영된 ‘한일가왕전’이나 ‘한일톱텐쇼’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젊은 가수들이 한국 트로트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퍼포먼스에 충격을 받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 교수는 “정체되어 있던 일본 엔카 시장에 K-트로트가 강력한 자극제이자 ‘메기’가 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1930년대 조선 가수들이 일본 음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듯, 지금의 K-트로트 시스템이 일본 성인 가요 시장을 다시 깨우고 있다.

 

 

AI는 할 수 없는 ‘거짓말’, 그리고 ‘이야기’

 

인터뷰가 막바지로 향할 무렵, 화두는 미래로 옮겨갔다. 

AI가 작곡하고 가사를 쓰는 시대, 트로트의 설 자리는 어디일까. 박 교수는 인간을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동물)’로 정의하며 철학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재미 삼아 AI에게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해달라’라고 했더니, ‘저는 데이터일 뿐 경험이 없다’라고 하더군요. 인간의 언어 능력 중 가장 탁월한 것은 사실 전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며, 심지어 ‘거짓말’을 하는 능력입니다.”

그는 트로트의 본질을 ‘아름다운 거짓말’이라고 정의했다. “트로트 가사 속의 그 절절한 사연들, 지나간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오지 않은 행복을 꿈꾸는 그 행위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AI는 희로애락의 데이터를 학습할 수는 있어도, 가슴 저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한(恨)’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구질구질하고도 찬란한 삶의 냄새가 배어 있는 트로트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성을 확인해 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반일(反日)을 넘어 ‘동아시아 소울 뮤직’으로



 마지막으로 박진수 교수는 K-트로트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제언을 남겼다. 그는 이제 ‘K-’라는 접두어에 갇히지 말고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K-POP이 10·20세대를 겨냥한다면, 트로트는 삶의 쓴맛 단맛을 아는 전 세계 성인층, 즉 ‘어덜트 컨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 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트로트는 아시아판 블루스이자, 라틴의 볼레로입니다. 멜로디는 달라도 그 밑바닥에 흐르는 ‘뽕 끼’, 즉 인간의 보편적 비애와 삶의 애환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트로트와 엔카를 묶어 ‘동아시아 소울 뮤직(East Asian Soul Music)’ 혹은 ‘아시아의 서사 발라드(Narrative Ballad of Asia)’라는 브랜드로 세계에 내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과 일본이 경쟁할 게 아니라, 이 거대한 문화적 자산을 공유하며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고 섞이는 것입니다. 한국 고유의 것만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확장을 가로막습니다. 일본의 엔카 시장을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이자 세계 진출의 1차 교두보로 삼아야 합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우리가 우려했던 문화 잠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문화의 경쟁력만 강해졌죠. 트로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박진수 교수와의 긴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 머릿속에서 ‘왜색’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졌다. 그 자리엔 100년의 세월 동안 식민지와 분단, 가난과 번영을 통과해온 동아시아인들의 질긴 삶의 이야기가 남았다. 

트로트는 이제 낡은 유산이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릴 준비를 마친 가장 뜨거운 ‘현재진행형’의 역사다.




박진수 교수가 제안하는 K-트로트 세계화 3대 전략

 

브랜드의 재정의 (Re-branding)

‘한국만의 전통’을 강조하기보다 ‘동아시아의 소울 뮤직’이라는 보편적 정서로 접근하라. 아시아의 블루스, 샹송으로 포지셔닝하여 서구권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K-’라는 수식어가 주는 피로감을 넘어, 인류 보편의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개방성과 협력 (Openness & Partnership)

한일 간의 문화적 국경을 허물어야 한다. 일본의 거대한 내수 시장과 공연 인프라는 K-트로트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양국 가수가 교류하는 ‘아시아 뮤직 페스티벌’ 정례화 등을 통해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는 식의 과감한 발상도 필요하다.

 

타겟의 명확화 (Targeting)

아이돌 중심의 K-POP과 달리 트로트는 ‘감정의 깊이’를 소비하는 성인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삶의 경험이 묻어나는 서사적 가창력으로 전 세계 중장년층의 고독과 향수를 위로하는 ‘힐링 뮤직’ 전략이 유효하다. 일본의 ‘가요곡’ 시장과 서구의 성인 음악 시장이 그 타겟이다.




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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