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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과 칸초네는 우리 인생 굴곡과 닮아”
대학 때 TBC ‘재즈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
결혼 후 우연한 기회 음악레스토랑 캐스팅
‘당신은 안개였나요’ 명곡 탄생 스타 덤에
□ 5월 단독콘서트 앞둔 가수 이미배
사진=본인 제공
“노래는 음정과 박자만이 다가 아닙니다. 살아온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죠.”
1980년대, 세련된 멜로디 위로 낮게 깔리는 고혹적인 목소리가 전국의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그리움이 구름처럼 피어나는 날, 안개 속에 떠나가신 당신을 생각합니다….”
생소한 리듬, 생소한 목소리. 당시로선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곡 ‘당신은 안개였나요’였다.
그러나 그 깊이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디스크자키 이종환이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매일같이 이 노래를 틀었다. 그렇게, 가수 이미배가 우리 곁으로 왔다.
샹송과 칸초네를 한국에 알린 1세대 가수이자 ‘샹송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미배.
데뷔 53년 차를 맞은 그가 오는 5월 2일 강남구 가빈아트홀에서 단독콘서트로 다시 팬들 앞에 선다. 트롯뉴스(www.trotnews.co.kr)가 공연을 앞둔 그를 만났다. 긴 세월을 간직한 목소리만큼이나, 이야기도 깊고 단단했다.
"목욕탕서 한 시간씩 노래“
이미배의 음악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시끌벅적한 대가족 풍경이 펼쳐진다. 딸 다섯, 아들 셋, 여덟 남매가 북적이는 집안에는 매일매일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과 팝송, 샹송, 칸초네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가 우리가 노래하면서 노는 걸 참 좋아하셨어요. 목욕탕에 들어가면 울림이 좋잖아요. 거기서 30분씩, 한 시간씩 노래하고 있어도 시끄럽다고 나오라는 말씀을 안 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는 이 대목에서 그 시절이 참 그리운 듯했다.
음악 집안이었다. 형제자매 모두 노래를 잘했고, 여동생은 연세대 불문과를 나온 뒤 다시 성악과에 진학해 음악의 길을 걸었다. 경기여고와 연세대 가정대학을 나온 이미배 역시 초등학교 때 이미 방송국 무대에서 노래했을 만큼 재능이 남달랐다.
1971년 TBC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에서 칸초네 ‘리코르다(Ricorda)’를 불러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세상은 그의 데뷔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가수 활동을 하면 졸업을 안 시킨다.’라고 했어요. 집에서도 아마추어로 노래하는 건 좋지만, 가수를 직업으로 삼는 건 안 된다고 하셨고요. 그런 시절이었죠.”
상을 받고도 데뷔는 꿈도 꾸지 못한 채, 그는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먼저 살았다.
사진=본인 제공
인생의 전환점 무교동 ‘티파니’
인생의 전환점은 서른 살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찾아왔다. 운명처럼 연이 닿은 곳은 무교동의 레스토랑 ‘티파니’.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까지 아우르는 13인조 악단이 상주하던 이 공간은 이동원, 하남석, 채은옥, 최백호 등 당대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거쳐 간 음악의 성지였다.
“처음엔 긴장해서 반주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거예요. 노래가 제가 생각하는 만큼 되질 않아서, 한 달쯤 지나 사장님께 말씀드렸죠. ‘제가 여기서 돈을 받고 노래할 만큼은 못 하는 것 같으니 그만하겠다’라고요.”
그러자 사장님은 웃으며 말렸다.
“처음엔 다 그런 거야, 더 해봐.” 그 한마디가 가수 이미배의 역사를 바꿨다.
“당시엔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어요. 어릴 때는 세상이 다 그런 줄 알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사장님께 정말 감사하죠.”
결국, 그는 출연자 중 가장 높은 개런티를 받는 가수가 됐고, 그 인연은 지구레코드와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바로 불후의 명곡 ‘당신은 안개였나요’이다.
매일 밤무대에 섰던 그 시절의 경험이야말로 가장 값진 훈련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컨디션을 조절하고, 매일 옷을 입고 나가고, 3~4곡을 앙코르 없이는 절대 5곡 이상 부르지 않던 그 긴장감. 요즘은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을 거예요.”
“트로트와 칸초네 정서적 비슷”
그의 음악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칸초네와 샹송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다.
“칸초네는 우리 감성과 비슷하면서 약간 밝아요. 샹송은 좀 더 차분하고 어두운 느낌이고요. 세상에 밝음이 있다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음악도 그래요. 어느 인생이나 굴곡이 있는 것과 닮아있죠.”
젊었을 땐 소화하기 어렵던 그 깊이가, 나이 들수록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한다.
“노래는 음정과 박자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살아온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거죠. 감성과 이성이 다 배어 나오고, 그건 절대 속일 수가 없어요.”
흥미로운 것은 이 ‘샹송의 여왕’이 트로트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과 식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트로트와 엔카, 칸초네가 정서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뿌리가 닮은 장르라고 본다.
“이난영 선생님, 박재란 선생님, 이미자 선배님… 들어보면 정말 대단하세요. 트레이닝도 제대로 못 받으셨을 텐데, 그 타고난 발성과 감성이라니. 절대로 과하지 않은 절제, 그 고상함이 관객에게 더 깊은 울림을 주죠.”
그러면서 그는 요즘 일부 트로트 가수들에 대한 솔직한 아쉬움도 전했다.
“요즘은 부르는 사람이 너무 과하게 감정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듣는 사람이 오히려 부담스럽거든요. 옛날 분들은 감정을 순화하고 절제해서 불렀기에, 관객이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거예요.”
사진=본인 제공
“오랜 팬들 만나면 가슴 뭉클”
가수로서 가장 큰 보람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데뷔할 때부터 저를 보셨던 분이 공연장에 오셔서 ‘어디서 공연할 때 갔었습니다’라고 한마디 건네시면요.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분인데, 긴 설명이 필요 없어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뭉클하죠.”
격변의 시대를 함께 살아낸 공통의 문화와 감정. 그것이 바로 음악이 가진 힘이라고 그는 말한다.
“조영남, 남진 선배님처럼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제는 알아요. 젊었을 땐 40세까지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하며 그가 웃었다. 살짝 민망한 듯, 그러나 행복한 웃음이었다.
“이번 공연 주옥같은 명곡 선사”
이번 5월 공연에서는 ‘장밋빛 인생’, ‘눈이 내리네’, ‘마리짜 강변의 추억’, ‘볼라레’ 등 샹송·칸초네 명곡과 함께 ‘봄날은 간다’, ‘세월이 가면’, ‘낭만에 대하여’ 같은 주옥같은 국내 가요 명곡도 선보인다. 혼자 2시간을 온전히 책임지는 무대다.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음악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5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그냥 쌓이지 않는다. 절제하고, 버티고, 감사하며 쌓인다. 이미배의 목소리가 여전히 안개처럼 깊고 포근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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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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