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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詩)를 품은 음유시인 가수 최성수, “우리의 삶은 여전히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4-13 10:07

사랑 노래보다 약자 위로하는 노래 하고 싶어

이해인 등 유명 시인 시에 곡 붙여 188곡 완성

미 유학 중 만든 ‘위스키 온더락’ 역주행 신기

김혜자 수상 소감에 감동 ‘눈이 부시게’ 작곡

□ 신곡 ‘눈이 부시게’ 발표한 가수 최성수

 

대한민국 가요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가수 최성수가 신곡 ‘눈이 부시게’로 돌아왔다. ‘동행’, ‘풀잎사랑’, ‘해후’ 등 숱한 명곡으로 시대를 위로했던 그가 이제는 시인의 문장에 선율을 얹어 인생의 깊이를 노래한다. 

‘트롯뉴스’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의 감성을 간직한 그를 만나, 음악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곡 '눈이 부시게'를 발표한 최성수 / 사진 = 트롯뉴스


동안의 비결은 ‘절제와 비움’

 

올해로 예순여섯을 맞이한 최성수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동안을 유지하고 있다. 

“임지훈, 김범룡이 다 동년배예요. 같이 활동하면서 친하게 지냈는데, 동창회 가면 애들이 좀 나이 들어 보이긴 해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얼굴에는 세월이 머뭇거린다. 

오랫동안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 비결이냐고 묻자, 복합적인 이유를 꺼냈다. 술이 체질에 맞지 않았고, 술주정이 심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었고, 교회를 다니며 다진 신앙도 있었다. 절제는 의지가 아니라 삶 자체였던 셈이다. 덕분에 데뷔 시절의 미성은 지금도 맑고 단단하다.

동시대 활동했던 동료들과 여전히 교류하며 현역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요즘 방송가의 변화를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우리가 데뷔했을 때 김정구, 현인 선생님을 뵙던 그 느낌을 요즘 아이들이 우리를 보며 느낄 것이다. 그분들도 당시에 방송국 젊은이들이 자기네 노래를 틀지 말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설마 했는데… 지금 제가 딱 그 처지가 됐어요.”

연예계에서는 방송국에서 “7080 노래를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 “시청률을 위해 젊은 가수를 써야 한다는 노조의 압박까지 있다.”라는 등의 소문이 들리는 것을 볼 때 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10여 년간 장안대, 백석대, 건국대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보컬과 문화 콘텐츠를 강의했고, 정년 퇴임 후에는 오로지 자신의 작업실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곡을 쓰고 악상을 다듬는 것이 그의 일상이자 유일한 휴식이다.

 

 

포크 곡이지만 트로트 정서 배어

 

최성수의 음악은 흔히 포크에 기반을 둔 발라드로 분류되지만, 그 안에는 한국인 특유의 ‘트로트 적 정서’가 깊게 배어 있다. 사실 그는 인터뷰 직전까지 트롯뉴스의 취재 요청이 다소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당신 노래는 요즘 애들이 들으면 다 트로트라고 생각해요.”

웃음과 함께 꺼낸 이 한마디가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는다. 통기타를 치며 윤형주, 송창식의 영향을 받았던 청년 최성수, 음악 카페 ‘쉘부르’에서 언더 그라운드 가수로 노래 하던 그 소년은, 이제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이 중견 가수의 의무라고 말한다.

“예전엔 사랑 노래를 주로 했지만, 이제는 사회적 불합리나 약자의 마음을 노래하는 포크의 정신을 되새겨요. 나도 모르게 ‘사나이 우는 마음을~’를 흥얼거리게 되는 걸 보면, 내 뿌리 깊은 곳엔 결국 트로트의 애절함이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그는 1950년대 전후 세대가 흡수했던 음악적 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달라진다.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의 파병 군인들과 함께 들어온 칸초네, 샹송, 파두, 보사노바, 재즈까지, 한꺼번에 쏟아진 그 음악들이 당대 가수들의 감수성을 빚었다는 것이다.

“메이드인 프랑스 하면 프랑스 문화를 생각하잖아요. 그만큼 국력이 뒷받침될 때 문화도 피어나는 거예요. K-팝이 세계를 흔드는 지금, 단군 이래 한국 남자들이 이렇게 세계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있어 본 적이 없잖아요.” 자부심과 겸허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말이었다.

 

 

한국 대표 시인 시에 선율 얹다

 

최성수가 요즘 가장 몰두하는 작업은 시에 곡을 붙이는 일이다. 

그의 작곡 노트에는 지금까지 188편의 시에 붙인 멜로디가 빼곡하다. 이해인, 나태주, 김용택, 황동규, 도종환, 오세영 등 한국 현대 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언어 위에 그가 선율을 얹었다. 가장 최근 발표한 16집 ‘참 좋은 당신’은 김용택 시인의 시 16편으로만 채웠다. 시인들의 모임에서 ‘음유 시인상’을 받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가 워낙 좋으니까, 곡을 붙여 놓으면 정말 좋은 노래가 되더라고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음률이 딱 맞아떨어질 때 전율을 느껴요. 노래는 엉덩이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결국, 버티고 앉아서 끝까지 완성해 내는 거죠.”


 유명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최성수 / 사진 = 트롯뉴스

작업 과정에서 마주한 AI 기술은 그에게 새로운 날개가 되었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는 10년 전부터 곡을 완성해 두었지만, 함께 불러줄 성악가를 찾지 못해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 까이고 또 까이던 그 시간이 오히려 기회가 됐다.

“AI로 편곡하니까 세계 최고의 편곡자, 연주자와 함께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섭섭했는데, 이제는 까인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곡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유튜브에서 황동규의 시를 낭독한 영상 댓글 중, 한 병사의 고백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군대에서 너무 괴롭힘을 당해 초소에서 방아쇠를 당기려 했는데, 벽에 써진 황동규의 시를 읽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글이었다.

“이 정도 시라면 반드시 노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바리톤 송기창 씨와 듀엣으로 녹음해서 올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향수’ 이후 새로운 명 듀엣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아울러 로마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도 노래로 만들었다. 2,000년 전 라틴어 시가 21세기 한국 가수의 목소리를 빌려 다시 숨쉬기 시작한 것이다. 울릉도 공항 개통을 앞두고 지역 시인의 의뢰로 만든 ‘울릉도가 참 좋다.’ 역시 곧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위스키 잔 얼음처럼 녹던 자존감

 

최성수의 이름 앞에 ‘역주행’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은 2022년의 일이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배우 이정은이 ‘위스키 온더락’을 부르면서 30년 묵은 곡이 젊은 세대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앉았다.


'위스키 온더락'을 부르는 이정은, 차승원 / 사진=tvN '우리들의블루스'

이 곡의 탄생에는 긴 사연이 있다. 1995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열등감,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급변한 가요계의 풍경이 그를 뉴욕행 비행기에 태웠다. 1년 간의 어학 연수를 마치고 보스턴 버클리 음대에 합격했지만, 지하철 역에서 마주친 거리 연주자들의 실력 앞에서 자신감이 무너졌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가수였는데, 기타 뚜껑 열어봐서 돈이라도 벌 수 있겠나 싶을 정도였어요. 자신감도, 자존감도 다 흔들리던 밤이었죠.”

힘겨운 어느 밤, 동생들과 들른 술집. 글래머스한 웨이트리스가 가져다준 위스키 잔 속 얼음이 불빛에 녹아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메모를 꺼냈다.

“내 꿈이, 내 자존감이 저렇게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나이 마흔을 바라보며 혼자 이국땅에서 버텨야 하는 마음을 그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죠.”

버클리 수업 시간에 데모를 만들고 귀국 후 완성했지만, 처음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발표하고 그냥 묻어두었던 곡이, 코로나 이후 ‘혼술’ 문화가 자리 잡고 위스키가 젊은 세대들에게 ‘소확행’의 일상이 되면서 비로소 부활했다.

“그 드라마 없었으면 미국 유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더 재미있는 반전도 있었다. AI로 ‘위스키 온더락’의 일본어 버전을 만들어냈는데, 원곡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쇼크 받았어요. 일본말이 더 좋고, 내 노래보다 더 좋아. 그래도 AI를 적으로 볼 게 아니라 내 음악 코치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MBC 강원 영동 'MUSIC 아름다운 음악세상' 화면 캡쳐


치매 환자의 독백이 노래로

 

그리고 지금, 그는 또 하나의 감동을 세상에 내놓았다. 신곡 ‘눈이 부시게’다.

2019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대상을 받은 배우 김혜자는 수상 소감 대신 극 중 알츠하이머를 앓는 혜자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낭독해 깊은 울림을 전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의 달콤한 바람, 해 질 녘 노을 냄새…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시상식장은 울음 바다가 됐다. 그 장면이 최성수의 가슴속에 박혔다.

“장모님이 치매이신데… 그 수상 소감을 다시 꺼내 보면서 가슴이 찡해지더라고요. 이걸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웠어요. 노래로 많은 분과 오래오래 나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는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곡을 붙였다. 저작권 허락을 받기 위해 김윤석 감독을 통해 김혜자에게 연락했고, 김혜자는 직접 원작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승낙을 얻어주었다. 그가 보내온 답 문자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최성수 씨 노래로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너무 늦게 답했네요.”

KBS 열린음악회에서 처음 방송된 후, 댓글에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이 노래는 가사를 적어서 연습 중입니다. 수십 년 만에 가사를 적고 있어요.” 그는 그 댓글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고 했다. 기쁜 웃음이었을 것이다.

“멜로디가 내 힘으로 나온 게 아닌 것 같아요. 어딘가 신의 영감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멜로디가 맞아 떨어지는 게 신기하거든요.”


 'KBS 열린음악회'에서 '눈비 부시게'를 부르는 최성수(좌), 'JTBC 제 55회 백상 TV 부문 대상 수상' 김혜자(우)

 

외면했던 ‘풀잎사랑’ 효자 되다

 

오랜 대표곡 이야기로 넘어가자 그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동행’, ‘해후’, ‘남남’, ‘잊지 말아요’ 등 연속 1위를 차지했던 곡들이 자신의 스타일과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그가, 이제는 ‘풀잎사랑’을 가장 고마운 노래로 꼽는다고 했다.

“처음엔 그 노래가 싫었어요. 너무 오글거리고, 사실 ‘사랑해~’ 부분은 당시 감기에 걸려서 음이 안 올라가 악을 썼던 건데, 그게 오히려 특색이 됐어요.”

세월은 그의 평가를 바꿨다. 남녀노소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그 노래가 세대를 뛰어넘는 가교가 됐다. 한때 부끄러웠던 곡이 이제는 전 세대를 잇는 효자가 된 것이다.


곡에 대한 에피소드도 빠질 수 없다. 

‘해후’는 부산의 한 술집에서 만난 새끼 마담의 아픈 사랑 이야기에서 태어났다. 

일본인 현지 처로 살아온 그 여인의 절절한 인생 이야기를 듣고 썼다. ‘TV를 보면서’는 혼자 살던 시절, 라면을 끓여 먹다 TV 드라마의 슬픈 장면에 빠져들어 라면이 퉁퉁 불어버린 것을 보고 만든 곡이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라면이 불으면 그렇게 되는 걸.” 그 한마디에 웃음과 쓸쓸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의 노래 하나하나에는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진 = '풀잎사랑' 수록 앨범


 노래는 천직, 무대는 나의 성전

 

고등학교 시절, 구의동의 지적장애 학교 봉사 공연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을 때 관객들이 환하게 웃던 그 순간, 그것이 그를 평생 가수의 길로 이끌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오페라 가수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그가,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대단한 가수도 아닌데 여태껏 버티며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대견하고 감사해요. 아내는 내가 노래 만드는 것으로 현실 도피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무대 위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순간을 위해 살아요.”

아내는 그가 작업실에 들어가면 며칠 동안 나오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결국, 운동 기구를 사줬다. 기다리는 동안 운동이라도 하라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지난 벚꽃 시즌, 아내와 남해를 드라이브하며 7080 가수들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한 곡 내고 사라진 가수들, 노래는 좋았지만 잊힌 이름들이 차창 밖 벚꽃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수많은 가수 사이에 내가 아직 버티고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아내한테 그랬어요. 우리가 이렇게 노래를 계속한다는 것, 대단하지 않냐고.”

 

최성수는 오늘도 작업실에서 시를 읽고 곡을 쓴다. 화려한 아이돌의 무대나 대세 트로트의 열풍과는 결이 다를지 몰라도, 그의 음악은 조용히 스며들어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위스키 잔 속 얼음처럼, 그러나 따뜻하게.

“대형 기획사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할 상황도 아니에요. 그래도 하나 믿는 거는 ‘위스키 온더락’처럼, 언젠가는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고 갑자기 뜰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하늘의 뜻이니까요.”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60을 훌쩍 넘긴 음유시인은 오늘도 그 말을 믿는다. 그리고 그의 노래처럼, 우리의 삶도 여전히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현실이 녹녹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다면 한 번쯤 들어보시라.

 

 

눈이 부시게 (최성수)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나였을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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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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