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 아이돌→ 자넷 잭슨 뮤비 출연→ 엔카 가수로…"이젠 한국 트로트에 도전하고 싶어요."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1-08 11:58
16세에 길거리 캐스팅...댄스대회 우승하며 12인조 혼성그룹 활동
미국 유학 중 자넷 잭슨 뮤직비디오 'IF'에 아시아인 최초로 출연
"엔카는 내면의 정서 표현, 트로트는 감정을 표출하는 힘이 있어."
50대에 엔카 입문...송가인이 부른 '한 많은 대동강' 불러보고 싶다
□ 트로트에 도전장 낸 일본 다카모토 유미 인터뷰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티스트의 진심, 그리고 인생의 풍파를 견뎌낸 이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의 깊이가 그것이다. 1990년대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12인조 아이돌그룹 ‘ZOO’의 멤버이자, 팝의 여왕 자넷 잭슨의 선택을 받았던 유일한 아시아인 댄서. 그리고 이제는 삶의 깊이가 더해지는 시점에서 한국의 '트로트'를 노래하고자 하는 ‘다카모토 유미(高本 由美·57)’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시와 같다.
한국 유일의 트로트 전문 종합 미디어 '트롯뉴스(www.trotnews.co.kr)'는 최근 일본에서 엔카 가수로 활동을 재개하며 한국 트로트에 도전을 선언한 그녀를 만나, 16세 소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음악 인생과 그 속에 담긴 철학을 들어보았다.
일본 아이돌출신 다카모토 유미는 중년의 나이에 엔카 가수로 데뷔, 트로트에도 도전을 꿈꾸고 있다 / 사진=트롯뉴스
오모테산도의 16세 소녀 운명적 캐스팅
다카모토 유미(결혼 전 이름: 石井 由美, 이시이 유미)의 연예계 입문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되었다. 1983년, 만 16세였던 유미는 여느 평범한 소녀들처럼 어머니와 함께 도쿄의 유행 일번지 오모테산도와 하라주쿠 다케시타도리를 걷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주위 분들에게 '참 귀여운 아이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독 낯을 가리고 경계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그날도 거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무서운 마음에 어머니 뒤로 몸을 숨겼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일본 최대 프로덕션 관계자의 눈에 띈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아버지의 든든한 지지였다. "제대로 된 회사인 것 같으니, 젊을 때 무엇이든 도전해 봐라." 그 한마디는 소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본격적인 레슨이 시작되자 마주한 것은 '레오타드(Leotard) 복장'이라는 큰 벽이었다. 클래식 발레를 잠시 배웠던 경험이 있었음에도, 사춘기 소녀에게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대중 앞에 서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전문 아티스트를 양성하기 위한 노래와 댄스 교육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격했다.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조차 앗아가 버린 혹독한 트레이닝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프로의 근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90년대, 혼성그룹 'ZOO' 멤버로 종횡무진 활동
미국 Los Angeles 에서 활동 자넷잭슨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사진=본인 제공
1990년, 만 23세가 된 유미는 일본 방송사에 한 획을 그은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비상한다.
이를 통해 결성된 그룹이 바로 12인조 혼성그룹 ‘ZOO’였다. 이들은 당시 심야 시간대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댄스 프로그램 ‘DA DA LMD’의 정규 멤버로 활동하며 일본 내 댄스 뮤직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유미는 당시를 회상하며 “활동 초기에는 TV 출연뿐만 아니라 도심 인근 클럽 무대가 정말 많았습니다.
‘오타케’라고 불리는 열성적인 팬분들이 저희를 따라다니며 응원해 주시던 열기는 지금도 생생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안무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성대모사 개그맨 ‘코로케(コロッケ)’의 백댄서를 맡는 동시에 그의 안무를 직접 짜는 등 댄스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영역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쳤다.
LA 유학, 그리고 자넷 잭슨과의 만남
미국 Los Angeles 에서 활동 하던 시절 동료들과 함께/ 사진=본인 제공1992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유미 씨는 안주하지 않았다. 가창과 댄스의 본질을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유학을 떠난다.
Pasadena City College에서 수학하며 현지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던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당대 세계 최고의 팝스타 자넷 잭슨(Janet Jackson)의 뮤직비디오 오디션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미는 자넷 잭슨의 전설적인 뮤직비디오 「If」에 출연하게 된다. 유일한 아시아인 댄서로서 세계적인 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이 경험은 그녀의 예술적 지평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국적, 문화, 언어가 달라도 엔터테인먼트에는 모두를 하나로 묶는 보편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단순히 내 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작품 전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한 명의 아티스트가 전체의 완성도를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깊이 배웠죠. 그 배움은 지금 제가 다시 무대에 서는 가치관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다카모토 유미가 동양인 유일하게 출연한 자넷 잭슨(janet jackson)뮤직비디오 'If' (※ 자넷 잭슨(janet jackson)은 '댄스 디바'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어 낸 인물로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등과 더불어 1980~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댄스 가수로 꼽혔다. 다카모토 유미가 출연한 자넷 잭슨 뮤직비디오 'If'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안무' 중 하나로 꼽히는 복잡하고 정교한 댄스 브레이크로 평가받고 있으며, 비욘세(Beyoncé),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Jean Spears) 등 수 많은 후대 팝 아티스트들의 춤과 퍼포먼스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여동생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의 가르침 '아·스·하' 정신으로 지탱
승승장구하던 유미는 1994년, 부친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귀국한다.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떠난 그녀는 이후 약 30년 동안 평범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하고 내려온 무대 밖의 삶은 낯설었지만, 그녀는 이를 ‘인생의 종지부’가 아닌 ‘제2막의 준비기’로 여겼다.
그녀를 지탱한 것은 가문 대대로 내려온 가훈인 ‘아·스·하’ 정신이었다.
‘아’(아리가토 / 감사합니다):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
‘스’(스미마센 / 죄송합니다): 겸손을 잃지 않는 마음
‘하’(하이 / 네):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아버지는 저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쳐 주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무대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저는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매일 진실하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학교 행사에서 춤을 지도할 때도, 예전의 명성보다는 지금 내 앞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다카모토 유미는 16세에 길거리 캐스팅되어 연예계입문후 유명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했다 / 사진 = 본인제공
중년의 지금 트로트와 엔카 선택은 당연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유미 씨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 그녀가 선택한 장르가 댄스 팝이 아닌 ‘엔카’와 ‘트로트’라는 점은 그녀를 아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젊었을 때의 제 노래가 몸을 쓴 ‘열정’과 ‘기세’였다면, 지금의 노래는 제가 살아온 세월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팝 음악이 리듬과 그루브를 통해 세계관을 구축한다면, 트로트와 엔카는 노래하는 사람의 인생관이 목소리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한 단어 한 단어의 무게가 관객들의 심장에 닿아야 하는 음악이죠.”
그녀는 트로트와 엔카가 국가와 언어는 다르지만,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며 관객들의 삶에 동행한다는 본질에서 깊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댄스 가수 출신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그녀는 지금도 자신의 내면을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치열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트로트의 '흥'에 매료…가수 '린' 창법 존경
다카모토 유미가 한국 트로트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한국 트로트만이 가진 독보적인 에너지와 ‘관객과의 일체감’ 때문이다.
“일본의 엔카가 내면으로 파고드는 섬세한 정서라면, 한국의 트로트는 감정을 밖으로 해방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눈물 흘리며 관객과 하나가 되는 그 열린 표현력이야말로 트로트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제 안에 흐르는 팝의 리듬감과 엔카의 섬세함을 한국 트로트 특유의 ‘흥(フン)’과 융합시킨다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시너지가 탄생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녀는 꼭 도전해 보고 싶은 곡으로 송가인이 부른 ‘한 많은 대동강’을 꼽았다. 곡이 가진 역사적 아픔과 깊은 감성을 자신만의 색깔로 해석해 보고 싶다는 포부다. 또한, 평소 가수 린(Lyn)의 섬세하고 정서 풍부한 창법을 존경하며 그녀의 곡들을 교본 삼아 연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미 씨는 “현재 일본에서 연습하고 있지만,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도 보컬 트레이닝 등을 거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다카모토 유미 /사진=본인제공
진심 전하는 노래로 양국 가교역할 하고 싶어
유미 씨는 한국 관객들에게 ‘과거의 스타’가 아닌, ‘인생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기억되길 원한다.
“다카모토 유미는 음악을 통해 마음과 마음이 공명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그녀의 눈빛은 열여섯 소녀의 설렘과 쉰일곱 중년의 단단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녀가 한국 무대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퍼포먼스는 화려한 댄스가 아니다.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국가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인간 본연의 따뜻함을 전하는 ‘진심의 무대’다.
음악에는 사람을 잇는 힘이 있다고 믿기에, 그녀는 기꺼이 양국의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미래를 향한 결심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길
마지막으로 그녀는 한국과 일본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팬들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했다.
“30년이라는 공백은 제 인생에서 멈춘 시간이 아니라, 노래에 담을 감정을 숙성시키는 소중한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결과나 속도를 쫓기보다, 한 곡 한 곡에 인생의 무게를 담아 정성스럽게 노래하겠습니다. 이 새로운 발걸음은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인생을 여러분과 함께 걸어가기 위한 저만의 성실한 결심입니다. 부디 따뜻하게 지켜봐 주십시오.”
자넷 잭슨과 함께 세계를 누비던 댄서에서, 이제는 한국의 어느 무대에서 관객의 손을 잡고 트로트를 부를 준비를 마친 다카모토 유미.
그녀의 인생 제3막은 이제 막 서막을 올렸다.
그녀가 들려줄 ‘인생의 이야기’가 한일 양국 팬들의 가슴속에 어떤 울림을 남길지, 트롯뉴스가 함께 응원하며 지켜볼 것이다.
※ 다카모토 유미(高本 由美) 프로필
출생: 일본 도쿄 (57세)
이력:1983년 오모테산도 스카우트 입문
1990년 12인조 그룹 ‘ZOO’ 우승 및 멤버 활동 (DA DA LMD 출연)
1992년 미국 유학 및 자넷 잭슨 「If」 MV 출연
1994년 부친 간병 및 결혼으로 은퇴
현재 일본 엔카 활동 중, 한국 트로트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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