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수준 떨어뜨린다.” 비아냥 들으며 편견 맞서 20여 년 트로트 등 대중가요 연구
90여 편 논문과 30여 권 책 쓰며 K-POP 뿌리 세계에 알릴 ‘살아있는 아카이브’ 꿈꿔
[인터뷰] 노래하는 트로트 박사 장유정 교수
단국대학교 장유정 교수
“트로트를 ‘뽕짝’이라고 비하하고 그 음악적 가치를 폄훼하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트로트를 애창하는 이율배반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트로트가 한국인의 삶에 갖는 진정한 의미와 저력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요?”
‘노래하는 교수’, ‘트로트 박사 1호’ 장유정 교수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하지만 그 어떤 호칭도 “수준 떨어진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20여 년간 많은 학자들이 외면하던 트로트와 근대가요라는 불모지를 개척해 온 그의 열정과 사명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부족하다.
그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무대 위 가수다. 잊혀진 근대가요를 발굴해 음반을 내고, 문학을 노래로 빚어낸다. 그의 연구실은 낡은 악보와 자료가 가득한 서고이자, 100년 전 경성의 밤을 노래하는 녹음실이 된다.
트롯뉴스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뿌리’를 바로 세우고, 트로트의 진정한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장유정 교수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의 어린 시절 꿈부터 학문적 투쟁, 그리고 ‘한국 대중가요사 다시 쓰기’라는 거대한 꿈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가수의 꿈, 교수가 되어서야 무대에 서다
단국대학교 홈페이지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장유정 교수의 노래에 대한 여정은 이 순수한 열망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시절 합창단을 거친 그는 고등학교 때 KBS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노래자랑 코너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대상 수상 후 팬레터를 받고 가수 제의도 받았지만 “기왕에 가수를 하려며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하겠다”는 그의 목표는 확고했다.
“당시엔 실용음악과도 없던 시절이었죠. 대학가요제를 나가려면 대학을 가야 했고,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좋은 가사를 쓰려면….”란 생각에 국문학과에도 입학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동네 판소리 학원에서 1년 넘게 매달려서 ‘춘향전’을 떼고, 기타와 피아노, 재즈댄스까지 배웠다. 하지만 악기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야심 차게 도전한 대학가요제에서는 예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날 가수의 꿈을 접었어요. 하지만 대중가요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기에 ‘대중음악 연구’를 하자고 마음먹었죠.” 당시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에 대한 불만도 한몫했다.
그는 하루 16시간씩 공부에 매달려 대학원에 진학, 가수의 꿈을 연구자의 사명으로 승화시켰다. 교수가 되면 그 꿈이 사그라질 줄 알았지만, 열정과 ‘끼’는 그대로였다. 오히려 그는 “교수가 되면 번 돈으로 내 음원을 만들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2012년부터 돈이 생길 때마다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며 ‘노래하는 교수’로의 삶을 시작했다.
“두 가지 정체성으로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때로는 열정이 분산되는 아쉬움도 있지만 두 역할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시너지 효과가 더 크죠.”
그의 독특한 삶의 방식은 철저한 자기 관리에서 나온다. “누군가는 저보고 하루를 48시간처럼 쓴다면서 ‘스케줄은 연예인’이라고 하더군요. 바쁜 건 사실이지만 저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불필요한 약속이나 모임을 피했다. “주변에서 권하는 골프조차 배우지 않았어요. 그 시간과 돈, 열정이 아까웠죠. 로비나 정치 대신 실력과 성실로 제 역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늘(Present)은 선물(Present)’이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며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트로트는 아메바…. 시대마다 변신하며 생명력 이어와”
장유정 교수가 ‘트로트’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왔을 때 주위의 반응은 냉담함을 넘어 적대적이었다. 2002년, 트로트를 ‘민요의 계승’으로 바라보는 논문을 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반응이 대단했죠. 사회자와 다른 토론자까지 들고일어나 ‘어떻게 학자가 트로트를 연구할 수 있냐’는 식이었어요. 서울대 수준 떨어뜨린다는 말까지 들었죠.”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잘 들어보니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더군요. 오히려 ‘해볼 수 있겠다’라는 오기와 힘이 생겼습니다.”
그는 천생 ‘실증주의자’였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자료와 사료를 토대로 공부했기 때문에 내 연구자료가 충분하고 정확하다면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저 자신을 믿고 나아갔죠.”
그가 개척한 근대가요 연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제가 박사 논문을 쓰기 전까지 한국 대중가요 역사는 광복 이전, 즉 일제강점기를 아예 없던 것으로 취급하거나 부정적으로만 다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K-POP이 있기까지 초기의 대중음악이 기여한 것을 무시할 순 없죠.”
그의 학문적 미션은 명확했다.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없는 셈 쳤던 우리나라 초창기 대중가요를 민요, 독립운동가요, 동요 등 다른 가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펴보는 것. 궁극적으로 ‘한국 대중가요 역사 다시 쓰기’입니다.”
그는 트로트를 폄하하는 시선에 대해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학자는 논문과 강의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차피 편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잘 변하지 않아요. 수십 년 노력했지만, 여전히 잘 모르면서 편견을 설파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렇다면 장 교수에게 ‘트로트’란 무엇일까.
“트로트는 ‘아메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메바는 일정한 형태가 없는 단세포 원생동물이죠. 그만큼 단순하지만, 어느 모양으로든 존재합니다. 트로트가 그랬어요. 단순했기에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갔고 시대마다 다른 모양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생명력을 이어왔습니다.”
오늘날의 트로트 열풍 역시 그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서민의 승리, 트로트의 승리입니다. 역사적으로 트로트는 늘 대중의 삶에 밀착해 그들의 감성을 건드리고 위로하며 신명 나게 힘을 주는 노래였습니다.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으며 함께 울고 웃어온 음악, 그게 바로 트로트의 힘이죠.”
100년 전 목소리 깨우다…. 복원과 재현의 ‘렉처 콘서트’
유튜브<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장유정 교수의 연구는 서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무대 위에서 직접 노래하며 잊힌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의 선구자다.
“노래하고 싶은 사심을 채우려는 지극히 사적인 마음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죠.”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대중가요 강연에 노래가 없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들어봐야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연구 과정에서 발굴한 수많은 ‘잊힐 뻔한 노래들’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것은 그의 또 다른 사명이다. 2020년 2월 발매한 정규 음반 ‘경성야행(京城夜行)’은 그 결산과도 같은 앨범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된 이 앨범은 100년 전 경성의 밤으로 리스너(Listener)들을 초대한다.
“누군가 저보고 우디엘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의 주인공 같다고 하더군요. 1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가수를 만나고 노래를 만나는 모습이 그려진다면서요.”
앨범제작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적은 예산 탓에 10곡의 보컬 녹음을 단 두 번 만에 끝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죠. 심지어 ‘사의 찬미’를 부를 때는 성대결절로 목소리가 찢어졌는데 지금 들어보니 오히려 그 비극성을 드러내는 데 적절했다는 마음도 듭니다.”
이 앨범에서 그는 ‘경성야행’이라는 첫 창작곡을 선보였다.
음반 <경성야행>
그의 복원 프로젝트는 시대를 앞서갔던 여성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윤심덕, 이경설, 이난영 등을 열심히 연구해왔습니다. 특히 나혜석 선생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던 분이죠.”
그는 1921년 ‘매일신보’에서 나혜석이 작사한 ‘노라’의 가사를, 1922년 ‘인형의 집’ 번역본에서 악보를 발견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이 노래를 덕수궁 석조전에서 초연했다.
“근대 건물의 상징인 석조전에서 ‘노라’를 초연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한 순간입니다. 노래에서 말하는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죠. 너무 앞서간 나머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윤심덕과 나혜석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느낌이랄까…? 그들의 노래를 부를 때는 일종의 ‘진오귀굿’(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굿)을 하는 심정입니다.”

문학과의 접목도 그의 중요한 작업이다. 2021년에는 홍성문화원의 제안으로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 초판본에서 7편의 시를 선정해 노래로 만들었다. “음반 발매 전까지는 대중이 내 노래에 관심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 음반 이후로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스스로를 위로하는 노래가 되었죠.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군말 : 노래로 만나는 만해 한용운’ 앨범 표지
“아카이빙 정말 필요…. 트롯뉴스가 추진하는 ‘트로트문화원’ 기대”
[시절연가] 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 KTV
장유정 교수의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한국 대중음악사 다시 쓰기’다.
“1990년대 중반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목표는 같았습니다. 그걸 위해 자료를 파고 또 파서, 90편이 넘는 논문과 30권이 넘는 책을 썼죠. 이제는 그 역사를 제대로 다시 쓰고 싶습니다.”
그는 현재 K-POP 중심의 한류가 그 ‘뿌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해외에 K-POP의 역사를 제대로 설명해 줄 책이 아직 없습니다. 그것은 현대 대중음악만 연구해서는 결코 온전히 쓸 수 없어요.”
그는 민요부터 독립운동가요, 동요를 포함한 근대가요를 모두 연구해 온 학자로서, 그 맥락을 잇는 작업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정부 지원프로젝트에 발라드 공동 연구를 2년째 지원했다 떨어졌습니다. K-POP이라 하지만 대중음악 연구 같은 비주류 학문엔 지원이 너무 인색하더군요.”
더 큰 문제는 역사가 정립되기도 전에 ‘사짜’ 평론가들이 시장을 흐리는 현실이다.
“자료 한번 본 적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현란한 말솜씨로 대중을 현혹합니다. 제 글을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책을 내는 경우도 봤죠.
저같이 하나하나 연구하는 사람은 쳐주지도 않으니, ‘내가 뭐 누구한테 인정받으려고 공부했나?’ 스스로 위로할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장 교수의 학문적 목표는 트롯뉴스가 추진하는 ‘대한민국 트로트문화원’ 설립 및 아카이빙 프로젝트와 정확히 일치한다.
“아카이빙이 정말 중요합니다. 대중음악 쪽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고, 몇몇 수집가에게 자료가 몰려있죠. 그분들이 자료 공유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지만 아카이빙이 구축되어서 더 많은 자료를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합니다.”
그는 트로트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팬덤만 형성된 현상을 지적하며,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로트의 세계화에 대해서도 2009년부터 고민해왔다. “우리가 외친다고 세계화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코로나 직전, 동남아에서 우리 트로트 가수들이 공연할 때 베트남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봤어요. 우리가 공유하는 감성이 있거든요. 그게 먹히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역사 바로 세우기’다.
“한국 대중음악사를 전 세계에 정확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연구와 공연, 음원 제작을 아우르는 ‘살아있는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노래하는 학자 장유정. 그는 오늘도 100년 전의 낡은 자료를 들춰보며,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무대 위에서 노래한다. 20년간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파헤쳐 온 그의 여정이, 이제 ‘트로트 열풍’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맞물려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장유정 교수(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 서울대학교 문학박사 “일제강점기 한국 대중가요 연구: 유성기 음반 자료를 중심으로”
- 2009년 제2회 플랫폼 문화비평상_음악부문
- 한국대중음악학회 회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공연·기획위원, 서울역사박물관 운영위원 등을 엮임
- 2013년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 1930년대 재즈송』 음반을 제작·발매, 2020년에는 두 번째 정규 음반 『경성야행』 발매
- '오빠는 풍각쟁이야',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등 다수 도서 발간
홈페이지 eujeong.com
인스타그램 @eujeongzhang
유튜브 @장유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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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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