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의 ‘흥’ 라틴음악, 포크 등과 DNA 공유…. 현지화와 융합으로 공략해야!”
베테랑 PD, 중남미 특파원, 공직 등 풍부한 현장경험으로 ‘한류융합’ 진두지휘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을 K-컬처의 미래를 위한 ‘지식 허브’로 만들겠다.”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인터뷰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1998년 대만 ‘연합만보’에서 ‘한류(韓流)’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이래 한류는 K-팝, K-드라마, OTT 산업을 아우르는 한국 대중문화를 총칭하는 용어로 정착했다. BTS, 블랙핑크 등이 글로벌 인기를 구가하면서 한류라는 단어는 한층 무게감을 갖고 전 세계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이러한 한류 열풍에 발맞춰 대학가에서도 한류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동국대학교(총장 윤재웅)는 ‘한류학(Hallyuology)의 본산(本山)’을 자임하며 ‘한류 콘텐츠전공’을 신설하고 2026학년도 전기 대학원 석·박사과정 신입생 모집을 시작하는 등, 한류 연구에 선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트롯뉴스’가 한류학의 국가 브랜드화를 이끄는 동국대의 한류 연구를 총지휘하고 계시는 정길화 한류융합학술원장을 만나, 한류에 대한 견해와 트로트의 글로벌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동국대학교 전경 / 사진 = 동국대학교
”트로트는 대중에게 위안을 주고 사회통합 역할“
“트로트는 단지 ‘복고 장르’가 아닙니다. 한국인의 정서, 서사, 흥, 한과 애환이 집적된 정체성의 콘텐츠입니다.”
정길화 원장은 K-팝이나 K-드라마가 주류로 조명받는 한류 담론 속에서 트로트의 본질적 가치를 먼저 짚었다. 트로트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긴 살아있는 문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에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트로트가 새로운 음악 장르로 등재되었다고 알고 있다”라며 트로트가 지닌 학술적, 역사적 무게를 설명했다.
“저만해도 김정구, 이난영에서 시작해 한명숙, 최희준, 김상진, 문주란, 배호, 남진, 나훈아, 송대관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습니다. 물론 최근엔 임영웅, 이찬원, 송가인 씨까지 제 플레이리스트에 들어 있지요.”
정 원장의 개인적 경험은 트로트가 어떻게 한 세대의 정서를 관통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무릇 대중문화에는 일상과 생존에 지친 대중들에게 위안을 주는 중요한 사회통합 기능이 있고, 우리 트로트는 그 대표적인 장르”라고 그 가치를 인정했다.
물론 트로트의 역사가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왜색(倭色) 논쟁’ 및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일본 엔카의 아류라는 비판, ‘뽕짝’이라는 비하적인 명칭으로 불리며 엘리트층과 젊은 층에 저급한 음악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도 사실이다.
정 원장 역시 이 비판적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 노골적인 가사 등 음악 자체의 질적 향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트로트는 다양한 방식의 내부적 변화와 외부 장르와의 결합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주류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라며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했다.
그가 제시한 흥미로운 관점은 ‘트로트의 원류 소비자’였다. “돌이켜 보면 1930년대 당시 ‘유행가’로 불린 트로트를 즐겁게 향유한 이들은 당대의 ‘모던 보이’들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MZ세대인 것이지요.” 이 비유는 트로트의 수용성이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취향을 반영하는 문화’라는 핵심을 짚어낸다.

근자에 들어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현역가왕’ 등이 이끈 트로트 부흥 현상은 정 원장의 시각을 뒷받침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들은 단지 노래 경연을 넘어서 세대 간 연결과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낸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며, “이제 우리 사회에서 트로트는 중장년층을 넘어 MZ세대까지 ‘뉴트로’로 트로트 음악을 향유하고 있는 현상으로 볼 때 K-컬처가 단지 젊은이의 문화가 아닌, 세대 융합형 문화 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트로트가 없는 한국의 대중가요 또는 대중문화는 생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는 정 원장의 단언은 트로트가 한국 문화의 근간임을 재확인하는 말이었다.
“트로트의 세계화 충분히 가능성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트로트가 과연 ‘글로벌 확장’이 가능할까? 정길화 원장의 대답은 확고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트로트가 가진 고유의 에너지를 글로벌 보편성과 연결했다. “특히 정서적 깊이, 감성의 절절함, 그리고 ‘흥’이라는 에너지는 라틴음악, 포크, 블루스와 유사한 DNA를 가집니다.”
이 ‘흥’의 DNA는 트로트가 K-팝과는 다른 경로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 원장은 K-팝의 성공 요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트로트와의 전략적 차이를 설명했다.
“김성민 교수(일본 홋카이도대)는 K-팝의 5대 특징으로 트레이닝 시스템, 랩, 칼군무, 뮤직비디오, 팬덤을 꼽았습니다. 2021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도 ‘K팝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기사에서 ‘중독성 있는 노래’, ‘뮤직비디오(SNS 최적화)’, ‘칼군무’, ‘마케팅 전략(유튜브 활용)’, ‘강력한 팬덤’을 비결로 꼽았지요.”
그는 이 분석에서 트로트가 벤치마킹할 지점을 명확히 했다. “제가 보기에 트로트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가령 ‘중독성 있는 노래’, ‘강력한 팬덤’ 이 그것입니다. 산업적 전략 면에서는 트로트도 K-팝의 성공 사례를 일정 부분 응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 원장은 “분명한 것은 K-팝과 트로트가 같을 수도 없고 트로트가 K-팝과 같아서도 안 된다.”라고 선을 그었다. 트로트만의 차별성이 핵심이며 그는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정의했다.
“K-팝이 화려한 퍼포먼스 중심이라면 트로트는 ‘스토리와 감정’ 중심입니다. 이는 콘텐츠의 깊이와 정서적 울림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트로트만의 강점입니다.”
다만, 이 ‘진정성’을 세계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 원장의 진단이다. “글로벌 확장을 위해선 장르 해석의 유연성, 포장 방식의 현대화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국악 기반 트롯, 재즈-트롯 퓨전, 영어 등 외국어 가사 버전 등 현지화와 융합 전략이 병행된다면, 트로트는 전 세계 중장년뿐 아니라 감성 음악팬층에게도 소구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트로트가 K-팝의 성공 공식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감성과 스토리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린다면 트로트가 K-컬처의 또 다른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류학(Hallyuology)’ 통해 지속 가능한 확산 모색
정길화 원장이 트로트의 가능성을 확신하는 배경에는 ‘한류융합’이라는 거대한 학문적 틀이 자리하고 있다. 그가 총지휘하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DUHA)’은 K-컬처의 미래를 위한 ‘지식 허브’를 자처한다.
“‘한류융합’... 영어로는 ‘Hallyu Convergence’입니다. DUHA는 대학 내의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라 대학원·산업·정책·글로벌 네트워크를 잇는 한류 지식 허브 역할을 지향합니다.”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 개원기념 컨퍼런스 / BTN News
동국대가 ‘한류학’을 ‘Korean Wave Studies’가 아닌 ‘Hallyuology’로 명명한 것부터가 남다른 비전의 시작이다. 정 원장은 ‘한류융합’의 개념을 “단순한 장르 간 결합을 넘어 문화·산업·기술·정책의 총체적 연결을 통해 한류의 지속 가능한 확산을 모색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지금까지 한류가 K-팝, K-드라마 등 개별 콘텐츠의 성공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콘텐츠 간, 산업 간, 기술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창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할 시점입니다.
K-드라마에 전통의상·음식·뷰티·관광 요소가 결합되고, K-팝 무대에 XR 기술과 NFT가 접목되는 사례가 대표적이죠. 지금은 융합적 사고와 연계 전략이 훨씬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이러한 ‘융합’의 개념은 정 원장 자신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MBC에서 시사교양 PD로서 ‘세상 사는 이야기’, ‘인간 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굵직한 프로그램을 30여 년간 기획·연출한 방송 현장의 베테랑이다.
“중남미 지사장 겸 특파원으로는 취재 보도 외에 콘텐츠 비즈니스와 유통, 국제적인 이벤트도 실시했습니다. 귀국해서는 브라질 등 중남미에서의 경험과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해 어렵사리 통과했지요.”
MBC부터 문체부 공공기관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으로 정책과 행정을 수행하기까지 그의 이력은 ‘콘텐츠 창·제작-비즈니스와 유통-학문적 연구-기획과 행정’을 모두 관통한다.
“이러한 다양한 현장 경험은 지금 이곳 동국대에서 ‘이론과 현장의 가교이자 허브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론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제작 사례나 정책 변천 글로벌 유통 현장까지 공유하며 살아있는 교육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저는 늘 ‘학문은 현장을 통과해야 진짜가 된다’고 믿습니다.”
현장의 풍부한 경험과 맞닿은 그의 한류학은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민간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유연한 정책 필요
이론과 현장을 겸비한 전문가로서 정 원장은 한류의 미래를 낙관하면서도 극복해야 할 과제를 냉철하게 지적했다.
“자기복제의 유혹과 단일 장르 의존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한류의 대표 장르인 K-팝이나 K-드라마도 과거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면 금세 피로감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성·실험성·지역성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는 제도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민간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유연한 정책이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류의 지속 가능한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정 원장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전통은 고루함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이며 세계는 독창적 스토리텔링과 감수성을 원합니다. ‘기생충’의 계급 은유, ‘오징어 게임’의 생존 게임, ‘미나리’의 가족애는 모두 한국적 정서가 세계의 언어로 ‘번역’ 또는 ‘변주(變奏)’된 사례입니다.”
여의도 초대석 / kbc
그는 전통음악, 민화, 한복 등 무한한 콘텐츠 원천을 그저 ‘고전’으로 남기지 말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주목하는 차세대 K-콘텐츠는 K-다큐, K-웹툰, K-음식, 그리고 K-전통문화 기반 콘텐츠다.
“K-트로트가 ‘코리아니즘’ 주도할 수 있을 것”
“특히 K-다큐멘터리는 사실 기반 스토리텔링으로 가능성이 큽니다. 이 점에서 트로트와 K-다큐가 내용과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서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나오는 뮤지션 관련 음악 다큐멘터리나 실화 근거 영화 장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6월 이래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케데헌 신드롬’을 언급하며 ‘전통 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의 성공 사례로 분석했다. “이를 ‘코리아니즘’ 현상으로 풀이하는데 저는 장차 K-트로트가 이를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 사진=넷플릭스
인터뷰를 마치며 정길화 원장은 ‘융합 한류’의 최종 비전을 제시했다.
“한류는 문화와 기술, 산업과 사람, 전통과 혁신을 연결하는 열린 생태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류는 ‘일시적 트렌드’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세계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그리고 트로트를 포함한 다양한 한국 콘텐츠가 그 중심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다양성 속의 통합’, ‘전통 속의 혁신’을 실현하기를 기대합니다.”
정길화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류학’이라는 거대담론의 중심에 ‘트로트’도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로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K-팝이 화려한 ‘퍼포먼스’로 세계를 매료시켰다면, K-트로트도 가장 한국적인 ‘진정성’과 ‘스토리’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의 도전이 K-트로트의 세계화에도 든든한 학문적 날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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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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