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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넥타이 벗고 마이크를 잡다… 신한은행 부행장 출신 '넥타이 가수' 신연식의 두 번째 인생

박강민 기자 oasis365@gmail.com

등록 2026-03-10 11:46

잘 나가던 은행 임원이 임기 남기고 퇴임

치매 어머니 들려드리려고 1집 앨범 탄생

병으로 세상 등진 벗들을 위해 직접 작사

“셀러리맨들에게 위로주는 가수 되고 싶어”

 ⃞ 트로트 앨범 낸 전 신한은행 부행장 신연식씨

 

34년간 넥타이를 매고 살았다. 신한은행 입행부터 부행장 퇴임까지, 그 긴 세월 동안 그의 손에는 서류와 도장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손에는 마이크가 들려 있다. 신연식(62). 전 신한은행 부행장이자, 이제는 ‘넥타이 가수’로 불리는 트로트 신인이다.


신연식 전 신한은행 부행장/ 사진=트롯뉴스

“설렘과 두려움 공존했습니다.”

 

평생을 몸담았던 신한은행에서 스스로 퇴임했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는 뜻이었다. 

“제가 혼자만의 능력으로 부행장 자리에 오른 게 아니에요. 수많은 선후배와 동료들의 도움, 그리고 고객들의 사랑 덕분이었죠. 아쉬울 때 내려와야 한다고 늘 생각했고, 그걸 지켰을 뿐입니다.”


퇴임 후 그가 선택한 건 트로트 가수였다. 

처음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였다고 한다.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죠. 그래도 설렘이 더 컸어요.” 그러나 그 선택이 퇴임 직후에 갑자기 내려진 건 아니었다. 

사실 그의 트로트 사랑은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의 자전거, 그리고 트로트

 

충북 청주 시골 마을. 어린 신연식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노래와 함께 귀가했다. 저녁 무렵이면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시면서 패티김의 ‘이별’을 흥얼거렸고, ‘대머리 총각’과 ‘흑산도 아가씨’도 불렀다.

“아버지 노래를 들으면서 ‘노래가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 트로트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동네 다리 밑에서 열리는 ‘콩쿠르 대회’에도 나가서 그릇이며 양동이를 상으로 받아왔고, 500석 규모의 극장식 스탠드바에서 돈을 내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한 곡에 천 원, 삼천 원 하던 시절인데, 그래도 부르고 싶어서 나갔어요. 아무 겁 없이요.”

 

‘신한 노찾사’의 탄생 주역

 

신한 노찾사 송년의 밤 / 사진=본인 제공

은행원이 된 뒤에도 노래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15년, 강동 본부장 시절 그는 사내에 트로트 동호회 ‘신한 노찾사(트로트 노래를 좋아하고 찾는 사람들)’를 만들었다. 은행장이 각 본부장에게 취미 동호회 스폰서 역할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다들 축구부를 택할 때 그는 혼자 트로트 동호회를 만든 것이다.

한 달에 평일 한 번, 토요일 한 번 정기 모임을 열었다. 전문 노래 강사를 불러 트로트 두 곡씩 배우고, 자유곡도 부르며 뒤풀이에서 선후배가 함께 직장 고민을 나눴다. 연말에는 유명 가수를 초대해 경연 대회도 열었다. 

그 비용은 오롯이 신연식 본인의 사비였다. 매년 400~500만 원씩. “직원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트로트를 강조하기보다는, 같이 배우고 웃으면서 선후배 간에 마음을 나누는 자리였죠.”

그가 있는 곳엔 항상 트로트가 빠지지 않았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위 과정에서도 트로트 동호회를 만들었다. “거기는 등산 모임, 꽃꽂이 모임밖에 없었는데 내가 트로트 동호회를 또 만들었더니 다들 ‘특이하다, 신박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그게 바로 신연식의 방식이었다.


신한 노찾사 송년의 밤 / 사진 본인 제공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하다

 

사실 정식 데뷔 앨범 전에도 그는 이미 리메이크 앨범을 다섯 장이나 낸 ‘숨은 실력자’였다. 첫 앨범의 계기는 뜻밖에도 어머니의 치매였다.

단골 라이브 카페 대표가 앨범 취입을 여러 차례 권유하던 중, 어머니에게 치매 1기 소견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아들 목소리로 녹음해 들려드리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그렇게 1집이 탄생했다. 

어머니는 새로 사드린 카세트 레코더와 헤드폰으로 그 앨범을 매일 들으시다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던 곡은 현철의 ‘봉선화 연정’이었다.

 

인생의 멘토 ‘고영준’과의 인연

 

퇴임 후, ‘신한 노찾사’에서 맺은 인연이 본격적인 데뷔로 이어졌다. 

행사에 전속 초청 가수이자 심사위원으로 모셔왔던 가수 고영준. 고복수·황금심 원로 가수의 아들로, 친구의 빚보증을 끝까지 갚아낸 의리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 형님이 제 노래를 듣고 ‘네 중저음에 맞는 곡을 써주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고영준은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다. 신연식에게 있어 “작곡가이자 인생의 멘토이자 존경하는 형님”이다. 

악보를 볼 줄 모르지만, 신연식은 여러 가수의 버전을 귀로 들으며 “여기서 꺾고, 저기서 올리고”를 스스로 연구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진 않았지만, 노래를 그렇게 수십 년 들어왔으니 귀가 알더라고요.”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고영준 작곡가'와 함께  / 사진=본인 제공

이별한 벗들에 바치는 노래

 

올해 5월 발매된 첫 정식 앨범. 타이틀곡은 ‘영원한 베프’이다. 

이 곡에는 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다. 같은 충북 청주 출신의 2년 후배, 고(故) 한용구 전 신한은행장. 인사팀에서 두 번이나 함께 근무했고, 신연식이 ‘이뻐하던 동생’이었던 그는 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직장생활의 최고봉에 오르고 한 달 만에 그렇게 됐으니…. 정말 착한 아우였는데.” 그 무렵 강동본부 시절 ‘노찾사’ 멤버였던 후배 지점장도 암으로 떠났고, 친구 세 명도 잇달아 세상을 등졌다. 

 

“창밖을 봐도 기다려도 안 오고, 보이지 않는….” 그 먹먹함을 담은 곡이 ‘먹먹한 가슴’이고, 그들과의 우정과 의리를 노래한 곡이 바로 ‘영원한 베프’다

수록곡 ‘무교동 로타리’는 1988년 처음 발을 내딛었던 첫 직장, 34년 은행 생활의 상징인 무교동을 노래했다. ‘이별의 올림픽대로’에는 서울 동서를 가로지르는 그 길 위에 서린 수많은 직장인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담겼다. “아픔과 이별 없는 사랑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어요.”

금융인답게 위트도 잃지 않았다. ‘부부뿐이야’에는 “사랑을 저축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34년간 저축을 강조하며 살았는데, 퇴임하고 보니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부부 사이에 사랑(믿음)을 저축하는 것이더라고요.”

 

‘노찻사’ 시절부터 “전국노래자랑이나 아침마당에 나가보라”는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TV경연프로그램 PD에게서 출연 제안도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모두 고사했다. 현직 임원의 방송 출연이 조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고, 실력 면에서도 “실력이 탁월한 경연 참가자들과 겨루는 건 아니다”는 냉정한 자기 인식도 있었다.


가요TV '가요가 좋다 시즌4'출연

무명가수들을 도와주고 싶어


무명가수들을 위한 가수노조 주관 ‘가요가 좋다’ 공연이 있다. 5시간 동안 50명의 가수가 나와 노래하고, 그걸 편집해 케이블 5개 채널에 방영하는 방식이다. 

신연식도 세 차례 출연했지만, 요즘은 일부러 나가지 않고 있다.

“무명가수들이 밥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제가 자리를 뺏는 것 같아서요.” 은행을 그만둘 때도 후배를 위해 자리를 비웠듯,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했다. 오히려 “다시 괜찮은 직장을 잡아서 돈을 벌어 이 무명 가수들을 스폰해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평생 월급에서 1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는 사람다운 생각이다.

부지점장 시절 적금 2천만 원 중 1천만 원을 장애인 주택 건립에 기부했고, 한국복지재단을 통해 어린이 5명을 퇴임 때까지 지원했다. “가진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 어렵고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줄 때 사회가 밝아진다고 믿어요.”

 

“오늘이 제일 젊은날입니다”


신연식에게 트로트란 무엇일까. 그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트로트에는 진실함과 정이 있어요. 저한테는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치료의 약’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시대의 사연과 애환, 정서가 담겨 있으니까요.”

그는 대한민국 수많은 샐러리맨에게 위로의 노래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34년간 넥타이를 매고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오늘이 제일 젊은 날입니다. 살아있는 오늘을 행복하게, 감사하게 살자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모든 샐러리맨들이 트로트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전거를 끌며 노래하던 아버지, 아들의 목소리로 ‘봉선화 연정’을 들으시던 어머니, 먼저 떠난 동생 같은 후배들... 

신연식의 트로트는 그 모든 기억과 이별, 그리움을 녹여낸 노래다. 넥타이 대신 마이크를 든 그의 두 번째 인생이, 이제 막 첫 소절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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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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