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오디션프로그램 등을 통해 젊은 스타들 등장
팬덤 스펙트럼 확대, 10대들까지 트로트 열창
사진 출처 <MBN 제공>
“일부러 안 웃는 거 맞죠!!~ 나에게만 차가운 거 맞죠~”
방청석을 가득 메운 10대에서 50대까지의 관객들이 일제히 합창했다.
몇 년 전 한 방송의 인기 프로였던 ‘슈가맨’에서 트로트 가수 서주경이 ‘당돌한 여자’ 몇 소절을 시작하자 순식간에 해당 프로그램 최초로 ‘100불’을 기록해서 화제가 되었다.
10대부터 50대 모두가 다 같이 따라 부르면서 “나 이 노래 알아요”라고 불을 켠 것이다.
1996년도에 발매된 노래를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10대 방청객들이 그것도 트로트 곡을?
깜짝 놀란 사회자가 10대 방청석에 가서 “도대체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았느냐?"라고 묻자 ‘노래방에 가면 친구들이 불러요”라고 대답했다. 그냥 들어만 본 곡이 아니라 10대들도 즐기는 노래라는 의미다.
사진 출처 <JTBC 슈가맨>
어른들에게조차 생소한 서주경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어떻게 10대들까지 즐기고 있을까? 하지만 가수 이름은 몰라도 ‘당돌한 여자’는 발표 이후 19년 연속 노래방 애창곡 5위안에 들었던 ‘국민히트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 이렇게 트로트는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 회식이든 가족 파티든 노래방에 가면 트로트는 빠질 수 없는 주요 레퍼토리이다.
사진 출처 <트롯뉴스 자료 사진>
겉으로는 ‘뽕짝’이니 ‘노땅들의 노래’ 네 하면서 경시하기도 하지만 술 한잔 거나하게 마시거나 분위기가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끝 곡은 트로트다. 불러본 적도 없는 모르는 노래인 것 같은데 남들이 부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것이 트로트다.
아이브(IVE)나 스트레이키즈(Stray Kids)나 좋아할 줄 알았던 10대가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를 능청스럽게 부르고, BTS만 좋아하는 줄로 생각했던 20~30대 여직원이 선곡한 곡도 역시 트로트인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였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이면 40대는 영탁의 ‘막걸리 한 잔’을 70대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역시 트로트로 마무리가 된다.
트로트 팬덤 1,000만 시대 열린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트로트는 국민의 삶 속에서 소리 없이 자리 잡고 국민 소울(Soul) 음악으로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트로트가 최근 경연대회 등 열기로 인해 ‘제2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이제는 세대를 초월해 전 국민이 당당히 즐기는 국민 음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오디션프로그램 등을 통해 새로운 스타들이 대거 탄생하고, 젊은 세대까지 가세하면서 ‘트로트 팬덤 1,000만 시대’라는 새로운 역사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몇몇 종편 TV는 트로트 전문 채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트로트 오디션 및 관련 오락프로그램들이 쏟아냈다. 특히 ‘미스터 트롯’, ‘보이스 트롯’과 같은 프로그램이 전 국민 트로트 열풍을 주도하면서 단순한 시청률을 넘어선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
사진 출처 <MBN 제공>
종편 중심의 다양한 트로트 프로그램은 팬들의 스펙트럼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었다.
과거엔 50대 이상이 주 시청 층이었지만 경연프로그램 등을 거치면서 새로운 퍼포먼스와 세련된 무대로 어필하면서 10~20대까지 적극적으로 트로트를 소비하도록 견인했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미스터 트롯’ 등에 대한 정보량 점유율에서 20대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이젠 트로트가 단순히 어른들만의 ‘추억 속의 음악’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도 신선한 경험과 새로운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었다.
도표 <세대별 트로트 팬덤 변화>
그렇다면 트로트를 즐기는 팬덤의 규모는 정말 1,000만 명이 될까?
몇 년 전 한 방송에서 개최한 오디션프로그램인 '미스터 트롯' 최종 투표에 무려 773만 명이 참여, 방송 관계자는 물론 시청자들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 일개 방송 프로그램에 800만 명에 가까운 팬들이 투표를 참여했다는 것은 트로트가 얼마나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무료가 아닌 유료 문자투표임에도 수백만 명이 참여함으로써 트로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의 온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사진 출처 <MBN 제공>
‘미스터 트롯 1’의 경우 당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공중파 주말드라마에서도 이루기 어려운 시청률 35.7%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면서 우리 국민이 트로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제는 조회 수가 수천만을 넘어서는 트로트 가수 유튜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OST인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는 1억 뷰를 돌파했고 ‘모래 알갱이’ 공식 영상은 4,000만 회, ‘2024 IM HERO’ 공연 영상은 1,200만 회를 기록하는 등 유명 아이돌 가수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 출처 <KBS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개별 가수들의 팬 카페 회원 수로도 트로트 팬덤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2025년 8월 말 기준 임영웅의 공식 팬 카페 ‘영웅시대’ 회원 수는 21만 명을 돌파하며 독보적인 1위 열성 팬을 구축했다. 송가인 팬 카페 ‘어게인’도 6만 3,000명, 이찬원의 ‘찬스’는 6만 2,800명, 박서진의 ‘닻별’은 6만 2,500명, 황영웅의 ‘파라다이스’는 5만 7,954명, 최근 트로트계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용빈의 ‘사랑 밴’은 3만 5,279명, 정동원의 ‘우주총동원’은 3만 3,358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지금은 사정상 활동을 중단한 김호중의 팬 카페 '트바로티' 역시 2024년 4월에 이미 15만 명을 넘었다.
사진 출처 <임영웅 공식 팬카페 영웅시대>
이처럼 소수의 최정상급 가수 팬덤만으로도 총합이 60만 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영탁, 장민호, 김희재, 진해성 등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수만 명에 달하는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탄생한 신인과 기존가수들의 팬 카페 회원까지 합하면 과거 K-POP 스타들의 ‘사생팬’ 수준의 열정 팬덤 숫자만 1,000만 명은 거뜬히 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팬 카페와 유튜브 구독자로만 트로트 팬덤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트로트를 즐기는 팬들은 자기표현에 익숙한 젊은 층보다는 보수적인 중장년층이 주력 팬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팬 카페나 유튜브 구독자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지 않지만, 음악이나 TV 시청을 통해 열성적으로 트로트를 즐기는 팬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공식 팬 카페 ‘나에 별’ 회원이 580명에 불과한 나훈아의 경우 2021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나훈아 AGAIN 테스형 부산콘서트’는 매진을 기록하며 3일간 2만 4000명의 관객이 찾았고 올 1월 서울 KSPO 돔에서 열린 마지막 순회공연은 3일간 7만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사진 출처 <yes24>
역시 공식 팬 카페 ‘레모네이드’ 회원이 1만여 명인 장윤정 등 기존 유명 트로트 가수들도 팬 카페 활동은 젊은 트로트 가수보다 활발하지 않지만, 공연마다 소리 없이 꾸준한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볼 때 트로트 시장이 안정적인 팬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러 가지 지표를 보았을 때 트로트를 즐기는 팬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오디션 프로 시청률, 문자투표 숫자, 유튜브 조회 수, 핵심 팬덤 등을 종합해 보면 직·간접적으로 트로트를 즐기는 팬은 1,000만 명을 훌쩍 넘기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전 세대에 걸친 폭넓은 애호층을 기반으로 1,000만 팬을 확보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지표이지만 무작정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이제 트로트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악으로,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과제 또한 안게 된 것이다.
트로트 가수나 팬들 그리고 관련 정부 당국까지 트로트라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 자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보다 한 차원 높은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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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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