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 ‘윤수일의 아파트’는 개발시대 고독....2025 ‘로제의 APT.’는 Z세대의 고립감 표현
# 1982년,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파격적인 밴드 사운드, 훤칠한 서구적 외모, 세련된 무대 매너... 윤수일의 ‘아파트’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 2025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uh, uh-huh~” 신나는 비트를 타고 깜찍한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로제와 브루노마스 APT. 사진 출처 <Official Music Video>
올해 초 로제의 솔로곡 ‘아파트(APT)’가 발표되자마자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외 음원 시장을 휩쓸었다. 그런데 이 신곡의 열풍과 함께, 뜻밖의 과거 노래가 소환되었다. 1982년 발표된 같은 이름의 윤수일의 ‘아파트’다.
두 곡은 제목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라는 공간에 담긴 삶의 정서, 문화적 맥락을 보여주며 발표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는 노래로 다시 주목받았다.
40년이 넘는 시차를 두고 등장한 두 곡의 ‘아파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우리에게 ‘아파트’라는 공간은 무엇이었고,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윤수일 APT(1982년)
윤수일이 노래한 ‘아무도 없는 아파트’를 바라보는 기다림과 로제가 읊조리는 현대인들의 ‘고립감’은 무엇이 다를까. 한때 중산층의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아파트를 로제는 단절과 내면 탐색의 공간으로 표현했다.
40여 년의 간극을 두고 탄생한 ‘아파트’라는 테마의 노래는 시대적 배경을 절묘하게 담아내면서 세대를 이어온 노래의 서사성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82, 윤수일의 ‘아파트’
윤수일의 아파트가 등장한 1982년은 대한민국이 제5공화국 출범 초기, 숨 가쁜 산업화 도시화가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서울 강남, 목동 등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이때부터 아파트는 더는 낯선 주거 형태가 아닌, 성공과 부를 상징하는 중산층의 로망으로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이 서민들의 큰 목표 중 하나였다.
1980년대 중산층의 로망 ‘아파트’
또한, 높은 경제성장률로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던 시기로 프로야구 출범, 컬러TV 방송의 본격화 등 대중 소비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 전반에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성장과 자유의 분위기를 타고 성공을 꿈꾸며 수많은 젊은이가 고향을 떠나 서울로, 도시로 몰려든 시기로, 이들은 치열한 경쟁과 낯선 도시 생활 속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프로야구 출범식 1982년
이때 등장한 윤수일의 ‘아파트’는 성공의 꿈을 안고 상경한 도시인의 고독한 정서를 정확히 포착했다.
‘아파트’는 1982년 윤수일 밴드 2집의 타이틀곡으로 발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김수희의 ‘멍에’, 나훈아의 ‘잡초’, 김연자의 ‘진정인가요’ 등 서정적이며 감성적인 트로트가 인기를 끌던 당시에 트로트 감성에 도시적인 록 사운드를 가미한 ‘아파트’는 이국적 외모의 잘생긴 윤수일의 인기와 더불어 특히 여성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오빠 부대’를 탄생시켰다.
김연자 ‘진정인가요’(1982년) 사진 출처 <KBS 가요대상>
‘아파트’는 당시 누구나 꿈꾸던 공간을 배경으로, 도시인의 사랑과 기다림, 고독이라는 보편적 감성을 노래했다. 이는 ‘바로 내 이야기’라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단순한 유행가를 넘어선 ‘시대의 노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윤수일 ‘아파트’(1982년) 사진 출처 <KBS>
‘아파트’는 발표 이후 라디오 방송 횟수, 인기 순위 프로그램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음악다방과 디스코텍은 물론, 카바레와 나이트클럽에서도 울려 퍼지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어, 국민애창곡의 반열에 올랐다.
1970~80년대 음악다방 사진 출처 <MBC 아들과 딸>
1982년 윤수일의 ‘아파트’는 고도성장의 희망과 도시인의 고독이 교차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세련된 록 사운드와 보편적 공감대를 자극하는 가사를 통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강력한 신드롬을 일으킨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2025, 로제의 ‘아파트(APT.)’
로제의 아파트(APT.)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5년은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섰으며 ‘나’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이 보편화 되면서 지극히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회로 요약된다.
로제와 브루노마스 APT. 사진 출처 <Mnet>
첨단기술이 상용화되고 전 세계 어디서나 SNS 등을 통해 소통하는 등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현대인들은 오히려 더 깊은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디지털 고독’이 사회적 현상이자 과제로 부상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아파트는 더 이상 ‘성공의 상징’만이 아닌,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을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투자 대상이자 삭막한 주거 공간, 이웃 간의 무관심으로 인한 ‘단절’의 상징성 등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로제의 ‘아파트’를 좋아하는 Z세대는 성장과 성공보다 ‘나’의 내면, 정신 건강, 자아실현에 관심이 높다. 솔직하고 직접적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로제의 ‘아파트’는 8비트의 빠른 템포, 슈퍼스타 브루노 마스(Bruno Mars)와의 협업, 세련된 영어 소화 등 누구나 금세 빠져들 만한 매력 포인트가 가득하다.
하지만 신나는 비트 속에 드리워진 몽환적인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현대인의 고독감을 절절히 담아낸 가사는 빈방 안의 외로움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의 고뇌를 담아냈다.
로제의 ‘아파트’는 아파트에 갇힌 채 홀로 나만의 파티를 즐기며 이모티콘으로 외부와 소통하는 디지털 세대의 고독감과 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표현했다.
이때의 아파트는 외부와 차단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일 뿐이다.
청중과 평론가들은 로제의 ‘아파트’가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 가장 안락해야 할 공간에서 느끼는 Z세대의 공허함을 정확히 짚어냈다”라고 평가한다.
고도성장 속 ‘고독’… Z세대의 ‘외로움’
윤수일의 ‘아파트’와 로제의 ‘아파트’ 모두 신나는 사운드의 음악으로 축제에서든 응원가로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었지만, 그 내면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상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부분 노래는 세상과 소통하고 팬들과 호흡하며 함께해 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흐르는 세월과 소통하며 새로운 대화법으로 시대상을 담아내며 세대를 이어준다.
2025년 美 MTV VMA 올해의 노래 ‘로제&브루노마스 APT.’ 사진 출처 <연합뉴스>
1982년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노랫말이 울려 퍼졌을 당시의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꿈의 공간이었다. 고층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불빛은 화려했고, 그 속엔 수많은 사람들의 낭만이 깃들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윤수일의 ‘아파트’가 울려 퍼지는 이유는, 그 시대를 아프게, 행복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2025년, 로제(ROSÉ)의 ‘아파트’가 등장했을 때는 같은 ‘아파트’라는 단어 속에 전혀 다른 현대인의 외로움이 깃든 새로운 세상이 담겨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로제의 아파트는 더 이상 소유나 신분의 상징이 아니며 ‘닫힌 방’, ‘나만의 공간’일 뿐임을 표현한다. 같은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이지만 현대사회의 단절과 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공허함과 외로움을 노래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Z세대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Official Music Video>
이렇듯 윤수일의 아파트와 로제의 아파트는 이름은 같지만, 공간의 정서와 시대 온도는 달랐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꿈과 고독을 이야기했고, 로제의 아파트는 개인화된 사회 속의 자아를 되묻는다.
“음악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처럼 두 곡의 ‘아파트’는 40여 년 세월 속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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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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