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 ‘왜색’ 등으로 홀대받으면서도 일상의 음악으로 뿌리내리고 성장
젊은 가수들의 대거 등장으로 새로운 바람…. 앞으로 100년도 국민과 함께할 것
트로트가 1,000만 팬덤 시대를 열게 된 데에는 한국인들에게 일상의 음악으로 언제나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뽕짝’, ‘왜색’ 등으로 홀대를 받기도 했지만, 트로트는 국민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발전해오면서 한 세기 동안 시대의 고비마다 국민의 마음을 위로했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겐 희망을 노래했다.
대중음악 ‘유행가’의 탄생
트로트의 역사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반일 감정 속에서 일본의 엔카와 유사하다는 평을 들으면서 엔카의 아류로 무시당하기도 했지만, 트로트는 한국의 독자적인 정서와 음악적 특성을 결합하며 발전해 왔다.
‘트로트’라는 명칭이 탄생 된 유래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가지 이론이 분분하지만, 미국의 ‘폭스트롯(Foxtrot)’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탄생한 폭스트롯은 일제강점기에 서양 문물과 함께 들어와 한국에 소개되었고, 댄스홀 중심으로 유행하던 사교댄스 음악으로 한국 전통 민요와 일본의 엔카 등과 섞이면서 민요와 구분되는 '유행가'라는 독특한 양식이 등장했다.
국내·외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이고 한국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대중음악 장르로 결합하여 문화적인 융합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리듬, 일본의 음계, 그리고 한국의 정서가 섞여 탄생한 ‘유행가’는 현대적이면서 애잔하고, 이국적이면서 친숙한 소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즈가 유행일 때의 '폭스트롯'
1930년대는 유행가뿐만 아니라 전통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신민요’와 ‘재즈 송’, 해학적인 가사로 이루어진 ‘만요’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던 한국 대중음악이 탄생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음반산업이 발전하고 라디오 방송이 활발해지면서 트로트가 민족의 ‘한’과 ‘설움’을 담아내면서 일제 치하의 절망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서 대중가요의 주류로 등장했다.
트로트의 원조 격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1937),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1938) 등의 명곡이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트로트라는 명칭보다는 ‘유행가’ 혹은 ‘유행 소곡’ 등으로 불렸다.
가사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을 통해 민족적 비애를 표현하며, 단순한 유행가를 넘어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민중의 노래'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난영 '목포의 눈물'(1935)
한국인의 DNA를 트로트에 담다
트로트가 100년 동안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 음악적 구조와 가사가 한국인의 보편적 감성을 정확히 겨냥했기 때문이다.
‘쿵 짝~쿵 짝~’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2박자 리듬은 심장 박동처럼 친숙했고, 엔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라시도미파’로 구성된 단조 5음계는 트로트 특유의 애수와 비애감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유의 음계는 발라드 등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트로트만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트로트는 또 사랑과 이별, 향수, 그리움, 가난으로 인한 서러움 등 인간의 희로애락을 진솔하고 솔직하게 가사로 담아내면서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영혼을 울리는 일상의 친구로 남아있다.
탄생부터 서양 리듬과 일본의 음계가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만나 태어난 트로트는 20세기 초 혼돈의 역사를 겪은 한국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외래 문화의 맹목적 수용이 아니라, 적절히 응용하고 발전시키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트로트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왜색 논란 등 트로트의 탄생에 대한 순수성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00년의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국민 곁에서 함께한 음악으로, 서사로, 역사적으로 기여하면서 트로트는 존재해 왔다.
트로트 대중음악 중심으로 떠오르다!
한민족 비극의 역사인 6.25 전쟁 시기에도 트로트는 국민과 함께였다.
이 시기에 실향민들의 아픔을 담은 ‘굳세어라 금순아’,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이 탄생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발표된 유춘산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전쟁 중이지만 밝고 경쾌한 4분의 4박자 ‘폭스트롯’ 리듬으로 아직도 6.25 기념일 등이 되면 꾸준히 애창되고 있다.
현인 '굳세어라 금순아'(195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가 성장의 시기였던 1960년대에는 ‘히피’로 대표되는 소위 저항의 시대로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흐름과 함께 비틀스 등 역사적인 음악가들이 등장하면서 세계 대중음악과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1960년대 저항과 자유를 표방하는 '히피문화'
국내에서는 1960년대 중반 ‘트로트’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트로트와는 다른 음악 분야이긴 하지만 ‘뽕짝’이라는 별칭도 함께 사용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뽕짝’은 수준 낮은 음악으로 폄하되기도 했지만, 점차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혼용되어 불렸다.
‘국민가수’ 이미자의 등장은 트로트의 인기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64년 발표한 ‘동백 아가씨’ 등 수많은 명곡이 잇따라 탄생하고 내놓은 곡마다 크게 히트하면서 트로트가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1959년 ‘열아홉 순정’을 발표한 이미자는 이후 ‘동백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500여 장의 음반에 2,000여 곡을 발표하면서 오늘날까지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며 존중받고 있다.
사진 출처 <KTV 국민방송>
나훈아와 남진의 등장 전성기 시작
1970년대에는 남진과 나훈아라는 걸출한 트로트 스타가 탄생,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며 트로트의 인기는 절정에 달하게 된다. 남진은 ‘님과함께’, ‘그대여 변치 마오’ 등 경쾌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나훈아는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등 구수하고 서정적인 스타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인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나훈아는 산업화 시절 너도나도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한 ‘고향 역’으로 타향살이하는 많은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었다.
남진도 질세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언젠가는 금의환향하여 두고 온 임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주는 ‘님과함께’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돋워주었다.
당시 록과 포크 등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등장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큰 변곡점을 맞았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트로트 스타들의 탄생과 함께 꾸준한 인기와 함께 생명력을 이어갔다.
TV와 라디오 대중화로 트로트 전국민적 파급력 확보하면서 남진과 나훈아의 수많은 히트곡이 이어지면서 국민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트로트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국민의 시대와 감성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국민음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영원한 라이벌 '남진&나훈아' 사진 출처 <yes24>
아이돌의 등장 트로트 산업 위기 직면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내 대중음악계는 발라드와 댄스음악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촌스러운 음악”, “부모님이나 즐기는 옛날 노래”로 인식되면서 트로트가 대중에서 멀어지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트로트계에 설운도, 주현미 같은 유명 가수가 등장, 당시 유행하던 상투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하여 세련된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방식의 새로운 트로트 곡을 발표하면서 활로를 개척하려고 시도했다.
1980년대 중반 트로트 스타들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한 주현미와 설운도는 기존 정통 트로트의 가락에 80년대의 경쾌한 리듬과 서구적 사운드를 결합해 대중적 인기를 끌어냈다. 신선한 편곡과 팝적인 요소를 결합한 곡들이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1985), ‘신사동 그 사람’(1986)은 세련된 편곡과 발라드 감성을 가미하여 젊은 세대까지 팬층을 늘이면서 사랑을 받았다.
설운도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리듬감 있는 트로트를 창조하며, ‘흥겨운 트로트’의 흐름을 대표하게 되었다. 트로트에 디스코 풍을 가미한 ‘다 함께 차차 차’(1985)와 팝 발라드 작인 요소를 가미한 ‘추억 속으로’(1987)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
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계기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담아낸 ‘잃어버린 30년’(1983)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무명이었던 설운도를 일약 스타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는 노래가 시대적 배경, 국민적 공감대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1990년대는 대중음악계에서도 큰 변곡점이 있었던 시기이다.
1992년 혜성처럼 등장해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에 이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으로 대표되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트로트의 설 땅은 어디에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트로트는 여전히 건재했다.
사랑 이별을 담은 한혜진의 ‘갈색추억’, 사랑을 찾아 헤매는 마음을 표현한 김해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아련한 첫사랑을 그린 문희옥의 ‘해변의 첫사랑’에 이어 매혹적이고 감성적인 목소리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 심수봉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이다.
또 최근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의 아파트 열풍과 함께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켰던 윤수일의 명곡 ‘아파트’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트로트에 록(rock)을 가미한 신개념 곡으로 개발 붐에 따른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던 시대적 배경에서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곡으로 현재까지 여전한 인기곡으로 남아있다.
로제와 브루노마스 – APT. 사진 출처 <Official Music Video>
1990년 초반 성인가요의 신인으로 급부상한 송대관과 태진아, 그리고 오랜 무명 시절을 거쳐 인기를 얻게 된 현철이 트로트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주역으로서 활동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동반한 신곡들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트로트 재기를 주도했다.
사진 출처 <MBN>
지금은 젊은 세대들이 이끄는 ‘트로트 르네상스’
2000년대 후반부터 젊은 세대들이 트로트를 재해석하고 다양한 장르와 융합하며 트로트가 다시금 대중의 큰 사랑을 받게 된다.
1999년 강변가요제 대상으로 데뷔한 장윤정은 2004년 1집 ‘어머나’를 발표하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 트로트 가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나’는 “이 노래를 모르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메가히트를 기록, 트로트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린 곡이라 평가되고 있다.
당시엔 생소한 러시아풍의 폴카 리듬을 기반으로 한 장윤정의 ‘어머나’는 작곡가 윤명선 씨가 다른 유명 가수들에게 제안했지만, 가사가 너무 가볍다고 거절당하고 장윤정에게 준 곡이었는데 예상외로 빅히트를 치면서 장윤정과 작곡가 윤명선을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어머나~!”를 외치는 여성들의 심리를 표현한 곡으로 발표되자마자 젊은 사람들까지 관심을 받으며 전국적인 히트곡으로 떠오르면서 ‘세미 트로트'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열며 다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홍진영, 박현빈 등 젊은 가수들이 열기를 이어갔고 여세를 몰아 탄생한 종편 방송의 오디션프로그램으로 또다시 전례가 없는 트로트 열풍이 불게 되었다.
TV 오디션프로그램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현역 가왕’, ‘한일 가왕전’ 등을 통해 실력과 퍼포먼스를 갖춘 신인 인기 가수들이 대거 등장, 젊은 팬덤까지 흡수하면서 팬층을 더욱 확대하게 되었다.
아이돌급 트로트 가수 '임영웅' 사진 출처 <물고기 컴퍼니>
특히 임영웅, 송가인, 영탁 등 ‘트로트 아이돌’급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트로트의 대중적 저변이 크게 확대되었고 유튜브·SNS 시대와 결합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100년 후에도 트로트는 영원할 것
트로트는 이별, 사랑, 고향, 부모님, 눈물, 인생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드라마처럼 구체적인 서사를 담고 있어 듣는 이의 감정을 깊게 파고든다.
어려운 비유 대신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으로 감정을 전달, 대중들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프로야구 승리의 응원가 '아파트'
개인의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가 하면 야구장, 축구장, 선거유세에서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해 왔다. 지역 축제, 가족 행사 등에서도 흥겨운 분위기를 돋우는 배경음악으로, 세대를 하나로 묶는 ‘축제의 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트로트는 격동의 현대사를 함께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온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며 시대에 맞게 변신하면서 현재까지 왔다.
앞으로의 100년도 트로트는 우리의 동반자로 희로애락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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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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